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선을 앞두고 야권주자들의 강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의 안희정 충남지사의 지지율 상승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를 두고 태풍으로 번질지, 잠깐 미풍에 머무를지 등을 놓고 갑론을박이 나무하고 있지만 논란은 무의미하다 하겠습니다. 그가 지금 대선정국의 핵으로 부상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당의 문재인 전 대표가 일찌감치 지지율 1위를 바탕으로 대세론을 펴고 있는 가운데 안 지사가 대항마로 무섭게 부상한 것입니다.
정치권은 물론 차기 대선후보들이 안 지사의 가파른 지지도 상승세에 놀라고 있습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 사이에서 ‘도토리 키재기’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일반의 분석과 여론을 뒤로하고 앞으로 치고 나가는 모양새입니다. 일각에서는 ‘노무현 신드롬’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전망도 내놓고 있습니다.
실제 올 연초만 해도 4%대에 그쳤던 안 지사의 지지율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 2일 실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11.2%로 급상승한 데 이어 줄곧 10% 이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야권 주자로서 보수 성향이 강한 중년층 이상의 유권자들에게 호감을 얻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안 지사는 50대에서 16.1%, 60대에서 12.4%의 높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진보 진영에 속하면서도 보수층을 아우르는 ‘합리적 진보’ 프레임이 국민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렇듯 무서운 상승세를 탄 안 지사의 지지율은 급기야 10일 발표된 한국 갤럽조사에서는 19%로 29%의 문 전 대표에 이어 2위까지 오르기에 이릅니다. 11%를 기록한 황교안 권한대행을 3위로 끌어내리고 말입니다.
안 지사가 대권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우선 당내경선에서 대세론의 문 전 대표를 넘어야만 합니다. 안 지사와 문 전 대표는 친노(친노무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안 지사는 1994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 들어가면서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특권과 반칙에 맞서는 노 전 대통령의 열정에 반해 이후 모든 선거를 도왔고, 2002년 대선 정국에서는 염동연 전 국회의원,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등과 그의 당선을 위해 일했습니다. 절친 이광재 전 강원지사도 당시 여의도 금강빌딩에 둥지를 튼 ‘금강팀’ 핵심 멤버였습니다. 안 지사는 그러나 내부의 견제와 대선자금 수사 후유증 등으로 5년 내내 공직을 전혀 맡지 못했습니다. 2007년 대선 국면에서 당시 모든 대선 후보들이 노 전 대통령과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친노는 폐족’이라고 선언했다가, 200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재평가 여론을 타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노 전 대통령을 복권시키자”고 호소하면서 충남지사에 당선됐습니다. 안 지사는 노무현 때문에 죽고 노무현 때문에 살아난 사람입니다. 그는 문화일보와의 ‘차기 리더 직격 인터뷰’에서 “내 출발이 친노임을 부인하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어느 순간 그걸 뛰어넘어서 자기 인생을 사는 게 자연진화의 법칙이고 인생의 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언론 인터뷰에서도 안 지사는 “저와 노 전 대통령은 시대와 역사의 동지였지만 그분을 주군처럼 모시지는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안 지사와 문 전 대표, 두 사람은 ‘노무현’이란 인물로 연결되고는 있으나 사실 이것 이외의 공통점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무엇보다 공적 영역에서의 인연이 없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오히려 달갑지 않게 맺어진 측면이 있습니다. 안 지사는 문 전 대표가 노무현정부 초대 민정수석 시절 만들었던 ‘친인척·측근 비리 우선 감시 대상’ 리스트에 올랐던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민정수석실에 근무했던 전직 비서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여정부 집권 첫해인 2003년 문재인 수석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친인척·측근 비리 예방이었고, 그때 30∼50여 명에 이르는 감시 명단 안에 당연히 안희정과 이광재가 들어 있었다.” 