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는 1995년 1월 10일부터 동년 2월 16일까지 SBS에서 방영한 24부작 드라마입니다. 특이하게도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일주일 4회 연속 방영되었습니다. 이는 스타 연기자들을 장기간 계약할 수 없었던 점 때문인데, 특히 고현정은 당시 결혼을 앞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촬영에 오랫동안 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합니다. 아울러 동 시간 방영하는 타 방송사들의 드라마를 완전히 누르기 위한 의도도 있었습니다. 이 의도는 제대로 들어맞아, 결국 당시 MBC에서 방영했던 "까레이스키"는 2.4%라는 굴욕적인 시청률을 기록하였고 KBS에서 방영한 ‘인간의 땅,’ ‘장녹수,’ MBC에서 방송된 ‘아들의 여자’도 고전했습니다. 드라마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방영시기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방증한 케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본 작은 10.26 사건시기 박정희 사망 후 5.18 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YH 여공사건 등을 묘사한 첫 드라마이며, 비록 폭력 미화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실제의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대본과 거장의 연출력으로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극적으로 그려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모래시계’는 개국 초창기에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던 SBS가 사활을 걸고 제작한 작품입니다. 일단 MBC의 김종학 PD를 삼고초려 끝에 스카웃했고, 여기에 ‘여명의 눈동자’에서 김종학 PD와 호흡을 맞췄던 송지나 작가와 음악을 맡은 최경식까지 영입했습니다. 감독의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여명의 눈동자’에 출연한 배우들 중에 김종학 감독이 싹수를 봤거나 작품에 꼭 필요한 배우들을 데려왔는데, 박근형, 정성모, 박상원, 고현정이 그런 배우들입니다. 최재성의 경우는 태수 역으로 물망에 올랐고 감독도 출연제의를 강력하게 했지만 이미 권투에 푹 빠져 있던 본인이 거절했다고 합니다.
또 최민수, 박상원 등 경쟁사인 MBC의 간판스타들을 통으로 빼오고 이정재, 이승연 같은 신인들도 발굴하여 출연시켰습니다. 지금은 톱스타인 손현주도 최민수의 부하로 잠깐씩 등장하고 후반부에 박상원 처로 나오는 사람이 바로 훗날 베니스 영화제에 가게 되는 조민수. 이외에도 김보성의 젊은 시절 모습이나, 이희도, 김을동, 홍경인, 김정현, 김영옥, 김병기, 김기현, 조형기, 손호균, 박영지, 장항선 등의 배우와 지금은 작고하신 중견배우분(남성훈, 김영애 등)들도 볼 수 있습니다.
본 작은 방송결과 평균 시청률 46%를 기록하였습니다. 시청률이 가장 높았던 때는 최종회로, 64.5%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재방 당시 수목 시간에는 3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잘 나갔으나 주말 시간에는 최고 시청률 49% 평균 시청률 20%로 높은 인기를 끈 KBS 1TV ‘용의 눈물’ 때문에 손해를 봐야 했습니다. 다만 이 시청률은 과대평가된 면이 많았는데 이유인 즉슨, 당시 시청률 조사기관이었던 미디어 리서치 코리아사(現AGB 닐슨 미디어리서치)는 서울지역 300가구에서만 시청률을 집계했고 지방표본을 선정하지 않았던데다가 아직 지역민방이 개국되기 이전인지라 SBS 프로그램의 송출이 지방에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당대의 시청률 60%라도 지금으로 치면 30%대 시청률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수치가 의미가 없는 수치인건 아닌 것이 당대에도 30%대 시청률이 낮은 시청률은 아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비교가 어려워서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는 것.
다만 자방이라도 위성방송수신기를 달거나 지역RO(일명 중계유선방송)에 가입하면 SBS를 볼 수 있었기는 있었습니다. 여하튼 지방에서 방영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수도권에서 시청률이 엄청나게 나온건 분명한 사실이기에 신이 난 SBS는 기자를 ‘모래시계’ 방송 시간에 서울 거리에 내보내 거리 모습을 보여주면서 '모래시계 보려고 다 집에 가서 서울 시내가 한산합니다' 식의 뉴스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입소문으로만 들려오는 ‘모래시계’ 전설을 들은 지방 비디오 대여점들이 불법녹화 비디오테이프를 들여오는 일도 있었으며, SBS의 이름이 지방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본 작과 관련한 여담으로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는 20~30대 남성이 ‘모래시계’를 보기 위해 귀가를 서두르는 통에 '귀가시계'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습니다. 직장에서도 ‘모래시계’가 방영하는 날에는 야근, 회식이 중지되었을 정도라고... 조금 과장해 당시에는 ‘모래시계’가 방영되던 시간대에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차도에 도로들까지 차량 하나 없이 텅 비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흥업소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난리법석이었고, 그래서 심지어는 술집에서도 TV를 사다 놓고 입구에 '모래시계 방송 중'이라는 문구를 써놓은 가게들이 즐비했을 정도였습니다. 가게에 TV가 없으면 일찍 가게 문을 닫아야 했는데, 어차피 손님들도 TV 보느라 안오고 주인도 ‘모래시계’를 보러 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실제 모래시계도 당시 많이 팔렸습니다. 제목 덕분에...
