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이순신 (不滅의 李舜臣)’은 KBS 1TV에서 2004년 9월 4일부터 2005년 8월 28일까지 충무공 이순신의 삶을 소재로 하여 방영한 대하드라마입니다. 원래 KBS는 1999년부터 후삼국 시대(태조 왕건) 부터 공민왕 시대까지 다루는 고려사 10년 시리즈를 계획했으나, 이 계획이 정연주 KBS 사장이 취임한 후 취소되면서 기획된 드라마입니다. 극 초반에는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였으나, 임진왜란 내용의 방송 시기 당시 일본의 독도 논란으로 인해 옥포해전 방영분에서 33.1%, 평균 시청률은 22%를, 마지막 회인 104회에서는 31%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시청률 면에서 선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초·중반의 지지부진한 전개로 시청률 하락과 상승이 반복되었으며 선조 역의 배우 조민기 하차사건, 원균 맹장론, 거북선 침몰, 역적가문, 겁쟁이 이순신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에 대한 정사 외 설정, 고증 등의 많은 논란도 낳았습니다.
특이할 점으로 2004년 무렵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의 문제로 중국에 반일 감정이 고조됐을 때, 이 드라마의 1화 ~ 4화의 분량을 인터넷을 통해 보고 자국 방송국에서 수입해줬으면 하는 중국 쪽 네티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화려하면서도 자주 등장하는 해전씬들에 혹한 서양 쪽의 팬들도 있었습니다. 워낙 이순신 장군의 실제 인생 역정이 드라마틱한지라 시나리오상의 논란이나 이런저런 고증 오류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 못하던 외국인들에게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드라마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대부분 드라마가 충무공의 공적들을 한낱 신화로, 역사 왜곡을 통해 폄하하고 있다는 주장들이기 때문에, 드라마의 고증오류를 비판할수록 이순신 제독 본연의 위대함이 꿰뚫고 튀어나오는 상황적 아이어니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원래 이순신 역엔 최민수, 송일국, 정준호 등이 물망에 올랐다가 송일국이 일차 캐스팅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당시 무명 배우였던 김명민이 이순신 역으로 최종 낙점되었고 이 선택이 김명민이라는 노력파·연기파 배우를 음지에서 끌어올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됩니다. 이 작품을 계기로 김명민이 방송사 연기대상을 받고 서서히 뜨기 시작했고 ‘하얀거탑’과 ‘베토벤 바이러스’ 등으로 ‘연기 본좌’의 반열에 올라서게 됩니다. 아울러, 원균(최재성 분) 역에는 김상중 박상민 등이, 미진(김규리 분) 역에는 김태연 김보경 등이, 이순신의 아내 방연화(최유정 분) 역에는 이민영이 한때 거론된 바 있습니다. 드라마의 총 제작비는 350억 ~ 400억 수준으로 이 정도의 제작비라면 중반 이후 30%는 꾸준히 유지했어야 제작비를 만회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데 몇몇 전투나 마지막회를 제외하곤 30%를 넘기지 못해 방송사 입장에선 아쉬움이 남기도 했습니다.
