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 이야기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 김무생 유동근 김흥기, 한국 사극의 지존

Chris7 2019. 8. 24. 07:32

‘용의 눈물’은 1996년 11월 24일에 시작하여 1998년 5월 31일까지 KBS 1TV에서 159부작으로 방영한 대하(사극) 드라마로써 이견의 여지가 없는 한국 방송사상 최고의 업적을 세운 걸작 사극이자 사극계의 지존으로 평가되는 작품입니다. 그 퀄리티와 명성은 ‘용의 눈물’이 처음 방영된 지 20년이 넘은 2019년 현재까지도 웬만한 사극과는 비교 자체를 불허하는 수준이며, 특히 이 작품 이후에 여말선초 시기를 다룬 모든 사극들은 그것이 드라마든 영화든 간에 전부 이 작품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오죽하면 아주 오랜만에 정통 사극을 표방하면서도 스피디한 진행으로 각계의 호평을 받은 드라마 ‘정도전’조차도 ‘용의 눈물’의 후계를 자처할 만하다 라고 평할 정도. 사실 ‘정도전’ 자체가 ‘용의 눈물’ 당시 스탭진이었던 PD의 작품인데다, 적잖이 겹치는 여말선초 시대를 다루고 있어 비교를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제작비 등의 여건 차이도 존재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 지금의 KBS 대하드라마의 위상을 공고히 세운 가히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원작은 박종화의 세종대왕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극중 세종대왕의 비중은 거의 없고, 위화도 회군으로부터 시작된 조선 개국 ~ 태종 이방원의 사망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이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사실 원작 ‘세종대왕’ 은 여말선초 전체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거의 중반부까지는 세종대왕이 페이크 주인공이고 태종이 진 주인공입니다. 태종 이방원 사후는 온전히 세종 시대를 다루지만, ‘용의 눈물’은 원작의 중반 정도까지만 다룬 셈입니다. 그리고 태조 이성계는 1대 주인공, 태종 이방원은 2대 주인공으로 이성계 사망 이후 주인공은 이방원으로 교체(?)됩니다. 처음에는 100부작으로 위화도 회군부터 ‘조사의 난’까지 다룰 계획이어서 이성계와 이방원의 비중이 비슷하게 설정되어 기획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반에는 시청률이 저조하다가 이방원의 비중이 올라가면서 시청률도 급상승하게 되어 나중에는 59회나 연장하여 태종의 전 생애를 다 다루게 되면서 결국 태종의, 태종에 의한, 태종을 위한 드라마가 되었다는 후문입니다.


이에 대해 메인 시나리오가 ‘용비어천가’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제목도 '용'의 눈물이고. 좀 더 정확하게 파고들면 ‘용의 눈물’은 '태종우'를 빗댄 의미이기도 합니다. 의상비만 10억 원, 총 16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 출연인원 7,950명, 엑스트라는 무려 5만여 명이 등장한 엄청난 규모의 드라마로 흔히 현재 방영되는 블록버스터 사극의 효시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또한 역대 최고의 사극을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실 KBS 대하드라마에서 그전에 ‘삼국기’나 ‘찬란한 여명’ 같은 블록버스터 작품들이 나오긴 했으나 저조한 시청률과 함께 묻혔던 아픔이 있습니다.


당시까지 KBS 정통 사극을 넘어 시청률 관측 이래 사극 드라마로서는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역시 정통 사극은 KBS가 왕이다' 하는 국민적 인식을 심어준 작품으로 현재까지도 인정받고 있는 정통 사극의 정점이자 걸작이며 대한민국 사극계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라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용의 눈물은 최고 시청률 49%, 평균 20%대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역대 KBS 대하드라마 시청률 중에선‘ 태조 왕건’ 다음으로 2위의 기록입니다(태조 왕건의 최고 시청률은 60.4%). 하지만 시청률과는 별개로 작품의 완성도 면에선 ‘용의 눈물’이 한 두수 위로 평가 됩니다. 이처럼 ‘용의 눈물’은 사극 마니아들도 인정한 사극으로 소수 마니아층에겐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정작 방영 당시 대중적 시청률은 낮았던 ‘무인시대’와는 달리, 시청률도 높고 평도 좋았던 작품입니다. 사극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정통사극 중에서도 1위를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1화부터 159화까지 다루는 시대는 고려조 우왕 말기이자 이성계. 조민수의 주도로 이루어진 1388년(우왕 14년) ‘위화도 회군’부터 태종 이방원이 숨을 거두는 1422년(세종 4년)까지 만 34년의 기간입니다. 34년의 짧다면(?) 짧은 기간을 다룸에도 그 중에서 일어난 무인정사. 조사의의난. 민씨 4형제의 죽음. 세자 양위파동. 사병혁파. 호패법제정 등 굵직한 사건을 세세하게 다뤘으며 극중 나레이션의 인물소개 하나하나가 조선건국의 파란만장한 면모를 보여줄 만큼 나직하게. 하지만 무게 있는 음성으로 다뤄 극의 몰입에 크나큰 이바지를 했다고 평가 받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원래 ‘용의 눈물’은 100부작으로 기획되었고 원래 극중 배경도 위화도 회군에서 조사의의 난까지 다루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방송 초기에는 시청률이 저조하여 SBS의 사극 ‘임꺽정’에 밀리고 있었으나 ‘임꺽정’의 종영 이후 알음알음 시청률이 올라가고  이방원역의 유동근의 미친(?)연기력이 빛을 발하며 대박을 친 후로는 방송사가 이례적으로 60부작 가까이 연장, 양녕대군의 비행과 태종의 죽음까지 다루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시청자들이 PC통신 등으로 ‘용의 눈물’의 연장을 바랐다고 하니, 요즘 드라마가 조금만 시청률이 높아져도 윗선이나 제작진에서 임의로 연장하는 것과는 다른 이례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연장된 후의 이야기는 태종이 자신의 사람들을 다 죽이고 물리고 하는 내용이라...(안습) 2014년에 방영된 ‘정도전’이 비슷한 시대를 다루고 있는데다, 겹치는 배우들이 여럿 되는지라 종종 같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특히 극중 유동근의 태종 연기는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고, 당연히 1997년 KBS 연기대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대왕 세종’에서 태종을 한 김영철이 낫다는 의견도 일부 있으나 지금도 태종 이방원=유동근이라는 공식이 압도적으로 성립되고 있습니다.

