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있는 친러시아 분리세력의 자칭 공화국들의 독립을 승인하고, ‘평화유지’ 명목의 군 병력 진입을 지시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군사 대치 상황에서 이 같은 전격적인 조치에 미국 등 서방 세계가 즉각 제재에 나서는 등 강력 반발했습니다. 친러시아 반군이 활동하는 LPR과 DPR 독립을 승인하는 내용의 대통령령에 서명했습니다. 이날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서명에 앞서 소집한 국가안보회의 긴급회의 뒤 국영 TV로 방영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즉각적으로 DPR과 LPR의 독립과 주권을 승인하는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의회가 이 결정을 지지하고 두 공화국과의 우호·상호원조 조약을 비준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주문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의 이날 명령은 20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위기 해소를 위해 미·러 정상 회담을 주선한 뒤 결정됐습니다. 외신들은 아직 러시아의 파병 규모나 시기는 제시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CNN은 러시아군이 이날 저녁 늦게 혹은 22일 오전에 진입할 수 있다고 관련 정보에 밝은 고위 관료를 인용해 전망했습니다. 무장 러시아군이 돈바스 지역에 임의 진입해 분리주의 공화국 반군과 연합할 경우 이 지역을 지키고 있는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유혈 충돌할 수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푸틴 대통령의 독립승인 결정에 즉각 반발했습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는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을 예상했고 즉시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제재를 위한 행정명령을 발동하는 한편 추가 조처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즉각 서명한 행정명령은 돈바스 지역의 자칭 두 공화국에 대한 미국인의 신규 투자 및 무역, 금융을 금지하고, 이 지역 인사들을 제재할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결정은 명백한 민스크 평화협정 거부이자, 우크라이나 주권과 영토에 대한 공격”이라며 “우크라이나 및 동맹과 함께 러시아의 예기치 못한 행동에 대응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전화통화를 갖고 향후 대응책을 논의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미국은 푸틴 대통령의 결정에 반대하며 제재를 가할 계획이다. 동맹국들과 신속하고 결단력 있게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 숄츠 총리와는 대응 수위를 논의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도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 및 유럽연합(EU) 차원의 제재조치를 촉구했습니다. 프랑스 대통령실(엘리제궁)은 이날 마크롱 대통령이 “(러시아의 돈바스 독립 승인은) 명백히 국제 약속을 위반한 것이며 우크라이나 주권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판했다고 밝혔습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이날 “내일 러시아의 국제법 위반과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에 대한 공격에 대응해 새로운 제재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성명을 내고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지역에 관한 러시아의 결정은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돈바스의 친러시아 세력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합병 이후 자신들도 독립하겠다며 공화국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이후 지난 8년간 우크라이나 정부를 상대로 무장 투쟁을 벌이면서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선 1만4000명의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지난 2015년 러시아‧우크라이나‧프랑스‧독일 등 4개국은 새로운 ‘민스크 협정’을 체결하고 휴전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17일 돈바스 지역에서 연이어 포격이 발생하고 그 책임을 우크라이나 정부와 반군 모두 서로에게 돌리면서 긴장감이 고조됐습니다.
위에 설명한데로 러시아의 이러한 행보는 지난 2014년 크림반도 병합의 수순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 소재 크림 자치공화국과 세바스토폴특별시는 2014년 3월 11일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이어 3월 16일에는 러시아로의 합병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해 96.6%의 찬성률로 러시아 합병을 추진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투표 이튿날인 17일 크림공화국의 독립국가 지위를 승인하고 바로 다음날인 18일 푸틴 대통령과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림공화국 총리, 블라디미르 콘스탄티노프 크림공화국 최고회의 의장, 알렉세이 찰리 세바스토폴 시장이 모스크바에서 합병 조약에 서명했습니다. 21일 러시아 상원이 합병조약을 비준하자 푸틴 대통령이 최종 서명하면서 크림반도는 러시아 연방 체제에 편입됐습니다.
우크라이나 동부 LPR와 DPR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레오니트 파세치니크 LPR 정부 수장은 21일 러시아 국영 TV를 통해 방영된 동영상 호소문에서 “LPR의 주권과 독립을 승인해줄 것을 당신(푸틴 대통령)께 요청한다”고 밝혔고 데니스 푸쉴린 DPR 수장도 유사한 입장을 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후 독립 승인에 서명했습니다. 크림공화국과 세바스토폴이 독립을 선언한 것과 수순을 같이 합니다. 공은 러시아 의회로 넘어갔지만 사실상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이 의석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의회에서의 돈바스 지역 독립 승인은 확실시됩니다. 러시아는 앞서 돈바스 지역 주민들에게 러시아 여권을 발급하면서 해당 지역 주민들을 사실상 자국민으로 취급했다는 점에서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을 편입하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입니다.
남은 과제는 돈바스 지역에 러시아군이 언제 배치되는지 입니다. 푸틴 대통령이 2014년 크림 위기 당시 “우크라이나군이 크림 주민들을 향해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러시아군이 개입할 수밖에는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번에도 돈바스 지역 주민 보호를 위해 군을 파병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 동부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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