세상속 이야기

영화 '머나먼 다리 (A Bridge Too Far)' 션 코너리·라이언 오닐, 스타 캐스팅의 전쟁 대작

Chris7 2019. 4. 24. 06:50

영화 ‘머나먼 다리 (영어 원제: A Bridge too Far)’는 1977년에 미국 영국 합작으로 만들어진 전쟁대작입니다. 감독은 유명 배우기기도 한 리처드 아텐보로이며 1959년에 출판된 다큐멘터리 소설 ‘지상 최대의 작전(원제: 가장 긴 하루)’의 원작자이기도 한 코닐리어스 라이언(1920~1974)의 동명 논픽션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목을 직역하면 '너무 먼 다리'가 됩니다. 이는 실제 작전 계획 중에 영국군의 몽고메리 원수와 제1공수군단장 브라우닝 중장이 나눈 대화에서 유래된 것으로, 작중 대사에서도 약간 다른 방식으로 언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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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연합군의 대표적 실패작전으로 손꼽히는 ‘마켓 가든 작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 ‘지상 최대의 작전’과 마찬가지로 영국군, 미군, 독일군 세 진영 시각으로 각각 그리고 있으며 때문에 3국의 유명 배우들이 상당수 출연합니다. 촬영지도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실제 작전이 벌어졌던 네덜란드 현지입니다. 공수강하 장면에서 나오는 엑스트라들도 실제 네덜란드군의 공수부대원들이었다고 합니다(네덜란드에 공수부대가 있다는 사실이 다소 의외라는...).


영화는 당시 비행 가능한 C-47 수송기를 이용하여 실제 강하를 하였으며, 유럽에서 가동 가능한 C-47 수송기를 싹싹 긁어모으고 네덜란드 공수부대를 동원해서 대규모 공수작전을 '진짜로' 재현하였습니다. 지금처럼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이 없던 시절이고, 당시까지도 쌩쌩하게 날아다니던 C-47 수송기가 심심찮았던 시절이기에 가능했던 어마어마한 스케일이었던 것입니다(물론 대륙의 기상이 충만한 중국은 아직까지 이런 물량공세가 가능하긴 합니다만...). 반면 실제 군용차량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작중에 등장하는 진짜 셔먼은 단 4대로, 나머지는 플라스틱으로 M4 셔먼 껍데기를 만들어 랜드로버 자동차에 씌운 모형이지만 실물과 모형을 영화상에서 거의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교묘한 촬영을 했으며 단지 구형과 신형 셔먼들이 섞여있는 게 어색할 뿐입니다.


이 외에 독일군 전차로 네덜란드군의 레오파르트1 전차를 동원했는데, 판터 전차의 대역으로서 포탑이 각지게 보이도록 구조물을 붙이고 차체를 개조했습니다. 그전에 제작진은 실물 판터를 영화에 등장시키려고 프랑스의 고물상을 이잡듯이 뒤젔는데 결국 실패했다고 합니다. 패튼전차를 쾨니히스 티거 대용으로 등장시키던 ‘벌지 대전투’ 같은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수준인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를 자세히 보면 M47패튼이 나옵니다. 또한 대작이긴 하나 전술 묘사는 만화책 수준이었던 ‘벌지 대전투’와 달리, 지금 봐도 시가전 등의 개요를 보여줄 교보재로 써도 손색없을 연출을 자랑합니다. 좁은 행군로에서 어떻게 적의 매복에 진격이 돈좌되는 지, 건물을 점령했을 때 창문을 모조리 깨고 불필요한 입구는 가구로 다 막아놔야 한다든지 등, 세세한 묘사가 뛰어납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독일군 서부전선 사령관 룬트슈테트 원수가 나오는데 놀랍게도 룬트슈테트 원수가 즐겨입던 튜닝된 군복(바이마르 공화국군 명예연대장복)도 고증했습니다.


