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전부터 숱한 화제와 논란을 불러 모은 케이블채널 Mnet의 새 예능프로그램 ‘아이돌학교’가 지난 13일 첫발(개교)을 내디뎠습니다. '걸그룹 데뷔'라는 목적에선 지난해 방송된 ‘프로듀스 101’ 시즌1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학교'라는 방식을 빌려 제작한다는 점에선 나름의 흥미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참가자들을 마치 성적 대상인양 다루는 게 아니냐는 의견부터 일부 출연진의 '일진설', Mnet 특유의 '악마의 편집' 등 여러 우려 섞인 시각이 뒤엉켰던 것도 사실입니다.
첫 방송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주요 참가자들의 이름이 대형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등장했을 정도로 일단 화제를 끄는데 엔 성공했습니다. 게다가 매회 실시간 문자 투표 진행과 참가자들의 반응을 생방송으로 바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도 부족함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론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서툴고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노력으로 성장하는 재능이 아닌 노력중심의 성장형 아이돌의 산실이 되겠습니다.” 원로배우 이순재가 ‘아이돌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등장하면 했던 말입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방송은 학교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입니다. 이미 1명이 심리적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퇴교한 가운데 ‘아이돌학교’ 는 4주차 방송을 통해 성적이 낮은 8명을 퇴소시킨다고 합니다. 과연 어떤 학교가 성적만으로 학생을 평가해 퇴학시킬 수 있을까요? 물론 예능프로그램 ‘아이돌학교’를 진짜 학교로 보기엔 많은 무리가 따르지만 말입니다.
11주 동안 체계적인 교육과 성장 리얼리티를 강조했던 ‘아이돌학교’는 실제론 다른 서바이벌과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시작부터 ‘프로듀스 101’과 비교됐던 ‘아이돌학교’는 ‘학교’라는 형식으로 차별성을 꾀했지만 오히려 그게 더 불편해 보이는 역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이순재, 김희철, 바다 등이 각기 다른 선생님으로 나왔지만 결국 기존 MC와 트레이너 군단과 차이점은 거의 없었습니다. 또 ‘국민 프로듀서’는 ‘육성회원’으로 이름만 바뀌어 인기투표가 진행됐고 오히려 실시간 성적 공개, 꼴찌에게 소감을 강요하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경쟁 부추기기로 시청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습니다.
‘아이돌학교’의 논란은 사실상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아이돌학교’는 일반인과 소속사가 없는 아이돌 가수 지망생으로만 지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41명 중 연습생이나 방송 경험이 있는 사람이 과반수를 넘었고 그 중에서도 오랜 기간 연습을 통해 보컬과 댄스 실력이 뛰어난 이들이 눈에 띄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아이돌학교’는 다양한 교과목을 내세우고 있지만 허울 좋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합니다. 장기간 다양한 항목으로 참가자를 성장시키기보다는 ‘아이돌학교’는 ‘데뷔 능력 고사’라는 무대를 통해 서바이벌로 내몰았습니다.
게다가 ‘아이돌학교’는 ‘프로듀스 101’ 시즌1 당시에도 여러번 지적된 성 상품화와 노골적인 성적대상화가 도를 넘었습니다. 교가 제목도 ‘예쁘니까’면서 취침에 들어갈 때도 서로에게 ‘내일 더 예쁘게’라는 인사를 건넵니다. 학교의 지향점이 단순한 외적 예쁨으로 귀결되는 것을 누가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온통 핑크로 꾸민 공간이나 내무반 같은 곳에서 생활하는 모습, 그리고 ‘부르마’를 연상시키는 체육복까지 실제 방송에서 보여지는 시선은 굉장히 폭력적이고 한쪽으로 치우쳐 있음을 부인 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아이돌학교’의 문제점은 수직계열화에 있습니다. 연습생 신분이 아닌 일반인(?)지원자로 참가자가 구성된 ‘아이돌학교’는 결국 CJ E&M 소속 걸그룹을 만드는 프로그램입니다. 거대한 플랫폼을 가진 방송국, 그리고 음반 제작, 유통까지 가능한 기업 그리고 홍보와 활동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모두 가진 기업이 직접 아이돌을 만든다면 결국 영화계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수직계열화가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당초 '아이돌학교'가 내선 차별점은 '성장'이었습니다. 신유선 PD는 앞서 제작발표회에서 "'프로듀스101'은 연습생이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면, 우리는 일반인이 얼마나 잘 성장해 나가는지 지켜보고 교육시켜 데뷔시키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돌학교'의 학생들은 결국 경쟁이라는 굴레에 갇혀 버렸습니다. 지난 20일 방송된 '아이돌학교'에서는 40명의 학생들이 퇴소 룰에 대해 듣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방송 4주차인 2주 후 최하위 순위 8명은 퇴소 조치된다는 것입니다. 홍시우, 김나연, 타샤, 양연지, 조세림, 조영주, 이다희, 스노우베이비 8명이 퇴소 위기에 처했습니다.
결국 '아이돌학교'에서 말한 성장이란 '상위권에 드는 것'이었을 뿐입니다. 긴장감과 동기부여를 위해 최소한의 상벌 장치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단순히 배우고 익히는 과정만 보여주면 관전 포인트의 부재로 시청자의 외면을 받기 쉽기 때문입니다. 존재감을 알려야 할 출연자들에게도 적절한 경쟁이 도움이 될 터입니다. 다만 '학교'까지 이름을 빌려온 이 프로그램에 조금은 다른 성장 드라마를 기대한 시청자들에게는 아쉬움을 안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장에 있어서 경쟁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기존 서바이벌과는 다를 것 같았던 '아이돌학교'에도 여지없이 등장한 탈락이라는 카드에 씁쓸함이 남는 이유입니다.
현재와 같은 성적지상주의와 상대평가 시스템 안에서는 전체적인 평균 실력이 올라가더라도 내 순위가 제자리이면 '성장'을 증명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결국 ‘아이돌학교’의 11주는 노력이 아닌 준비된 자들을 위한 서바이벌, 그리고 CJ E&M 계열의 Mnet의 걸그룹 탄생을 위한 서바이벌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차라리 대놓고 생존과 경쟁을 강조한 ‘프로듀스 101’이 나아보이기까지 합니다. 시청률 역시 첫 방송 이후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아이돌학교’, 8명의 학생을 퇴학시키기 전에 먼저 배우고 가르치는 학교가 가진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변화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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