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이후 두 번째이자 한국에서 개최된 첫 번째 동계 올림픽인 2018년 평창올림픽이 어느새 중반을 넘어 종반으로 접어든 가운데,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종목(팀)가운데 하나인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이 모든 일정을 마쳤습니다. 남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이번 올림픽에서 분전했으나 5전 전패로 대회를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첫 승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혼신을 다해 함께 뛴 그들의 여정은 박수를 받기 충분했습니다. 새러 머리(캐나다) 총감독이 이끈 남북단일팀은 20일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스웨덴과의 7, 8위전에 나섰지만 1대6으로 패했습니다. 한수진이 골을 넣는 등 분투했지만 전세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단일팀은 B조 조별리그 3경기와 5~8위 순위 결정전 2경기 등 5경기에서 모두 패배,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대회전까지 한국의 세계랭킹은 22위, 북한은 25위였습니다.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한국은 북한과 손을 잡고 기적을 꿈꿨으나 랭킹이 말해주듯 세계의 벽은 높았습니다. 스웨덴은 5위에 자리한 강호. 스위스(6위)와 일본(9위)도 단일팀이 상대하기엔 버거웠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단일팀은 5경기를 치르며 2점을 뽑고, 28점을 내줬습니다. 단일팀은 첫 두 경기에서 대패, 불안하게 출발했습니다. 조별리그 1, 2차전인 스위스전과 스웨덴전에서 연거푸 0대8로 완패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경기력이 살아났습니다. 일본전(1대4 패)에선 한국계 혼혈 선수인 랜디 희수 그리핀이 한국의 올림픽 무대 첫 골을 터뜨렸고, 다른 선수들은 몸을 사리지 않는 투지로 상대를 괴롭혔습니다. 5~8위 순위 결정전 1라운드에선 다시 만난 스위스를 상대로 분전했습니다. 비록 0대2로 졌지만 앞선 경기 때보다 한결 나아진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스웨덴과의 최종전에선 0대1로 뒤진 1피리어드 6분 21초 때 한수진이 대회 두 번째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이는 올림픽 무대에서 아시아이외 국가를 상대로 넣은 첫 골이기도 했습니다. 스웨덴을 상대로 골을 터트린 한수진은 "지난 1년 넘게 연습하면서 코치님에게 많이 혼나기도 했다"며 "미국 전훈 중에 기록한 득점 중 10개는 7개는 이런 골이었다. 이번 대회에 그런 패턴이 나오지 않았지만 마지막에 나와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득점 순간에 대해서도 "내가 잘하기보단 5명의 패턴플레이가 잘 맞아 골을 넣었다. 1년 넘게 5명이 맞춰온 파워플레이였다. 그 패턴이 나오면 골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나와 다행"이라며 웃었습니다. 이날 이연정이 게임 엔트리에 포함되면서 골리 포지션을 제외하면 한국 선수들은 모두 평창올림픽 무대에 섰습니다. 단일팀 구성이 결정된 후 기존의 우리 선수들 중 게임에 뛰지 못하는 선수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되었지만 비록 잠깐이라도 선수 모두가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된 것입니다. 또한 단일팀에 합류한 북한 선수 12명 중 게임 엔트리에 한 번이라도 이름을 올린 선수는 주축 공격수 정수현, 김은향, 개막식 때 한국의 원윤종(봅슬레이)과 공동 기수 역할을 맡았던 황충금, 진옥, 김향미 등 모두 5명입니다. 단일팀의 마지막 경기가 펼쳐진 20일 강릉 관동하키센터 아이스링크엔 이미 남과 북의 경계선은 없었습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한수진이 스웨덴을 상대로 득점하자 북한 선수들도 소리치며 기뻐했습니다. 관중석에는 한반도기와 “코리아 파이팅” 응원이 넘실거렸습니다. 누구도 스웨덴에 1-6으로 대패했다고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이라 할 수 있는 새러 머리 총감독조차 “선수들이 자랑스러워서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여자 아이스하키 ‘코리아팀’이 누구도 가보지 못했던 27일간의 동행을 마감했습니다. 이날 스웨덴과의 7·8위 결정전까지 평창동계올림픽 전적은 5전 전패(2득점 28실점). 성적은 초라해도 스포츠가 휴전선에 흐르는 긴장을 녹일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동·하계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남북 단일팀 구성이 결정된 것은 지난달 22일이었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우리 선수 23명에 북한 선수 12명이 가세해 총 35명으로 구성된 남북 단일팀을 승인했습니다. ‘정치적’ 결정에 북한 선수들을 불청객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여기엔 저 자신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반전은 빨리 찾아왔습니다.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 모인 남북 선수들은 빠르게 하나가 됐습니다. 라커룸을 함께 쓰고 함께 훈련을 하면서 급속도로 친해졌습니다. 우리 선수가 북한 선수의 생일 파티를 열어줬다는 소식에 우려의 시선도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미국 입양아 출신 박윤정(마리사 브랜트)과 이진규(그레이스 리)는 북한 김은향과 어깨동무하고 셀카도 찍었습니다. 머리 총감독은 “한국 선수들이 북한 선수들에게 K팝 댄스를 가르쳐주더라”라며 웃었습니다. 북한의 황충금은 개회식 남북 공동 기수로 등장했습니다. 