또한 영화는 광대한 전역을 혼란 없이 묘사하기 위해 각 부대의 부대장들을 당대의 대스타들로 떡칠, 영화의 이해도를 높였습니다. 출연한 명배우들 및 배역을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더크 보우가드 :연합공수군단장 프레드릭 브라우닝 중장 /숀 코너리 : 영국 1공수사단장 어카트 소장/앤서니 홉킨스 : 영국 1공수사단 대대장 존 프로스트 중령/진 해크먼 : 자유 폴란드 육군 공수 여단장 소사보흐스키 소장(준장)/에드워드 폭스 : 영국군 30 군단장 호록스 중장 /마이클 케인 : 영국 30군단 예하 아이리시 근위연대 기갑 대대장 조 밴델러 중령/로버트 레드포드 : 미 육군 제 82공수사단 대대장 줄리안 쿡 소령/라이언 오닐 : 미 육군 제82공수 사단장 모리스 개빈 준장/엘리엇 굴드 : 미 육군 제 101공수사단 예하 연대장 스타우트 대령/제임스 칸 : 에디 도헌 중사/볼프강 프라이스 : 독일 육군 서부전구 총사령관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원수/막시밀리안 셸 : 독일 무장친위대 제2기갑군단장 빌리 비트리히 SS대장(중장)/하디 크루거 : 비트리히 장군 예하의 무장친위대 제10기갑사단장 루드비히 SS중장(소장) /로런스 올리비에 : 부상병들을 돌보고 비트리히와 협상하는 의사인 얀 스판더 박사"


이처럼 출연 배우들은 모두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스타들이며, 이 외에도 개성 넘치는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유명 배우들이 포진해있습니다. 영화 ‘대탈주’ 등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던 스티브 매퀸은 당시 오토바이에 너무 심취해서 출연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 대신 영화에 들어온 배우가 로버트 레드포드인데. 그가 나오는 장면에서 많은 관객들이 감탄했다고 합니다(사단장 라이언 오닐에 대대장 로버트 레드포드... 후덜덜한 미남 지휘관들). 그리고 이 영화에 캐스팅되지 못한 스타들이 "나도 한 번 전쟁영화를 찍어보자"고 해서 참가한 영화가 ‘와일드 기스’라고 합니다. 리처드 버튼, 로저 무어, 리처드 해리스 등, 이쪽도 스타들이 다수 출연했습니다.


그런데 연합군측 지휘관들은 모두 본명으로 나오는데 독일군은 가명을 쓰고 있다는 정보가 항간에 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주요 독일군 등장인물 중 가명을 쓰는 이는 하디 크뤼거가 연기한 루트비히 SS중장(소장)뿐입니다. 루트비히는 하인츠 하르멜 SS소장(준장)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로, 그가 가명을 쓰는 이유는 하르멜 본인이 영화에서 언급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입니다. 그 외의 독일군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실명으로 등장합니다. 참고로 영화 후반부에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기한 얀 스판더 박사가 연합군측 부상병들을 위해 독일지휘관들에게 항복(일시 휴전)을 받아 줄 것을 요청하고 이를 막스 밀리안 셸이 연기한 빌리 비트리히 SS대장(중장)이 수락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론 실제 사실이며 작전이 독일군측 승리로 끝난 후 히틀러를 비롯한 베를린쪽 지휘부가 비트리히 대장을 힐책하자 마켓가든 방어전을 실질적으로 최종 지휘한 발터 모델 원수가 그를 감싸 주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영화에선 모델 원수가 왠지 능역은 그저 그런데 계급만 높은 인물 같은 인상을 주지만, 사실 그는 독일군 내에서 방어전에 관한한 최고의 지휘력을 가진 유능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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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DVD의 스페셜 피쳐에서 제작자들이 인터뷰를 통해 영화 제작의 의의를 요즘(70년대) 청소년들이 영어 속담인 ‘A Bridge too Far’의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 말이 생긴 이유와 그 이야기를 알리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사실은 망한 작전인데…). 70년대 말 당시는 영화 제작자들의 관심이 2차 대전에서 베트남 전쟁으로 옮겨갈 즈음이었고 때문에 고전적 의미에서의 대작 전쟁영화로서는 최후의 작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에서 보여준 군대의 여러 작전상의 벙크들을 떠올리면서 공감한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사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등의 21세기 전쟁영화와 비교해보면 고전이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작품입니다. 당시 특수효과의 한계도 있었겠지만 직접적인 인체 훼손 묘사는 거의 나오지 않으며(그나마 잔인한 장면이 눈이 총알에 꿰뚫리는 정도),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상징적 연출이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 강하지점 근처에 정신병원을 독일군 주둔지로 착각한 정보를 바탕으로 연합군이 여기를 폭격해 버려서 환자들이 탈출, 강하지점 근처에서 환자복을 입은 채로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이걸 영화적 연출을 더해 작전 초기 강하지점에 난데없이 나타난 정신질환자들이 영국군을 비웃고 조롱하는 장면으로 각색 했습니다. 또한 부상자 수용을 위해 징발한 집 거실에 놓여있던 장난감 기차 위로 부상병이 피를 흘리며 지나가다 발로 차는 바람에 기차가 멈추는 장면, 마지막에 사령부로 쓰던 건물 앞에 패잔병들이 모여 있고, 건물 주변 정원의 개울 위에 놓인 작은 '다리'를 건너 독일군이 다가오는 장면 등, 이런 연출에 긴 러닝타임이 더해져 마치 책을 읽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이상하게도 흥행에 대실패했다는 소리가 풍문으로 떠들고 있으나 사실무근입니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알 수 있겠지만 박스오피스만으로도 제작비의 두 배 이상 거둬들여 중박 정도는 되고 월드와이드로 치자면 더 많은 수입을 올렸습니다. DVD의 스페셜 피쳐에서도 흥행 실패가 풍문이라는 소리를 제작자가 직접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당시 배급사가 경영권 분쟁으로 흔들리고 있었고 얼마 후 진짜로 망한 대작 전쟁영화인 ‘지옥의 묵시록’ 제작에 참여했기 때문에 이러한 풍문이 생긴 것이 아닌가 추정될 뿐입니다.