드라마와 관련해 무엇보다도 가장 문제시된 것은 바로 원균에 대한 미화라 할 수 있습니다. 원작 소설(‘불멸’ 작가 김탁환)부터 그랬지만, 원균과 이순신의 관계가 친한 형님과 아우로 그려지고 둘의 우정이 각별하다는 묘사는 길이길이 욕먹을 단초를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제작진 관련자에 따르면 처음 역사 고증을 위해 초빙한 스파이가 하필 ‘원균 맹장론’을 내세우는 사람이라 그렇게 된 거라고 하며, 이후 제대로 된 사학자들이 무슨 짓 하는지 알기나 하냐며 마구 까대자 뒤늦게 수정해 나갔다고 합니다. 덕택에 그 이전까지 호방(?)하고 털털(??)하던 원균이 이순신이 전라 좌수사로 임명된 이후 본격적인 찌질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임진왜란 개전 이후에는 선조급의 악역이 되었지만 그의 장렬한 최후를 보면 알 수 있듯 초반의 설정을 무시할 수는 없어서 결국 역사 왜곡 드라마의 대표적인 예시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는 원균 역을 맡은 배우 최재성의 포스도 한 몫했는데, 배우의 연기력이 좋은 건 문제가 없지만 드라마가 ‘원균 맹장설’을 기초로 스타트를 끊었기 때문에 그에 맞춰 최재성이라는 네임드 배우를 캐스팅해 주인공급으로 띄워줬으며, 배우 본인도 ‘원균 맹장설’에 영향을 받아 연기했기 때문에 원균이 멋있게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더욱 불을 붙인 것은 KBS가 해명이랍시고 철저히 ‘조선왕조실록’에 기반해 집필한다는 변명을 한 것입니다. 실록을 조금만 제대로 읽어봤으면 원균이란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모를 수가 없는데 누가 봐도 작가 김탁환의 헛소리를 영상화해놓고 이런 변명을 하고 앉았으니 욕을 먹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드라마에서 채택했던 ‘이순신 자살설’ 등을 시청자들이 진짜인 걸로 받아들이는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작품이 종영되고 방송된 특별 편에서 이순신 역을 맡았던 김명민을 인터뷰했는데, 이 때 받았던 질문 가운데 '이순신 장군을 만난다면 하고 싶은 말은?' 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김명민의 대답은 '왜 그런 선택을 하셨는지 묻고 싶다.' 라는 것. 즉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대본을 썼든 연기를 한 배우 본인은 이순신이 자살을 한 것으로 이해했다는 말입니다.
그 밖에 방영 당시의 시대상을 감안해야겠지만 나레이션이 상당히 민족주의적이라 듣는 이에 따라서는 다소 거북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순신의 승전에 대해 설명하면서 '장쾌한 대첩' 이라고 평한 것이나 한산도 해전이 벌어질 무렵 권준이 와키자카의 진영을 방문하여 16세기 당시에는 있지도 않았던 말인 '조선 민족' 운운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신진 사극 작가들이 투입되고 이전의 KBS 정통 대하사극들과는 좀 궤를 달리하는 면이 많이 보여서, 익숙하지 않은 요소가 기존의 시청자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한 면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여러 문제점들이 있더라도 역사적인 고증 오류들을 제외하면 명작이라는 호평이 많았던 작품입니다. 일단 중반으로 들어서며 빨라진 스토리의 전개를 들 수 있습니다. 이는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의 평에서도 종종 언급되는데, 상대적으로 KBS의 정통 대하드라마에 비해서는 전개가 빠르고 감정선의 굴곡이 큰 편입니다. 이는 트렌디한 사극들을 비롯한 비교적 최근 사극의 경향이며 이 드라마도 새로운 사극 시청자 층의 입맛에 맞는 편이었습니다. 아울러 당시 이순신 장군으로 캐스팅된 김명민이 탁월한 연기력을 보여주었고 그 덕분에 많은 젊은 층들이 사극에 관심을 갖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정통 사극으로는 드물게 여성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CG 활용 역시 많이 칭찬받는 부분인데 요즘 보자면 상당히 어색한 CG이지만 당시 한국 드라마에서 이 정도로 CG를 적극 활용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CG는 해상 전투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 총통을 발사하거나 수많은 전선들을 표현할 때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육지에서의 전투도 CG를 많이 활용했습니다. 다만 방영 도중에 제작비 수급 문제로 CG의 활용과 촬영 규모는 초반과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고 중반부에는 조금 부실한 편입니다.
또한 한국 사극 매니아들 사이에서 전투씬 볼만한 사극 추천해달라면 높은 확률로 추천받는 사극이기도 합니다. 해상전의 경우 동일 소재였던 MBC ‘조선왕조 오백년’ 임진왜란 편의 미니어쳐 전투신과 달리 쉐이키 캠과 CG를 적극 활용한 전투신을 보여주었는데 퀄리티가 나쁘지 않았다는 평입니다. 함포 사격 때 일부러 고증을 무시하면서까지 대포알이 폭발하도록 표현하여 격렬한 전투를 묘사하였습니다. 적어도 전투씬의 호쾌함과 박진감으로만 따진다면, 한국 사극 중에서는 역대급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 문제점은 해상전을 지휘하는 함장과 제독 등의 지휘 구호와 지시가 대부분 "발포하라"와 "사격하라"거나 "힘을 내라" 등 고무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배의 선회 각도나, 포격 지점, 닻과 노, 돛의 상세한 조작에 대한 지시 등이 없으며 총대장이자 제독격인 이순신조차도 각 함선에 대한 지시가 부재하거나 모자랐습니다.
