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 이야기

한국시리즈 우승팀 두산을 향한 준우승팀 삼성의 도열 '예우'

Chris7 2015. 11. 3. 08:30

오로지 1등만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삼성 선수단이 보여준 행동 하나가 잔잔한 감동을 안기고 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 선수단이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이 확정된 이후 끝까지 남아 도열한 뒤 두산의 우승을 축하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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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는 31일 오후 2시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5 KBO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2-13으로 패배했습니다. 지난 1차전에서 역전승으로 기선 제압에 성공했던 삼성은 이후 내리 4연패하며 두산에게 우승 트로피를 내줬습니다.

 

 

두산의 우승이 확정되자 두산 선수들은 일제히 마운드 쪽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14년 만에 차지한 우승이라 그 기쁨은 몇 배에 달한 듯 보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삼성 더그아웃에서도 선수들이 3루 쪽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습니다. 이날 경기 중반 이후 점수 차가 벌어지자 몇몇 삼성 팬들은 경기장을 일찍 떠났기도 했습니다. 반면 1루 두산 쪽 관중석과 외야 쪽은 새하얀 물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삼성 선수단은 일제히 고개를 숙여 원정 응원을 온 삼성 팬들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미 경기장에서는 불꽃이 터지고 꽃가루가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두산의 우승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린 순간이었습니다. 이어 두산 선수단의 우승 시상식이 진행됐고 김태형 감독을 비롯해 주장 오재원 및 홍성흔, 니퍼트, 유희관, 이현승, 정수빈 등이 우승 메달을 차례로 목에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아직까지 잠실구장을 떠나지 않은 또 다른 한 편의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이었습니다. 삼성 선수단은 3루 더그아웃 앞에 일렬로 도열한 채 두산의 우승 세리머니를 보면서 끝까지 축하해줬습니다. 이때 오버랩 되는 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바로 잉글랜드의 축구 1부 리그인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EPL에서는 리그 경기 도중 우승을 확정지은 팀과 경기를 치를 때, 상대 선수들이 일렬로 도열, 박수를 쳐주는 관례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삼성이 재현한 것입니다.

 

 

삼성은 지난 2011년 아시아시리즈에서 일본의 소프트뱅크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소프트뱅크 선수단은 우승 시상식이 끝나는 순간까지 도열한 채 지켜보며 삼성의 우승을 축하했다고 합니다. 류중일 감독은 당시 소프트뱅크 감독인 아키야마 고지의 행동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왔고, 이날 행동으로 옮겼던 것입니다. 삼성 관계자에 따르면 류 감독의 이날 행동에 KBO총재도 크게 놀랐으며 KBO측도 매우 고마워했다는 후문입니다.

 

 

두산과 삼성 선수들은 서로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습니다. 치열한 승부가 끝나면 다 같은 동료이자 선후배요 동업자 입니다. 1등의 주인공은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모든 팀들은 공평하게 1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두산 선수들의 우승 시상식을 끝까지 지켜본 삼성 선수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지난 4년 간 익숙했던 저 자리. 한 번쯤은…'이라며 여유를 가졌을까요, 아니면 '절치부심, 내년에 반드시 두고 보자'라며 이를 악물었을까요.

 

 

과거에는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는 곧 '패자'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전세계 2등이라는 엄청난 성과지만, 결승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 혹은 팀에 패하기 때문에 '패자'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2위 또는 3위에 오르는 것도 참 힘들고 대단한 일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은메달을 딴 해외 선수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도 참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이날 두산 선수들은 삼성 선수단의 축하 인사를 보며 더욱 대접받는 느낌을 갖지 않았을까요? 또 몸가짐도 한 번 더 조심하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지 않았을 지 싶습니다. 상대의 승리를 깔끔하게 인정하는 아름다운 모습 속에서 우리는 우승의 가치와 품격이 더욱 높아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승리보다 더욱 값진 가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비록 삼성이 패하며 '통합 5연패'는 좌절됐지만, 이날 삼성 선수단이 보여준 행동 하나는 잔인하고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장면이었습니다. 준우승 팀의 우승 팀을 향한 '도열 예우'를 내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