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J-POP’을 대표하는 솔로 여가수 아무로 나미에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일본 대중음악계 역사에 뚜렷이 남을 전성기와 잠시 동안의 침체기, 그리고 누구보다 화려한 부활까지 이뤄냈던 슈퍼스타 아무로 나미에가 이제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돌연한 은퇴발표로 현재 일본 열도는 패닉 상태라고 합니다. 각 방송사마다 아무로 나미에 특집을 방영하며 유명인들을 게스트로 초대해 심경을 듣거나 사회에 미칠 파장까지 분석하고 있습니다. 아무로 나미에의 은퇴 선언을 듣고 울었다는 스타도 있고, 아무로 나미에의 광팬으로 알려진 개그우먼 이모토가 충격을 받아 쓰러질까 우려하는 언론도 있는 등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오키나와 출신인 아무로 나미에는 문자 그대로 일본 대중음악계 최고의 스타입니다. 아무로 나미에가 입은 의상, 메이크업, 하다못해 스무 살에 혼전임신으로 댄서와 결혼한 뒤 5년 만에 이혼, 싱글맘으로 아들을 키우는 교육관, 인생관까지 동경의 대상이 됐습니다. 일본내에서 아무로 나미에는 세대 구분 없이 모든 여성을 아우르는 팬심을 불러일으킨 존재입니다. '아무라'라는 사회적 현상까지 생겼을 정도입니다. 아무로 나미에의 일거수일투족이 여성들의 귀감이었습니다.
아무로 나미에는 춤과 가창력을 모두 갖춘 스타였습니다. 귀여운 매력만을 어필하거나 보컬은 한 수 접고 댄스에 집중하는 일본의 여느 댄스 가수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춤을 추며 라이브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존재로 평가받습니다. 더구나 댄스를 병행하면서도 보컬이 흔들림이 없기로 유명합니다. 일본 가요계는 아무로 나미에가 댄스가수의 효시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아무로 나미에는 지난 1992년 걸그룹 슈퍼 몽키즈로 데뷔했습니다. 1995년 솔로 첫 싱글 ‘Body Feels EXIT’를 발매한 후 진정한 전성기를 맞게 됐습니다. 1996년까지 싱글 앨범 ‘Chase the Chance’, ‘Don’t wanna cry’, ‘You’re my sunshine’ 등이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인 'CAN YOU CELEBRATE'는 200만 장이 넘게 팔렸으며, 대표적인 결혼식 축가로 자리했습니다. 그리고 첫 정규앨범이었던 ‘SWEET 19 BLUES’는 무려 300만 장 넘게 팔렸습니다.
1997년에도 아무로 나미에 열풍은 계속됐습니다. 인형 같은 외모에 파워풀한 댄스, 안정적인 라이브까지 선보이며 명실상부 일본 최고의 여자 솔로로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당시 일본의 10대 소녀들에게 아무로 나미에 이상의 영향력을 미치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의 패션은 사회 전반적으로 영향력을 미쳤고 일본 언론은 ‘아무라’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가요계에서 화려한 성적을 만들어낸 것과 대조적으로 그의 가정사는 어두웠습니다. 1997년 TRF의 멤버 SAM과 결혼 후 1998년에 아들을 출산했으나 2002년 이혼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결손 가정에서 자란 아무로 나미에의 유일한 구심점이었던 어머니가 1999년 3월 고향인 오키나와에서 의붓아버지의 남동생에게 살해돼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긴 살인사건이었다. 또한 2000년대 초반 음악 스타일에 변화를 주면서 대중적으로 예전만은 못한 인기를 얻게 됐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로서의 아무로 나미에는 강했습니다. 오후 6시 이후, 불가피한 공연을 제외하고는 스케줄을 잡지 않았습니다. 공연이 없는 날에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아들의 도시락을 쌌고 학부형 모임에도 가능한 참가했습니다. 가수로서, 어머니로서 충실하고자 무던히도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로 나미에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가 전설적인 가수로 남을 수 있는 것은 본업인 노래와 춤에 깊은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꾸준히 앨범을 발매하고 투어를 이어가며 부활의 시기를 노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 정규 앨범 ‘PLAY’로 다시 50만 장을 넘겼으며 2008년 베스트앨범 ‘BEST FICTION’으로 150만 장을 돌파했습니다.
