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지형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위기감속 안개정국인 가운데 그 위기감의 주역인 북한이 역대 최대 규모 위력의 6차 핵실험을 감행하며 또 한 번 지정학적 리스크를 높이고 말았습니다. 진도 규모로만 봤을 때 이번 핵실험의 폭발 위력은 최소 50킬로톤(kt·1kt은 TNT폭약 1000t의 위력)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3일 군과 기상당국에 따르면 북한이 이날 오후 12시 29분에 실시한 핵실험 진도 규모는 5.7로 측정됐습니다. 당초 5.6으로 발표했다가 추가 분석을 통해 진도 규모를 더 올렸습니다. 그만큼 강력한 폭발이었다는 의미입니다. 북한은 이날 오후 3시30분(한국시간) 중대발표를 통해 “대륙간탄도로켓(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면서 “이번 시험은 이전에 비해 전례 없이 큰 위력으로 진행됐다”고 밝혔습니다.
기상청의 평가를 토대로 이번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인공지진 규모는 지난해 9월의 5차 핵실험 때인 10kt 폭발 위력보다 훨씬 큰 50~70kt으로 추산됩니다. 기상청은 이날 감지된 인공지진 규모 5.7은 5차 핵실험 위력의 5∼6배에 달한다고 평가했습니다. 50kt급 핵폭탄이 서울 용산구 지표면에 떨어지면 시민 200만 명 이상이 순식간에 사망하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북한의 6차 핵실험은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북한이 단행한 핵실험입니다. 최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아이시비엠)급 ‘화성-14’형 시험발사에 두 차례나 성공한 북한은 이날 6차 핵실험에 대해 ‘대륙간탄도로케트 장착용 수소탄 시험’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수소탄을 장착한 ICBM을 미국 본토까지 날려 보낼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날 북한은 핵실험에 대한 관심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치밀한 각본대로 움직였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아침 6시30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를 찾아 ‘핵무기 병기화 사업’을 현지 지도 했다며 “최고 영도자 동지께서는 새로 제작한 대륙간탄도로케트 전투부(탄두부)에 장착할 수소탄을 보아주시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은 이로부터 6시간 뒤인 낮 12시29분께 핵실험을 실시했고, ‘조선중앙티브이’는 그로부터 3시간 지난 오후 3시30분 ‘중대발표’를 통해 핵실험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 보도를 보면 김 위원장은 오전에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주재하고 ‘국가 핵무력 완성의 완결단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실험 실시를 결정했고, 김 위원장의 지시 직후 북한은 곧바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핵실험을 실시했습니다. 이는 김 위원장이 평소 강조해온 대로, ‘임의의 시각’에 핵실험을 벌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가 돼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보입니다.
군 당국은 앞서 5차 핵실험의 핵폭발 위력을 지진 규모 5.0을 10여 kt으로 추정했습니다. 북한의 1차 핵실험 위력은 0.8kt(지진 규모 3.9), 2차 핵실험 3~4kt(지진 규모 4.5), 3차 핵실험 6~7kt(지진 규모 4.9), 4차 핵실험 6kt(지진 규모 4.8) 이었습니다. 군 전문가는 “이번 북한의 핵실험은 포괄적핵실험금지기구(CTBTO)에 따르면 지진규모 5.7은 50kt 수준의 위력으로 추산된다”면서 “정확한 폭발 위력과 실험 형태는 추가 분석이 나와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50kt 위력은 과거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보다 2.5배가량 파괴력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각각 15kt급의 원자폭탄 ‘리틀 보이’와 21kt급 ‘패트 맨’이 투하됐습니다. 이로 인해 히로시마에서 14만 명, 나가사키에서는 7만 명이 숨졌으며 수십만 명이 방사능 피해를 입었습니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풍계리 일대에서 인공지진 감지 직후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에 따라 ‘위기조치반’을 긴급 소집했습니다. 그간 국방부는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의 2번, 3번 갱도에서 지휘부의 결심만 서면 언제든지 핵실험이 가능한 상태라고 평가해왔습니다. 서주석 국방부 차관은 지난 달 31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의 6차 핵실험 관련 “이번에는 북한이 주장하는 수소폭탄이나 증폭핵분열탄 식으로 상당히 강력한 위력을 보여줄 것으로 본다”고면서 “북한은 상시적으로 핵실험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합참은 이날 북한의 핵실험 직후 전군 대북감시 강화 및 경계태세를 격상했습니다. 합참 관계자는 “우리 군은 현재 한미 공조하에 북한군의 동향에 대해 면밀히 감시 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6차 핵실험에 대해 북한 발표와는 달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의 완성단계에 이른 것은 아니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이번 핵실험이 문재인 대통령이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어선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ICBM까지 포함해 "핵탄두 소형화, 경량화, 대기권 재진입 기술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고 북한의 발사체가 정확히 원하는 지점에 떨어졌는지에 대한 논란이 많다"면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북한의 주장에 논란의 소지가 많고 확인되지 않은 사항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설정한 '레드라인'은 "북한이 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는 것"(8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핵과 ICBM 능력이 이 선에 도달했다고 말하기는 이르자는 분석입니다. 북한 스스로도 '중대 보도'에서 이번 핵실험을 "국가 핵무력 완성에 완결 단계 목표를 달성하는 데서 매우 의미있는 계기가 된다"고 말해, 아직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상황은 아님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완성된 ICBM'과 '완성된 핵탄두'의 결합이 레드라인이라는 점에서 현재는 그 목전인 9부 능선까지 와 있는 상황인 셈이고, 이는 북한이 추가적인 무력시위를 벌일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핵탄두와 미사일 능력을 비교했을 때 핵탄두쪽 진도가 더 나가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다음번에는, 재진입기술 등 ICBM이나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능력 향상을 보여주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이번 6차 핵실험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9일 취임 이후 줄기차게 강조하고 요구해온 남북대화는 장기간 성사되기 어렵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북한과) 대화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문 대통령 자신도 후보 시절인 지난 4월 27일 "만약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남북대화는 상당기간 불가능해진다. 5년 단위 정부라는 점에서, 다음 정부에서 남북관계 개선은 사실상 어려워지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국제사회와 함께 최고로 강한 응징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정의용 안보실장은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보좌관과 긴급 통화를 했으며, 정경두 합참의장과 조지프 던퍼드 미국 합참의장도 긴급통화에서 빠른 시일 내 군사적 대응을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3일 벌어진 북한의 수소폭탄(추정) 실험을 보며 문뜩 드는 생각이 예전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확정되었을 때 국내외 언론과 정세 분석가들이 예상했던 북한 정권의 변화가능성이 얼마나 순진하고 잘못된 전망과 희망이었나 하는 것입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과 젊은 나이를 주요 근거로 들며 북한의 개혁·개방을 언급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전 보다 더한 고립과 도발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에는 북한의 여러 내·외 환경이 작용하고 있지만 김정은 정권 자체가 가진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주요 요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즉 김정은이 자신의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만큼의 정권 장악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정은이 자신의 고모부 장성택과 이복형 김정남을 처형·암살한 이유도 뜯어보면 그의 권력이 그만큼 약한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김정은 정권이 줄기차게 핵실험과 ICBM 실험 발사를 강행하고 있는 것에도 미국으로 부터의 ‘체제보장’이라는 대외적 이유도 있으나 북한 내부에서의 ‘정권 공고화’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즉 핵보유를 기반으로 ‘강성대국’이라는 사탕발림으로 북한주민들의 눈을 가리고 자신의 권력 강화를 꾀하려는 김정은의 속내가 내포되어있다고 봐야 하는 것입니다. 북핵문제의 해법이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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