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는 구약성경 중 출애굽기의 내용을 각색해서 모세의 일생을 다룬 성서영화입니다. 세실 B. 드밀 감독이 1923년에 한번 영화를 감독한 후 1956년에 다시 한 번 영화를 만들었으며, 그중 1956년 작이 특히 유명합니다. 둘 다 파라마운트 픽처스에서 배급했는데, 특히 1956년 작은 세실 B. 드밀 감독의 유작이기도 합니다. 1923년 작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성경의 출애굽기 이야기가, 후반부는 촬영 당시를 배경으로 십계명을 모티브 삼은 드라마가 나옵니다. 127만 달러로 제작하여 416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1956년 작품은 배우 찰턴 헤스턴과 율 브리너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벤허’와 더불어 할리우드 대작 사극의 전성시대를 상징하는 영화입니다. 런닝타임 220분으로 네 시간에 가까운 엄청난 상영시간을 자랑하며, 무지막지한 수의 엑스트라(홍해를 건너는 장면에만 사람과 짐승을 합쳐 5만이 넘게 동원되었습니다)와 초대형 이집트 재현 세트, 그리고 당대로써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특수효과가 동원되어 찍어낸 그야말로 초대작 영화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1956년 작으로 나온지 65년이나 되었으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마찬가지로 시대를 앞서간 게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출연진도 대단한데, 우선 찰턴 헤스턴과 율 부리너는 50년대 최고의 남배우를 꼽을 때 반드시 들어가는 인물들이라 그렇다 쳐도 조연으로 빈센트 프라이스와 앤 백스터가 나옵니다. 이 중, 찰턴 헤스턴, 율 브리너, 앤 박스터는 아카데미 수상자이기도 합니다. 즉, 한 영화에 아카데미 수상자가 세 명이 나오는 것입니다.
‘십계’는 56년 당시 기준으로 1300만 달러로 만들어져 북미에서는 6800만 달러 및 해외 5400만 달러까지 합쳐 1억 22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도 성공했습니다. 1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은 역시 1956년 개봉 당시를 기준으로 한 액수입니다. 그야말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벤허’ 등과 함께 할리우드 역사에 길이 남을 사극 블록버스터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한국에서는 1950년대, 그리고 1982년 다시 개봉했으며, 2006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저작권이 만료되었습니다.
‘십계’는 종교(성서)영화로서도, 일반 서사 영화의 기준으로도 대단한 명작으로 고대 이집트의 모습을 이렇게 자세하게 묘사한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특히 오벨리스크를 세우는 장면과 세티왕의 대형조각상 운반장면, 람세스가 전차부대를 이끌고 출격하는 장면(이 전차부대원들을 연기할 엑스트라들은 이집트 육군의 협조를 받았습니다)은 오늘날에도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라는 평입니다, 그 외에도 출애굽기를 다룬 후대의 영화들과 비교해 봐도 이집트를 떠나는 이스라엘 민중(재미있게도 이스라엘 백성으로 출연한 엑스트라들은 거의 당시 이집트 현지 주민들이었습니다)들의 미시적인 부분 역시 세세하게 담겨낸 것 또한 이 영화의 가치를 빛나게 한다는 평입니다. 한편으로 당시 할리우드 사극 영화답게 노출을 통한 눈요기꺼리 장면을 집어넣고 있다는 점도 묘한 혹은 재밌는 점입니다(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영화 ‘클레오 파트라’중 클레오 파트라의 로마 입성을 표사한 부분을 보면 무희들의 상당한 노출씬이 있습니다). 모세와 야훼의 대면, 십계를 새기는 불기둥은 애니메이션 합성 기법을 통해 구현했습니다. 그 외에도 람세스를 연기한 율 브리너의 연기도 매우 뛰어났고, 무엇보다 미켈란젤로의 '모세'상과 가장 닮았다는 이유로 캐스팅된 모세 역의 찰턴 헤스턴의 카리스마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홍해를 가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는 연기는 그야말로 산도 움직일 것 같은 카리스마 연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드밀 감독이 인트로(영화 시작과 동시에 감독이 시사회처럼 무대에 직접 나와서 마이크 잡고 이야기를 하는 매우 독특한 대목이 있다. 주 요지는 성서에는 모세의 생애 전반기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는 주로 요세푸스와 필론 등의 기록을 참고하여 각색했다는 것으로, 아무래도 보수적인 당시 사회에서 '성경에 없는 내용이 왜 나오냐.'