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은 우리민족 최초의 여군주(왕)인 신라의 선덕여왕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입니다. ‘선덕여왕’은 MBC의 창사 48주년 특별 기획 드라마이며 원래 50회만 방영 예정이었으나 높은 시청률이 나오자 연장방송이 확정되어 총 62회로 방영된 뒤 종영되었습니다. 드라마 ‘히트,’ ‘뿌리깊은 나무’ 등을 쓴 김영현, 박상연 콤비의 대표작이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기본 베이스를 진실논란이 분분한 필사본 ‘화랑세기’를 모티브로 한 이 드라마는 말 그대로 순수한 판타지입니다. ‘화랑세기’ 내용을 읽어본 사람이 별로 없어서 선덕여왕이 화랑세기 내용을 따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작 ‘화랑세기’ 내용과도 일부 설정만 따 온 정도로 굉장히 다릅니다. 이에 따라 다소 판타지한 요소(극 초반부에 나오는 박혁거세의 알이나 예언 등)나 기존 역사서나 야사 등에 기재된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 면이 많습니다. 드라마가 일단 타이틀롤인 주인공 선덕여왕 덕만이라는 한 여왕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극중 선덕여왕의 정적으로 등장하는 미실역이 워낙 임팩트 있고 배우의 연기력이 넘사벽급이라 방영당시 진주인공은 미실이라는 시청자들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덕만과 미실 더블 주인공 체제라고 봐도 될 정도로 악역측의 미실이 돋보인 드라마로 이때의 호연덕에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었음에도 이듬해 방송사 연기대상은 고현정에게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미실의 숨겨진 아들로 나오는 비담 역시도 사극에서 흔치않은 선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매력적이고 독특한 캐릭터성 덕에 호평을 받아 그전까진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비담역의 배우 김남길을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게 됩니다. 극중 선덕여왕은 이요원이 연기하였으며, 어린 덕만은 아역배우 남지현이 연기하였습니다. 참고로 극중 초반은 남장을 하고 다니는데, 남장이 너무 잘 어울렸던 바람에 공주가 되어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모습이 더 어색하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어쨌거나 남자 배우도 '으악' 소리가 나오는 야외전투신이나 산악촬영에 남자 배우들만큼 엄청나게 투입돼서 이요원은 대상포진 같은 병까지 얻을 정도로 고생했다는 후문입니다. 드라마가 방송된 2009년 당시 넘사벽급 시청률인 40%대의 평균 시청률을 자랑하며 이 엄청난 인기로 재정난에 허덕이던 MBC는 흑자로 전환됐고, SBS는 이 드라마와 경쟁하게 될 ‘천사의 유혹’을 대놓고 시간대를 한 시간 앞당겨 방영하고, KBS는 ‘아이리스’를 ‘선덕여왕’ 방송요일인 월화를 피해 수목으로 변경하는 등 타 주요 드라마 편성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럼 각설하고 본격적으로 드라마 ‘선덕여왕’속 진실과 허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사실 드라마스토리 자체가 워낙 판타지라서 역사적 허구보다는 진실(사실)을 찾는 것이 훨씬 빠를 것입니다. 드라마의 대중적 성공과는 다르게 본드라마는 특히나 역사적 사실을 매우 악의적으로 왜곡시켰다는 평이 많은데, 전반적으로 ‘화랑세기’ 필사본에서도 모티브를 얻었지만 정작 드라마에는 ‘화랑세기’ 필사본에도 없는 조작(?)된 내용들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사극이 역사와 똑같을 수는 없고 똑같이 갈 필요도 없지만, 적어도 그 시대에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선덕여왕’은 역사적 사실과 당시 환경은 깡그리 무시하고 캐릭터 대결에만 치우친 사극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물론 드라마가 워낙 상업적으로 성공했고 스토리 자체가 흥미진지하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들을 어느 정도 덥긴 합니다만...). 우선 드라마의 진주인공으로 여겨지는 미실은 사실 위서 논란이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에만 기술되어 있는 인물입니다. ‘화랑세기’ 필사본이 위서라면 당연히 그녀도 가상인물이기에 ‘화랑세기’가 위서라는 사실과 그녀가 가상인물이라는 사실은 별로 관련이 없다지만, 그녀가 등장한다는 것만으로 드라마 스토리가 기본적으로 이미 역사적 사실과는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필사본 ‘화랑세기’를 기준으로도 미실은 진흥왕부터 진평왕 초기까지 활동한 인물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등장할 수 없습니다. 