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각 방송사마다 한 두 개씩의 시대극이 방송중입니다.
지난 MBC의 ‘선덕여왕’과 KBS의 ‘추노’ 성공이후 다시 한 번 사극붐 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사극대신 시대극이란 말을 쓰는 이유는 최근의 역사드라마가 더 이상 역사적 사실과 고증은 외면하고 드라마적 흥행에만 치우쳐져있는 이유입니다.
예전엔 시대극을 볼 때마다 ‘아 이걸 왜 이런 식으로 표현하나...’ 하고 혼자서 탄식하곤 했는데, 더 이상은 우리나라 방송사들의 시대극에 사실성추구를 바라지 않기로 했습니다.
드라마에서 역사적 진실을 기대 한다는 것이 철없는 짓 이라는 걸 깨달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또 한 번 탄식하는 마음에 주저리주저리 하게 되네요!
시대극 하나씩 대충 한번 짚어보겠습니다.
KBS의 ‘광개토태왕’은 지난번의 ‘근초고왕’ 그리고 향후의 ‘태종무열왕’과 더불어 삼국시대극 3부작중의 하나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역사기록 중 그나마 제대로 남아있는 것은 조선시대 기록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바탕으로 상당부분 진실에 가깝게 당시의 시대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이 또한 사람 손에 의한 기록인지라 백퍼센트 객관적이라곤 할 수 없겠습니다만...
고려시대 역사는 조선 태종 때 서술된 ‘고려사’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데 고려왕조를 뒤업고 조선을 건국한 당대의 인물들에 의해 서술되었기에 상당부분 왜곡이 개입되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고려말상황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이나 고려사는 시대 상황을 꽤 세세한 부분까지 기술하고 있기에 시대별, 혹은 사건별로 행간을 잃으면 당시의 정황을 충분히 유추해 낼 수도 있기에 그 가치가 있습니다.
이에 비해 고려이전 삼국시대의 경우는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기 무척 힘듭니다.
그러기에 전작인 ‘근초고왕’이나 현재방영중인 ‘광개토태왕’의 경우에도 기실 두 왕들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 가지 착각하기 쉬운 것은 광개토태왕의 경우 워낙 회자가 많이 되는 인물이기에 우리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광개토태왕이 활발히 정복사업을 벌이던 시대부터이지 지금 드라마로 방송되고 있는 태왕의 등극 전 일이나 등극후 초기의 일들은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근초고왕의 경우 더 심해지며 왕위에 오르고 십 수 년이 지나서야 비로써 삼국사기에 그의 일들이 기록되기 시작합니다.
현재 삼국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기술한 정사는 고려시대에 신라계출신인 김부식에 의해 쓰여진 ‘삼국사기’가 유일한데, 이렇듯 광개토태왕과 근초고왕 두 인물 모두 왕이 되고 한참이후에 가서야 비로써 언급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역설적으로 사실 확인을 할 수 있는 기록이 없으니 오히려 드라마에서 작가 마음대로 상황연출을 해도 그냥 드라마로 볼 수도 있는 재미있는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몇 해 전 방영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대장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장금’의 경우 중종실록에 장금이란 인물에 대해 단 한줄 나와 있을 뿐인데, 여기에 작가와 연출가의 엄청난 상상력이 더해져 한류열풍의 선봉장노릇을 하게 된 명품드라마가 나온 것입니다.
MBC의 ‘계백’도 ‘광개토태왕’과 마찬가지로 드라마에서 인물을 정확히 표현 할 수 있을 만큼의 역사적 기록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처자식의 목을 직접 베고 황산벌에서 신라 김유신의 5만 대군에 대항해 5천결사대와 함께 장렬히 싸우다 전사했다는 정도이겠죠.
그리고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계백은 백제의 귀족가문에서 출생해 어려운 인생의 굴곡 없이 엘리트코스를 밟으며 집안 대대로 계승하던 달솔이라는 관직을 이어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드라마를 만들면 재미가 없으니, 힘든 성장과정을 거쳐 백제의 마지막 충신이되는 스토리가 나와야겠죠.
이 정도는 애교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어짜피 정확한 기록이 없기는 위에서 기술한 인물들과 마찬가지이니까요.
그리고 KBS의 ‘공주의남자’는 매회 드라마서두에 ‘본드라마는 허구입니다’라고 한 대 때리고 시작하니 더 이상 언급할 게 없겠네요.
