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 이야기

대하드라마 ‘대조영’ 최수종 이덕화 정보석, 높은 완성도 하지만 아쉬운 고증

Chris7 2019. 9. 14. 07:52

‘대조영’은 2006년 9월 16일부터 2007년 12월 23일까지 방영된 KBS의 대하드라마로써 총 134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원작은 작가 유현종이 1987년부터 1990년까지 매일경제에서 연재한 소설인 ‘대조영’이지만 같은 작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인 ‘연개소문’처럼 원작과의 차이가 크게 납니다. 드라마는 고구려 후기부터 발해 건국까지의 과정을 다뤘습니다. 전통사극의 간판배우 최수종이 극중 대조영 역을 맡았고 작가는 장영철. 여러 의미로 KBS표 대하사극의 기점에 가깝습니다. ‘해신’에서 처음 시도되었던 한 인물의 삶에 초점을 맞춘 영웅극과, 국가 간의 관계와 전쟁을 중점으로 삼았던 ‘태조 왕건’의 방식을 절충해 내 훌륭한 완성도를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KBS 대하드라마 전성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드라마이기도 했는데, 이 드라마 이후 10년이 넘은 지금도 KBS 대하드라마나 사극 시리즈는 적어도 시청률, 흥행 면에서는 ‘대조영’의 근처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최후의 1년 이상 방영된 드라마가 될 듯합니다. 2006년 중국의 동북공정이 한국에 큰 충격이었고, 그 일환으로 지상파 3사가 나서서 제작된 세 작품 중 하나이며, 다른 두 작품은 MBC의 ‘주몽’과 SBS의 ‘연개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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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이 작품이 100부작에서 34부가 연장되기 전에 초기 기획으로는 약 80부 지점에서 발해 건국 스토리를 종결하고 나머지 20부는 발해 건국 직후의 내정사를 다룰 예정이었습니다. 대조영의 출생-신분의 회복-고구려 1차 부흥운동-실패-동명천제단 운동-귀부산 포로 수용소 스토리-거란과 영주성 스토리-요동 정벌-천문령 전투-발해 건국으로 이어지는 큰 줄거리 라인은 이미 80부 선까지 기획되어 있었기 때문에 작품 종방 시까지 작품 자체가 흔들리지는 않았으나 극이 34부작이 연장되어 늘어짐으로 인한 거란족 이야기 남발과 스케일 축소로 인한 혹평이 좀 있었습니다. 비판을 받은 대중상의 동귀어진으로 인한 천문령 전투의 승리도 사전 시놉시스에 있는 부분이나 전투의 과정이 대폭 축소되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마지막 회차에는 무왕 치세와 장문휴의 등주 정벌까지 일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그러나 방송사 사장의 사정에 따른 연장과 검이=대무예 설정에 대한 지속된 논란과 함께 후반 회차 스토리를 대폭 변경하기에 이르며 후계 문제 스토리도 맛만 보여줄 뿐 검이가 대충 떠나는 것으로 매듭지어지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단이=대무예, 적이=대문예 설정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게 되었습니다. 당초 스토리는 검이가 대무예가 되고 단이가 대문예가 되는 스토리였다 합니다. 종영시의 시점도 대폭 늘어내졌으나 후반 회차가 다소 급하게 진행된 관계로 종영시의 연도가 정확히 얼마인지나 등장인물들의 나이는 정확히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분장에서 노화를 고려하지 않은 큰 오류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후반의 제작비 부족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쪽대본 없이 종영 3주 전까지 모두 촬영을 마무리했으며, 등장인물들이 예정에도 없이 무더기로 증발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작중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사전에 정해진 결말 플롯에서 결말을 맞았습니다.


드라마 스토리와 관련해 극의 초반부에는 단순한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닌, 현실감 있는 캐릭터들이 부딪쳐가는 과정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설인귀의 캐릭터가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동명천제단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부터 캐릭터가 아주 지겹게 평면적이 돼서, 갈수록 단순해지는 선과 악의 대립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주연들의 행동에, 한쪽에서 계략을 꾸며서 실행을 하면 상대방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 등 극본에서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그래도 KBS 사극답게 전투 장면 등은 나쁘지는 않은 편이었습니다.


태조 왕건 때부터 보였던 삼국지의 오마쥬스러운 설정이 상당히 많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대조영-걸사비우-흑수돌의 관계나 포지션은 삼국지의 유비-관우-장비와 동일하고, 설인귀와 걸사비우의 에피소드는 사실상 조조와 관우의 관계와 동일하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심지어 사태를 오해한 흑수돌(장비)이 걸사비우(관우)를 향해 대드는 부분까지 동일한데, 다만 이 부분은 비단 이 사극만의 모습이 아니라 KBS 대하 사극 전체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긴 했습니다.


