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 이야기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 김영철 서인석 최수종, 최장기간 방영사극

Chris7 2019. 8. 31. 07:16

‘태조 왕건’은 KBS 1TV에서 방송한 대하(사극)드라마로써, 2000년 4월 1일부터 2002년 2월 24일까지 방영된 작품입니다. 대한민국 사극 역사상 최초로 후삼국시대를 다루었다. 역대 한국 사극 최장기간 방영된 최 장편으로 총 200회라는 어마무시한 길이를 자랑합니다. 이환경 작가의 작품이며 나레이션은 김종성이 담당했습니다. 타이틀롤인 왕건 역은 최수종이 맡았으며, 견훤 역에 서인석, 궁예 역을 김영철이 맡았습니다. 캐스팅 당시 이전까지 청춘스타의 이미지가 강했던 탓에 최수종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역을 무난하게 소화하면서 이후 오히려 최수종은 사극 주인공 역할을 많이 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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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종은 왕건역의 캐스팅 가운데 세 후보 중 한 명으로 나머지는 노영국과 윤승원이었다고 합니다. 노영국은 연기력이 탁월했지만 당시 49세로 청년 역할은 무리일 정도로 많은 나이의 한계로 인해서, 윤승원은 당시 연기 활동에 오랜 휴식 기간을 거치고 있었는 데다가 사업 실패로 구설수를 들었던 시기이기 때문에 캐스팅되지 못했습니다. 서인석은 전작 ‘왕과 비’에서 세조 역 물망에 한 때 거론되었습니다. 궁예역에는 캐스팅 과정에서 이덕화도 거론되었으나, 당시 궁예의 재해석을 하려고 했던 제작진은 너무 요승 같은 이미지로 나올 것 같아 김영철을 캐스팅했다고 한합니. 당시 이덕화의 사극 대표작은 ‘한명회’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김영철이 재해석된 궁예를 훌륭히 연기했으므로 신의 한 수가 되었습니다. 궁예 진주인공설이 있을 정도!


왕건역의 최수종은 궁예가 살아있는 시기는 궁예역의 김영철의 연기력과 비중에 가려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궁예의 죽음 이후부터 견훤과 대립하면서 캐릭터가 분명해지고 높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최수종은 1962년생이지만, 동안 중에서도 초동안이라 10대 후반 시절부터 커버하는 것이 가능한데다 어쨌든 중년이니 중년 가능, 게다가 연기력도 어느 정도 이상으로 보장되어 있어서 적응도가 높았다고 평가 됩니다. 다만, 최수종은 사극에서 왕이나 강한 인물(장보고 등) 역할을 할 때마다 특유의 그르렁거리는 발성을 하는데 원래 부드러운 목소리를 커버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너무 인위적인 짓이라며 싫어하는 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전중반에는 궁예, 중후반에는 견훤이 너무 부각되었다는 평가도 있는데, 그럭저럭 무난한 성장형 영웅인 왕건에 비해 드라마틱한 면이 많은 궁예나 견훤이 주목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애당초 궁예와 견훤은 후삼국의 한 주축이 되는 나라들을 밑바닥에서부터 만들어낸 군주들이고, 왕건은 이미 만들어진 나라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자리를 넘겨받은 군주이다 보니 전자의 과정이 더욱 드라마틱할 수밖에 없습니다.


작가도 이 사실을 인지했던지 아직 본격적으로 떠오르기 이전인 아역 시기부터 왕건을 등장시켜 비중을 높이려 하였으나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기는 어려웠다는 후문입니다. 궁예의 패서 병합으로 시작해서, 작품의 전체 플롯은 궁예의 죽음으로 1기가 끝나고 견훤 왕의 죽음으로 종결되는 드라마입니다. 사실상 제목만 ‘태조 왕건’이지, 실제적으로는 궁예와 견훤이 더 부각된 작품인 것입니다. 특히, 궁예는 전반부 출연 기간에는 누가 뭐래도 이견이 없는 실질적인 진 주인공이었습니다. 1화부터 120화까지 각 화의 맨 마지막 장면만 모아놓고 보면, 궁예가 나오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나 됩니다. 신 스틸러라고 불러도 한참 넘치는 수준. 이와 비슷한 케이스는 MBC ‘선덕여왕’의 미실이 있습니다. 그래도 주인공인 왕건이 성장하면서 궁예와 견훤을 결국 꺾는 과정을 보면 전체적으로 성장형·만능형 군주인 왕건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맞긴 합니다.