고로 천명공주 사망 때 마야가 미실에게 했던 악담도 창작이 됩니다(참고로 이 씬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마야부인역의 윤유선이 후덜덜한 연기력을 보이며 미실을 쏘아 붙입니다). 거기에 미실과 신라 토착신앙이 아직도 기세를 펼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김유신과 천관녀의 이야기를 보면 이미 신라 토착신앙은 몰락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미실이 설령 토착신앙의 중심에 있었다 해도 그만한 힘을 내진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필사본 ‘화랑세기’로 치더라도 미실은 생존시기상 마야부인이 살아있던 시기에도 이미 노년에다 병마와 싸우고 있기에 마야부인, 선덕여왕과는 동시대 인물은 아니기에 드라마에서처럼 만나서 정면 대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덕만과 천명이 쌍둥이라는 것은 필사본 ‘화랑세기’를 포함한 야사, 정사, 설화 할 것 없이 그 어떤 기록을 봐도 있지도 않은 허구입니다. 그리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필사본 화랑세기, 야사, 설화에서도 모두 ‘덕만이 동생이고, 덕만이 장녀다’ 식으로 기술이 엇갈리기 때문에 이것도 작가의 창작이 반영된 듯 싶습니다. 거기에 쌍둥이가 태어나면 성골이 씨가 마른다는 예언을 빌미로 미실이 진평왕을 압박하려 하는 부분도 작가의 창작. 삼국유사의 '성골남진(聖骨男盡)'이라는 말에서 착상을 얻어, 예로부터 쌍둥이를 불길하게 여긴 사례가 많은 것을 바탕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덕만의 아버지 진평왕은 수나라, 당나라와의 적극적인 외교 노선을 펼치고 영토 확장도 하는 등 나름 선방한 왕으로 역사에 기술돼 있지만, 작중에선 비중이 너무 없고, 무능한 왕으로 전락. 결국 작중 최대의 피해자가 되었습니다(진평왕역의 조민기가 좋지 않은 스캔들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 더더욱 안습...). 유일하게 왕다운 행동은 ‘월식계락’으로 당당히 자신이 공주임을 밝히는 덕만에게 걸어가 딸임을 사람들 앞에 공식적으로 천명한 순간 정도입니다. 사실 덕만이 여성으로써 최초의 군주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성골이라는 자신의 신분적 우월성에 더해 아버지 진평왕이 안정시킨 왕위의 권위가 결정적이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때문에 드라마 속에서 그려진 진평왕과는 다르게 실제 역사 속 진평왕은 할아버지 진흥왕이 이룩해 놓은 영토 확장과 왕권강화를 잘 계승해 당시 신라 조정의 만만치 않았을 반대를 물리치고 여성 군주 등극을 무리 없이 진행시킬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 입니다. 덕만의 숙부인 진지왕이 극에선 미실과 결탁하여 유서조작으로 왕이 되고, 이내 왕이 된 후 뒷간 나온 사람인양 입 씻어서 결국 미실에 의해 탄핵되는 것처럼 나오지만, ‘삼국유사’에선 진지왕이 그대로 4년이나 왕위에 앉아 있다가 하는 짓이 정말로 막장이어서 화백회의에 의해 폐위됐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한 예로 도화녀와 7일 동안 검열삭제를 했다고...) 드라마는 필사본 ‘화랑세기’를 따른 설정.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진지왕이 막장이라서 태후가 폐위하려고 했으며, 여기에 원한을 품은 미실이 가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담이 미실의 아들뿐만 아니라 진지왕의 아들이라 기술된 곳은 설화나 야사, 필사본 ‘화랑세기’에서도 없는 이야기 입니다. 확실한 것은 그가 상대등까지 올라갈 정도로 신분이 높은 귀족이었고 선덕여왕의 총애를 받았다는 정도... 이와 관련하여 말이 많을 걸 염두에 둔건지, 비담이 등장할 무렵 제작진 측이 창작한 인물이라고 공인까지 했습니다. 작중에서 덕만이 "여왕 폐하"라고 불리는데, '여왕'은 조선조에 들어서나 나온 말이며, 따라서 삼국사기를 보면 '선덕여왕' 이 아니라 '선덕왕' 으로 되어 있습니다. 굳이 여성 군주임을 강조할 때에도 여왕이 아니라 여주(女主)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김춘추가 "골품제는 없어져야만 하는 제도"라면서 비판하는데 아무리 김춘추를 밀어주려고 했다고 해도 이건 말 그대로 신라라는 나라의 제도 근간을 건드리는 설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극중에서 김춘추가 미실을 비롯한 진골 귀족들을 도발하면서 드라마의 긴장을 높이기 위한 설정이었으나 조금 무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일단 골품제는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폐지되지 않습니다. "너무 심하니 수정 좀 해야 하지 않겠음??"이라는 말이나마 신라 후기에 나왔을 뿐. 그리고 김춘추 자신이 골품제의 최대 수혜자인 진골입니다. 