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결과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여야 잠룡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의 '참패', 더불어민주당의 '선전', 국민의당 '약진'으로 잠룡들의 내년 대선가도가 크게 달라질 전망입니다. 과반 의석 확보는커녕 제1당도 내준 여권의 잠룡들은 날개가 꺾여 비상이 걸렸습니다. 반면 서울·수도권 지역에서 압승하며 의외로 선전한 더민주와 호남지역 석권과 정당 지지율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국민의당 등 야당의 잠룡들은 대권 행보에 탄력이 붙었습니다.
새누리당
유력한 대선 후보군으로 꼽히던 여권 정치인들은 4·13 총선에서 무더기로 고배를 마시거나 정치적 내상을 입으면서 향후 대권 가도가 매우 불투명해졌습니다. 특히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에서 무릎을 꿇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 대구 수성갑의 '수성'에 실패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당분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타격을 받게 됐습니다. 게다가 이들이 각각 패배한 상대가 야권의 잠재적 대권 후보로 꼽히는 정세균 의원, 김부겸 전 의원이라는 점이 치명적입니다. 자신의 패배를 발판 삼아 야권 대선 주자들의 위상만 높여준 모양새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김무성 대표가 일찌감치 당선을 확정 지었지만, 당 대표로서 총선 패배의 책임론에 휘말릴 게 불 보듯 뻔한 상황입니다. '상처뿐인 승리'를 안은 채 대표직에서 물러나기로 한 김 대표 역시 험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을 탈당한 무소속 유승민 의원은 4선에 성공, 훗날을 도모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다만 함께 탈당을 감행했던 조해진·류성걸·권은희 후보가 모두 낙선한 가운데 유 의원 자신의 복당마저 장담할 수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라는 게 한계라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여권의 대권 주자 진영은 '멀쩡한 선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된 가운데 한동안 당이 총선 패배의 책임론을 둘러싼 내홍에 휩싸이면서 새 인물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각에선 올해 말 임기를 마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반전카드로 거론하기도 합니다. 반 총장은 국내 정치권과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지만, 김 대표를 비롯한 여권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의 싸늘한 시선이 투표로 입증된 상황에서 반 총장이 선뜻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는 미지수입니다.
정몽준 전 대표,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 현재까지 중앙정치에서 벗어나 있던 인사들이 대안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 전 대표 측근인 안효대·이사철 후보, 남 지사 측근인 박수영 후보, 원 지사 측근인 이기재 후보가 각각 여의도 입성에 실패하면서 원내 교두보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더민주당
소속정당이 선거에서 승리 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전 대표는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배수진을 친 상태에서 호남 완패라는 결과가 나옴에 따라 거취를 고민해야 하는 묘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당장 호남 참패에 대한 책임론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문 전 대표 측은 더민주가 수도권과 부산·경남에서 예상 밖 선전을 한 데는 문 전 대표의 역할이 있고, 대선 지지율 1위 후보가 정계를 은퇴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이냐는 의견도 내놓고 있어 문 전 대표의 최종 선택을 지켜봐야 합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이번 총선을 예상 밖 승리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향후 행보에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판 샌더스'를 자처한 김 대표는 "더이상 킹메이커를 하지 않겠다"며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둔 채 107석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물론 비례대표 의원직에서도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치기도 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는 측근들이 총선 출사표를 던졌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진 못했습니다. 박 시장 측에서는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권미혁 당 뉴파티위원장 등 2명이 금배지를 얻었습니다. 당초 10여명이 '박원순 키드'를 자처하며 총선에 도전했음을 감안하면 최소한 원내 교두보를 확보하는 수준에 머물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 지사 측에서는 충청권에 출마한 박수현 의원과 나소열 후보가 고배를 마신 반면 김종민·조승래 후보가 승리했습니다.
김부겸 전 의원은 더민주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31년 만에 탄생한 정통 야당 의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일약 대선주자 반열에 뛰어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더욱이 여권 잠룡인 김 전 지사를 꺾고 승리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할 수 있습니다.