안 지사가 문 전 대표를 ‘정치 후배’로 간주하는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안 지사는 공사석에서 문 전 대표를 거론하면서 “정치적 경험, 정당 경력 등에서 내가 앞선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안 지사를 포함한 ‘금강팀’ 출신들 사이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문 전 대표가 일단의 책임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금강팀’ 출신의 한 인사는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 고생하다 가신 데에는 당시 문 수석이 친인척·측근 비리를 단호하게 막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생긴 거라는 원망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문 전 대표의 우유부단함이 일을 키우고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게 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치권에서 안 지사는 정치적 의제 선정 능력이 탁월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대연정론’을 던져놓고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이 대표적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안 지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어젠다 세팅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안보 분야에서도 보수층을 끌어들이는 흡입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미 정부 간 합의를 섣불리 변경할 수 없다”며 ‘우클릭 메시지’를 내놓았습니다. 선명성을 위해 좌파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와는 분명하게 차별화된 전략을 세운 데 대해 보수층이 박수를 보내는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는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안 지사를 지지하는 핵심 유인으로 작용합니다. 안 지사는 과거 노 전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정무팀장으로 일하며 당선에 일조했으나 대선자금 수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아 참여정부에서 공직을 맡지 못했습니다. 친노 유권자들 사이에는 노 전 대통령 대신 감옥에 갔지만 한 번도 원망하지 않은 안 지사에 대한 동정여론이 많습니다.
따라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안 지사가 친노 뿌리를 공유하는 문 전 대표와 벌일 ‘적통 경쟁’은 앞으로 전개될 대선 레이스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같은 흐름으로 볼 때 안 지사가 ‘페이스메이커’에서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에 점차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이념적으로 유연하고 정책적으로 넓은 스펙트럼을 보이면서 진보진영은 물론 중도·보수층을 껴안을 수 있는 확장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 지사가 극복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 글에서 문재인 전 대표의 선결과제에 대해 서술했듯이 안 지사도 대권가도에서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해야할 문제들이 있습니다. 현재 안 지사의 지지도가 상승하는 것과 함께 ‘NL 주사파’ 운동권 전력, 노무현정부 불법 대선자금 관리 및 유용 소문 또한 SNS를 타고 빠르게 전파되고 있습니다.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물고 오듯’ 계몽군주 시대 정치를 끝내겠다는 다짐에도 불구, 언제부터 중도였고 언제부터 법치와 시장경제를 중시했느냐는 비아냥도 나옵니다.
또한 사색적이고 진지한 반면에 말이 어렵고 사변적이라는 평가도 많습니다. 고려대 철학과 재학 시절 은사였던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안 지사와의 대담에서 “자넨 너무 추상적이야. ‘진지빤쓰’ 대신 유머 감각을 좀 배우게”라고 권하기도 했다는 후문입니다. 안 지사는 “과거 정치와 결별해야 한다”면서 대연정을 주창하지만 그 진정성을 의심받기도 합니다. 안 지사가 대권으로 가는 길목에서 보·혁 갈등과 진영 논리를 깨고 새 시대를 열 수 있다는 믿음을 유권자에게 보여줄 수 있을지가 중요합니다.
안 지사의 대선 주자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당초 만연하던 그가 ‘차차기’를 노릴 것이라는 주장이 쑥 들어갔습니다. 여론조사 1위를 고수하는 문 전 대표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는 전망,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순식간에 대선 주자로 만들었던 2002년의 ‘노풍’이 재현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시대교체, 탈 20세기 정치, 대연정이 그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반면 그의 지지도에 보수 진영의 역 선택론이 작용했다는 말도 흘러나옵니다. 대선 승리를 바라보기 어려운 보수층이 다음 정권에서의 위기관리를 위해 문 전 대표보다는 안 지사를 대통령감으로 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런저런 말과 설이 남무하고 있다는 것은 안 지사가 그만큼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벚꽃대선이 예성되는 가운데 향후 대권가도에서 안 지사가 진보는 물론 보수층까지 아우르는 정책을 얼마나 정교하고 일관성 있게 밀어붙일 수 있을지, 그리고 유권자들이 그가 주장하는 정책의 진정성을 얼마나 평가해 줄지의 여부가 대선 레이스의 최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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