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이’는 1976년에 유니버설 영화사에서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으로 제작한 전쟁 영화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미·일간의 태평양전쟁 향배를 가른 분수령이 된 미드웨이 해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감독은 잭 스마이트이며 전편격인 ‘도라 도라 도라’가 흥행실패를 한 원인을 분석하여 여기선 유명 배우들을 다수 캐스팅했습니다. 주인공격인 찰턴 헤스턴에 더해 니미츠 제독은 헨리 폰다, 핼시 제독은 로버트 미첨, 야마모토 제독은 토시로 미후네, 그밖에 글렌 포드, 제임스 코번 같은 여러 유명배우들도 나오며 기타 일본측 인물들은 나름 이름 있는 동양계 미국배우가 네이티브 영어를 구사합니다. 베스트 키드에서 미야기 스승을 맡은 팻 모리타도 나왔습니다. 한편, 야마모토 제독역의 토시로 미후네는 더빙처리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작비가 꽤나 늘어나서 정작 전투라든지 다른 요소들에선 제작비를 대폭 줄이게 됩니다. 항공모함 전대를 실제 항공모함 1척으로 때우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드라마적인 이야기를 포함해 ‘도라 도라 도라’ 절반이 안되는 제작비 1100만 달러로 북미 4322만 달러라는 흥행 성적을 거둬 꽤 성공한 편이지만 다큐멘터리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엄청난 고증 수준을 자랑하는 ‘도라 도라 도라’와는 반대로 ‘미드웨이’의 고증수준은 상당히 엉망에다가 다른 영화들의 장면을 많이 짜깁기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를테면 전시 선전영화인 ‘동경 상공 30초,’(초반부에 나오는 자료화면으로 묘사된 동경 공습 부분이 바로 그 영화입니다) 일본에서 제작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전기 영화 ‘태평양의 폭풍,’ 그리고 전편격인 ‘도라 도라 도라’입니다.(잘 보면 미드웨이에 난데없이 미 전함 아리조나가 정박해있고 미드웨이 출격을 아침에 합니다) 더군다나 전투 장면 중 대부분을 1944년 당시 선전 필름을 사용했습니다.
특히 고증을 중시하는 밀리터리 매니아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평을 듣지 못하는데요. 미국 건국 200주년을 기념해서 만들어졌다는 거창한 카피와는 달리 싼 티가 너무 심하게 납니다. 예를 들자면, 대부분의 전투장면이 지상세트촬영+다른영화에서 복사 붙여넣기(‘도라 도라 도라’나 ‘태평양의 불꽃’)+실전 기록 필름 복사 붙여넣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때문에 비행중인 전투기가 엉뚱한 기종으로 '변신'하는 경우도 있고, 참전하지도 않은 F4U 콜세어 전투기가 나오질 않나, 실물모형이나 축소모형이 등장했던 ‘도라 도라 도라’와는 달리 70년대 당시 구할 수 있었던 에섹스나 포레스탈이 당시 항모의 대역을 전담하고, 일본측 인물들이 모든 대사를 유창한 영어로 구사하는 등... 장비 고증은 물론이고 연출상의 실수도 많아서, 당시의 평단이나 관객들의 반응도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 정도 규모에 이 정도 캐스팅에 이 정도 내용이면 아카데미나 골든글로브 같은 영화시상식에서 상 몇개는 받는게 기본이건만, 미국내에서 단 한 개의 영화상도 수상하지 못했습니다(참고로 ‘도라 도라 도라’는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단점만 있는 건 아니고 분명 장점도 존재하는데 이를 테면 태평양전쟁의 미일의 우위를 뒤집어 놓은 결정적 사건인 '미드웨이 해전'에 대해 별도의 설명 없이도 초보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또한 실제 역사에 매우 충실하게 극화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덕분에 이 영화를 본 후에 사료를 찾아본다면 이 해전에 대한 이해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 영화중에 주인공인 가르스 부자, 그리고 사쿠라 하루코에 관련된 부분을 빼고는 영화적 허구는 전혀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1977년 7월 15일 개봉하여 서울 관객 23만으로 당시에는 꽤 흥행에 성공했는데 80년대 나온 비디오판은 런닝타임 132분의 원본 중에서 상당부분 삭제를 했습니다. 중간에 나오는 ‘산호해 해전’부분이나 찰턴 헤스턴의 베드신 등이 편집되었습니다.