캐릭터성도 상당히 칭찬해줄 만하다는 평입니다. 녹둔도 편의 수하들의 캐릭터 빌드업이라든지, 고니시 유키나가, 그리고 원균마저도 상당히 입체적인 캐릭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특히 원균은 까이기도 하지만, 맹장설을 유지하면서도 찌질함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꽤나 개연성 있는 캐릭터 체인지를 주려고 노력한 모습도 보였습니다. 물론 애당초 맹장설을 토대로 캐릭터를 짠 것은 엄연히 왜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그러나 원균의 경우는 실존 인물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평면적인 졸장이였기에, 현실감 넘치는(?) 전개를 위해 현실을 왜곡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건 이순신 장군을 다루는 대중 매체들이 공통적으로 처하는 문제점인데, 현실적이고 재미있는 캐릭터를 위해 이순신 장군은 너프하고 원균은 상향해주는 경우가 많은 편입니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을 너프시킨게 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 작가의 특징인지 몰라도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묘사 및 극적 긴장감이 탁월한 것도 장점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녹둔도 전투에서 조선군 진지가 여진족에게 함락되는 편에서 방어 측의 처절함에 대한 묘사는 시청자들에게 '있었을법한 현장감'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 장점은 칠천량 해전에서 명량 해전 종료 때까지의 편에서 극대화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영상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OST도 한 몫 했습니다. 굳이 시대를 감안하지 않아도 음악의 퀄리티는 대단히 훌륭한 편입니다.
또한 예고편의 연출 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옥포 해전, 명량 해전 등의 해전이나 진주 대첩 등 중요한 지상전의 예고편에는 예고 영상과 함께 전투에 대한 의미를 담은 시적인 문구를 집어 넣는데, 특유의 함축성과 배경 음악이 잘 어울리는 편입니다. 명량 해전과 노량 해전에서는 원작 중 하나인 ‘칼의 노래’에서 그 문구를 따오기도 했습니다. 명량해전 예고에서는 '오라, 나의 적이여, 물살 우는 울돌목으로'라는 부분이 있고, 노량 해전에서는 '오라, 아득한 적이여,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거기에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지만 배경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조선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일본과 명나라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서술한 점은 높이 평가할만합니다. 특히 조선 사극 역사상 최초로 오다 노부나가가 등장했다는 점은 상당히 주목할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오다 노부나가 역에는 ‘야인시대’에서 김영태 역을 담당한 바 있는 배우 박영록이 연기했습니다. 참고로 같은 시대를 다룬 ‘징비록’에선 역시 국내 드라마 최초로 마에다 토시이에가 등장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측근이자 오랜 친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징비록’이 일본 NHK와 협업으로 제작되다보니 NHK 대하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마에다 토시이에의 비중이 ‘징비록’에서 높아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여기에 더해 무엇보다도, 전투씬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아주 일품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작중 배경 자체가 임진왜란인데다가, 조선의 암담하기 그지없는 내부 상황, 적에게 유린당하는 백성들, 그런 적과 맞서 싸우기 위한 장수들의 고뇌와 준비조차 여의치 않은 암울한 상황, 그에 반해 강대하기 그지없는 적의 모습 등을 묘사하는데 상당히 공을 들였기 때문에, 적과 맞서 싸워 승리하는 전투씬은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줍니다.
이처럼 여러 부분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작품임에도 사극 매니아들 사이에서 정통 대하드라마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역시 극 초반 큰 줄기를 이루는 ‘원균 맹장설’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기획단계에서 ‘원균 맹장론’을 신봉하는 사학자에게 고증을 맡기는 결정적 실수를 범하지만 않았다면 훨씬 짜임새 있는 캐릭터성을 보여 줄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입니다. 마지막으로 저 개인의견이지만, 본 작이 거둔 최대의 성과는 현재 ‘연기 본좌’라는 어마무시한 타이틀을 달고 있는 명배우 김명민의 발견이 아닐까 합니다. S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으나 단역이나 조연을 전전하며 빛을 보지 못하다 미국으로의 이민까지 생각했던 그에게 마지막 기회로 다가온 ‘불멸의 이순신’은 결국 그롤 오늘의 명품 배우의 반열에 올려놓는 일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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