극의 초반부에 등장한 안시성 전투에서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반지의 제왕’에 근접한 공성전을 보여줘 시청자들의 많은 기대를 모았습니다. 같은 시기 대결한 SBS의 사극 ‘연개소문’에서 보여준 삼천궁녀 CG나 골판지 세트를 고려하면 이는 확실히 ‘반지의 제왕’급 CG가 맞습니다. 이 안시성 전투 씬은 한국 사극 역대 최고의 전투씬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단, 제작비 문제로 이런 화려한 CG는 이후 몇 번 밖에 등장하지 못했으며 실제로 안시성 전투 씬에 제작비를 퍼부은 나머지 발해 건국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천문령 전투가 동네 애들 패싸움으로 변해버렸습니다. OST도 이 분야가 언제나 그렇듯이 웅장한 사운드를 자랑합니다.





본 작은 상술되었듯이, 이제까지의 KBS 사극과는 다르게 등장인물을 단순한 선/악으로 가르는 것을 그만 두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극 중 주인공의 아군이었던 연개소문의 반대파들도 나름의 이유와 능력을 가진 인물로 표현했습니다. 또한 악당의 경우도 기존 KBS 사극과 다른 점이 많은데, ‘불멸의 이순신’에서만 해도 전투가 시작되면 아군의 계략에 놀아나는 역할 정도가 다였던 적장들에게 제대로 된 캐릭터와 인간미를 부여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한 점입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의 라이벌로 격상됐던(!) 와키자카 야스하루 만해도 전투가 시작되면 몰살당하는 아군의 사이에서 눈을 부라리며 "이순신...이순신!"하고 소리치는 것뿐인 그저 그런 역할이었고, 그 외의 표현 역시 포로를 고문한다던가 하는 잔인하고 치졸한 인물의 묘사에 치우쳐 있었는데, 이런 면에서는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또한 적장 이문과 설인귀, 이해고, 측천무후의 현실적이고 영웅적인 모습이 호평 받았으며 특히 이덕화가 분한 설인귀는 적국의 장수임에도 불구하고 이덕화의 열연과 함께 한국 사극에서 드물 정도의 깊은 인상을 시청자들에게 남겼습니다. 주인공과 대립하는 역인데도 이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강한 인상을 남긴 경우를 굳이 더 꼽자면 ‘태조 왕건’에서의 견훤 정도가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적대 세력들의 권리 신장(?)이 이뤄진 작품인 만큼 여타 다른 KBS 대하드라마들과 다르게 주인공의 고생이 매우 심한데 특히 극의 초반부에서는 연개소문 사후 하에서 당의 공격에 서서히 말라 죽어간 고구려가 주무대였기에 회를 가면 갈수록 꿈도 희망도 없는 전개가 이어졌고 중반부 들어서 보장왕의 고구려 부흥운동도 결국 실패, 주인공은 노예로 전락하여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고 맙니다. 이후에도 동료들과 유랑하며 고구려 유민, 거란족, 돌궐족에게 몸을 맡기는 객장 신세가 이어지는 등, 발해 건국까지 뭐 잘되는 일이 없는, 실로 유례없는 주인공이었습니다.


