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해신’은 통일신라 중반 장보고가 활약한 시대를 배경으로 다룬 KBS2 TV 사극입니다. 최인호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총 51부작으로 편성되었으며 2004년 11월 24일 부터 2005년 5월 26일까지 방영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제작된 HD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장보고 역에 최수종, 그 라이벌 염문 역으로 송일국, 그 외 주요 인물로 수애, 채시라가 출연했습니다. 장동건이 한때 주인공역으로 거론되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원래 염문 역할은 한재석이 맡기로 되어있었는데 하필 병역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한재석에서 송일국으로 교체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최수종이 등장한 사극 작품답게, 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 평균 시청률은 28.5%였고 마지막 회 시청률은 30.0%을 기록한 당시 성공한 드라마입니다. 이쯤 되면 드라마 태조 왕건-해신-대조영은 최수종 사극 트릴로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중 '해신'은 '태조 왕건' '대조영'과 달리 정통 사극이 아닌 트렌디 사극이었다고 해서, 정통사극을 선호하는 사극 매니아들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즉 ‘해신’은 현재 각 방송사 사극들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소위 트렌디 사극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해신’이 방영되던 시절은 트렌디 사극이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해신’ 자체가 트렌디 사극의 시초에 가까우니 당연하다면 당연한데, 그 때문에 2010년대의 트렌디 드라마들과 비교하면 이 드라마는 신라 하대의 복잡한 조정 상황이나 기록에 남아있는 장보고의 행적을 대부분 고증하는 등 정통 정치사극에 가까운 장면도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트렌디 사극 특유의 '로맨스 타령'도 있긴 하지만 이것도 훗날의 퓨전사극들과 다르게 가볍지 않고 꽤 진중한 분위기를 작중 내내 유지하며 비중도 조절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2019년 기준으로 다시 본다면 퓨전사극보다는 정통사극에 가까워보일지도 모르는 드라마기도 합니다.
드라마 ‘해신’은 ‘주몽’과 함께 2000년대 트렌디 사극에 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특히 ‘주몽’으로 훗날 톱스타에 오르는 송일국은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 드라마의 성공을 바탕으로 후에 MBC의 퓨전사극 ‘주몽’과 ‘바람의 나라’ 등에 주연으로 출연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해신’은 송일국이 톱 스타로 성장하게 되는 시발점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장보고의 숙적인 자미부인 역을 맡은 채시라의 열연도 돋보였습니다. 20대 리즈시절의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중년 채시라의 성숙미가 물씬 풍겼습니다.
또한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장보고의 장인이자 정신적 지주 역으로 호연을 보였던 박영규는 ‘해신’ 제작에 참여한 강병택 PD의 눈에 띄었고 이 인연으로 2014년 정도전에 이인임으로 캐스팅되기도 했습니다. 송일국 뿐만 아니라 박영규에게도 해신은 배우로서의 입지를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또한 악역 전문 배우인 정호근은 염문의 부하로 나와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줬는데, 극 중 장보고의 후원자였던 설평 역의 박영규와는 대립관계였지만 10년 후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박영규의 부하로 나왔습니다.
‘해신’은 주로 국가 규모의 거대한 사건이나 전쟁, 시대상 그 자체를 그린 '큰' 사극이 유행하던 와중 간만에 나온 한 인물의 개인적인 삶에 촛점을 맞춘 '작은' 사극으로, 아무래도 전자에서는 강세를 보이는 반면 후자에서는 다소 약세였던 KBS 사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큰 호응을 이끌어낸 작품으로서 높이 평가됩니다. 다만 드라마 후반부는 장보고가 거물로 성장하고 신라 하대 정치상황이 묘사되면서 전자 스타일에 가까워지기는 합니다.