본작은 후삼국시대의 비주류적 인물을 재조명했다는 면에서 호평을 얻었고, 예전에 주로 제작됐던 조선시대 사극들의 궁중 음모와 정치가 주를 이루는 내용과 비교하여 전쟁과 영웅적인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는 후삼국시대를 다루었다는 점이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후 고려 등 고대 ~ 중세사 사극, ‘대조영’ 등의 전쟁 사극 위주로 사극 역사를 바꾸는데 아주 큰 물꼬를 틀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태조 왕건’은 대규모 물량을 동원하여 전쟁 장면을 묘사한 소위 블록버스터 사극의 시초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주말 드라마 시청률 1위(60.5%)를 자랑하고 있는데, 2위는 파리의 연인(57.4%) 그 다음부터는 50%가 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2000년대와 2010년대를 지나면서 미디어의 발달로 전체적으로 드라마 기대시청률이 낮아졌다 보니 앞으로도 태조 왕건의 60.5%가 깨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정작 이 사극 이후로는 대규모 물량을 동원한 스펙타클한 전투 신을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역시 최수종 주연 작인 ‘해신’을 시작으로 소위 트렌디 사극이라는 장르가 붐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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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에 나오는 전쟁 장면을 찍기 위해 2달에 걸쳐 세트를 지었는데 이걸 하루 만에 홀랑 태워먹었다고 합니다. 이건 사실 ‘조선왕조오백년’ 임진왜란편에서 경복궁 태우는 게 먼저였는데, 그건 그나마 미니어처였습니다. 그 이후에는 조령 관문을 이용해서 대야성 전투를 찍었는데 역시 화염을 이용하다보니 성 군데군데가 그을리는 바람에 욕을 대차게 먹고 그 이후에는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전투 신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원래는 지역 한인들을 위해 편성한 프로인데, 미국인들도 덩달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방송국 사정으로 한 회 쉬고 넘어 갔더니 항의 전화가 쇄도했을 정도라고... 펜실베이니아와 뉴저지주를 비롯해 뉴욕과 워싱턴 D.C의 일부까지 커버하는 필라델피아의 공영 채널인 WYBE방송(채널 35)에서는 이 드라마가 대박을 치자,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려 6시간이나 '태조 왕건 쇼'를 돌려댔다는 전언입니다. 이처럼 미국에서 의외의 인기를 끈 이유는 전투씬이 의외로 웅장하고 박진감 넘쳐서 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선 이해가 가지 않을지 모르지만, 서구권의 사극은 제작비 문제로 간단하게 넘어가거나, ‘주몽’급 수준으로 몇 십 명이 소박하게 치고받는 경우가 대다수 이기도 합니다. 괜히 HBO에서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방영하고 열광하게 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


본작은 주인공이 마지막 회까지 살아있는 몇 안 되는 정통 사극이기도 합니다. ‘태조 왕건’은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개경에 돌아와 왕건이 신하들에게 환호받는 장면에서 끝이 나며 왕건은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 2화에서 사망합니다. 사망 직전 회상신에서 태조 왕건의 마지막 장면을 그대로 가져다 사용합니다. 물론 이후로는 ‘대왕 세종’ 등 결말까지 주인공이 죽지 않는 드라마가 늘어났습니다.


드라마가 얼마나 대박을 치고 화제가 되었는지, 출연진들이 이례적으로 예능 프로그램까지 진출하면서 가족오락관, 출발 드림팀에서도 각자 '설특집 왕건 오락관', '출발 왕건 드림팀'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태조 왕건’의 출연진들만 모아놓고 특집을 방영했을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타 방송사였던 MBC 주말 예능 브레인 서바이버에서도 직접 드라마 제목만 언급 안 될 뿐이지만, 출연진들을 모아놓고 사실상 ‘태조 왕건’ 특집을 방영을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 국내 사극에서는 드물게 간접적이지만 발해의 멸망에 대해서도 언급되었습니다. 145회에서는 발해가 멸망하면서 신덕이라는 장수가 부하 500명을 이끌고 고려에 귀순하고, 그 과정에서 발해가 거란의 침입과 내분으로 인해 멸망하고 있다는 설명이 나오며 184회에서 대광현이 백성들을 대거 거느리고 귀순하는 장면이 짧게 나옵니다. 그리고 왕건 역을 맡은 최수종은 본 드라마가 방영되고 나서 몇 년 뒤에 발해의 건국과정을 그린 드라마 ‘대조영’의 주인공이 됩니다.


‘태조 왕건’은 높은 시청률 속에 200회라는 어마무시한 방영 횟수를 기록하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방영 당시에도 많은 비판에 휩싸였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주로 작위적인 전개, 화수 때우기용 에피소드, 지나치게 단순한 캐릭터 등이 많이 지적받았습니다. 이것은 KBS와 각본가의 전작인 ‘용의 눈물’보다 퇴보한 요소로 훗날 다른 전쟁을 다룬 사극들도 그대로 좋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2000년 이후, 제작되는 사극의 문제점들이 ‘태조 왕건’ 스타일을 계속 수용했다는 점에서 현재 제작되고 있는 사극의 문제가 발생한 시발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작위적인 운명론, 문법 및 고증에 맞지 않은 대사 및 상투적인 대사의 반복 그리고 지나치게 평면적인 캐릭터들 등등 여러 가지 비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태조 왕건’은 현재에도 어디에선가 한 곳에선 반드시 재방영되고 있을 정도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사극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