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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고 정치 명문 ‘부시가’의 젭 부시, 저조한 대선 성적

Chris7 2016. 2. 20. 10:00

지난 2월1일(현지시간) 아이오와 코커스를 시작으로 대장정의 막을 연 미국 대선레이스에서 아웃사이더들인 트럼프와 샌더스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아버지와 형에 이어 미국 대통령에 도전한 공화당 대선 주자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위상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부시 전 주지사는 지난 2일 첫 경선 무대인 아이오와 주 코커스에서 고작 2.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6위에 그쳤습니다. 그리고 뉴햄프셔 주 프라이머리에서는 11.02%를 얻어 4위로 올랐지만, 깜짝 2위를 기록한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에 밀려 주목받지 못하고 1위 도널드 트럼프(35.34%)를 따라잡기에도 한참 부족했습니다.


꺼져가는 불꽃을 겨우 살려 기사회생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7.42%를 기록한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나 4.15%를 얻은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팩커드 최고경영자가 아예 경선 사퇴를 선언한 것에 비춰보면 희망적인 성과는 아닙니다.


현지 언론은 여전히 부시를 트럼프나 테드 크루즈, 마르코 루비오보다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군소 후보'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한 미국 최고의 정치 명문 ‘부시가’의 '황태자'로서 굴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과 몇 개월 전 부시는 출마 선언도 하기 전부터 공화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지목됐었습니다. 아버지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41대)과 형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43대)의 든든한 후광과 플로리자 전 주지사라는 경력까지 더해져 화려하게 떠올랐습니다.


'부시 왕조(Bush dynasty)'로 불리는 정치 명문가의 자부심, 넉넉한 선거자금, 막강한 조직력, 온건 보수주의 등이 어우러져 오직 부시 만이 대선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공화당에 정권을 안겨줄 인물로 기대를 모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그의 인기는 거품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출마 선언 후 여론조사에서 10%의 지지율을 넘기도 힘겨웠고, 미디어는 트럼프나 민주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아웃사이더 돌풍'을 전하기 바뻤습니다.


이같은 부시의 부진을 선거전문가들은 부시 캠프의 잘못된 전략을 꼽고 있습니다. 부시 가문이라는 이름값과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하면 무난히 승리할 것이라는 안일한 태도가 경쟁력을 약화시켰다는 평가입니다. 실제 부시는 트럼프나 크루즈보다 훨씬 많은 광고비를 투입했지만,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워싱턴포스트’가 "부시의 선거캠프가 그동안 광고비로 5000만 달러(약 6000억 원)를 쏟아부었지만, 그 돈을 전혀 쓰지 않고 아껴뒀더라도 현재의 지지율은 얻었을 것"이라고 조롱할 정도 입니다.


아버지를 닮은 신사적이고 상냥한 말투도 거친 독설과 막말이 난무하는 공화당 경선판에서 오히려 '지루해 보인다'는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한 선거전문가는 "부시의 참모진이 15년 전 선거 전략을 그대로 쓰고 있다"라며 "지금은 TV 리얼리티 프로그램, 소셜미디어, 문자메시지 등이 등장하며 정치 용어의 톤이 완전히 바뀌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오죽하면 남편과 장남을 대통령으로 만든 바버라 부시 여사가 CBS 인터뷰에서 "젭은 너무 공손하다"라면서 "다른 대선 후보들처럼 자신의 장점을 마음껏 자랑해야 한다"라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부시가 유력한 대선 후보로 꼽힌 것도 결과적으로 악재였습니다. 독설과 막말이 특기인 트럼프와 크루즈는 부시를 일찌감치 경선 레이스에서 몰아내기 위해 협공을 펼쳤습니다. 부시의 낮은 지지율에 실망한 공화당 주류도 루비오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부시는 이달 하순 3, 4차 경선인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와 네바다 주에서 반전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어느 정도 부진을 만회한 뒤 3월 1일 12개 주에서 동시에 치르는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다는 계획입니다.


조급해진 부시는 마지막 카드인 '가문'을 꺼내들었습니다. 형인 부시 전 대통령의 지지가 담긴 TV 광고를 새롭게 제작했고, 그동안 기금 모금 행사에만 얼굴을 비쳐왔던 부시 전 대통령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처음으로 동생을 위해 유세에도 참여할 예정입니다.


아버지나 형과의 차별화를 강조하기 위해 선거 로고에 '부시'라는 성을 빼고 '젭'이라는 이름만 넣었던 자신감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 금융위기 등의 짙은 그늘과 함께 "또 부시 가문이냐"라는 피로감도 만만치 않습니다.


멕시코 출신 아내와 능숙한 스페인어 구사력을 앞세워 공화당이 취약한 히스패닉계 표심을 잡을 수 있다는 강점도 쿠바계 이민자 출신인 크루즈와 루비오 앞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시는 클린턴 가문과 24년 만에 다시 맞붙어 1992년 대선에서 아버지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당했던 패배를 설욕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공화당 경선 통과조차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부시 전 주지사는 13일(현지시간) 밤 열린 공화당 대선후보 9차 TV토론에서 선전하며 모처럼 승자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토론 때마다 존재감을 입증하지 못한 채 패자 판정을 받고, 이것이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되풀이됐으나 이번에는 일단 그 고리만큼은 차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부시는 이날 토론에서 자신의 최대 약점인 나약한 이미지를 불식시키려는 듯 시종일관 공세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특히 선두주자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반격이 인상적이었다는 평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지지율 재고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부시가 과연 앞으로 남은 경선에서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지, 아니면 추락을 거듭하다가 결국 대통령의 꿈을 접게 될 것인지 주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