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

트럼프 대선 승리 후 미국을 강타한 ‘백인 우월주의’

Chris7 2016. 12. 18. 21:00

전 세계 많은 이들의 기대(?)와 예상을 뒤엎고 도널드 트럼프를 차기 대통령으로 선택한 미국이 대선 후 극심한 분열에 빠져든 모양새입니다. '트럼프는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라며 미국 주요 도시에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반대하는 시위가 번지는 것에 궤를 맞춰 봉인 해제된 백인우월주의가 곳곳에서 기승을 떨치고 있습니다. 대선기간 중 극심한 분열에 휩싸였던 미국이지만 그 여파가 선거후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일간지 USA 투데이에 따르면, 대선 직후 여러 학교에서 '미국을 다시 하얗게'(Make America White Again')이라는 낙서와 나치문양(하켄크로이츠)이 동시에 발견됐습니다. '미국을 다시 하얗게'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 당선인의 선거 구호를 미국을 백인의 세상으로 만들자는 내용으로 바꾼 것입니다. 뉴욕 주 웰스빌의 공원 담벼락에서 나치문양과 더불어 이 문구가 발견됐습니다. 미네소타 주 메이플 그로브의 한 고교 화장실에서는 '아프리카로 돌아가라', '오직 백인만', '트럼프와 함께 백인의 미국'이라는 문구도 나왔습니다.


텍사스 주 오스틴 인근 샌 마르코스의 텍사스 주립대학에서는 다른 인종 학생을 위협하는 전단이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전단에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공화당이 상·하원을 석권한 지금이 누군가를 흠씬 패줄 자경단을 조직해야 할 때'라면서 '말도 안 되는 다양성을 지껄여 온 일탈적인 대학 지도자들을 검거해 고문하자'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미국 내 무슬림을 공격하는 사례가 빈발하는 상황에서 캘리포니아 주 새너제이 주립대와 루이지애나 주 한 대학에서 여대생의 히잡을 벗기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가 칼로 무슬림 여대생을 위협했다는 트위터 제보도 인터넷을 돌고 있습니다. 전문가와 교육자들은 대선 후 벌어진 연쇄 인종차별적인 행동, 낙서, 범죄가 트럼프의 당선과 연계된 것으로 분석하면서 트럼프 당선인이 불안을 조장하는 이런 행동을 억제하는 데 주요한 노릇을 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펜스테이트 대학 문화센터 담당자인 카를로스 와일리는 USA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인종차별적 공격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 기간 인종 증오 성향을 숨겨온 이들의 반발로 보인다"면서 "트럼프의 당선으로 이제 내놓고 남을 경멸해도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와일리는 '통합'을 강조한 트럼프 당선인의 선거 승리 연설에서 안도했지만,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는 공약을 트럼프 당선인이 서둘러 실행하지 않으면 그의 지지자들이 분노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 화풀이할 가능성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덧붙였습니다.


미네소타 대학에서 사회학과 흑인 관련 학문을 가르치는 에니드 로건은 "트럼프의 승리는 백인우월주의자의 시각을 정당화했다"면서 "무슬림 사상 검증, 불법 이민자 강제 추방을 주장하고 멕시코 출신 이민자를 비하한 트럼프가 백인의 지지로 당선됐다"며 트럼프의 선동이 백인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이처럼 대선이후 미국을 강타하고 있는 ‘백인우월주의’의 저변에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케케묵은 차별 주의적 논조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우리가 남이가’는 지난 1992년 대선을 앞두고 부산 초원복국집에서 당시 민자당 후보였던 김영삼 후보를 당선시키자는 부산지역 정부기관장들 모임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영·호남 지역감정을 부추기자는 것이 골자입니다. 지역감정조장이 근본 기조였던 한국과는 달리 현재 미국에선 인종간 대결양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남이가’라는 근본 뉘앙스는 같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1992년 당시 정국을 강타한 초원복국집 사건정도였으면 당연히 유권자 민심이 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을 규탄하는 쪽으로 흘렀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이 사건에 자극받은 부산경남 지역민들이 ‘우리가 남이가’라며 결집했고 결국 김영삼 후보가 승리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남이가’ 포퓰리즘의 무서운 힘입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주술에 걸리면 윤리, 도덕, 대의명분, 이성, 수치심 등이 모두 사라지고 맙니다. 그저 똘똘 뭉쳐 다른 이들을 밟고 올라가 이겨야 한다는 집단심리만 남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이가’는 또, 우리 아닌 타자들의 결집도 초래합니다. 한쪽에서 뭉치면 반대쪽도 뭉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묻지마 집단들의 결사대립이 나타나고 나라는 쪼개집니다. 분열의 정치인 것입니다.


이번에 미국 대선의 트럼프가 그랬습니다. 트럼프는 백인들, 특히 그중에서도 남성들을 향해 ‘우리가 남이가’를 외쳤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존중하고 아우르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오로지 백인들, 백인남성들의 구미에 맞는 말만 했습니다. 이민자들을 조롱하고, 유색인들을 비하하고, 여성을 철저히 성적으로 대상화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민자들, 유색인들, 페미니즘으로 대표되는 다양성의 윤리적 가치에 속을 부글부글 끓이던 미국 백인들의 속마음을 후련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백인(남성)들 사이에 ‘우리가 남이가’라며 묻지마 트럼프로 대동단결이라는 집단심리가 나타난 것입니다.


어떤 집단을 향해 이런 전략을 펼 수 있는 건 그 집단이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백인이 다수가 아니었다면 트럼프는 절대로 유색인을 조롱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히스패닉이 다수였다면 그들의 입장에서 백인 고용주를 조롱했을 것입니다. 어찌됐건 다수에게 우리가 남이가 집단심리만 불러일으키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런 식의 ‘우리가 남이가’ 전략은 필연적으로 나라를 쪼갠다는 점입니다. 두고두고 후유증이 남게 됩니다. 기업은 특정 타겟만을 ‘우리 소비자’로 점찍어 마케팅을 해도 되지만 정치지도자는 반드시 전 국민을 아울러야 합니다. 트럼프는 사업가로서 오직 표의 수만을 계산해 타겟을 분명히 하는 일종의 마케팅 선거운동을 했을지 모르나, 그 대가로 미국엔 깊은 분열의 상처가 남았습니다.


트럼프는 또, 미국에 뿌리 깊은 ‘인민주의’적 분노도 활용했습니다. 지배 엘리트와 동부금융자본 등을 향한 서민의 분노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그 분노는 더욱 커졌는데, 트럼프는 자신이 정치신인이란 점을 내세워 이 분노를 가져갔습니다. 힐러리는 엘리트들과 함께하는 그들로, 트럼프는 서민과 함께 우리가 된 것입니다. 트럼프는 서민들의 경제적 열망을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걱정이 되는 것은 이게 남의 일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도 대통령 탄핵 정국의 여파로 조기 대선이 가시화된 상황입니다. 벌써부터 여러 정치인들이 대권잠룡으로 분류되며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미국에서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대두된 ‘백인우월주의’와 근본 궤를 같이하는 ‘우리가 남이가’ 현상이 한국에도 지역주의 망국병으로 진작부터 있어왔고, 양극화와 사회적 불안으로 인해 기득권층이나 기존 정치 엘리트들을 향한 분노도 커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트럼프처럼 후안무치한 포퓰리즘의 달인이 나타나 대중을 선동하고 국가를 분열시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과거 한국은 미국 민주주의를 따라가려고 노력했었지만 이젠 미국처럼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