는 비난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집어넣은 것입니다) 및 내레이션을 직접 맡았는데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1959년 77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앞의 인트로는 서곡이 나오고, 그 다음에 인트로가 나오고, 그 다음에 파라마운트 로고와 오프닝이 나오는 특이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감독인 세실 B. 드밀은 진보 좌파적 성향이 강한 할리우드에서 몇 안되는 반공 보수파 중 한 명으로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사람이었으며 매카시즘을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헐리우드의 주류인 좌파 영화인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 영화에 참여한 배우들 중에서도 공화당원이 많은데, 모세 역의 찰턴 헤스턴과 네페르티리 역의 앤 백스터도 드밀 감독과 마찬가지로 공화당원이었습니다(그런데 찰턴 헤스턴은 ‘자유지상주의자’로 당대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등 민주당에 가까운 성향도 어느 정도 드러낸 적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 촬영 당시에는 민주당원으로 평가받았지만, 그가 다른 공화당원 이상의 반공주의자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영화 인트로에서 드밀 감독은 영화의 핵심적인 주제를 설명하는 대목이 있는데, "인간이 국가의 소유이며, 독재자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존재일까요? 아니면 하느님 앞의 자유로운 영혼일까요?"라는 말에서 그의 정치적 사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냉전시기에 종교인이자(드밀은 독실한 성공회 신자였습니다) 보수파 미국인으로서 공산주의 독재국가인 소련,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기도 합니다. 진보 성향이 매우 강한 할리우드 내에서 그나마 보수적인 색채가 들어간 영화들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때문에 좌파-진보주의자들의 표적이 되곤 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모세의 입을 빌려 역설하는 '인종과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사람을 노예로 삼아서야 되겠느냐?"와 같은 인종평등주의적인 메시지는 가장 본질적인 인본주의적 메시지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 때문에 이 영화를 비난하는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영화 내용 중 마지막 십계명을 금송아지에 내던지는 장면은 민수기의 내용(고라의 반란)도 약간 각색되어 섞여 있습니다. 1956년 작을 만들 당시 홍해를 가르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거대 세트에서 엑스트라들이 촬영하고 있었는데 데밀 감독이 직접 점검을 왔고 엑스트라 몇 명이 "뭔가 지시하실 일이 있나요, 감독님?"이라고 묻자 데밀 감독은 "너희들 목숨이나 잘 지켜, 그리고 멋지게 보이도록 하라고."라고 말했다고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십계’는 기독교 관련 영화인만큼, ‘벤허’ 등과 같이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등에 텔레비전에서 종종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더이상 지상파에서 외화 방영을 하지 않아서, 과거 녹화 영상으로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영화 전문 케이블 채널에서는 최근에도 방영되고 있습니다.
아을러 주인공 모세 역으로 출연한 찰턴 헤스턴은 3년후 예수와 동시대로 설정된 영화 ‘벤허’에서도 주연을 맡게 되는데 ‘벤허’ 초반 친구이자 적수가 된 로마 군인 메살라가 벤허를 회유하며 "너희 유태인들은 이제 가망이 없다. 다윗, 솔로몬, 여호수아도 없다고"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벤허 역의 헤스턴이 모세로 출연했음을 생각하면, 배우개그의 성격이 있습니다. 또한 모세의 어머니 요게벱 역으로 출연한 배우는 ‘벤허’에서 벤허의 어머니 역으로 출연하여 이쪽 역시 배우개그를 연출했습니다. ‘십계’에서의 인연으로 ‘벤허’ 캐스팅 당시 찰턴 헤스턴의 소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영화 ‘황야의 7인’중 한명으로 유명한 배우 로버트 본이 이 영화 단역으로 배우에 데뷔했는데 극 중 우상을 숭배하는 히브리인과 람세스 휘하 전차부대원으로 출연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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