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

미국 민주당의 역사와 이념 그리고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

Chris7 2016. 6. 13. 12:13

미국의 양대 정당중 하나인 민주당은 묘하게도 라이벌 정당인 공화당과 같은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지난번 포스팅한 공화당 관련 글에서도 서술했듯이 민주당과 공화당은 민주공화당(Democratic-Republican Party)에서 갈라져 나온 정당들입니다. 그리고 민주공화당의 전신은 토마스 제퍼슨이 창당한 공화주의자당 입니다. 건국 무렵의 미국 정치는 현재의 보수-진보의 대결구도가 아닌 연방이냐 반연방이냐의 구조였습니다.

 

공화주의자당과 그 후신인 민주공화당은 미국의 3대 대통령이기도 했던 반연방주의자 제퍼슨이 주도적으로 창당한 당이기에 당연히 반연방주의자들이 모여 당시 강한 연방주의를 기치로 내걸었던 연방당과 양당체제를 구축하게 됩니다. 이후 앤드류 잭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민주공화당내 반잭슨파들이 탈당해 휘그당을 창당하게 되지만 1850년대 정치적 혼란기에 새로이 ‘반노예제’를 가치로 내걸고 창당된 공화당에 흡수되며 현재의 공화당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반면 민주공화당에 잔류한 친잭슨파들은 당명을 민주당으로 바꾸고 현재까지 면면을 이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공화당의 분당결과 탄생한 민주당은 그 뒤 남부 민주당과 북부 민주당으로 분열하게 되고 이런 분열상황에서 1860년 공화당의 에이브러헴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리고 이후 발발한 ‘남북전쟁’의 결과 남부민주당이 주축이 된 ‘남부연맹’이 전쟁에 패하며 민주당은 오랜 동안 정치적 시련기를 겪게 됩니다. 하지만 1929년 미국경제를 강타한 ‘대공황’의 여파로 1932년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민주당 출신 프랭클린 루즈벨트에 의해 민주당은 공화당에 맞서 다시 한 번 정치적 중흥기를 맞게 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전 미국사회에선 볼 수 없었던 강력한 사회복지와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근간으로 한 ‘뉴딜정책’을 추진하며 4선연임에 성공합니다. 이시기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내 조차 진보적정치인들이 늘어납니다. 하지만 1960년대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 연방 상원의원이 이끈 보수주의 개혁 운동이 일어나며 공화당내 진보정치인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되고, 그 결과 공화당은 현재와 같은 매우 강경하고 보수적인 모습으로 변모하며 민주당과의 이념 대립은 더욱 격화되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당선과 함께 시작된 민주당의 미국 의회 내 다수당 지위는 1994년 뉴트 깅그리치 당시 하원 원내대표가 이끈 ‘보수혁명’으로 무너지게 되며 차후 공화당과 다수당 지위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됩니다. 그 뒤 민주당은 아들 부시 정권 인기하락의 여파로 2006년 중간선거에서 상. 하원 다수당지위를 되찾으며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고 2008년 역사적 첫 흑인 오바마 정권을 탄생시키기에 이르지만 이후 실시된 중간선거에서 충격적 패배를 기록하며 또다시 현재의 여소야대 정국에 이르게 됩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되었습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치열한 당내 예비 경선을 거친 클린턴은 퍼스트레이디와 연방 상원의원 그리고 국무장관을 거쳐 미국 주요정당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후보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클린턴은 이제 공화당 후보로 확정될 것이 유력한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와 건곤일척의 한판 대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 대선 사상 가장 비호감도 높은 인물이란 악평을 듣고 있는 클린턴이다 보니 대선결과를 쉽사리 점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클린턴과 민주당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상대 후보인 트럼프의 비호감도가 클린턴을 앞선다는 정도인데요...

 

미국 유권자들의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은데 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그 중하나가 비교적 진보적 색체의 민주당 소속이면서도 미국내 기득권층을 대변하는듯한 그의 이미지가 큰 몫을 차지한다 하겠습니다. 흔히 ‘리버럴 리무진’이란 말로 대변되는 고학력에 부유한 상류층이면서 이념적으로는 진보를 추구하는 정치인 이미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리버럴 리무진’은 겉으로는 서민과 약자를 위하지만 본인은 부자동네에 살면서 고급 리무진을 타고 자식들을 고급 사립학교에 보내는 진보 정치인들의 위선과 가식을 꼬집는 부정적인 용어입니다.

 

중산층 서민과 흑인, 히스패닉 등 약자의 대변자를 자처하면서도 실제론 자서전으로 수백만 달러를 벌고 고액 강연을 다니는 힐러리 클린턴의 이중적인 모습을 꼬집은 것입니다. 하지만, 클린턴 전 장관을 "리무진 리버럴적 위선의 정수"라고 비판하는 보수 진영, 특히 공화당 강경보수 ‘티파티’ 등의 집요하고 계산된 공격이 그의 위선적 이미지를 더욱 굳어지게 만들었다는 주장도 없진 않습니다.

 

민주주의와 선거를 규정짓는 여러 말들 중 ‘선거는 최고가 아닌 최선의 인물을 선출하는 행위’ 혹은 ‘최악을 피해 차악의 인물을 뽑는 행위이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번 미국 대선은 이 말이 그 어느 때보다 피부와 와 닿는 선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대통령 클린턴’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렇다고 ‘대통령 트럼프’는 더더욱 우려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미국 대선이 그저 강 건너 불구경 할 수만은 없는게 한국의 현실이다 보니 참으로 난감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