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치러지는 독일총선에서 집권여당인 기독민주당(CDU)과 기독사회당(CSU) 연합이 승리할 것으로 보여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의 4선 연임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유연한 포용적 리더십을 선보여 ‘무티(엄마) 메르켈’이라는 별칭을 가진 그는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재임 기간(11년)을 이미 뛰어넘었습니다. 연임 성공 시 자신의 정치적 스승이자 16년 간 총리를 맡아 최장수 기록을 세웠던 헬무트 콜과 같은 위치에 오르게 됩니다. 물론 네 번째 임기를 끝까지 수행했을 때 일입니다.
최근 실시된 시베이와 INSA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메르켈이 이끄는 기독민주당(CDU)과 기독사회당(CSU) 연합이 38%를 얻어 24%의 지지를 얻은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을 크게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임 시 메르켈은 2021년까지 국정을 맡게 됩니다. 미국 대통령의 최대 재임 기간(8년)의 두 배에 달하는 장기간입니다. 다양한 세력 간의 연정과 협치를 통해 운영되는 독일 정치에서 메르켈이 통합적 리더십을 보여 온 것이 원동력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메르켈 총리의 16년 장기집권이 가능했던 근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정치전문가들은 그와 집권여당의 좌파 진영 껴안기에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메르켈 총리는 중도우파 노선을 유지하면서도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등의 진보적 정책을 적절한 시기에 수용하는 리더십을 보여 왔습니다. '동성 결혼 허용' 법안 처리가 단적인 사례입니다. 해당 이슈는 연정 파트너인 중도좌파 사민당과 녹색당이 9월 총선 이후 연정의 조건으로 내건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사실 이 법안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는 의회에서의 법안 표결시 반대표를 던졌지만 법안은 통과됐습니다. 자신은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소신을 지키면서도 해당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도록 함으로써 향후 연정 구성의 걸림돌을 없애는 묘수를 둔 것입니다.
'원자력 발전' 문제에 대해서도 메르켈 총리는 자신의 입장을 바꿨습니다. 2009년만 해도 그는 “전 세계에서 원전이 수없이 건설되고 있는데 우리만 빠져있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하자 방향을 완전히 틀었습니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원전 종식을 선언하면서 “원자력 에너지의 위험은 안전하게 관리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3세 이하 유아 보육체계' 구축도 메르켈 총리의 작품입니다. 좌파 진영이 주도해온 이슈를 메르켈이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입니다. 유럽 재정위기 극복, 여기에 더해 기후변화 협약 채택 등에서 유럽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 입지를 다진 것도 그의 강점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라고 해서 정치적 약점이 없는건 아닙니다. 그의 아킬레스건은 바로 '이민자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유럽에서 테러가 잇따르면서 2015년 대규모 난민 수용을 결정한 메르켈 총리의 정책은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총리직 경쟁자인 마르틴 슐츠 사민당(SPD) 당수는 메르켈이 난민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며 선거 쟁점화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특별한 상황이었고 정치적이고 인도적 관점에서 주관대로 결정했다. 당시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정면 돌파에 나서고 있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28일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 정상과 회담을 갖고 불법 이민자들이 유럽에 들어오기 전 아프리카 중부의 니제르와 차드에서 사전 심사 절차를 밟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정치적 박해나 기아를 피해 유럽행을 원하는 이들은 유엔 난민 기구와 니제르 또는 차드 정부에 사전 등록하면 심사를 거쳐 합법적으로 유럽에 입국할 권리를 주겠다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24일(현지시간) 치러질 총선에서 메르켈 총리의 4선 연임이 확정적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인가운데 오히려 총선 이후 연립정부 구성 조합에 대해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2005년부터 총리 재임 시 단 한 번도 자당 단독으로 독립 정부를 구성하지 못했던 메르켈 총리로서는 이번에도 연정 구성을 준비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아울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극우 정당의 원내 진입이 기정사실화하고 있어 이 부분이 향후 독일 정치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메르켈 총리 재임 1기와 현 3기 대연정 파트너인 사회민주당(SPD)와의 재결합은 부정적인 기류가 현저합니다. 여론조사 결과 SPD와 대연정이 성사될 경우 하원 의석 비율이 63%로 안정적 국정 운영이 가능하겠지만, 메르켈 총리는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SPD에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는 국정 목표가 발목 잡히는 전철을 밟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SPD 내부에서도 선거 패배 시 '강한 야당'으로 남아야 한다는 정서가 강한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중도우파인 자유민주당(FDP)과 온건좌파인 녹색당의 '자메이카 연정' 탄생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습니다. '자메이카 연정'이란 용어는 각 당의 상징색인 검정(CDU·CSU), 초록(녹색당), 노랑(FDP)이 자메이카 국기 색과 같은 데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특히 FDP는 메르켈 총리의 2기 당시 보수연정 파트너로 참여한 바 있기도 합니다. FDP는 2013년 총선에서 전국 지지율 5% 획득에 실패해 원내 진입을 못했지만 현재 여론조사 결과 9%를 차지해 원내 재진입이 유력합니다.