영화 내용 중엔 미 해군 태평양 함대 정보부가 일본해군의 암호내용을 파악해 일본이 미드웨이 섬을 중심으로 공격을 할 것이란 결정적인 정보를 알아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니미츠 제독을 중심으로 한 미 해군은 황급히 3척의 항모로 항모전단을 편성해 일본군의 공격을 대비하게 되는데, 사실상 이 지점에서 해전의 승부는 결판이 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매복 공격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전투(전쟁)를 승리한다고 할 순 없지만 적군의 공격에 대비해 충분히 준비를 했다는 측면에서 미군 정보부의 암호해독 능력은 미·일간 태평양전쟁의 향배를 가른 중요한 요소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같은 미군의 일본측 암호해독 능력은 ‘미드웨이’의 전작격인 ‘도라 도라 도라’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워싱턴 DC의 미 육·해군 합동 정보부는 워싱턴 주재 일본 대사관과 본국간의 암호 교신내용을 처음부터 꿰뚫고 있었고, 때문에 일본이 겉으론 평화 협상을 계속하고 있지만 실제론 아시아의 미국의 점령지 혹은 하와이 제도를 기습 공격할 것이란 것을 파악하게 됩니다. 하지만 워싱턴과 하와이 사령부간 교신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는데다 해군 최고 사령관 스타크 제독의 판단 착오 및 하와이 주둔 미 육·해군의 부대배치 등에 문제가 있었던 탓에 결국 후대까지 두고두고 회자되는 참담한 패배를 기록하게 됩니다.
아울러 본 영화와는 직접적 상관은 없지만 미군의 일본군측 암호해독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해군 연합함대 사령관이자 일본군의 하와이 기습공격을 최종 지휘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이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항공기를 이용해 전선 시찰을 하게 되는데 이 내용을 미군이 당연히(?) 알아내고 전투기들을 이용해 야마모토 사령관이 탑승한 항공기를 격추했고 결국 그는 전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정보부의 암호해독 내용을 바탕으로 사령부 참모들이 야마모토 사령관이 탐승한 항공기를 격추해 버리자는 의견을 니미츠 제독에게 올렸는데 그는 의외로 한동안 망설였다는 것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니미츠 제독이 그의 카운터파트인 일본의 야마모토 사령관을 높게 평가해 암살과도 같은 항공기 격추를 선호하지 않은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실은 당시 니미츠 제독은 일본의 야마모토 사령관을 지극히 무능한 인물로 평가했고 만약 그를 죽이게 되면 누군가 그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텐데, 혹 그보다 유능한 인물이 일본의 연합함대 사령관이 되지는 않을까 우려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과연 미군의 일본군 암호해독능력을 일본측이 알아챌 수도 있음을 감수하면서 까지 야마모토를 죽일 필요가 있을까 고민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참모들은 이미 태평양전쟁은 미군쪽으로 승리가 기울었고 당시 일본해군 수뇌부에는 그들이 무능하다고 판단한 야마모토보다도 더 무능한 인물들뿐이란 조언을 했습니다. 이를 들은 니미츠 제독은 최종적으로 야마모토 사령관이 탑승한 항공기 격추 작전을 승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야마모토 사령관은 일본 해군 최고의 영웅이었습니다. 그 도 그럴 것이 필리핀 점령을 제외하곤 미국을 상대로 사실상 일본 해군의 처음이자 마지막 태평양전쟁 중 승리인 ‘하와이 공습’을 기획·지휘했기 때문입니다(미드웨이 해전 직전에 벌어진 산호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이 미 해군의 항모 1척을 격침시키긴 했으나 일본도 소형 항모 1척이 격침되었고 실제 해전의 일본측 목적이었던 전략 요충지 점령은 실패 했기에 승리보다는 무승부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일본에선 그와 관련한 전기영화가 현재까지도 다수 제작되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그가 당시 일본군 내에서 비교적 온건파였던 탓에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속에서도 꽤나 합리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태평양전쟁 당시 그와 직접 대결했던 미 해군의 니미츠 제독이 그를 지극히 무능한 인물로 평가했다는 것이 상당히 의외이자 재밌기도 한 것입니다. 물론 야마모토 사령관의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에 대해선 전쟁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본측의 생각과는 달리 미군내에선 줄곧 부정적이었던건 사실로 보입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작전이었던 ‘하와이 공습’과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항공모함 운영내용 등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 하도록 하고 여기서 오늘 글은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이로써 두 편의 태평양전쟁 관련 영화 이야기를 마치고 다음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전선 관련 영화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속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머나먼 다리 (A Bridge Too Far)' 션 코너리·라이언 오닐, 스타 캐스팅의 전쟁 대작 (0) | 2019.04.24 |
---|---|
영화 '지상 최대의 작전 (The Longest Day)' 존 웨인·로버트 미첨, 호화 캐스팅의 전쟁 명작 (0) | 2019.04.21 |
영화 ‘도라 도라 도라’ 충실한 고증이 빛나는 비운의 전쟁 명작 (0) | 2019.04.09 |
Mnet ‘프로듀스 X 101’ 타이틀곡 ‘_지마’ 제2의 워너원 가능할까? (0) | 2019.03.27 |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김해숙 유선 김소연 김하경, 네 모녀 이야기 (0) | 2019.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