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금’은 MBC에서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방영한 사극으로 조선시대 궁녀 '서장금'이 의녀가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장금의 사랑과 성장을 그린 드라마입니다. 시대배경은 조선시대 중종대로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하는 실존인물인 의녀 '장금'을 주인공으로 하였으나, 장금이 중종의 총애를 받은 의녀였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기록이 전무한지라, 모티브만 따왔을 뿐 드라마 내용의 거의 대부분은 픽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증 부분도 오류가 많은데, 대표적인 예가 조선시대에 궁녀가 요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 당시 수라상은 '대령숙수'라 불리우는 남성 요리사에 의해 만들어졌고, 궁녀는 옆에서 도와주는 보조 요리사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 덕분에 궁중요리 붐을 일으켰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병훈 PD의 경력이 묻어나는 연출력과 스토리텔링, 악역마저도 공감이 가는 입체적인 캐릭터 설정, 메인 스토리인 장금이의 인생역전과 사랑이 서스펜스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시청률이나 평단의 평가 모두, 국내외적으로 성공한 드문 케이스의 드라마가 되었습니다. 특히 시청률은 스토리가 본궤도에 오른 후부터 마지막 회까지 40~50%대의 엄청난 수치률 유지했습니다. 특히 기존 사극에서 고작해야 왕을 유혹해 권세를 탐하는 발칙한 요부와 같이 왜곡된 모습으로 그려지던 궁궐 여성의 이미지를 깨버리고, 넘치는 도전 정신과 집념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역경을 주체적으로 극복해가는 장금의 캐릭터는 여성계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아울러 ‘대장금’은 국내 뿐 아니라 국외 여러 나라에도 수출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영애를 한류 스타로 만들어준 대표작입니다. 사실 이영애뿐만 아니라 지진희도 이후 중화권 드라마에 출연하는 등 덕을 봤고, 아역이나 상궁 등 조연들도 외국 행사에 초청받은 바 있었습니다. 캐스팅과 관련해 이영애가 맡았던 주인공 서장금 역은 당초 송윤아, 장진영 등이 거론되었으나, 개인사정을 이유로 출연을 거부하자 이영애가 우여곡절 끝에 낙점됐습니다. 김현주, 송혜교 등도 서장금 역 물망에 한때 거론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김현주는 당시 송혜교가 여주인공으로 나온 KBS 2TV ‘가을동화’의 유력한 여주인공이었다고 합니다. 홍리나가 분한 최금영 역은 당초 강성연이 낙점됐으나, KBS 2TV 월화드라마 '그녀는 짱'에 갑작스럽게 캐스팅되면서 고사하여 MBC 측으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강성연은 '대장금' 출연이 좌절됐습니다. 최 상궁 역의 견미리는 당초 한 상궁 역이었으나, 최 상궁 역으로 낙점됐던 송채환이 개인사정으로 인해 드라마에서 하차하자 양미경이 한 상궁 역 대타로 들어갔고 견미리는 최 상궁 역이 됐습니다. 드라마의 주 촬영 장소는 수원화성 내에 있는 화성행궁이었으며 이 작품을 통해서 MBC의 전매특허인 ‘트렌디 사극’(특히 이병훈PD 연출 작품들)이 더욱 공고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각본을 맡은 김영현 작가는 이 작품을 계기로 사극 전문 작가로 전향합니다. 작품성에서 호평 받았지만 옥의 티는 있는 편인데, 초반에 '단도리(段取り)'란 일본어를 너무 남발하다 시청자들에게 지적을 받기도 했고, 어렸을 때 장금에게 금영은 언니였는데 성인이 됐을 땐 '금영아'라고 하극상 맞먹는다든가, 덕구의 아들인 일도가 초기 설정과는 다르게 요절한다든가, 역시 초기 설정에선 왕의 승은을 입는다던 금영이 결국 최고상궁에서 끝난다거나 하는 오류 등이 있었습니다. 대신 연생이 승은을 입고 연생의 시비가 되는 조방이가 증발합니다. 일부 에피소드는 당시 표절 의혹을 받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만한전석을 이기는 에피소드인데, 국내명 요리왕 비룡으로 유명한 ‘신중화일미’의 한 에피소드를 표절한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다만 만한전석 끌어오면 다 표절이냐는 반론도 있었고, 애초에 해당 에피소드가 국내에 방영된 애니메이션에선 나오지도 않아서 표절 논란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고증과 관련해선, '대장금'을 통해 널리 알려진 '생각시'라는 말은 원래 지밀과 침방, 숫방의 각시들만이 해당되었으며, 수랏간은 생머리를 드리지 않은 그냥 각시들이었다고 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원래 수랏간에서 궁녀들이 한 일은 잡다한 일이나 음식을 데우는 정도(특히 소주방)였으며, 실제 음식의 조리는 남자 숙수들이 도맡아 하였습니다. 따라서 수랏간도 거의 허드렛일을 하는 곳으로 취급하였습니다. 따라서 최 상궁처럼 수랏간 최고상궁이 제조상궁에 오른 예는 없었습니다. 수랏간보다는 왕과 왕비, 대비의 수발을 드는 지밀과 부제조, 침방과 숫방의 최고상궁이 더욱 권력이 컸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드라마 내용 중 실제 역사적 사실과 비교해 설왕설래되는 부분이 궁녀들의 신분문제입니다. 극 중에선 수랏간 최고상궁 자리를 두고 최 상궁과 경합을 벌인 한 상궁이 결국 최고상궁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 이때 각 소주방 상궁들이 집단 반발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가 바로 한 상궁이 천민 출신이라는 것인데, 조선시대 궁녀는 조선 후기 순조 때 공노비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기본적으로 공노비 중에서 뽑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만보면 드라마 내용이 완전 허구처럼 보이나 실제 궁인을 공노비 중에서만 주로 뽑게 된 것은 ‘궁녀를 내비(內婢: 내수사 소속 공비자)에서 차출하고 양녀(良女: 사농공상의 딸)는 건드리지 말라’는 특별법이 만들어진 경종 3년부터입니다. 