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상 최대의 작전’은 동명의 다큐멘터리 소설 ‘지상 최대의 작전’이 원작인 전쟁 명작으로 원작소설 ‘지상 최대의 작전’은 ‘D-day’ 즉,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 첫 날을 소재로 코닐리어스 라이언(Cornelius Ryan)에 의해 1959년에 출판된 전쟁 논픽션 작품입니다. 영어 원제는 "The Longest Day"이며 책은 전 세계 18개 언어로 번역되어 1000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읽기 딱딱하고 건조한 군사 역사서가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 장교와 시민을 포함한 참전자들의 교차 인터뷰를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자 때로는 소설과 같은 읽을거리를 안겨준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D-day 생존자를 찾는데 에만 약 3년이 걸렸고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에서 3000번 이상의 인터뷰가 이루어졌으며 책 본문에서는 383개의 D-day 관련 설명이 사용됐습니다. 책을 위해 작가에게 도움을 준 연합군 고위 장교로는 맥스웰 테일러(Maxwell Davenport Taylor) 대장, 제임스 개빈(James M. Gavin) 소장, 프레더릭 모건(Frederick E. Morgan) 경(소장)과 리처드 넬슨 게일(Richard Nelson Gale) 경(대장)이 있고 독일군 고위 장교로는 프란츠 할더(Franz Halder) 대장, 귄터 블루멘트리트(Günther Blumentritt) 중장, 헬무트 랑(Hellmuth Lang) 대위가 있습니다. 또한, 작가는 연합군과 독일의 주둔지 작전 보고서, 전투 일지, 이력과 공식적인 기록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원작으로 많은 빅 스타들이 출연하여 1962년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바로 영화 ‘지상 최대의 작전’입니다. 영화는 20세기폭스필름이 제작하고, 영국의 켄 아나킨(Ken Annakin), 미국의 앤드류 마턴(Andrew Marton), 독일의 베른하르트 비키(Bernhard Wicki)가 공동으로 감독하였습니다. 존 웨인(John Wayne), 로버트 미첨(Robert Mitchum), 헨리 폰다(Henry Fonda), 리처드 버튼(Richard Burton), 션 코너리(Sean Connery) 등이 출연해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며, 상영시간은 180분입니다. 원작자인 코넬리어스 라이언과 로메인 게리(Romain Gary) 등이 영화를 위해 공동 각색하였습니다. 영화의 원제 '가장 긴 날(The Longest Day)'이라는 제목은 연합군의 유럽 해안 상륙에 대비하던 독일군의 롬멜 원수가 상륙 개시 24시간이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그 날이 연합군과 독일군 모두에게‘ 가장 긴 날’이 될 것이라고 말한 데서 인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연합군은 독일과의 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하여 북프랑스의 해안지방인 노르망디에 극비의 상륙작전을 계획하게 됩니다. 연합군의 작전을 염탐한 독일군은 노르망디를 사수하기 위하여 경계를 강화하여 일반인에 대한 검문검색을 철저히 하는 한편 전력을 해안에 집중시키지만 레지스탕트의 활약으로 독일군의 경계 태세는 혼란에 빠집니다. 마침내 1944년 6월 6일 새벽에 연합군의 육해공군 전력을 총동원한 사상 최대 규모의 상륙작전이 펼쳐지고 길고 긴 하루가 시작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제작비인 1,200만 달러를 투입하여 1만 1,000대의 전투기와 400척의 전함을 동원, 연합군의 상륙작전을 재현한 시네마스코프의 역작이며, 전쟁 세미다큐멘터리영화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대한 스케일에 걸맞게 당대의 유명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이 영화에서 배우들이 차지하는 몫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상륙작전 자체이며, 영화도 작전이 펼쳐진 처음 몇 시간을 재현하는 데 주력하였습니다. 참고로 할리우드 슈퍼스타 존 웨인이 극중 미 제82 공수사단 연대장으로 출연하는데, 국내에선 제2차 세계대전 중 미 공수사단하면 일단 제101 공수사단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공전의 히트작들인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미니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영향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실제 전쟁 당시엔 미 공수부대들 중 원 탑(?)은 제82 공수사단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것이 저의 개인적 의견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101 사단은 전쟁 중 두 번의 강하 작전(‘노르망디 상륙’과 ‘마켓 가든’)을 수행했으나 82 사단은 그 두 번에 더해 노르망디 이전에 이태리에서 두 번의 강하작전을 더 수행한 경력이 있습니다. 부대의 별칭역시 ‘미국 대표’란 뜻의 ‘올 어메리칸’이기도 합니다. 101 사단이 대외적으로 유명해진건 아무래도 독일의 아덴 공격시 포위상황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중요한 전략 요충지였던 바스통을 사수한 ‘발지 전투’ 이후라고 봐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영화내용 중 눈여겨 볼 장면은 명배우 헨리 폰다가 한 상륙사단의 부사단장(준장)으로 출연하는데 실제 그 인물은 미국의 전 대통령이었던 시어도르 루즈벨트의 아들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와도 당연히 인척지간 있었고... 때문에 극중에서도 그의 상관인 사단장이 직접 상륙부대와 함께 1진으로 작전에 참여하려한 그를 만류했으나 루즈벨트 장군은 자신이 전 대통령이 아들이자 현 대통령의 인척이기에 더더욱 작전에 직접 참여해야한다는 논리를 역설했고 결국 상륙1진으로 노르망디 작전에 뛰어들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상륙정을 타고 해변에 오르고 보니 원래 작전지로 결정된 그 해변이 아니었습니다. '여기가 아니다'가 실제로 벌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고 즉각적인 결정을 내리며 '내가 있는 이곳이 작전 지역이다'라며 이후 상륙부대와 물자를 그곳으로 집결시키라는 명령을 내려 큰 혼란을 막게 됩니다. 