또한 장보고의 인생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의외로 많지 않아 사료에 뚜렷이 기록이 남은 사실 외에는 작가의 창작으로 쓰여지게 되었습니다. 덕택에 사극에 고질적으로 따라붙는 '역사왜곡' 시비에서 자유로운 편이었습니다. 러브스토리가 첨가되었지만 냉혹한 현실과 결부시켜 일반적인 사랑타령과는 다른 전개를 꾸려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보면 장보고와 정화의 사랑 이야기가 극의 전개를 자주 끊어서 짜증나게 한다는 시청자들의 평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국내사극에서 주인공이 노예로 전락해 고난을 겪는다는 클리세의 시초격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 방영 당시만 해도 이는 신선한 전개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연개소문,’ ‘대조영’ 등등 너도나도 이 클리셰를 끌어다 쓰면서 극의 흐름 자체가 식상해졌고 한국 사극의 전체적인 퀄리티도 떨어지게 되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사실 장보고는 실제로도 귀족들에게서 천한 섬사람 취급을 받은 기록도 있으므로 천민 내지는 잘 쳐줘도 신라 변방의 한미한 가문 출신 정도로 보기 때문에, 소싯적에 노예체험을 잠깐 시켜도 역사적으로도 그리 억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이 클리셰가 일반화되면서 엄연히 금수저 물고 태어났을 사람들까지 자꾸 노예체험을 시키니까 극이 부자연스러워지는 것입니다.
당초 중국에서 성공해 한중일 사이 바다의 해상패권을 실제로 움켜쥐었던 장보고를 주인공으로 해서 지나친 과장왜곡도 우려됐으나 실제 드라마 속에선 비교적 담담하게 그려낸 편이고 오리지널 스토리의 완성도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캐릭터들의 개성이나 기-승-전-결이 뚜렷한 드라마였기 때문에 팬층도 많았으며, ‘태조 왕건’에 이어 연타석 홈런을 친 최수종은 명실공히 사극의 킹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진정한 의미는 KBS 계열 사극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데에 있다는 것이 평론가들의 평입니다. 앞서 서술했듯 주로 시대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인물 또한 '그 일부'로서 그려내는 경향이 짙던 KBS의 사극은, 본작을 기점으로 시대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독립된 개체로서의 인물 그 자체를 소소한 부분까지 그려내게 되어 이후 소위 '트렌디 사극'으로 이어지는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는 후대의 KBS 트렌디 사극의 시발점이자 분기점이 된 작품입니다. 이후 KBS는 기존 정통사극의 스토리 텔링에 (본작으로부터 이어지는) 트렌디 사극의 캐릭터 메이킹을 접목하여 대하드라마 ‘대조영’을 제작하게 됩니다. 또 ‘해신’에 이어 MBC의 ‘주몽’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방송 3사 모두가 트렌디 사극 제작에 집중하게 됩니다.
더불어 드라마 OST도 굉장히 좋은 평가와 인기를 얻었습니다. 김범수의 ‘니가 날떠나,’ 이현섭의 ‘기도’ 등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필호가 주도한 드라마 배경음악도 웅장한 분위기 였는데 이 당시까지 무명이었던 이필호는 음악감독으로써는 처음 맡았던 ‘해신’의 성공으로 크게 유명해지고, 이후 여러 드라마 OST의 음악감독을 맡게 되면서 대한민국 드라마 OST계의 거장으로 떠올랐습니다.
참고로 결말이 참 충격적. 최종보스 보정의 극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드라마 방영 내내 주인공이었던 장보고가 염장(염문)에게 암살되며 염장에게 암살지령을 내린 김양(배수빈 역)이 모든 권력을 쥐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 속 김양은 정치적 라이벌이라 할 수 있었던 장보고를 제거한 뒤 자신의 딸을 왕후로 올리고 이후 왕위를 이은 외손자 때까지 최고의 권력자로서 호가호위를 하게 됩니다. 장보고를 암살한 염장 역시 실존 인물이긴 한데 그 행적이 거의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때문에 극 중에 묘사된 염장(염문)의 행보는 모두 창작입니다.