자신이 천부적으로 받은 수혜를 그렇게 쉽게 포기하고 평등사회를 꿈꾸는 사람이었다면 김춘추는 이미 석가모니급 성인의 반열로 올라갔을 것입니다. 화백회의의 만장일치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덕만의 주장은 야사, 설화, 필사본 ‘화랑세기’에도 없는 부분입니다. 화백회의의 만장일치제가 나온 배경을 생각하면 신라의 설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위에 언급한 골품제 부정 발언과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파급력이 큰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도 김춘추의 그것처럼 극에서 미실의 계책을 역관광(?)시키기 위한 계책인 것입니다. 아울러 미실이 선덕여왕 시기에 생존해 있다는 것과 난을 일으켰다는 것에 대해 악의적 역사왜곡이라는 항의가 폭주하자 제작진에서는 "역사대로 가자"고 라며 ‘칠숙과 석품의 난’으로 이어놓았습니다. 실제로 칠숙과 석품이 난을 일으킨 것은 맞긴 하지만 여기에 미실이 연루되진 않았습니다. 필사본 ‘화랑세기’에 따르면, 미실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주변 인물들 중 미실과 세종사이의 아들 하종은 실제론 충의롭고 지혜로우며 용맹한 화랑으로서 오히려 문노보다도 훌륭한 인물이지만 드라마에서는 완전 개초딩찌질이로 왜곡해 놓았습니다. 설원 또한 실제로는 미실과 절륜한 사랑을 나누다가 미실의 간호수발을 자청하고 그러다 병들어 죽었으나 드라마 설정상 병부령의 직책과 아울러 배우가 그 전노민이라서 최대한 멋있게 묘사하기 위해 계백과 싸우다 전사한 것으로 설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무술의 신급(?)으로 등장하는 국선 문노는 ‘삼국사기’에서는 그냥 화랑1 정도의 평범한 화랑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필사본 ‘화랑세기’에서도 뛰어나다고 하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정도까지는 아닌 그냥 평범한 화랑입니다. 알천의 장인이기도 하지만, 작중에선 알천과 장인사위는 커녕 친해보이지도 않게 표현 됩니다. 또한 배우 이순재가 극중 진흥왕으로 등장하는데 진흥왕은 526년생 혹은 534년생으로 540년에 즉위했고 37년간 재위했습니다. 고로 사망할 때 43세 혹은 51세로 중년기였기 때문에 이순재가 연기한 완연한 노인의 모습과는 맞지 않습니다(다만 이는 2000년대에서 보았을 때의 통념이고, 1500년 전의 고대인은 현대인보다 수명이 짧았으니 50세면 충분히 노인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당장 대중매체를 보더라도 80~90년대의 30대 남성 얼굴은 2010년대의 30대에 비해 노안입니다). 드라마 속에선 선덕여왕이 자기 맘대로 비담을 상대등에 지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 상대등은 귀족들의 대표격이기 때문에 귀족들의 정치적인 이익에 따라 결정되지 왕이 지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왕 좋을대로 임명하고 해임시킬 수 있는 최고 관직은 진덕여왕 시기부터 등장한 시중입니다. 애초에 상대등은 진골만 될 수 있습니다. 비담도 혈통을 따져보면 진골이긴 하지만 진지왕과 미실의 아들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니 귀족들 입장에서는 산에서 약초나 캐던 사람이 자기 상관이 된 것입니다. 아울러 드라마 속에서는 알천과 김유신이 화랑 때부터 같은 세대로 나왔지만 이것도 실제역사와 틀리는 부분입니다. 같은 시대를 다룬 ‘대왕의 꿈’에서는 알천 역에는 중견배우 임혁이 맡았고 김유석이 맡은 김유신의 윗 세대로 등장합니다. 김춘추 또한 여기서는 소년~청년기로 등장합니다. 사실 판타지에 가까운 드라마라서 연대와 연령이 정확하지 않은 인물들이 많습니다. 비담은 극중에서처럼 진지왕대에 태어났다고 치면 비담의 난 쯤에는 60대 이상이 됩니다 염종과 비담의 관계 역시 둘 사이가 좋지 않았고 드라마 속에서는 비담보다 염종이 더 악당처럼 묘사되고 결국 비담 손에 죽는 간사한 캐릭터로 남았지만 실제로 염종은 끝까지 비담에게 충성하여 진압군과 싸우다 죽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대왕의 꿈’이 그나마 정사에 가깝게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결정적으로 주인공 선덕여왕과 관련해서도 드라마는 실제 역사 속 선덕여왕(덕만)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선덕여왕은 왕위를 오르는 순간부터 김춘추와 김유신 그리고 비담에 더해 구 주류였던 미실의 사람들까지 잘 활용해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실제론 즉위 후부터 대백제와의 전쟁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정치적 위기에 빠집니다. 때문에 그가 의욕적으로 제위 시 추진한 숭불정책도 혼란한 시대를 극복하는 데에 실패한 채 자신의 현실도피를 목적으로 행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습니다. 