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열기를 더해가는 미국 대통령 후보 경선의 판도가 점점 오리무중에 빠지고 있습니다. 미국 역사상 이렇게 혼란스럽고 불확실하며 이상한 대선은 없었을 것입니다. 전문가 예측은 족족 빗나가고, 트럼프와 샌더스라는 소위 정치 '아웃사이더'들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정치 아웃사이더들이 이번 미국 대선에서 일약 스타로 떠오른 배경에는 미국 경제와 시민사회의 '피로와 혐오'가 놓여있습니다.
지난 2월1일 미국 대선의 '풍향계'로 불리는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가 열렸습니다. 25만명의 유권자가 민주당과 공화당의 첫번째 챔피언을 결정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버니 샌더스가 힐러리 클린턴을 동률에 가깝게 추격했으며, 공화당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테드 크루즈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어서 9일에 열린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경선)에선 샌더스가 20% 가까운 큰 차이로 힐러리를 눌렀으며, 트럼프 역시 35% 정도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공화당 경선에서 7개월 전 젭 부시가 대통령 출마를 발표했을 때만 해도 상황은 지금과 전혀 달랐습니다. 젭 부시는 이미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미국 정치 명문 부시가 출신으로 유명했습니다. 부시는 후보자들 중 선거자금을 가장 많이 모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부시는 금세 공화당 지지자들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유권자들은 부시를 그들이 경멸하는 정치인 계층의 상징으로 여겼고, 대신 시민들은 정치 경험이 없는 트럼프를 택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수년간 TV 쇼에 출연하며 강한 에고(ego)를 가진 특이한 대중 이미지를 쌓았습니다. 그는 "나는 똑똑하다(I'm intelligent)"라는 말을 즐겨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내가 매우, 매우, 매우 똑똑하다고들 말한다"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자기 풍자인지 아니면 정말로 병적인 자아도취인지는 불분명합니다.
트럼프는 미국이 이민자 강간범과 부패한 은행가들과 바보같은 정치인들 때문에 망가졌고 무슬림 미치광이들에게 위협당하며 나머지 나라들로부터 조롱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 레이건의 구호였던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내세웁니다. 트럼프는 1100만 명의 불법이민자들과 그의 자식들을 추방하고, 중국 수입품에 45%의 관세를 부여하며, 테러리스트 용의자의 친척들을 사형시키고 무슬림을 입국 금지시키자고 말합니다. 또한 그는 그가 강간범으로 규정지은 멕시코인들의 유입을 막기 위해서 미국 남부에 '아름다운 벽'을 세우자고 말합니다. 트럼프의 유세장에서는 이와 관해 재밌는 광경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트럼프가 "무엇을 지어야한다?"고 물으면 군중은 "벽!"이라고 외치고, 트럼프가 다시 "돈은 누가 내야한다?"고 물으면 군중은 "멕시코!"라고 외치는 식입니다.
외부인이 보기에는 놀랍지만 트럼프의 지지율은 나날이 고공행진하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가장 큰 지지층은 비관적인 시각을 가진 백인 노동자 계층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뉴햄프셔의 트럼프 유세장에서 언론과 인터뷰한 사무용 설비 공급회사 직원 토드 윈슬로는 "미국은 급격한 내리막길에 있으며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 우리는 생각하는 만큼 초강대국에 살고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트럼프는 이러한 '평범한 미국인'의 공포를 소리내어 말함으로써 그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윈슬로씨는 "트럼프는 우리 모두가 생각은 하고 있지만 소리내어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대신 말해준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의 지지자들 역시 트럼프의 지지자들만큼이나 열광적이지만 더 젊다는게 특징입니다. 샌더스의 유세장은 수염 많고 장식이 많으며 불만도 많은 18세부터 29세까지의 젊은이들로 가득 찹니다. 샌더스가 무료 대학 교육과 학자금 대출 감면을 약속한 대상자들인 것입니다.
트럼프 유세장의 유머가 레슬링 이벤트의 풍자극 같다면, 샌더스의 유머는 대학교의 짓궂은 장난과 같습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의 비공식 슬로건은 "버니를 느껴라"입니다.
샌더스의 지지자들은 빌 클린턴 치하의 민주주의가 재계와 타협한 것들을 청산하길 원합니다. 민주당을 혐오하는 것은 아니며, 대부분이 오바마를 지지합니다. 오바마의 정치성향은 따지자면 샌더스보다는 클린턴에 가까운데도 말입니다. 샌더스의 지지자들은 힐러리 클린턴이 오바마보다 나을게 없으며, 그것이 민주당 후보자로서 힐러리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말합니다.
샌더스 역시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대선 출마 이후 급격하게 지지율이 상승했습니다. 출마 선언 당시 3%였던 지지율은 대선 선두주자로 꼽히는 힐러리와 막상막하의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샌더스는 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약을 하지 않으며, 소득 불평등을 타파하는 급진적인 진보적 공약을 내놓고 있습니다. 샌더스 유세장의 한 지지자는 "미국이 여성 대통령을 맞을 시기가 됐다. 그렇지만 나는 힐러리 클린턴에게 고무되지 않는다. 나는 샌더스를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대일 양자 대결을 펼치고 있는 샌더스와 클린턴은 트럼프와 크루즈보다 훨씬 더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첫 번째 경선이 열린 아이오와주에서는 클린턴과 샌더스가 거의 동률을 보였습니다. 두 번째 풍향계로 꼽히는 뉴햄프셔에서는 샌더스가 클린턴을 크게 앞섰습니다. 뉴햄프셔에서 샌더스는 60%, 클린턴은 40%의 지지율을 보였습니다. 클린턴으로서는 오바마에게 막판 승기를 내준 8년 전의 악몽이 떠오를만한 상황인 것입니다.
이렇듯 트럼프와 샌더스의 초반 돌풍에 공화 민주 양당 수뇌부는 최악(?)의 경우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주류후보를 최종 후보로 선출하기 위해 ‘중재 전당대회’(공화)와 ‘슈퍼 대의원’(민주) 제도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합법적 이긴 하나 일반적이진 않은 제도를 동원해야할 만큼 미 대선에 있어 아웃사이더들의 활약이 대단하단 반증입니다. 트럼프의 경우 최근 전국단위 여론조사에서 크루즈에 1위 자리를 처음으로 내주긴 했으나, 샌더스는 여전히 지지율 상승세가 매섭습니다. 오히려 트럼프와는 반대로 전국단위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힐러리를 앞섰다는 조사도 나온 상황입니다.
미 대선 레이스의 가장 큰 고비가 될 3월1일의 ‘슈퍼 화요일’을 앞두고 공화 민주 양당의 후보들이 지지율 재고를 위해 과연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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