손학규 전 상임고문도 정계를 은퇴한 상황이지만 자신이 측면 지원한 손학규계 의원들이 줄줄이 당선되면서 현실정치 재개에 대비한 세력을 확보했다는 평입니다. 손 전 고문이 측근들의 선거전을 챙기는 모습을 놓고 정계 복귀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을 낳기도 했습니다.
정세균 의원도 여당의 유력 대선 후보군인 오 전 시장을 물리치고 6선 고지에 오름에 따라 다시 한 번 잠룡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됐습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는 본인의 승리는 물론 제3당의 원내 교섭단체로서 확고한 위상을 굳힐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함에 따라 대선 주자 중 이번 총선의 최대 수혜자로 분류됩니다. 특히 국민의당은 야권 지지층의 핵심인 호남에서 절대 우위 의석을 차지하며 호남의 민심을 확실히 등에 업음으로써 대권가도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천정배 공동대표는 더민주 양향자 후보를 큰 표 차로 따돌림에 따라 '뉴 DJ론'을 설파하며 정치적 보폭을 넓힐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는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 천정배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너무도 많다. 더 큰 힘을 주면 더 큰 성과를 내겠다"며 대선 레이스에 나설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습니다.
현시점에서 성급하게 내년 대선판세를 예측한다면, 야권으로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4.13 총선 결과만을 놓고 볼 때입니다. 국민들은 여당대신 야당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것도 더민주와 국민의당 양쪽모두를 말입니다. 물론 이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한쪽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지는 않겠다는, 즉 어디까지나 여당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이지 야당이 예뻐서는 아니다란 의중이 포함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심의 향배는 상당히 야권으로 움직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대구에서 야권의 김부겸 유성걸 두 후보가 당선된 것이나 PK 지역에서 8명의 더민주 후보가 당선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물론 호남에서 두 명의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었다하나 이는 1여다야 효과가 상당히 작용했음을 부인할 순 없습니다(분명 이정현 정운천 두 후보의 개인역량도 있습니다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번 총선결과로 여권내 잠룡들이 대거 몰락했다는 것입니다. 앞서도 설명했듯이 김무성 대표는 ‘옥새파동’과 총선참패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고 한때 여권내 대선지지율 1위로 반짝 부상했던 오세훈 전 시장과 대구에서 TK의 맹주 자리를 노렸던 김문수 전 지사는 총선 패배로 아예 차기 대권을 노려볼 기회조차 사라져 버렸습니다. 반면 야권 잠룡들은 총선승리로 오히려 날개를 단 격이니, 기존의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3강에 여권의 잠룡을 꺾고 승리한 김부겸 당선자와 정세균 의원까지 대선레이스에 가세할 기세입니다. 거기에 호남의 맹주자리를 노리는 천정배 의원과 PK에서 3선을 달성한 김영춘 당선자까지 가히 야권은 잠룡들이 차고 넘치는 형국이라 해야 할 판입니다.
과연 보수정권 10년에 염증을 느낀 민심이 차기 대선에서 진보정권을 선택할 것인지!
향후 여야 각 당은 당내 진영을 정리한 후 빠르게 대선정국으로 전환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야권통합이 또다시 수면위로 떠오를 것이고 이를 두고 한바탕 소란의 과정도 거칠 것입니다. 하지만 야권이 통합을 하든 그렇지 않든 대선은 통합후보로 임하리라 봅니다. 대선전에서 보수 대 진보 일대일 대결 외엔 다른 승리 방정식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몇 달 전 포스팅한 글에서 10년 보수정권에 지친 민심이 진보로의 정권교체를 원할 수도 있을 것이라 예상 했었습니다. 이번 총선으로 그 전조가 나타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권에선 기존 잠룡들이 지리멸렬한 상태여서 또 한 번 ‘반기문 카드’가 부상하리라 예상됩니다. 그리고 기회를 맞은 야권은 제각기 부상한 후보들 간 교통정리가 관건입니다. 과연 내년 19대 대선에서 보수에서 진보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것인지... 이제 정국은 대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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