참고로 당시 유럽전선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 장군의 아들 존 아이젠하워가 D-DAY 일이었던 6월6일에 웨스트포인트(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는데 이 부분은 미니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도 언급됩니다. 이후 그는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에도 소령으로 참전하게 되는데 1952년 미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이 된 아이젠하워는 그의 아들의 한국전 참전을 반대하게 됩니다. 자신의 아들이 전쟁에서 부상이나 전사할 것을 우려해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아들이 혹시나 적군의 포로가 되면 군 최고 통수권자로서의 전략적 판단에 악영향을 미칠걸 우려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강한 참전의지를 꺾지 못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아들의 참전을 허락하게 되고 존 아이젠하워는 결국 한국전에 참전해 낙동강 전투 등에서 활약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존 아이젠하워는 2008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적들에게 악용될 수 있으니 절대로 포로가 돼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며 “포로로 잡히느니 차라리 목숨을 바치겠다고 나 스스로 마음먹었다”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뒤에 미국에서는 현직 대통령과 부통령의 자녀가 전투에 나가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생겼다고 합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 사실 많은 분들이 이미 아시는 사실이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성공한게 신기할 정도로 부분적으로 많은 오류들이 발생한 작전이었습니다. 위에서 서술했듯이 실제 부대의 해안 상륙지점이 작전상 지점과 다른 경우도 있었고 특히 작전의 성패를 쥐고 있었던 공수부대들의 강하지점 역시 목적지와는 다르게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될려면 실수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공수부대원들이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강하됨으로 해서 독일군들은 실제 강하병력보다 훨씬 더 많은 대규모 인원들이 강화된 것으로 착각하고 되고 후방부대들을 해안가로 이동시키는 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초기에 비교적 소수의 상륙병력을 몰아내수 있는 시간적 기회를 놓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극중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을 전해들은 독일군 서부전선 최고사령관 룬트스테트 원수는 히틀러에게 후방에 있던 기갑부대의 해안이동을 요청하라는 휘하 장군의 조언에 대해 '내가(이 몸이) 오스트리아 상병출신에게 굽신거리라는 말이냐'며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물론 다소 과장된 부분이지만, 실제 히틀러는 당시에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을 자고 있었고 베를린의 참모들은 그가 잠에서 깰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지해야할 점은 당시 독일군 서부전선 사령관은 앞서 언급한 룬트스테트 원수이지만 실제 연합군의 상륙병력을 1차적으로 방어해야 할 대서양 해안 방어 사령관은 그 유명한 에르윈 롬멜 원수였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독일군 하면 '상명하복'을 목숨처럼 여겼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론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나 롬멜 원수는 총통이었던 히틀러의 신임을 믿고 자신의 직속상관이자 군의 대선배였던 룬트스테트 원수를 제체고 자신이 직접 서부전선 기갑부대의 지휘권을 가지려 했고 두 최고 지휘관 사이의 알력에 난처해진 히틀러는 황당하게도 베를린에 있던 자신이 대서양 연안 기갑부대 지휘권을 가져가고 맙니다. 결국 이는 큰 실착으로 작용하며 상륙작전 초기에 강력한 화력을 가진 독일군 기갑부대들이 개인화기만 가지고 해안에 상륙한 연합군의 병력을 해안가에서 몰아내지 못하며 최종적으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게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게다가 해안 방어부대 사령관인 롬멜 원수는 아내의 생일 때문에 현지에 있지도 않았고... 참으로 하늘이 도왔다고 해야 할 상황들이 여기저기서 벌어졌습니다. 아울러 하나 더 극중 눈여겨볼 장면은 역시나 빅 스타인 로버트 미첨이 상륙부대 부사단장(준장)으로 해안 상륙을 진두지휘하는 부분입니다. 장군이 직접 사병들을 지휘해 해안방어 장벽을 돌파하는 장면인데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이 등장합니다. 바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대위역의 톰 행크스가 자신의 레인저 부대원들을 지휘해 해안 방어벽을 돌파하는 부분입니다. 실제 본 영화에서도 레인저 부대원들이 여러명 희생되면서도 결국 독일군 방어벽을 폭파하게 되고 이후 연합군 병력들이 대규모로 해안에 상륙하는 장면을 로버트 미첨이 시가를 문채 흐뭇하게 바라보며 영화는 마무리 됩니다. 위에서도 서술되었듯이 원작자인 라이언은 노르망디상륙작전 현장에 있었던 저널리스트로서, 그 하루 동안 작전에 참여한 장성들과 사병들, 독일군과 레지스탕스 시민 등 많은 사람들이 겪은 상황을 세세하게 묘사하여 사실감을 더하였습니다. 여기에 독일군은 독일어로 말하고 프랑스 사람은 프랑스어로 말하는 언어의 사실감도 당시의 할리우드 영화와 구별되는 점으로서, 이후의‘ 도라 도라 도라’ 등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영화들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화는 처음 흑백으로 제작되었으나, 노르망디상륙작전 5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과 프랑스가 공동으로 1,200만 달러를 들여 6개월이 넘는 작업 끝에 컬러로 복원하였습니다. 1963년 제35회 아카데미상에서 흑백 촬영상과 특수효과상을 받았으며, 골든글로브상의 흑백촬영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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