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둔 가운데, 정국의 중심 현안으로 떠오른 이른바 '민주당원 포털 댓글 조작 사건', 즉 네이버 등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문재인 정부 비방 댓글을 무더기 추천하는 방식으로 여론 조작을 한 민주당원 3명이 검찰에 구속 송치됐습니다. 이 들 중 주모자 김모(48) 씨는 '드루킹'이란 이름으로 블로그·SNS 활동을 하던 인물로, 온라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5일 경찰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지난 13일 포털사이트 등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성격의 댓글을 추천해 여론을 조작하려 한 혐의(업무방해)로 구속된 김씨는 네이버에서 시사 블로그 '드루킹의 자료창고'를 운영하며 주식과 경제 분야와 관련해 인지도를 높여왔다고 합니다.
김씨는 2010년 초반 무렵부터 한 커뮤니티에서 '뽀띠'라는 필명으로 경제 관련 글을 써오다 필명을 ‘드루킹’으로 바꾸고 본격 블로그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09년과 2010년 연속 시사·인문·경제 분야 '파워블로그'로 선정됐습니다. 그는 또한 2010년부터 지난 2월까지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느릅나무 출판사 공동대표를 역임했습니다. 댓글 여론을 조작한 다른 민주당원 2명도 이 출판사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김씨는 인터넷 카페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의 매니저'로도 활동했습니다. 경공모는 2014년 소액주주 운동을 목표로 카페로 회원 수는 2500여명입니다. 경공모는 국내·외 유명 인사들을 초청해 정기적으로 강연을 연 것으로 전해집니다. 지난해에는 블로그와 같은 제목으로 팟캐스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그가 운영했던 블로그와 유튜브에서는 글과 동영상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번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해 주목할 점은, 표면적으로 들어난 걸로는 현 정부를 비판한듯하지만 사실 김 씨는 이번 사건이 들통나기 전까지는 실명으로 올렸던 과거 글들에서 열성적인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의 면모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15일 현재 그의 블로그는 폐쇄된 상태이지만, 그가 과거 트위터에 남긴 글을 보면, 그는 작년 대선 직후 "득표율을 보니 하루 쉴 틈도 없이 곧바로 달려야 할 것 같다. 문재인 정권의 사활은 내년 지방선거의 승부로 미뤄졌다"며 "TK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승리해야만 문재인 정권이 하고싶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대선 기간 중에도 "문재인 캠프에서 느껴지는 여유. 승리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는 여유로운 느낌이 정말 좋다"며 "문재인은 여유롭고도 강한 후보가 되었고, 우리는 넉넉하게 승리할 것"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특히 대선 기간 중에는 상대 후보에 대한 공격도 있었는데 그는 "2012년 10월 23일 제가 글로 '안철수는 MB 아바타 같은 존재'라고 처음 언급했었다"며 "토론회에서 안철수가 한 말은 제 블로그를 알고 한 말이었군요"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그의 트위터에는 안희정·이재명 등 당시 문 대통령의 당내 경쟁자들을 견제하는 취지의 게시물이 주로 올라왔고,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의 '삼성 X파일' 관련 문 대통령 비판 기사에 대한 반박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경찰에 따르면 김씨와 우모(32)씨, 양모(35)씨 등 민주당원 3명은 지난 1월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과 관련된 기사에 정부 비판 댓글이 게재되면 ‘공감' 혹은 ’비공감'을 대량 클릭, 특정 댓글이 네티즌들의 관심을 받도록 유도했습니다. 여러 댓글이나 추천 등을 한꺼번에 자동적으로 올릴 수 있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동원해 인터넷 여론을 조작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경찰조사에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테스트하기 위해 보수진영에서 정부 비판 댓글에 ‘공감'을 클릭한 것처럼 보이도록 한 의도가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범행 동기에 대해 “보수 세력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댓글 비방을 많이 한다고 하기에 시험해 봤고, (정체가) 드러나면 곤란하니까 이왕 할 거면 보수 세력이 한 거처럼 하려고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합니다.