또한 극중 여주인공의 보디가드 역인 이정재 덕에 검도 도장은 때 아닌 전성기를 맞기도 했습니다(다만 호구도 못 써보고 그만두는 단기 수련자의 경우가 반 이상이었던 것은 함정). 미팅에 나온 남학생들이 이정재의 과묵함을 따라해 벙어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정재의 인터뷰로는 데뷔 초라 연기를 못해서 대사가 줄었다는데, 캐릭터 자체가 극 중 거의 한 마디도 없다가 한 마디 할 때마다 명대사라...
아울러 강원도에 엄청난 관광 수익을 가져 오기도 했습니다. 특히 정동진역은 ‘모래시계’ 버프를 제대로 받은 사례인데, 폐역도 검토되던 역이 ‘모래시계’에 한 번 나온 일로 전국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아무 것도 없었던 정동진에 카페와 민박집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모래시계’ 때문입니다. 또한 정동진 근처 땅값이 수 십배 올랐습니다. 드라마 이듬해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인기가 잠잠해지나 싶었지만 그 사건의 작전반경 속에 있는 정동진이 뉴스에 너무나 자주 나오다보니 인지도를 더 끌어올려서, 두 사건으로 인해 정동진역은 지금도 강릉 최고의 관광지로 곱히고 있습니다.
‘모래시계’는 5.18 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TV 드라마로, 계엄군의 진압과 당시 광주 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그려내어 이를 오해하거나 사건의 존재조차 모르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모래시계’는 우연히 광주에 내려왔다 사태에 휩쓸린 태수와 군복무 중 계엄군으로 차출되어 진압부대에 들어온 우석을 통해 당시 광주의 실상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당시 광주에는 SBS가 송출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촬영 소식을 듣자 광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엑스트라에 참여했으며, 광주광역시도 시내 주요도로를 촬영 장소로 제공했고 광주 기독병원 등 실제 5.18 당시 주요지역이 실제로 등장합니다. 중간 중간에 실제 1980년 당시 광주의 영상도 삽입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본 작은 5.18을 최초로 정면에서 다룬 드라마이지만 동시에 호남 차별의 또 다른 상징으로 거론되기도 하는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즉 주인공급 인물에서는 사투리를 쓰지 않는데 악당인 조연 종도 등만 서남 방언을 쓰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당시 야당 당수였던 김대중 대통령마저도 "모래시계를 만든 이들을 용서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나름 연기력이 있던 최민수가 이미지와 연기력이 한동안 고정된 것이 바로 이 작품 때문이기도 합니다. 최민수에게는 양날의 칼인 셈. 최민수의 터프가이 이미지를 굳혀버린 것이 이 작품으로, 이 이미지는 노인 폭행 의혹으로 구설수에 올라 한동안 활동을 중단한 후의 복귀작인 단편 드라마 ‘아버지의 집’에서야 비로소 간신히 떨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정체되어 있던 연기력도 그제서야 다시 빛을 발하게 됩니다. 또한 최민수가 마지막 사형집행 직전에 박상원에게 했던 대사 "나, 지금 떨고 있냐?"는 당시 여러가지 패러디에 쓰일 만큼 유명한 대사로 남았습니다(이 때 순간 시청률이 74.4%). 그 외에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란 대사도 웃기려는 개인기로 무슨 말일지 모를 정도로 오버연기를 하며 많이 쓰입니다. 다만 최민수는 초창기 데뷔작인 '신의 아들' 때부터 반항아적인 이미지로 활동하다 '결혼 이야기', '사랑이 뭐길래' 등의 코믹 연기도 하면서 연기 다변화를 꾀했고 흥행적인 측면에서는 더 좋기는 했습니다. 그러다 ‘걸어서 하늘까지’의 '물새'역을 하면서 반항아적인 이미지를 재 각인시킨 후에 ‘모래시계’로 도장을 쾅쾅 찍었습니다.
작가·감독의 전작인 ‘여명의 눈동자’에서 고현정은 생짜 신인에 조연이었으나 ‘모래시계’ 캐스팅 시에는 ‘작별,’ ‘두려움 없는 사랑,’ ‘엄마의 바다’ 등으로 메인 여주인공급으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래시계’로 레전설이 되…려는 순간, 신세계그룹의 후계자와 결혼을 발표하고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정확히는 ‘모래시계’ 방영 전에 결혼발표를 하고 방영이 끝난 후 바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고현정은 2003년에 이혼했고, 2005년에 연예계에 복귀하게 됩니다. 배경음악으로 쓰인 러시아의 유명 가수 이오시프 코프존이 부른 ‘백학’ 역시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매우 유명해졌습니다. 다만, 저작권상으로 완전히 협의가 되지 않았는지 OST 앨범에는 원곡 대신에 "이연"이라는 타이틀의 리메이크 연주곡이 수록되었습니다. 덕분에 원곡이 수록된 이오시프 코프존의 앨범이 국내에서 꽤나 잘 팔리기도 했습니다.
몽골에서 1998년도에 수출되어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로도 많은 한국드라마가 몽골에 수출되면서 인기를 끌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에 몽골 내 한류의 시초격인 드라마로 손꼽힙니다. 다만 ‘야인시대’와 같이 몽골에서도 한국식 조폭문화가 같이 수출되는 부작용도 같이 겪었다는 문제점도 있었다는 후문입니다. 조폭 문화와 간련해 국내에서도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내용이 포함된 이 드라마를 본 일부 국딩들이 조폭 흉내를 내고 장래희망이 조폭이라고 말해서, 조폭미화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며, 한국논단에서는 광주사태를 미화하고 계엄군을 모독하는 드라마라며 평가절하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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