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 속에서 조기대선이 가시화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세론이라는 표현을 받을 정도로 최근 대선 구도에서 가장 앞서가며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정권 교체를 원하는 민심의 주목을 받으면서 역시 선두권을 형성했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밀어냈고, 설 연휴를 거치면서 그 차이를 더욱 벌렸습니다. 이런 가운데 반 전 총장이 중도 하차하기에 이르렀고 차기 대통령 선거 구도는 야권으로 급격히 기울었습니다. 급기야 야권 주자 간의 본선 대결 전망까지 나오면서 야당 경선이 사실상 본선으로 간주됐던 2007년 대선 판도가 회자되기까지 합니다. 아울러 보수와 진보 정권이 10년마다 교체되는 주기설도 입길에 올랐습니다. 이 모두가 ‘문재인 대세론’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세론’이 온통 장밋빛 일색인 것만은 아닙니다. 문 전 대표에 대한 여론이 극과 극을 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권교체 열망에 기댄 지지층에서는 대세론을 말하고 있지만, ‘문재인만은 절대 안된다’는 강력한 반대가 엄존하는 것도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른바 ‘반문(재인) 정서’입니다. 문재인 캠프는 이를 “1위 주자를 견제하려는 정치권 움직임에 불과하다”고 일축합니다. 과연 반문정서는 1위 주자가 겪어야 할 숙명일까요? 아니면 문 전 대표가 대세론을 현실화하기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일까요?
반문정서의 시작은 참여정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호남에서의 돌풍을 기반으로 당 대선후보로 선출됐으며 결국 대권을 거머쥐었습니다. 이에 노 대통령은 청와대 인사수석에 호남 출신인 정찬용 수석을 임명하며 호남 배려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공직 추천 과정에서 추천된 일부 호남 인사들이 탈락하자, 그 화살은 공직후보 검증을 맡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 전 대표에게 향했습니다. 부산 출신 문 전 대표가 호남 인사의 기용을 가로막는다는 소문이 ‘호남 인사 홀대론’으로 확대된 것입니다.
문 전 대표 입장에서도 ‘호남 홀대론’은 아픈 대목입니다. 그는 지난달 광주에서 열린 ‘포럼광주’ 출범식에 참석해 “참여정부에서 장ㆍ차관 중 호남 비율이 가장 높았다”며 호남 홀대론을 반박했습니다. 호남의 ‘반문정서’가 정점에 이르렀던 지난해 4ㆍ13 총선 당시 정찬용 전 수석도 “총리, 장관, 4대 기관장 등 정무직 106명 중 29%인 31명이 호남 인사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참여정부 때 인사를 담당했던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 기관장에 추천된 호남 인사는 음주운전 전과를 문제 삼아 탈락시킨 반면, 부산 출신 인사는 뇌물 전과에도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며 형평성을 문제 삼았습니다.
참여정부 초기 대북송금 특검 결정과 새천년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것도 호남을 자극한 요인입니다. 또 문 전 대표가 2006년 부산에서 “대통령도 부산 출신인데, 왜 (현 정부를) 부산정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한 이른바 ‘부산정권’ 발언을 기억하는 호남 주민들이 많습니다. 노 대통령에 대한 호남의 몰표는 ‘호남 소외’를 끊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산정권’ 발언은 호남에 상처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호남 민심과 결합한 반문정서는 2015년 2ㆍ8 전당대회 때 박지원 의원(현 국민의당 대표)이 문 전 대표와 격돌하면서 다시 증폭됐습니다.