남북의 에이스인 박종아와 정수현도 김연아에게 성화를 넘기며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마침내 경기에 나선 ‘코리아팀’은 B조 조별리그에서 강호들과 만났습니다. 몸을 날리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서 싸웠지만 실력 차까지 극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스위스와 스웨덴에 연달아 0-8로 무너졌습니다. 그래도 북한 선수를 탓하는 한국 선수는 없었습니다. 지난 14일에는 랜디 희수 그리핀이 일본전에서 역사적인 올림픽 첫 골을 넣었습니다. 두 번째 골의 주인공은 스웨덴 전의 한수진 선수였습니다. 마지막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이 링크 가운데 서서 팬들의 박수를 받고 있는 가운데, 이를 지켜보던 세라 머리 총감독의 눈시울도 붉어졌습니다. 캐나다의 아이스하키 영웅 앤디 머리의 딸이기도 한 머리 총감독은 지난 2014년 26살의 나이로 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당초 어린나이에 감독으로 취임한 그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특유의 친화력과 전문적 실력으로 대표팀을 잘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올림픽 개막을 보름 앞두고 단일팀이 구성됐습니다. 주변의 우려가 적지 않았지만 남과 북의 선수들을 빠르게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를 치를수록 내용이 좋아졌습니다. 어느새 단일팀은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하나의 팀이 되어 있었습니다. 머리 총감독은 눈물의 이유에 대해 “우리 선수들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지난 4년 동안 모두가 힘들었고 고생했다. 마지막 순간 빛을 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단일팀은 그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머리 총감독도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고 양쪽 다 힘들었다. 시간도 부족했고, 압박감도 컸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빠르게 팀을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머리 총감독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는 두 팀처럼 보이겠지만 우리는 링크에서 하나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올림픽 동안 최고의 장면을 묻자 “서로 달랐던 두 팀이 하나가 돼 가는 과정이 베스트였다”고 답했습니다. 용어도, 전술도 달랐지만 북한 선수들의 배우려는 노력은 대단했습니다. 머리 총감독은 앞서 “20분 예정이던 전력분석 미팅이 북한 선수들의 질문 공세에 1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다”고 한 바 있습니다. 당초 단일팀 훈련을 폐회 때까지 이어갈 계획이었지만 대회 운영 규정상 링크 사용이 어렵게 됐습니다. 머리 총감독은 “비디오 미팅을 하는 등 훈련하지 않고도 최대한 많은 것을 북한 선수들에게 가르쳐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25일 폐회식이 끝나면 남북 단일팀 섬수들은 다음날 헤어지게 됩니다. 머리 총감독은 “안녕이라고 말하는 일이 참 힘들 것 같다. 북한 코칭스태프, 선수들과 서로 잘 알게 됐고, 잘 따라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이어 “헤어지기는 할 텐데 지금 만든 이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며 “친선 교류전에 관해서도 논의 중이다. 북한 아이스하키가 더 나아지길 원한다면 적극 돕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남북 단일팀에 대해 올림픽위원회(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도 “남북 단일팀은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이것이 올림픽 정신”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지난 1991년 탁구와 축구 남북 단일팀이 그랬던 것처럼 여자아이스하키 선수들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오는 25일 폐회식을 끝으로 해산하게 됩니다. 사실 이번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은 그 구성 자체가 평창올림픽과 한반도 평화의 상징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단일팀 구성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자 국내에서 다소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 역시 크게 좋아 보이진 않았습니다. 단일팀 기획자체가 정치적 논리에서 시작된 듯 했고 더불어 수 년 전부터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고생스런 여정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올림픽이 시작되고 남북 단일팀의 경기가 이어지자 애초의 우려와 약간의 반감은 이네 감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기존 아시아 최강인 일본은 물론이고 머리통(?)하나 정도는 더 큰 유럽의 스웨덴과 스위스 선수들을 상대로 빛나는 투지로 경기에 임한 선수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이제 단일팀의 아름다운 도전과 희망의 여정은 일단 끝이 났습니다. 사실 저의 개인적 우려는 지금부터입니다. 지금까진 평창올림픽이란 국가적 대사가 있었기에 그나마 조금의 관심과 지원도 있었지만 실업팀은 고사하고 대학팀(중·고팀 포함) 하나 없는 우리 국내 여자아이스하키 저변은 그대로입니다. 부디 이번 남북 단일팀의 선전이 여자아이스하키 저변 확대의 기폭제가 되었음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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