서두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원래 송일국이 연기한 염장(염문) 역은 원래 한재석이 맡기로 되어 있어 촬영도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재석이 송승헌, 장혁과 함께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면서 자의반 타의반 하차하게 되고, 결국 그 자리는 전작 ‘애정의 조건’에 함께 출연한 채시라의 추천으로 송일국이 합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송일국의 캐스팅이 결정된 후 송일국의 어머니인 김을동이 채시라에게 답례의 의미로 간장과 고추장을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드라마 속에서 초반과 후반부는 신라가 주 무대였지만, 중반부는 장보고가 실제로 청년기에 당나라 군대에서 일했던 경력을 살려 신라가 아닌 당나라가 무대였습니다. 실제로 중국 현지에서 촬영한 분량들도 상당 부분 존재합니다. 대부분의 다른 사극들과 달리 중국인 역할 배우들은 실제로 중국어로 연기를 하고, 한국인 역할 배우들도 중국어를 써야할 경우 최수종이나 박영규 같은 주요 등장인물들까지 예외 없이 전부 중국어 대사를 하고 한국어 자막을 내보내서 더욱 몰입감이 좋았습니다.
장보고라는 역사 속 인물과 관련해서는 그가 현대에 들어 부각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모 대학 교수는 3공화국 시절 삼성그룹이 사카린 밀수 사건 이후 의도적으로 장보고를 띄웠다는 설을 제기했습니다. 애초에 삼성이 당시 집권 민주공화당의 정치 자금을 대기 위해 중앙정보부와 손잡고 했던 밀수가 정권에 의해 뒤통수를 맞자 해상 무역과 비운의 기업인 이미지가 있는 장보고를 주목하여 장보고 기념사업에 뛰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즉 장보고는 삼성이 의도적으로 거물로 포장시킨 인물이라는 주장입니다.
여기에 더해 근거가 불확실한 여담이지만 과거 3공화국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민족적 영웅을 지정(?)해 국민들의 관심을 유도할 목적으로 국가적 사업을 추진했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 민족적 영웅의 최종 후보에 오른 두 인물이 바로 이순신 장군과 장보고였는데 결국 박 전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을 선택했고 그 결과물중 하나가 아산 현충사라는 것입니다. 또한 당시 모든 국민(초등)학교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즉 장보고는 민족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이순신 장군과 거의 동급으로 박 전 대통령이 여길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후 장보고는 삼성그룹 등에 의해 이순신 장군 만큼은 아니지만 여러 방법을 통해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들 이야기가 과연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그런 이야기도 있다 정도로 여기면 적당할 것으로 생각 됩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주장들과는 다르게 장보고는 이미 당대 ~ 고려 시대 때 나름 영웅으로 알려진 인물로 봐야 합니다. 당나라의 시인 두목은 자신의 문집 ‘번천문집’ 중에서 따로 장보고와 정연에 대한 기록을 남겼고, ‘신당서’ 편찬자 중 한 명인 송기 역시 당나라에는 곽자의와 장보고가 있었다는 식으로 자타공인 중국의 충신이자 명장인 곽자의와 비교하면서 높이 평가했습니다. 거기다 김부식은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서 김유신을 평하는 과정에서 '을지문덕의 지략과 장보고의 용기도 드높고 뛰어나지만 기록의 부족으로 중국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나 김유신은 그렇지 않았다'는 식으로 기록을 했으며, ‘장보고 열전’은 일종의 '반역자 열전'인 열전 9권이 아니라 '명장 열전'인 열전 4권에 실었습니다. 즉 장보고는 현대에 와서 띄워진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아주 훌륭한 영웅으로 알려져 있었던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암튼 드라마 ‘해신’은 장보고라는 인물의 대중적 관심을 높이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출연배우들의 향후 입지를 높이는 데에도 크게 공헌을 한 인기 드라마였습니다. 지금도 여러 드라마 전문 채널들에서 끊임없이 재방송 되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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