문 전 대표의 안보관은 반문정서의 또 다른 온상입니다. 특히 노년층과 대구ㆍ경북 등 보수 지역에서는 “대통령이 되면 미국보다 평양을 먼저 가겠다”는 그의 발언을 문제 삼아 문 전 대표를 ‘종북주의자’로 몰고 있습니다. 갖은 논란 속에서 최근 하차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을 문 전 대표가 전격 영입한 배경도 보수층의 뿌리 깊은 ‘좌파ㆍ종북’, ‘안보 불안’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보수 진영의 공세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18대 대선 때 새누리당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북방한계선(NLL) 대화록 논란을 제기하며 문 전 대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에서 NLL을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발언을 했다고 폭로했지만, 치열한 진실공방 끝에 대선 이후 해당 발언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밝혔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보수층의 안보 공세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한반도 배치에 대한 입장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 전 대표는 지난해 7월 “안보 측면에서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결정”이라며 재검토와 공론화를 요구했습니다. 사실상 ‘배치 반대’로 읽혔습니다. 같은 해 10월엔 “정부가 동맹국인 미국과 한 합의를 번복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한 발짝 물러나는 듯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러다 지난달에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실이 많다면 미국과 다시 협의해 바꿀 수 있고, 외교적 노력이 성공해 중국, 러시아가 동의하거나 반대가 최소화된다면 사드 배치를 그대로 할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문 전 대표의 안보관이 보수 진영의 일방적 공격 포인트가 되는 데는 문 전 대표의 책임도 없지 않습니다. 문 전 대표 측은 사드 논란과 관련해 “양국 합의를 존중하되, 차기 정부에서 공론화를 거쳐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이지만,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입장은 중도층의 불안을 가중시킬 뿐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참여정부에서 결정한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두고 오락가락했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문 전 대표가 지난해 말 언론 인터뷰에서 “(당선된다면) 북한을 먼저 가겠다”고 말한 대목은 치명적입니다. ‘사전에 미국 등 주변국에 충분한 설명을 하겠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북핵과 트럼프 미국 정부 출범 등으로 한반도 안보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여기에 더해 정치권에서는 반문정서의 핵심을 친문 내지 친노(무현) 진영의 배타적인 정치문화를 꼽고 있습니다. 친문의 뿌리인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당내 소수파였지만 기득권에 타협하지 않으면서 싸우는 모습에 국민들의 지지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현재, 노 대통령을 계승한 친문 인사들은 ‘패권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사정이고 보면 보수 진영의 의도적 공세일 수도 있지만 문 전 대표 스스로 반문정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에 문 전 대표가 반문정서를 극복하지 못하면 중도층 확장에 실패, 결국은 본선 경쟁력에서 뒤질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문 전 대표 측은 “양자구도에서 과반, 다자구도에서도 30%대 지지율을 얻는 주자에게 확장성을 논하는 것은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상대 진영에 의해 과장된 프레임에 불과하다”고 반박했습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문 전 대표가 대세론에 안주하기엔 이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한국갤럽이 지난 7~9일 전국 남녀 1007명을 조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차기 대선 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29%, 안희정 충남지사 19%,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11%를 기록했다. 문 전 대표는 3%포인트 하락했고 안 지사와 황 권한대행은 각각 9%포인트, 2%포인트 상승한 것입니다. 뒤를 이어 이재명 성남시장은 8%,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 7%,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3%, 손학규 전 민주당 의원 1%로 집계됐습니다. 이재명 시장은 1%포인트 오르고 안철수 의원과 유승민 의원, 그리고 손학규 의원은 전주와 그대로 동일한 지지도를 나타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하락세를 나타낸 반면 안희정 충남지사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상승한 것입니다. 특히 안 지사의 지지율 상승이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민주당내 경선에서 ‘문재인 대세론’에 맞설 대항마로 안 지사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형세이기 때문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야권 내 경선이 사실상의 본선대결이 될 공산이 큰 이번 19대 대선에서 문·안 양자 대결이 과거 2007년 17대 대선의 이명박·박근혜 양자대결의 데자뷰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과연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세론을 확장시키며 이번 대선의 최종고지를 넘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입니다.
'이런저런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병우 전 민정수석 ‘직권남용’ 혐의 구속영장 기각 (0) | 2017.02.22 |
---|---|
19대 대선, 안희정 지사 ‘문재인 대세론’ 극복할 수 있을까? (0) | 2017.02.17 |
19대 대선, 반기문 사퇴 반사이익 안희정 황교안에게로 (0) | 2017.02.03 |
반기문 전 총장 대권도전 20일 만에 불출마 선언 (0) | 2017.02.02 |
반기문 총장 23만 달러 수수의혹, 본격 시작된 후보검증 (0) | 2016.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