즉 궁녀들의 신분이 주로 노비출신이었던 기간은 경종 때부터 영·정조를 거쳐 순조 초기까지 일 뿐입니다. 따라서 ‘대장금’의 시대적 배경인 중종때만해도 양인(평민)이상의 신분에서 궁인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유명한 희빈 장씨(장옥정)로 장씨는 중인출신이었습니다. 그것도 장씨의 할아버지는 역관 출신으로 정3품 첨지중추부사(무관직)의 벼슬까지 올랐고 더욱이 당숙인 장현은 효종 8년에 이미 정2품 자헌대부를 제수 받은 거물 역관으로 무역에도 종사해 ‘국중 거부’라 불릴 정도로 많은 재산을 모았으며, 종1품 숭록대부까지 올랐던 인물입니다. 때문에 작중 설정처럼 상궁을 포함한 궁인들 거의 대부분이 양인이나 중인의 신분이라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으나 중종치세에 궁인들 상당수가 양인이상의 신분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긴 합니다. 물론 후궁을 제외한 양반출신 궁녀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덧붙여 여담입니다만 개인적으로 극중에서 거슬리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예법에 어긋난 어투입니다. 이 부분은 지난번 포스팅 한 ‘허준’ 관련 글에서도 지적했는데, 즉 극 중 장금이가 임금인 중종을 상대로 말을 할 때 ‘한 상궁 마마님께서 이러저러 하셨습니다’라고 자주 말합니다. 하지만 이는 한상궁을 지존의 자리에 있는 임금보다 윗자리에 놓는 말투로 제대로 예법에 맞추려면 ‘한 상궁이 이러저러 하였습니다’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대장금’ 스토리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고수하는 말투인데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부분을 작가나 연출가가 신경을 쓰지 않은듯해 보입니다. 이는 드라마 ‘허준’에서도 똑 같이 반복된 부분이기도 합니다. 허준도 극 중 어의 양해수나 임금인 선조를 상대로 말할 때 자신의 스승인 유의태를 그들보다 높여 말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릅니다. 그리고 대장금의 시대배경은 16세기 초 조선시대 중종대인데, ‘대장금’에서의 복장들은 조선 후기 18세기쯤에 나타나는 형태입니다. ‘대장금’에서 의복의 저고리가 짧은 편인데 원래 조선 초기에는 저고리가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었으며 후기로 갈수록 차차 짧아지게 됩니다. 게다가 극중 상궁, 대비, 중전, 후궁들을 비롯한 궁중여성들도 죄다 당의를 입고 나오는데,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이 당의는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치세 때부터 나왔던 저고리 형태였고, 그 전까지 궁중여성들은 장저고리나 장삼 등을 주로 입었습니다. 조선 후기의 형태만 한복이라고 인식하는 고정관념이 있어 현대의 개량 한복은 저고리를 짧게 만들기 때문에 ‘용의 눈물’과 같은 조선 초기 한복을 다룬 사극은 드문 게 현실입니다. 또한 6회 9~10세로 보이는 효혜공주가 밥을 거부하는 에피소드와 11~12회 무렵 유치원생 정도로 성장한 원자(인종)가 마비되는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왕비가 장경왕후인데,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고 7일 만에 산후병으로 사망했고, 2년 후 효혜공주 7살, 인종 3살 때 문정왕후가 왕비에 책봉되므로, 6회부터 문정왕후가 나와야 맞습니다. 그리고 명나라 사신이 왔을 때 최 상궁이 만한전석을 대접하는데, 만한전석은 사실 이때부터 약 200년 후인 청나라 강희제 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시청률 면에서 ‘대장금’은 당시 말 그대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2003년 9월 15일 19.8%를 시작으로 한 시청률은 방송 1개월만인 9부에서 30%를 넘었으며, 결국 2003년 11월 10일 17부에서 40%를 돌파하였습니다. 이후 계속해서 40%의 시청률 고공행렬을 기록하다가 2004년 3월 극중 대반전과 최 상궁이 죽었던 48부에서는 기어이 51.4%로 50%의 벽을 뚫고 맙니다. 49부와 50부는 시청률이 40%대로 떨어졌지만 51부부터는 다시 50% 시청률에 복귀. 결국 종영 때까지 계속 50%를 기록하였으며 2004년 3월 23일 54부 마지막 회에서 최고시청률 57.8%를 기록하였습니다. 최종 평균시청률은 45.8%였습니다. ‘대장금’ 신드롬은 시청률에서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전방위적인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모든 언론들은 앞다투어 '장금이 신드롬'을 기사화했으며, 정치권에서도 장금이 이미지를 차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장금이가 만들었던 요리는 책으로 출판되었으며, 대장금 테마파크도 운영되었습니다. '장금이의 꿈'이라는 애니메이션과 뮤지컬로 재창조되기도 했습니다. 숱한 난관과 역경에 시달리면서도 심성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해서 이겨내고, 악인을 처리할 기회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의 원한을 버리고 용서하며 자신의 길을 정진하는 장금의 모습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었으며, 결국 장금이를 괴롭혔던 많은 악인들이 쓰러지고 자멸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습니다.아울러 옛 한국말로 쓴 노래 '오나라'도 대장금의 인지도에 힘입어 크게 히트했습니다.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간간이 회자되는 곡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는지 2019년 기준 중학교 1학년 음악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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