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

마크롱 트뤼도 쿠르츠 등 국제정치 이끄는 30, 40대 정치리더들

Chris7 2017. 10. 18. 10:00

유럽대륙를 중심으로 서구권에 ‘30, 40대 젊은 정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기존 정치권을 향한 염증이 커지고 변화를 향한 열망이 확산되면서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젊은 지도자가 각광을 받는 모습입니다. 즉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난과 난민 유입으로 사회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위기를 타개할 인물로 패기 있는 정치인들이 부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 30, 40대 정치인들은 정책적으로 유연할 뿐만 아니라 ‘방송맞춤형’으로 불릴 만큼 이미지 정치에도 능숙하다는 게 강점입니다. 전문가들은 잇따른 ‘젊은 지도자 배출’ 현상을 거세진 유권자들의 변화 요구와 정치 참여 열기에 유럽의 정당정치가 ‘응답한 결과’라고 평가합니다.





15일(현지시간) 치러진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만 31세의 세바스티안 쿠르츠 국민당(OeVP) 대표가 승리하면서 또 한 명의 30대 지도자가 유럽에서 탄생했습니다. 쿠르츠가 총리직에 정식 취임하면 현재기준 세계에서 가장 젊은 지도자가 됩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보다도 어립니다. 쿠르츠 대표가 취임하면 유럽연합(EU) 회원 28개국 수반의 평균연령은 52세가 돼 40대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됩니다. 9년 전 평균연령은 55세였습니다.


유럽에선 지난 5월 취임한 에마뉘엘 마크롱(39) 프랑스 대통령과 샤를 미셸(41·취임 당시 38세) 벨기에 총리가 이미 30대 현역 지도자로 활동 중입니다. 볼로디미르 그로이스만(39·취임 당시 38세) 우크라이나 총리, 위리 라타스(39·취임 당시 38세) 에스토니아 총리, 지난 6월 선출된 리오 버라드커(38) 아일랜드 총리도 30대 지도자입니다. 이탈리아에서도 대안당인 오성운동의 루이지 디마이오(31) 대표가 차기 총리 주자 중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들 젊은 지도자는 기존 정당의 ‘구세주’로 떠오르거나 신흥 정치세력을 이끌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쿠르츠 국민당 대표는 지난 5월 국민당 대표로 취임한 뒤 3위에 머물던 당 지지율을 순식간에 1위로 끌어올렸습니다. 중도우파인 국민당의 안정적 이미지에 대중에 만연한 반이민 정서까지 끌어들여 보수·극우표를 함께 묶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정치권 밖에서 신선한 인물을 대거 끌어들인 점은 지난 6월 40대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신생정당 앙마르슈를 이끌고 총선 승리를 이끈 사례와도 닮아 있습니다.


이미지 정치에 능숙하다는 점도 이들의 공통점입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7월 일부러 유서 깊은 파리 베르사유궁에서 상·하원을 소집해 국정연설을 하면서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쿠르츠 대표 역시 24세였던 2010년 시 의회 선거에서 당의 상징색인 검정 험비 차량에 올라 ‘검정은 당신을 멋지게 만든다’는 구호로 중앙 정계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미셸 벨기에 총리는 2014년 활동가들로부터 마요네즈를 맞는 수모를 당하고도 “마요네즈 냄새가 날지 모른다”는 유머로 능숙하게 받아넘기는 등 침착한 대응으로 박수를 받았습니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 역시 인도계 이민자인 약점을 오히려 ‘참신한 인물’임을 강조하는 데 적극 활용했습니다.





젊은 지도자 바람은 유럽 바깥에서도 불고 있습니다. 이미 세계 젊은 지도자의 상징이 된 40대의 기수 쥐스탱 트뤼도(46) 캐나다 총리가 대표적 인물입니다. 진보자유당의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 최고의 총리’로 꼽히는 고(故)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의 아들로 10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뤄내고 지난 2015년 11월 취임했습니다. 첫 내각을 남녀 동수로 꾸리고 난민과 원주민을 입각시켜 새바람을 일으키더니 경기를 부양하고 중산층을 늘리며 환경친화적인 경제정책을 밀어붙여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취임 1주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52%였을 정도로 여전한 대중적 인기를 우지하고 있습니다.