극이 100부작이 넘는 대장편으로 기획되었고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대개의 KBS 대하 사극이 지니던 문제점과 그다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 중 극중 뛰어난 인물, 특히 출생이 불분명한 중요 인물들을 모두 고구려 혈통으로 설정한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대표적으로 이해고와 이검). 뛰어난 인물들은 모조리 고구려계로 설정해 둔 덕택에 결국 중반부, 후반부 극 자체가 외세에 항거한 영웅담이 아니라 고구려 멸망 이후 그 땅에 새로운 세력을 만들기 위한 집안싸움이 되고 말았습니다. 거란족 휘하에 대조영이 객장으로 잠시 들어간 시점에 대조영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설정으로 나온 가상 인물 이검과 끊임없이 엮이는데, 이러한 가상 인물의 등장은 결론적으로 ‘대조영’ 드라마의 평가 하락에 크게 기여했습니다(검이의 어머니인 초린과 대조영의 부인 숙영도 역시 가상의 인물). 참고로 이검 때문에 진짜 대조영의 두 아들들은 극중에 별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두 아들들은 이름도 실존 이름인 대무예, 대문예로 쓰지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검이는 문제가 많은 캐릭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고증 문제도 굉장한 논란거리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 드라마의 메인 악역인 설인귀는 진덕여왕, 무열왕, 문무왕 시절의 장수로 대조영이 발해를 세우기 15년 전에 죽었는데 여기서는 후반부까지 멀쩡하게 살아있는 걸로 등장하며, 이 때문에 고대 역사를 공부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좀비 설인귀' 라고 부르며 대차게 비난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661년 당나라 침입 때 대조영은 17살이었는데(드라마 한정. 실제로는 생년미상으로 더 어렸을 가능성이 높음), 그 젊은 나이에 2차 고당 전쟁에서 공을 세웠다는 점과 대조영의 아버지인 대중상이나 동료였던 걸사비우도 발해 건국 직전에 죽었는데도 멀쩡히 살아있는 모습으로 나와 시청자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문무왕 시절에 죽었어야 할 인물들인 고돌발, 설인귀, 계필사문을 비롯하여 건국 직전에 죽었어야 했는데 살아있는 경우가 매우 많으며 그 반대현상(이해고 등)도 많았습니다. 또한 진짜 문제는 절대 나와서는 안 될 실존인물들이 이상한데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고선지, 묵철이 왜 드라마 ‘대조영’ 중반부부터 나왔는지가 의문입니다. 묵철이야 실제로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할 무렵에 처음 등장하니 드라마 대조영에서도 후반부에 등장시킨다면 문제가 없지만, 고선지의 경우에는 대조영이 발해 건국한 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드라마 ‘대조영’에 나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대조영의 친동생인 대야발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아울러 초반부의 안시성 전투를 비롯한 고당전쟁의 불필요한 부분의 비중이 지나치게 컸고, 이로 인해 제작비도 지나치게 들어갔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총 134화에서 초반 50화 가량이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 이야기입니다. 초반부만 떼어서 가칭 '양만춘', 혹은 '고당 전쟁'이란 제목으로 별개의 작품을 제작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비중이 컸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제는 분명히 대조영이 세우는 발해의 건국입니다. 대조영이 활동하는 배경상황을 소개하는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고구려 멸망은 늦게는 3차 고구려-당 전쟁부터 묘사해도 충분하고, 특히 가장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1차 고당전쟁은 대조영이 갓난아기 시절이라서 대조영과 관련이 아예 없었습니다. 드라마상 묘사로도 대조영이 갓난아기던 시절의 일입니다. 그나마 제작비의 투입과 제작 초반기라는 신선함 때문에 이 초반부 자체는 호평을 받았지만, 이는 이후 작품이 지나치게 늘어지고 제작비 문제로 중요한 천문령 전투를 초라하게 묘사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본 작은 역대 한국 사극들 중에서 삼국지식 스토리구조와 사극이 트랜드에 휩쓸리는 것은 안된다는 선례를 남긴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드라마상 대조영의 의제인 걸사비우는 실제 역사에서는 오히려 아버지 대중상의 동료이자 의형제로 나와야 정상이며 대조영을 주인공으로 내새울 것이었다면 걸사비우는 대조영의 삼촌뻘로 등장시켜야 마땅했습니다. 또한 이 당시 국가관은 오늘날처럼 한민족 한국가가 아니라 내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 혹은 오늘날 아랍국가와 비슷한 국가관이었기 때문에 발해가 왜 다민족국가로 발전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포커스를 맞췄어야 했습니다. 정사에서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 할 수 있던 것도 사실은 티벳의 가르친링의 선전으로 당나라의 국력이 빠지면서 이를 틈타 동북방이 분열되면서 생긴 결과인데 이런 중요한 원인을 제공한 가르친링이 정작 대조영 스토리에 등장하지 않은 것은 대조영의 고증수준을 크게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위에 열거한 것처럼 다소 부정적인 면이 있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사극으로서 ‘대조영’의 재미는 괜찮은 수준이었다는 평이 많습니다. 평균 시청률도 27%을 기록하였지만 이 드라마를 기점으로 KBS 대하 사극들은 평균 시청률 20%가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 이 드라마는 방송사에 양날의 검 역할을 한 셈입니다. KBS는 이후 ‘대왕 세종’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정확히 말하자면 조금 더 트렌디한 시대극에 가까운 사극에 도전했지만 시간대를 갑작스럽게 변경하면서 시청률 선방에 실패하고 이 안타까운 실패 덕분에 KBS는 결과적으로 전통 사극으로 회귀해 버리고 맙니다. 이 결과물로 나온 작품이 바로 KBS 사극의 대표적 흑역사인 ‘천추태후’입니다. KBS 사극의 침체는 ‘천추태후’에서 끝나지 않았고 이후 KBS 대하드라마는 연달아 실패하면서 그렇게 사실상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물론 중간에 ‘정도전’이 선전하긴 하지만... 그때뿐).


여담으로 초반에 고당전쟁 씬들을 잘 만들어서 그런지 ‘역사스페셜’에서 고구려 말기에 대해서 다룰 때 이 드라마의 전투 장면을 자료화면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안시성에서 싸우는 장면이 자주 쓰입니다. 단 주연 배우들의 모습은 나오지 않고 엑스트라들이 싸우는 모습을 주로 보여줍니다. ‘대왕의 꿈’에서도 고구려와 수, 당의 전쟁을 설명할 때 이 드라마의 장면들이 재활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