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군부 독재 하에서 민주 투사로 활약하며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한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가 최근 국제적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바로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족 탄압 때문입니다.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주민 40만여 명은 지난달 25일 시작된 정부군의 무자비한 토벌작전을 피해 방글라데시 쪽 국경을 넘었습니다. 전체 로힝야족(120만 명)의 3분의 1이 목숨을 건 국외 탈출을 감행한 셈입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13일 로힝야족이 거주하는 471개 마을 중 176개는 완전히 비었고 34개는 주민 일부만 남아 있는 등 40%가량이 초토화됐다고 전했습니다. 국경 지대에는 재입국을 막기 위해 지뢰를 매설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이에 대해 자이드 빈 라아드 알후세인 유엔인권최고대표는 “인종청소의 교과서적 사례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사태를 예의 주시해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3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로힝야족에 대한 폭력을 중단하고 법질서를 재확립해 시민들을 보호하는 데 즉각적인 조치를 하도록 촉구한다”는 성명을 채택했습니다. 미얀마 정부를 두둔해온 중국과 러시아도 동참했습니다. 신속한 사태 종결을 촉구하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10명의 공개서한도 결정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12일 안보리 성명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얀마 당국은 로힝야족에 대한 군사행동을 중단하고 난민들이 돌아와 정당하게 거주할 권리를 인정하라"고 촉구하고, '재앙 같은 상황(catastrophic)' '인종 청소(ethnic cleansing)' 등의 표현을 써가며 미얀마 정부를 비난했습니다.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손녀로 2009년 아웅산 수지에게 간디 화해 평화상을 준 엘라 간디 간디발전재단 이사장은 수지 여사앞으로 발표한 공개서한에서 "미얀마 군부가 로힝야족 탄압을 즉각 멈추도록 당신의 모든 힘과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했습니다. 달라이 라마, 말랄라 유사프자이 등 다른 노벨평화상 수상자들도 수지 여사에게 군부와 거리를 두고 제 목소리를 내라며 압박했습니다. 인도에 망명중인 티베트 불교 최고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부처라면 로힝야족을 도왔을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백악관 새라 허커비 샌더스 대변인도 "미국은 계속되는 미얀마 위기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는 논평을 내놨습니다. 이같은 국제적 비난 여론이 들끓으면서 수지 여사가 받은 노벨평화상을 철회해야 한다는 온라인 청원까지 등장해 이미 전 세계에서 40만 명 이상이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수지 여사는 5일 터키 정상과의 통화에서 “로힝야족 사태 보도는 국가 간 분쟁을 촉발하고 테러리스트를 이롭게 하는 가짜 뉴스”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실망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로힝야족 무장단체가 먼저 경찰 초소를 습격했고 이에 반격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민주화와 인권의 아이콘’으로 널리 알려진 수지 여사에게 국제사회가 배신당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미얀마의 독립운동 지도자이자 국부인 보조 아웅산의 딸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였으며 이때 대학에서 남편인 마이클 에어리스를 만났습니다. 대학 졸업과 결혼 후 평범한 전업주부 생활을 하다 1988년에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고국으로 귀국한 후 군사 통치에 반대하는 집회(통칭 8888 항쟁)에 참여하면서 영국의 가정주부에서 갑자기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로 부상하게 됩니다. 이후 독재정권하에서 수차례 투옥과 가택연금을 겪었던 수지 여사는 2015년 총선에서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승리를 이끌었지만 자녀와 남편이 영국 국적자인 이유로 대통령에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국가자문역과 외교장관을 맡으며 실권자가 됐습니다. 하지만 로힝야족 토벌을 계기로 인종청소 논란의 중심에 서고 급기야 제재 대상으로 거론되는 처지가 됐습니다. ‘발칸의 도살자’라는 악명까지 얻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1992∼1996년 알바니아계 이슬람 주민 25만 명을 학살하면서 굳어진 반인륜적인 ‘인종청소’ 오명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수지 여사에게 따라붙고 있는 것입니다.
코너에 몰린 아웅산 수지 여사는 오는 19일 TV 연설을 통해 로힝야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로 했습니다. 미얀마 정부 관계자는 "국민의 화해와 평화에 대한 내용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미얀마 군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수지 여사가 로힝야 난민들의 복귀나 신변 보호 같은 적극적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사태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식의 소극적 발언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게 현실입니다. 미얀마 군부는 로힝야족에 미얀마 국적을 부여하는 것을 강력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지 여사는 또한 국제사회의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한 듯 이번 주 뉴욕에서 개막하는 유엔총회 참석 일정을 취소했습니다. 어찌되었든 현재로선 19일로 예정된 수지 여사의 TV 방송연설이 이번 사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는 135개 소수민족이 있습니다. 미얀마 정부는 이슬람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방글라데시에서 넘어온 불법 이민자로 취급합니다. 재산권도 없고 언제든 살고 있는 토지가 몰수 가능하다고 휴먼라이츠워치는 주장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로힝야족은 원래 방글라데시 등 벵골만 주변에 살던 인도·아리안계 민족으로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입니다. 영국은 19세기 후반 이들을 식민 통치하던 미얀마로 이주시켜 중간 지배 계층으로 활용하면서 미얀마 불교도들을 탄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국민들의 적대감이 커졌습니다. 미얀마 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이들에 대한 강한 탄압 저변엔 이러한 역사적 악감정도 저변에 깔려있습니다. 이처럼 로힝야족은 1948년 미얀마가 독립한 이후 시민권 박탈 등 각종 탄압을 받아왔습니다. 전체 250만 명의 로힝야족 중 130만 명이 현재 미얀마에 살고 있습니다.
딱히 이번 로힝야족 탄압 문제와 관련해 수지 여사 입장을 두둔할 생각은 없으나 그의 입장에서 이번 문제가 상당히 복잡한 이유 중 하나는 과거 미얀마를 강압 통치한 영국에 대해 미얀마 국민들이 가진 강한 반감입니다. 이 반감은 우리가 일본에 가진 민족적 반감을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수지 여사는 영국에서 공부를 했고 더군다나 남편이 영국인입니다. 때문에 잘못하면 미얀마내에서 수지여사가 영국의 꼭두각시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이번 로힝야 문제의 국제적 스폰서는 영국입니다. 로힝야족 난민 문제가 안보리 의제로 올라가게 된 것도 스웨덴과 영국의 제안으로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사실 지난 미얀마 총선이후 수지 여사가 실질적인 국가 지도자 반열에 오를 때부터 과연 그가 미얀마의 리더로서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라는 다소의 의문이 들었는데 이번 로힝야족 탄압 사태로 그의 지도력이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군부에서 문민정부로 정권이양이 되었다고는 하나 군부가 여전히 실세로 힘을 가지고 있는 미얀마 내부의 사정을 감안한다면 수지 여사의 앞길이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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