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 이야기

아나운서 ‘프리붐’, ‘아나테이너’들의 전문화 필요

Chris7 2015. 11. 12. 08:37

퇴사 후 ‘방송인’의 꿈을 찾아 떠나는 아나운서들의 ‘프리붐’이 또 다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SBS에서 10년 동안 몸담으며 대표 ‘아나테이너’로 활약해왔던 아나운서 김일중은 사표를 제출하고 홀로서기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경력 15년의 MBC 아나운서 김경화가 ‘프리 선언’을 했습니다. 김일중은 프리선언 뒤 케이블과 종편 예능프로그램에 출연을 시작했고, 김경화는 방송인과 교육인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겠다는 목표를 밝혔습니다. 여기에 6일 SBS는 미스코리아 출신 자사 아나운서인 김주희가 지난10월말에 퇴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최근 각 방송사에서 아나운서 퇴사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김일중, 김경화, 그리고 김주희 이외에도 MBC 김주하, 박혜진, 최현정, 박소현, 방현주, KBS 황수경, 오정연 등이 올해 회사를 떠났습니다. 타 방송사의 앵커로 다시 입사한 김주하 이외에는 모두 프리를 선언해 그야말로 ‘프리 붐’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의 광경은 그리 낯설지 않은 모습입니다.

 

 

KBS의 경우 자사 32기 공채 아나운서들은 모두 프리랜서를 선언했습니다. 2008년 가장 먼저 퇴사를 한 배우 겸 방송인 최송현은 한 방송에서 “KBS에서 우리 동기들이 거의 ‘호적을 판’ 기수로 통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 입니다. 최송현을 비롯해 2012년에 전현무가, 2014년 이지애가 퇴사를 했고, 오정연은 올해 초 퇴사를 했습니다. 아나운서 퇴사가 유난히 많았던 때에는 2006~2008년과 2012년~2013년입니다. 2006년에는 손석희, 강수정, 김병찬이 퇴사를 했고, 2007년에는 김성주, 신영일이 퇴사를 했습니다. 2008년도에 박지윤이 방송인으로 전향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2012년에는 전현무, 김경란, 문지애, 최일구 등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MBC는 특히 2012년 파업이 분수령이 됐습니다. 오상진, 문지애, 최윤영, 서현진 등과 더불어 올해 퇴사한 방현주, 김경화, 박소현, 최현정 등 10명의 아나운서들이 퇴사를 했습니다. 이에 지난 2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민희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이를 두고 “파업 이후 아나운서들을 비제작부서로 발령 내는 등 방송에서 소외시킨 것은 전례 없이 ‘MBC의 얼굴’들이 무더기로 MBC를 떠나도록 경영진이 등을 떠민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아나운서 ‘프리 붐’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김성주, 박지윤, 오상진, 전현무 등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들의 활약이 자극제가 됐다는 의견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김일중이 전현무와 오상진의 활약에 용기를 얻었다고 했고, 오정연은 동기들의 퇴사에 ‘외로웠다’고 에둘러 이를 표현했습니다. 여기에 예전에는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들의 예능 출연에 불편함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많았지만 ‘아나테이너’들의 활동으로 아나운서들에 친근한 이미지가 덧붙여졌다는 것도 ‘프리 선언’에 많은 힘을 싣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사실 ‘아나운서의 퇴사’라는 화두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이미 2007년 MBC를 퇴사한 김성주는 MBC 연예대상에서 상을 탔고, 2012년 KBS를 떠난 전현무는 KBS가 자신들이 세운 ‘퇴사시 자사 3년 출연 금지’ 조항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를 모셔가며 그야말로 ‘금의환향’을 하게 됐습니다.

 

 

이처럼 퇴사한 아나운서들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그런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들의 활약에 또 다른 아나운서들이 퇴사를 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도미노’같은 형국인데, 그만큼 아나운서들의 활동 범위가 좁아진 방송가 현실을 반영하고 있어 씁쓸함을 안기는 대목입니다. 여기에서 ‘아나운서 업무’라는 것을 주목하면 지금의 방송가에서 ‘아나운서’ 고유의 업무는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정의 내려지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아나운서들은 뉴스에 출연하면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회사 사내 행사를 진행하며, 다양한 사업에 참여하는 등 몸이 하나라도 부족할 만큼의 업무를 소화하고 있습니다. 일은 많지만 ‘아나운서’로서의 일을 하는 것은 드물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방송 초기에는 아나운서가 방송의 ‘실질적인 중심’이었습니다. 라디오 매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잡았던 아나운서는 TV가 생기고 방송의 영역이 세분화되면서 더 많은 기능을 행하게 됐습니다. 즉, 이들의 ‘모호한 업무’는 결국 방송 환경의 변화 때문에 비롯됐다는 것입니다.

 

 

‘아나테이너(anatainer) 시대의 전문화된 아나운서 역할 정립에 관한 연구’(2011, 김민정)라는 논문에서는 이를 두고 “점차 많은 역량들이 요구되는 방송 환경의 변화에 재빠른 대응을 하지 못해 아나운서들의 입지가 좁아지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논문에 따르면, 80년대에 대폭 활동 범위가 줄어든 후 아나운서의 ‘범위 축소화’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금전적인 이유가 아나운서들의 퇴사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을 보유한 한 소속사 관계자에 따르면,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들은 회당 적게는 몇 십, 많게는 7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합니다. ‘회당’으로 받는 방송인들은 고정적인 ‘월급’을 받는 아나운서들과 ‘벌이’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비단 ‘돈벌이’ 때문에 회사를 나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회사를 떠나 그렇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돼 있고, 안정적인 수입을 받으며 회사에 남고 싶다”는 의견을 내는 아나운서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아나운서로서 뉴스를 전하고, 방송을 출연하는 업무가 쉽사리 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시사, 다큐 프로그램은 기자나 PD가, 뉴스에서는 앵커가 아나운서들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나운서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급기야 ‘아나운서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에 대해 한 논문에서는 “방송 인력의 기능 분화와 공유로 인해 생긴 위기론”이라고 지적하며 다양한 장르별 프로그램의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아나운서의 전문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스포츠, 뉴스 등 분야가 나뉘어져 있지만 다양한 정보를 다루는 지금의 방송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각 아나운서들의 특화와 전문화를 추진해야한다고 진단했습니다. 신문사의 보도국에 다양한 부서의 기자들이 존재하듯 아나운서에도 이런 전문화를 이룬다면 지금과 같은 한 아나운서를 향한 ‘쏠림 현상’이나 방송 출연의 한계를 느끼고 조직을 떠나는 ‘이탈’을 막을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또한 아나운서를 회사의 조직원이 아닌 독립적인 부서로 보고 업무 분담을 명확히 하는 문화가 각 방송국 안에도 자리 잡아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다행인 것은 지금의 아나운서들은 현실에 순응하기보다 학계, 시민단체, 전문가들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들으며 자신들의 위치와 정체성을 두고 치열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아나운서들은 ‘아나운서’의 신뢰성은 지켜나가되, 전통적 아나운서 역할에서 벗어나 ‘현대적 아나운서’의 역할을 정립해나가고 있는 과도기 시점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아나운서들의 ‘프리 선언’은 2015년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과연 자유를 택한 아나운서들이 전문화된 자신들만의 무기로 방송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