한편 김 씨 등은 민주당 핵심인사와 텔레그램 메신저로 접촉했다고 진술해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일각에서 이들이 접촉했다는 핵심인사가 김경수 민주당 의원이자 경남지사 후보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김 의원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 당시 연설기록비서관을 지냈고, 퇴임 후 봉하마을 시절에도 측근에서 수행하며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불린 인물입니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핵심 측근이기도 합니다. 민주당은 지난 3일, 김 의원을 6.13 경남지사 후보로 공천한다는 방침을 확정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자신과 관련한 논란이 일자 김 의원은 지난 14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나와 관련해서 전혀 사실이 아닌 내용이 무책임하게 보도된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면서 “충분히 확인지 않고 보도한 것은 명백히 악의적인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김씨가)자발적으로 돕겠다고 하더니 뒤늦게 무리한 대가를 요구했다”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반감을 품고 불법적으로 ‘매크로’를 사용해 악의적으로 정부를 비난한 것이 사태의 본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 의원은 또 “진상을 파헤쳐야 할 시점에 사건과 무관한 나에 대해 허위 내용이 흘러나오고 충분히 확인 없이 보도한 것은 악의적인 명예훼손”이라며 “특히 수백 건의 문자를 주고 받았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른 악의적 보도이므로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부연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경기지사 예비후보 역시 SNS를 통해 김씨와 악연을 설명하며 “‘청탁을 안 들어줘 보복한 것 같다’는 김 후보(의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동감을 표했습니다. 이 예비후보도 ‘드루킹’ 김씨와 논란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김씨는 2016년 블로그에 ‘이재명은 동교동의 히든카드인가?-2007년 정동영의 재림’이라는 글을 통해 이 예비후보를 비판했고, 이 예비후보는 허위사실 유포로 고발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예비후보는 페북 글에서 “나도 작년 이 사람으로부터 ‘동교동계 세작’이라는 음해공격을 받았는데 그 내용이 황당무계하고 근거 없는 것이었다”며 “하지만 그의 큰 영향력 때문에 나는 졸지에 ‘동교동 즉 분당한 구민주계 정치세력이 내분을 목적으로 민주당에 심어둔 간첩’이 되고 말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댓글조작과 허위 글에 기초한 정치적 영향력을 과신하고 자신이 선택한 정치인(정치집단)을 위해 옹호용 또는 상대방 공격용 댓글조작이나 날조 글을 써왔다”며 “‘일방적으로 도움을 준 드루킹이 사후청탁을 했으나 들어주지 않자 한 보복’이라는 김 의원의 주장에 100% 공감 가는 이유”라고 덧붙였습니다.
'원조' 친노 인사로 불리는 이상호 전문건설공제조합 상임감사도 "(드루킹은) 온갖 '카더라' 정보를 짜집기해 사실을 왜곡하고 나를 음해하는 글들을 게시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걸 사실이라 믿고 나에 대해 댓글로 욕을 하게 만든 자"라며 자신이 당한 경험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이 감사는 노사모 카페에서 '미키루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유명세를 얻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법적인 대응을 준비하다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루다 잠시 잊어버린 아이디인데, 중요한 선거를 앞둔 이 시점에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러 자유한국당에게 공격 빌미를 제공한 자가 그 '드루킹'이란 걸 알게 되니 머리에서 갑자기 스팀(열)이 올라오면서 뚜껑이 열린다"며 "컴퓨터와 모바일이 좋긴 한데 이런 변태스러운 인간들이 서식하는 인터넷이 가끔은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고 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자당 당원들의 여론 조작 시도에 대해 엄중히 선을 긋고 나섰지만, 김 의원의 연루 부분에 대해서는 본인 해명이 충분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전날 오후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기계식(매크로) 포털 댓글 작업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조작했던 사람들이 적발되었고 그 중 일부가 민주당원이라고 한다"며 "당적은 가졌을지 모르나 그 행태는 전혀 민주당원답지 않다. 조속히 당 차원의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엄중히 대응해 가겠다"고 했습니다.