다만 허구의 인물인 두 남녀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세조와 그 주변 실존인물들의 표현에선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세조와 계유정난의 주역인 한명회는 제쳐두고 신숙주와 권람만 보자면, 신숙주가 비록 잘 쉰다고 숙주나물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말이 당시에 생겼을 정도로 배신자의 낙인이 찍혀있지만 그 나름으로는 확고한 정치적 신념에 따라 수양대군과 함께한 인물입니다.
김종서가 오로지 어린단종을 위해 최후까지 수양에 대항한 것으로 표현되지만 사실 그 당시에 권력의 칼자루를 쥐고 있던 인물은 황보인과 김종서를 위시한 권신들이었습니다.
단종은 그저 김종서 등이 기획한 국정운영지침에 단지 싸인만 하고 있었을 뿐이었고 (이를 황표정치라 하였다네요), 이에 수양대군은 왕권강화라는 기치 하에 자신의 개인적 야망에다 권력에 대한 야욕에 불타던 한명회 등의 건달패거리 등의 힘을 더해 계유정난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기 전, 즉 계유정난 후 영의정에 오를 때 까지만 해도 사육신의 대표격인 성삼문등이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는데서 당시 김종서 등의 권력남용이 엄연히 존재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계유정난에는 정인지등과 같은 세종시대 때부터의 명망가등도 함께 하였고, 이중 수양대군과 처음부터 함께한 권람도 있었던 것입니다.
기실 위에 언급한 신숙주, 성삼문, 권람 그리고 수양대군 모두 조선시대 최고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에서 함께 동문수학한 이들입니다.
요즘말로 대학동기들인 것이지요!
그리고 이들을 훈육한 스승이 바로 수양대군의 사돈이기도한 정인지입니다.
명문 안동권씨가의 후손이자 당대의 천재들인 신숙주, 성삼문등과 함께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정인지 밑에서 동문수학한 권람이 드라마에서처럼 그리 저급하고 비열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평균 대과 급제연령이 30대 중반인 것에 비해 성삼문, 신숙주 권람등은 모두 20세 전후에 대과 장원급제를 하였으니 과히 천재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권력에 물들면 사람은 변하는게 인지상정인지 권람도 정승반열에 오르며 축재도 했음은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SBS의 ‘무사 백동수’가 가장 문제인데요...
드라마적 완성도와 주인공급 젋은 배우들의 연기력 미숙은 제쳐두고 역사적 고증만 한번 보겠습니다.
가장 눈에 거슬리는 부분은 영조의 계비인 나이어린 정순왕후가 당시의 집권층인 노론 벽파들을 사가에다 모아놓고 왈가왈부 정치를 논하는데... 이런 넌센스도 없습니다.
참으로 드라마 작가들이나 연출가들의 기본소양이 의심스런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선시대, 특히 왕실문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폐쇄적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왕의 시중은 상궁이나 나인들이 아닌 내관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관여했었고, 궁중의 여인들인 대비나 왕후, 후궁 등은 왕 이외의 남자는 일 년에 손에 꼽을 정도 그것도 직계가족 아니면 한방에 함께 앉을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중전이라는 여자가 궁을 몰래 나와 사가에서 남자들을 수두룩하게 앞에 모아놓고 뭘 어쩐다고요?
아! 정말 아무리 드라마라도 이건 아닙니다.
요즘 한국 양대 정당의 서울시장후보가 여성이고, 여당의 강력한 대권후보도 여성인 현 상황하에서 여성상위의 사회적 대세를 무시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것 해야지요!
이 장면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이미 몇 년전 MBC의 ‘이산’이라는 드라마에서도 똑같이 나왔던 장면입니다.
당시가 아마 제가 우리나라 사극을 더 이상 사극이 아닌 그냥 시대극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때입니다.
한마디로 그냥 드라마 작가들과 연출가들의 기본수준에 대한 포기입니다.
정말 비교하기는 실지만 일본 NHK의 대하사극과는 극과 극의 상황입니다.
그들은 최소한 NHK 사극만은 방송사의 명예를 걸고 자신들의 역사고증에 매달린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방송이 그렇게 일본 것 많이 베껴먹으면서 왜 이런 건 카피안하는지 모르겠네요!
드라마는 그냥드라마일 뿐이므로 역사교과서와 비교하지 말라고 시대극 연출자나 작가들은 자신들을 변론하지만, 현실은 드라마가 국민정서와 상식에 끼치는 영향력은 소통매체가 다변화된 지금도 여전히 강합니다.
방송국의 생리상 시대극에서도 시청률과 광고판매를 통한 수익창출을 무시하진 못 하겠지만 최소한의 역사적 상식과 소양은 갖추어주길 혼자 메아리 없는 외침을 외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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