또 한명의 40대 정치리더인 이탈리아 중도 좌파 민주당의 마테오 렌치 전 총리(42)는 2014년 2월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 이후 최연소 총리가 돼 노동개혁과 교육개혁, 선거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개혁법안이 상원에서 번번이 부결되자 상원의원을 315명에서 100명으로 줄이는 과감한 개헌안을 내놓아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나 부결돼 총리직에서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4월 30일 실시된 집권 여당 민주당(PD)의 당대표 경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 총리직 탈환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민주당이 내년 5월 실시되는 총선에서 루이지 디마이오(31) 대표가 이끄는 대안당인 오성운동을 누르고 승리하면 렌치는 다시 총리직에 오르게 됩니다. 그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43)도 지난 2015년 6월 10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는 내용의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쳤습니다. 78%가 반대해 부결됐지만 그의 개혁성은 주목 받았습니다.


상원의 힘을 빼놓기 위해 자리를 건 렌치 총리처럼 젊은 리더들은 정치적 도박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골수 좌파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42)는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까지 내몰리면서도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카드로 채권국인 유럽연합(EU)을 압박해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2015년 1월 총리 취임 후 8개월 만에 실시한 조기 총선에서 승리해 이를 동력으로 노동시장 개혁, 연금 삭감 등 구제금융을 위한 개혁안을 이끌어 내는 정치력을 보였습니다.


다국적기업 유니레버 출신의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50·취임 당시 43세)는 2012년 4월 부가가치세 인상, 공무원 임금 동결 등 정부 예산을 연간 150억 유로(약 18조7500억 원) 줄이는 긴축안을 놓고 야당과 2개월 가까이 협상을 벌이다 결렬되자 총리직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총선에서 긴축 정책을 통해 재정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유권자들에게 먹혀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벨기에 최연소 총리인 샤를 미셸 총리(42)는 올 3월 브뤼셀 테러를 수습하며 위기 대처 역량을 인정받았습니다.


서구권 외에선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인 고이즈미 신지로(37)가 집권 자민당의 ‘얼굴’ 역할을 하며 차기 총리감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있는 일본에선 집권 자민당과 연립정당인 공명당의 압승이 예상되곤 있으나 정작 당대표이자 총리인 아베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하향세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고이즈미 의원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는 중인 것입니다. 계파간의 합종연횡이 심한 집권 자민당내의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고이즈미가 당장 차기 주자로 부상하긴 쉽지 않겠으나 차차기 주자론 손색이 없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처럼 유럽을 중심으로 30, 40대의 젋은 정치인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저변엔 정치인 개개인의 단순한 이미지 메이킹이나 이슈 선점 등을 넘어 그간 탄탄히 기초를 쌓아온 유럽내 정당정치의 힘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정치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한 정치 평론가는 “유럽의 기성 정당들은 금융위기 이후 변화 요구가 커지자 ‘리더 정치인’들의 연령을 낮춰 대응했다”면서 “단순히 정치혐오에 따른 현상이기보다는 젊은 세대가 정치에 적극 참여한 데 부응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또 “유럽의 젊은 지도자들은 10대부터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을 해온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정치문화의 발전 없이 단편적으로 ‘젊은 지도자’ 현상만 추종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치 평론가들의 지적처럼 젊은 정치인들이 정치 전면에 부각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정당정치의 성숙한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에선 30, 40대 유력 정치인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도 일면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지난 1987년 6월 항쟁이후 대통령 직선제를 시작으로 정치 민주화가 이루어 졌으나 국내 정치는 진보와 보수를 불문하고 정당들이 당의 이념적 정체성 보다는 유력 정치인을 중심으로 한 계파(패거리)중심으로 흘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예로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국민의당이 분열해 나왔다거나 국정농단 사태가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며 새누리당에서 반박근혜 세력들이 바른정당으로 분열해 나온 것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정치 상황에선 젊은 정치인들이 당의 테두리 안에서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정치 경력을 쌓기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서구권에서 30, 40대 정치인들이 주력으로 부상하는 모습이 우리로선 그저 담 너머 구경꺼리 일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