추 대표는 "그들은 포털과 SNS에서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고 대통령과 당 대표는 물론 다수의 민주당 정치인들에 대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비속어와 편협한 논리로 모욕하고 공격하기도 했다"며 "많은 당원들께서 그 동기와 배후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당과 당원의 명예와 신뢰를 떨어뜨리는 그들의 범죄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추 대표가 글을 작성한 시점은 김 의원의 실명까지는 아니지만 '여당 실세 의원 연루설'이 보도된 다음이기는 했으나, 추 대표는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 야 3당은 모두 김 의원의 검찰 출두 등을 요구하며 공세를 폈습니다.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 현역의원이 문 대통령의 복심 김경수 의원이었다. 의혹의 정점에 대통령의 최측근이 자리하고 있다"며 "청와대가 아무리 부인해도 국민 정서상 이제 정권 차원의 게이트가 돼버렸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당은 "댓글 공장을 차려놓고 조직적으로 댓글을 가공해 인터넷 포털을 점령, 여론을 조작하려 했던 사건의 추악한 근원을 샅샅이 색출하고 더러운 공작금의 저수지를 밝혀내야 한다"며 "김 의원인지 그 윗선인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범죄의 몸통을 밝혀내는 것이 사태 해결의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한국당은 전날 밤 김 의원의 회견에 대해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검찰에 수사 지침을 내리는 것"이라고 규정하며 "지금 이 순간 가장 우려되는 것은 권력이 개입된 조직적 증거 인멸과 수사 방해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즉시 김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하고 강제수사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윤석렬 중앙지검장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나?"라고 했습니다.
바른미래당에서도 이와 비슷한 취지에서 특검 도입을 촉구했습니다. 권성주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지난 대선 때 수많은 그룹과 팀들에 의해 문재인 후보를 위한 대대적인 댓글 조작이 있었고 그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음을 (김 의원이) 자백했다. 텔레그램 대화를 통해 댓글 조작자들에게 감사 표시를 했고, 그 대가로 인사 청탁을 해왔음을 자백했다. 청탁을 거절하자 현 정부에 대한 비판 댓글로 협박을 해왔다며 조작 세력의 존재와 대선 당시의 활동 사실을 거듭 자백했다"며 "(이는) 특검이 불가피한 이유"라고 주장했습니다.
민주평화당 역시 대변인 논평을 통해 "민주당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태도를 버리고 이 사건 진상규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평화당 대변인인 바른미래당 장정숙 의원은 "이미 사정당국과 언론을 통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유력 광역단체장 후보의 이름이 거론돼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의혹 당사자로 거론된 김 의원은 한 치의 거짓말이 정권을 파국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 숨김없이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민주당 역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우를 범하지 말고 관련자들이 그동안 당 내에서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소상히 밝혀내 다시는 이런 행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습니다.
한편 '드루킹'의 트위터에는 이번 사태를 예고하는 듯한 내용도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 씨는 지난해 6월초 ‘연합뉴스’의 '청소년들의 뉴스가치 잣대는?…댓글을 가장 신뢰해요'라는 기사를 링크하면서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댓글이 왜 중요한지 이 기사를 보면 알 수 있죠. 그 중요성을 제일 먼저 깨달았던 건 MB였죠. 그래서 댓글부대를 만들었던 겁니다."
트위터에는 그가 텔레그램으로 소통한 대상으로 지목된 김경수 의원 관련 내용도 2~3건 정도 있습니다. 그는 작년 4월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가 군 화력훈련을 참관했다는 보도를 링크하며 "문 후보하고 김경수 의원 환하게 웃는 사진이 보기 좋아서"라는 글과 함께 웃는 표정의 이모티콘을 올렸습니다. 같은 해 1월 19일에는 김 의원이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의 한국방송(KBS) 출연 정지 논란에 대해 '또다시 블랙리스트 부활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자 이를 그대로 리트윗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위에서도 간략히 설명되었듯이 김 의원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부터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여론의 관심을 받아 왔고, 특히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는 상당한 유명 인사였습니다. 2011년 말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친문(친문재인)' 핵심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김 의원이 여기저기 논란을 일으켜 온 파워블로거 출신 인사에게 심지어 '여론 조작'을 직접 촉탁했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인사인데다, 특히나 그의 언행은 이미 5~6년 전부터 본인도 아닌 '문재인의 뜻'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입니다.
한편 김 씨가 김 의원 등 여권 실세들에게 했던 요구는 '일본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달라'는 것이었다는 보도가 나와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15일 ‘한겨레’에 따르면,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김 씨는 김 의원을 정권 실세로 판단해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도 "김 씨가 김 의원에게 자신이 아닌 제3자를 오사카 총영사로 임명해 달라는 청탁을 한 것으로 안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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