사실 ‘대왕 세종’의 태종은 그 포스가 ‘용의 눈물’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배우 김영철의 연기는 출중하지만, 각본상 캐릭터 자체의 차이가 무시할 수 없는 차이를 낳은 경우입니다. ‘용의 눈물’은 태종이 중심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주인공으로 활약했지만, ‘대왕 세종’에서는 어디까지나 세종의 아버지로서 묘사되었기에 시세에 휘둘리고 고뇌하는 비교적 나약한 모습이 더욱 두드러졌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원경왕후=최명길의 공식도 사실상 이때부터 성립되었는데 유일하게 같은 원경왕후를 2번 맡았던 경력도 있어서 (대왕 세종에서도 맡았다.) 더욱더 공식화된 경우입니다. 최명길 스스로가 "원경왕후와 무슨 인연이 있는게 아닌가" 라고 할 정도였다 합니다. 태조 이성계=김무생, 삼봉 정도전=김흥기의 공식도(특히 장/노년층에서) 유동근 못지않은 막강한 공식이 되었지만... 두 분 모두 고인이 되셔서 두 분의 명연기를 다시 볼 수 없게 된 것이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특히 김흥기는 예전 ‘개국’에서도 정도전 역할을 맡았었는데 본작에서도 냉정한 천재 재상 정도전 역을 다시 맡았는데, 단순히 정도전 역할을 많이 맡은 정도가 아니라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전문가 수준으로 깊게 이해하고 있어서 후배 배우들로 하여금 역사 공부를 충실히 하고 역할에 임하는 모습의 모범이 되는 배우였다는 후문입니다. 실제로 그는 1997년에 국민대학교에서 정도전의 생애와 사상을 주제로 한 특강까지 진행했을 정도였습니다. 이 외에도 광기 넘치는 양녕대군을 훌륭하게 연기한 이민우도 상당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또한 충녕대군, 즉 세종대왕을 연기한 안재모, 이방번을 연기한 정태우, 나인 노씨를 연기한 하지원, 이숙번의 부인 역을 맡은 송윤아, 세자 이방석의 세자빈으로 들어왔으나 내관이랑 간통하다가 목을 매고 자살한 폐세자빈 유씨 역의 이재은 등 유명 배우들의 리즈시절 연기도 지금 보면 색다른 볼거리이며, 그 연기력도 매우 볼만했습니다.


'용의 눈물'은 2014년에 방영된 ‘정도전’이 비슷한 시대를 다루고 있는데다, 겹치는 배우들이 여럿 되는지라 종종 같이 언급되고 있기도 합니다. 여담으로 본 작에서 이숙번 역으로 출연해 유동근이 연기한 이방원의 오른팔 역할을 한 배우 선동혁은 ‘정도전’에선 태조 이성계의 의제 이지란(퉁두란)으로 나와 다시 한 번 유동근(이성계 역)의 오른팔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극중 이숙번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녀석인데...’ 라며 코미디 시전을 하기도 합니다. 한 가지 특이할 점으로 현재 본 작품의 마스터 필름이 KBS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다만 방송자료 자체는 남아 있기 때문에 지금 케이블 방송사 쪽에서 간간히 방영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태조 왕건’의 재방송 횟수에 비하면 차이가 뚜렷할 정도로 간간히 재방송되고 있어 저를 비롯한 사극 매니아들이 많이 안타까워 한다는 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