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섹남’은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라는 뜻입니다. '먹방'에 이은 ‘쿡방’·열풍으로 시청자들은 TV만 틀면 쉽게 요리하는 남자들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허세셰프’ 최현석을 비롯해 ‘중식의 대가’ 이연복, ‘맛깡패’ 정창욱, '성자셰프' 샘킴까지. 이들은 ‘멋있고 섹시한 셰프’라는 수식어를 내걸며 케이블, 종합편성채널, 지상파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채널에서 ‘셰프테이너’로 활약 중입니다.
방송가 쿡방 프로그램의 최근 경향을 보면 두 가지 특성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셰프가 출연하는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고 있고 또 시청률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쿡방’ 프로그램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요리나 음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졌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SNS나 인터넷을 통해 음식 식재료와 레시피에 대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또 해외 경험이나 여행, 이주 등으로 외부 음식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생긴 변화입니다.
‘먹는 것’은 생존에 관한 문제입니다. 누구나 하루 두 세 번은 먹는 것을 떠올리기에 먹는 것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생활의 측면에서 취향과 기호에 관해 관심이 증폭하면서 ‘쿡방’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제 음식은 ‘풍요’를 상징하고. 음식은 내가 어떤 음식을 알고 먹음으로써 얼마나 유행에 앞서는지를 보여주는 기호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음식은 멋진 스타일입니다. 방송 생산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쿡방’은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효율적인 포맷인 것입니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셰프를 섭외해 스튜디오 안에서 준비된 재료로 음식을 만듭니다. 비용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인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식료품 회사로 시작해 지금은 tvN의 <삼시세끼> 등 여러 요리프로그램을 제작하는 CJ E&M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CJ E&M은 tvN과 올리브TV를 통해 음식 재료로 쓰이는 계열사의 제품을 간접홍보 하면서 방송 콘텐츠가 흥행하지 않더라도 손해 보지 않는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케이블 채널들이 만든 요리 콘텐츠는 흥행에 성공했고 지상파 방송도 유명해진 셰프들을 데려다 쓰기 시작하면서 ‘쿡방’이라고 하는 대중문화가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본의 계획과 전략에 따라 방송 트렌드의 방향이 정해졌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결정! 맛 대 맛>이나 <이홍렬쇼>의 ‘참참참’같은 음식 혹은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었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예능 음식 프로그램이 전 채널에 걸쳐 나온 적은 없었습니다. 외국 PD들이 ‘한국에선 왜 음식 프로그램이 잘 안 되느냐’ 라고 물을 정도 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능=음식’이 될 정도로 성공하게 된 문화적 배경에는 음식 만화의 성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심야식당>, <미스터 초밥왕>, <고독한 미식가> 등 일본의 그루망(미식가를 뜻하는 일본어 ‘구루메’와 만화를 뜻하는 ‘망가’의 합성어로 음식과 관련된 만화)을 한국의 대중과 제작자들이 접하면서 요리 콘텐츠에 대한 감수성이 형성됐습니다. 한국의 ‘쿡방’ 트렌드는 일본의 만화 콘텐츠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쿡방’ 프로그램을 보면 일본 만화적 요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촬영기법과 화면구성도 만화 컷과 비슷하고, 말풍선 대신 자막을 넣고 일본 만화의 특징인 감탄사, 의성어, 의태어들이 출연진의 음향 효과로 대체되어 TV 속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또한 ‘쿡방’ 프로그램을 얘기하며 백종원 신드롬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맛 칼럼니스트인 황교익 씨가 자신의 칼럼을 통해 ‘백종원은 외식사업가이고, 그의 음식은 외식업체에서 그대로 사용되는 레시피다’라는 발언을 해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 논란을 둘러싼 댓글들을 살펴보면, 음식이 하나의 대중문화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음식에 대한 아마추어 문화와 전문가적 취향 사이의 대립과 충돌이 표면상으로 드러난다는 느낌을 받게 됍니다.