대실패까지는 아니더라도 흥행에 크게 성공할 수 없었던 요인은 긴 러닝 타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장장 3시간에서 4~5분 모자라는 시간. 비디오 대여점 전성 시절 '벤허'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대작이 아닌 경우 비디오 하나만 빌리면 되었지만 ‘머나 먼 다리’는 비디오 두 개가 한 세트). 이 때문에 극장 상영시 상영 횟수가 다른 영화에 비해 한 회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극장주 입장에서 이 영화를 오래 상영해야 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영화의 스토리 자체가 실패한 작전을 다루고 있는 것도 무시 할 수 없는 요인이기도 할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일본군의 하와이 진주만 폭격을 다루고 있는 또 하나의 전쟁대작 영화 ‘도라 도라 도라’가 미국에서 폭망한 것도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한국에서는 예전 KBS와 MBC를 통해서 각각 처음 방영되었는데 KBS판은 대단히 더빙이 잘 되어 있습니다. 성우가 진정으로 연기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 도입 부분 나레이션은 원작은 여자(리브 울만)인데 KBS 더빙판은 양지운이 합니다. 숀 코너리를 맡은 양지운의 불꽃같은 연기와 양지운의 상관으로 나온 박상일의 거만한 목소리가 인상적이라는 평입니다. 하나 더, MBC판은 마구 마구 삭제해서 1시간 30분짜리 편집판을 더빙해서 시청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행진곡풍의 메인 테마 또한 유명합니다. 곡만 들으면 도저히 이 영화가 연합군이 지는 내용일 것이라고 연상되지 않는다는게 많은 이들의 공동된 의견입니다. 여담으로 이 곡을 작곡한 존 애디슨(1920~1998)은 실제로 ‘마켓 가든 작전’에 전차 승무원으로서 참전했다고 합니다. 이상으로 총 4편의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컴퓨터 CG 등으로 도배되다시피 한 최근의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아날로그적 감상이 물씬 풍기는 전쟁대작이자 명작들이었습니다. 특히나 초호화 캐스팅이 인상적이기도 한데요... 천문학적 개런티를 자랑하는 요즘 배우들의 몸값을 생각하면 두 번 다시 저런 눈부신 캐스팅으로 영화를 제작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