서영교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고대 동아시아 세계대전'(2015)에서 선덕여왕이 저지른 군사적 실정을 비판함과 동시에, 숭불정책으로 묘사되는 무리한 사찰 건립의 연속에 따른 국력의 탕진 등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선덕여왕의 숭불정책이 단순히 정치적 목적 외에도 여왕 개인의 현실도피성 정책이었음은 주보돈 교수 등도 지적하고 있으며, 황룡사 9층 목탑 사업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조차도 대규모 토목공사에 대한 당대인들의 희생과 불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측면은 '불교 문화의 발달'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명백히 왕조의 안정기라고 할 수 없는 불안한 시점에 대규모 토목공사를 반복한 것이 과연 당대를 살았던 민중들에게 좋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이도학 교수 역시 정치적 실패와 무능에도 불구하고 정변 최종 승리 세력인 김춘추 세력의 사후 옹호 때문에 '현명한 군주'로 추앙된 지도자라고 혹평하였습니다. 그리고 노태돈 교수는 선덕여왕의 군사적 실정에 더해 무리한 불사 등이 ‘비담의 난’의 원인이 되었다고 분석했습니다. 난은 비록 진압되었다고 하지만, 사찰을 짓고 탑을 올려서 나라의 결속과 왕권을 공고히 한다는 당초의 취지는 결국 무색해진 것입니다. 물론 그 난을 진압한 게 선덕여왕이 중용한 김춘추와 김유신이기는 했으나 역시 선덕여왕의 인사에 대한 평가라면 모를까, 숭불정책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식의 변호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입니다. 이처럼 백제에게 연이어 패하는 당시의 어려운 대외 상황 속에서 실질적인 대책이 전혀 제시되지 못하며 여왕 통치의 모순만을 드러내, 여왕의 즉위와 통치에 반대 입장을 견지해 왔던 귀족 세력에게 더욱 불만을 사는 한편 여왕 폐위의 명분만을 더욱 던져주는 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는 당시 상대등이었던 비담이 난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김춘추와 김유신이 정권의 실세로 부상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하지만 ‘비담의 난’과 관련해선 현대에 이르러 위기에 처한 선덕여왕과 그의 측근세력인 김춘추·김유신 연합이 반대 귀족들을 쳐내기 위해 일으킨 ‘궁정 쿠데타’라는 주장도 없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폐위된 왕의 손자’와 ‘멸망한 가야계’라는 각각의 핸디캡을 지녔던 김춘추·김유신 세력이 정권을 잡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처럼 위에서 구구절절이 열거했듯 드라마 '선덕여왕' 속 스토리는 작가의 창작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출생의 비밀을 안고 태어나 온갖 고생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고 어렵사리 공주로서의 신분을 회복한 후에는 미실이라는 거대한 정적을 상대로 고군분투하며 결국 여왕의 자리에 올라 선정을 베풀며 백제외의 전쟁에서도 승리하는 훌륭한 모습의 선덕여왕은 실제역사 속 선덕여왕의 행적과는 큰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드라마를 워낙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시청한 입장에서 이처럼 길게 드라마에 대한 역사적 허구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언어도단이 될 수 도 있겠으나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시청하는 입장과 이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하는 입장이 개인적으로 각각 일수도 있기에 그저 재미삼아 이야기해 본 것입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지난번 포스팅한 ‘해신’과 더불어 여러 드라마 전문 채널에서 지금도 반복해 재방송을 하고 있는 인기 작품입니다. 저 역시도 역사적 고증과는 별개로 드라마로서의 매력은 충분히 느끼고 있기도 합니다. 비록 10여 년 전 이긴 하지만 요즘 같은 다매체 시대에 선덕여왕이 기록한 40%라는 높은 평균 시청률은 웬만해선 다시 나오기 힘든 수치라는 점에서 드라마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비록 드라마 속에서 좋은 연기를 펼쳤던 일부 연기자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현재 활발한 활동을 못하고 있어 다소 안타깝기도 하지만 ‘선덕여왕’은 앞으로도 계속 TV를 통해 자주 접하게 될 인기 드라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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