백종원 신드롬을 만드는 데 기여한 <마이리틀텔레비전>의 네티즌들은 시청자이지만 동시에 아마추어적 문화를 형성하는 사람들입니다. <냉장고를 부탁해>에도 의외의 인물인 만화가 김풍이 출연해 아마추어적 레시피를 선보이지만 큰 인기를 끌고 있고, <오늘은 뭐먹지>의 신동엽이나 <집밥 백주부>에 게스트로 등장하는 요리 초보 게스트들도 아마추어 문화를 대변하는 중요한 캐릭터들 입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이들에게 음식 관련 콘텐츠는 미디어적인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나는 비록 보잘 것 없는 것을 먹고 있지만 TV에 나오는 맛있는 음식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쿡방’ 속 레시피는 실제로 따라 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제작진도 따라하라고 이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그럴 의도가 있었다면 러닝타임이 실제 요리시간과 일치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일반인들이 요리에 쓰여진 재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쿡방’은 ‘따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소비할 사람’들을 타깃으로 한 것입니다. 눈으로 즐기는 ‘쇼’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방송들이 기본적으로 고립화된 개인을 더 고립시킨다는 것입니다. 결국 ‘쿡방’은 신자유주의 시대 미디어가 제안하는 콘텐츠인 것입니다.
‘쿡방’의 레시피는 접근성을 생각하면 계급의 문제로까지 확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외국 음식 프로그램에서도 말로는 ‘싸게 구할 수 있는 재료’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 논란이 된 경우가 많습니다. 먹는 것은 경제적 계층에 따라 계층화 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계급문제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음식에는 공공재적 측면이 있는데, 지금은 식욕을 자극하는데만 몰두해 ‘쿡방’ 프로그램이 음식의 공공재적 측면에 주목하지 못하는 한계가 뚜렷해 보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 음식 너무 맛있다, 저 셰프 너무 섹시하다’는 것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먹는 것’은 정치·사회·문화적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예능은 거대한 대중문화의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는데, 예능에서 음식은 사적인 취향 정도로만 다뤄지고 있습니다. 먹는 것이 가진 정치사회적 의미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 급식을 얘기해 볼까요? ‘쌀’이 가진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KBS 다큐멘터리 <요리인류>의 스핀오프 프로그램인 <요리인류 키친>은 업체의 협찬을 받아 지속적으로 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쌀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이걸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이러한 편성자체가 수용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검증된 셰프를 섭외하는 것이 흥행보장처럼 생각되지만 이러한 쏠림 현상이 앞으로는 더 중요하면서 재미있는 것들을 찾는데 장애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대중이 ‘쿡방’에 싫증을 느낄 때 새롭고 재밌는 영역을 발굴해내지 못하면 TV는 다시 뒤처지게 되는 악순환에 빠질 것입니다.
특정 출연자에 의존하는 프로그램이 가져오는 부정적인 영향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결국 ‘쿡방’의 인기도 사그라들 것이고, 새롭게 진화된 ‘무엇’인가가 필요한 시점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오는 프로그램은 골방에서 혼자가 아니라 광장에서 함께 먹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MBC 다큐스폐셜 <회사가 차려주는 밥상> 편은 사내식당이 얼마나 신경을 써서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지 사례를 보여준 굉장히 좋은 접근입니다.
또한 음식 프로그램 편성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필요합니다. 급격히 일어난 현상이라 가이드라인이 없는게 현실입니다. 건강 프로그램에서는 ‘지나치게 단 것을 먹지 말라’고 하면서 먹방에서는 ‘설탕을 부어 먹어라’, ‘맛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모순적입니다. 밤12시에 라면을 보여주는 것도 그렇습니다. 야심한 시각에 인스턴트 음식의 조리를 자제한다든가 전체 프로그램에서 예능프로그램처럼 음식프로그램의 비중을 규제해야 하는 것과 같은 가이드라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식재료의 장·단점에 대한 정보도 충분히 제공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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