데뷔 20주년이었던 2012년에는 돔 투어를 열었습니다. 2016년에는 총 100회짜리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치기도 했습니다. 데뷔 25주년을 맞은 올해까지 매년 꾸준히 싱글앨범을 발매하고 투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활동기간이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인 만큼 아무로 나미에는 꾸준히 음악적 변화를 꾀하고 팬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20일, 아무로 나미에는 돌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데뷔 기념일인 “2018년 9월 16일자로 은퇴하겠다”며 1년의 유예기간을 두면서 “음반과 콘서트 등 마지막으로 최대한 모든 것을 마음껏 하며 의미 있는 1년을 보내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그의 말에 따라 소속사는 11월 8일 베스트 앨범을 발매하고 은퇴 투어 계획도 공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무로 나미에는 은퇴 선언을 하며 그 이유를 따로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로 나미에 측근들에 의해 조금씩 연예계 은퇴의 이유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21일 스포츠호치, 니혼게이자이 신문 등 일본 외신은 측근의 입을 빌려 아무로 나미에의 은퇴 이유에 대한 추측기사를 앞 다퉈 보도하고 있습니다. 아무로 나미에의 깜짝 은퇴 발표는 오래 전부터 준비됐다는 것이 많은 측근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아무로 나미에는 친한 연예계 관계자들에게 "40세 즈음에는 은퇴하고 싶다"고 뜻을 밝혀왔다고 합니다. 또한 평소 아무로 나미에와 가깝게 지낸 한 관계자는 "누군가에게 지는 것, 그리고 점차 실력이 뒤처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다"고 "평소 절정기에 은퇴하고자 했던 자신의 미학을 관철한 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무로 나미에와 23년을 함께 했던 전 소속사 라이징 프로 홀딩스의 사장 타이라 테츠오 역시 "은퇴 선언은 아무로 나미에만의 미학"이라고 밝혔습니다. 아무로 나미에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일본 최고의 여가수 자리에 올려놓는 등 '아무로 나미에의 양아버지'로 불린 타이라 테츠오는 "모두에게 동경받는다는 여운을 남긴 채 그만두고 싶었던 것 아닐까"라고 그의 은퇴 이유를 추측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아무로 나미에는 은퇴를 발표하기 전 2억 엔(한화 약 20억 3천만 원)을 들여 교토에 위치한 초호화 맨션을 구입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아무로 나미에는 성인이 된 아들과 교토에서 은퇴 후 조용한 삶을 꾸려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전해진 만큼, 아무로 나미에가 은퇴를 결심하고 오래 준비해 왔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일본은 아무로 나미에의 은퇴 선언으로 충격 그 자체에 빠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대중문화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그의 부재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그러면서도 일본내 팬들은 아쉽지만 결정을 존중한다는 응원 또한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25년간 그가 얼마나 파란만장한 삶을 또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음악적 활동 외에도 아무로 나미에는 과거 일왕이 주최한 한 행사장에서 일본의 국가격(공식국가는 아님)인 기미가요 제창을 거부한 일로 일본내 우익들의 과격한 공격을 박기도해 한국에서 화제가 된 바도 있습니다. 그가 기미가요 제창을 거부한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오키나와 출신인 점을 들어 과거 일본과 오키나와간의 불편한 관계 때문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이로 인해 일본 팬뿐만 아니라 한국의 아무로 나미에 팬들도 더더욱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은퇴 투어 나라에 한국이 포함돼있을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무로 나미에는 지난 2004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한 공연을 열었습니다(지난 2015년에 동대문플라자에서 열렸던 샤넬 크루즈 컬렉션 참석을 위해 내한하기도 했지만 공연을 위한 방문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수익금 중 5,000만 원을 한국에 기부하며 훈훈함을 안기기도 했던 만큼 한국에서도 마지막으로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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