여론조사 결과상 '자메이카 연정'의 예상 의석 비율은 56%에 달하고 국민 선호도도 높아 가장 이상적인 연정이라는 것이 현재 독일 내 반응입니다. 독일은 선거에서 5% 이상을 득표해야 연방의회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전을 옹호하는 CDU와 원전 폐쇄를 주장하는 녹색당의 간극이 극명해 실제 성사 여부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남아 있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FDP가 메르켈 총리의 난민 옹호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도 악재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한편 이번 총선에서 반유로·반이슬람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원내 진입도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현재 지지율 9%를 달리고 있는 AfD는 1945년 2차대전에서 나치당이 패전한 후 처음으로 원내 진출에 성공하는 극우 정당이 될 전망입니다. 하이코 마스 독일 법무부 장관은 언론 기고문에서 "AfD가 총선을 거쳐 연방의회(분데스타크)에 들어간다면 그건 그것대로 우리 정치적·사회적 현실의 일부이며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CDU 당직자도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나치 당원도 독일 의회에서 정상적인 당 대우를 받았다"며 AfD의 원내 입성을 기정사실화했습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AfD의 분데스타크 진출이 의회에 '불행한 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만약 AfD가 총선에서 3당 지위에 오르면 의회 관례에 따라 연방의회 부의장직과 힘 있는 예산위원장직을 요구할 권리를 갖게 됩니다. 이럴 경우 AfD는 난민 보호와 유럽연합(EU)에 소요되는 예산을 삭감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때문에 AfD에 반감이 큰 의원들이 예산위원회 위원직을 거부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이럴 경우 연방정부가 마비돼 극심한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현재 메르켈 총리의 4선 연임 성공여부는 메르켈 정부의 장기 집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리적 거부감에 달려있다는 것이 독일 정치권의 일반적 분석입니다. 기성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영국 총선에서 테리사 메이 총리의 과반 상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당선 등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습니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독일 경제가 튼튼하지만 최근 3년 간 생겨난 200만 개 일자리 중 160만 개는 동유럽 이민자들이 차지했다”며 “만약 독일 총선에서 이변이 생긴다면 올해 세계 정치에서 가장 큰 사건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위에서 설명된 성공적 국정 운영 등으로 '무티(엄마)'라는 포용적 이미지를 정착시킨 동시에 독일을 넘어 유럽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의 강력한 입지도 다져 왔습니다. 재정 위기 속 유럽에서 강력한 구조조정을 제시하며 유럽연합(EU) 안정에 기여했고, 기후변화 협약 등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척점에 서기도 했습니다. 또한 북한 미사일ㆍ핵 위기에서도 꾸준히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책을 강조하면서 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가 통일전 구 서독지역인 함부르크에서 출생하긴 했지만 생후 몇 주 만에 개신교 목사였던 아버지의 목회생활로 구 동독지역으로 이주 후 1989년 독일 통일 전까지 30여년 이상을 동독에서 생활한 구 동독출신 인물이란 점에서 그의 정치적 성공이 더더욱 돋보인다 하겠습니다.
사실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탄핵정국'이란 정치적 격랑기를 거치며 '왜 한국에는 독일의 메르켈 같은 정치인이 없을까?'라는 자조 섞인 푸념을 하기도 했는데요... 독일이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여타 여러 국가들에 비해 정치적 안정도가 높다 해도 12년 집권은 여전히 대단하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더해 이번 총선 승리 시 원칙적으론 16년 집권이 가능하니... 정말 대단한 정치인입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시 되었던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패배하고 영국 집권 보수당의 테레사 메이 총리가 최근 선거에서 과반을 상실하는 등 서구권 여성 정치인들의 부침이 심한 가운데서도 독보적 존재감을 보이며 건재해있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과연 이번 총선 승리로 4선 연임에 성공 할 수 있을지 자국 독일과 유럽은 물론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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