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과 이변의 연속이었던 미국 대선 레이스가 마침내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미 정치권의 이단아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결과 역시 많은 이들의 예상을 뛰어넘은 이변이었습니다. 물론 미국 내 트럼프의 지지자들에겐 당연한 일이었지만 말입니다.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는 8일(현지시간) 597일의 대장정 끝에 이날 미국 전역에서 열린 대선 투표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대통령에 오르는 파란을 연출했습니다. 트럼프는 다음 날 오전 2시 30분께 대선 승리에 필요한 선거인단 과반인 270명을 넘겨 역사적인 대권을 거머쥐었습니다.
현지 시간 9일 오후 3시 미 CNN 집계 기준으로 트럼프는 선거인단 290명을 확보해 228명에 그친 클린턴을 압도했습니다. 미시간(선거인단 16명)과 뉴햄프셔(4명)의 개표 결과는 아직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의 전체 유권자 득표수는 5천946만여 표(47.5%)로 클린턴(5천967만여 표·47.7%)보다 약 21만 표 적지만 ‘승자독식제’의 간접선거제도 특성상 선거인단 확보 수에서는 큰 차이가 났습니다. 이번 선거 결과로 그의 러닝메이트인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도 부통령에 함께 당선됐습니다. 개표 결과, 트럼프는 3대 경합주인 플로리다(29명)와 오하이오(18명), 펜실베이니아(20명)를 석권하는 등 경합주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텍사스(38명)와 애리조나(11명) 등 전통적인 우세주를 대부분 지키는 기염을 토하며 비교적 쉽게 승부를 결정지었습니다.
3조 원의 자산가인 억만장자 부동산재벌로 공직·군 경력이 없는 '아웃사이더'가 미 대통령이 된 것은 사실상 240년 미국사 최초의 일입니다. 그는 내년 1월 20일 취임 시 만 70세로 미 최고령 대통령이 되는 기록도 세우게 됩니다. 이처럼 '아웃사이더' 대통령 시대가 열리면서 미국은 아직 가본 적이 없는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특히 지난해 6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걸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한 트럼프가 레이스 내내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을 주창한 것을 고려하면 그 충격파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미칠 것으로 전망됩니다. 또 한·미 동맹의 재조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전면 재협상을 밝힌 터라 한반도에 미칠 파장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트럼프가 당 경선에서 16명의 경쟁자를 차례로 꺾은 데 이어 퍼스트레이디와 상원의원, 국무장관을 역임하며 '가장 잘 준비된 후보'로 불린 클린턴까지 침몰시킨 것은 주류 기득권 정치에 대한 미국인의 광범위한 불만이 표출된 결과로 풀이됩니다. 특히 트럼프의 지지층인 백인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2008년 금융위기와 세계화 이후의 양극화와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 일자리 감소에 따른 중산층 붕괴, 월가와 결탁한 기득권 정치의 폐해 등을 심판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공화당은 8년 만에 대통령을 배출해 정권을 되찾은 데 이어 상·하원 다수당을 모두 지켜냄으로써 10년 만에 백악관과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이메일 스캔들'에 시종 발목이 잡혔던 클린턴은 '역대급 비호감'의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8년 전에 이은 대권 재수에 실패하면서 미국사 최초의 여성 대통령 꿈을 결국 접고 정치권을 떠나게 됐습니다. 민주당은 '8년 통치'의 벽을 넘지 못하고 3연속 정권 연장에 실패하며 야당으로 전락했습니다.
1946년 독일계 이민자 2세의 차남으로 태어난 트럼프는 부친으로부터 1971년 부동산업체 '엘리자베스 트럼프 &선'의 경영권을 물려받은뒤 지금의 '트럼프그룹'으로 일군 경영인 출신입니다. 비록 중도에 접어 세간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2000년 개혁당 대선 경선에 출마하는 등 1차례 대권에 도전한 바 있습니다. 그를 일약 명사로 키워준 것은 유명한 대사 '넌 해고야'라는 말이 유행한 리얼리티 TV쇼 '어프렌티스'입니다. 트럼프는 이 쇼를 진행하면서 전국적 인물로 부상했고, 그렇게 알린 이름을 바탕으로 대권 도전을 행동에 옮겼습니다.
지난해 6월 대선출마를 선언한 트럼프는 일성으로 멕시코에 장벽설치를 내세우며 불법이민자 추방 등을 공약했으며 시종 여성비하와 반 이슬람 등 인종차별 막말과 기행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더 이상 미국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할 수 없다는 그의 고립주의와 보호무역 주장 역시 미국 안팎을 뒤흔들었습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 등과 결탁한 기성 정치권에 대한 공격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미국 우선주의'는 이민자와 주류 정치인 등에게 불만과 좌절을 품은 백인과 서민들의 마음을 파고들며 두터운 지지층을 형성했습니다.
그러나 대선 후반 트럼프는 '음담패설 녹음파일' 파일 파문과 과거 잇단 여성 성추행 의혹으로 벼랑 끝 위기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선을 11일 앞둔 지난달 28일 연방수사국(FBI) 제임스 코미 국장이 '대선 개입' 논란을 부른 클린턴의 '이메일 재수사'를 발표하면서 두 자릿수 로 뒤지던 트럼프는 급반등하며 그의 역전승의 기반을 만들어줬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당장 트럼프는 상·하원을 장악한 공화당과 더불어 이민개혁 행정명령과 오바마케어 등 '오바마 업적'의 백지화에 나설 전망입니다. 경선 기간 악감정이 쌓인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에 대한 대대적인 재수사를 지시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번 대선이 상대에 대한 엄청난 인신공격과 진흙탕 싸움으로 '역사상 가장 추잡한 선거', '막장극'으로 불렸던 만큼 트럼프로서는 두 쪽으로 쪼개진 미국 사회를 통합하는 과제를 당장 마주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레이스 내내 여성과 이민자, 외국인 등에 대한 혐오·비하 발언을 일삼아온 '트럼프 대통령' 시대의 미국은 더한 분열상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이번 미국 대선은 민주당 클린턴 후보의 완패입니다. 비록 전체 유권자 득표수에 있어선 클린턴이 소폭 앞서긴 했으나 미국 대통령은 주별로 ‘승자독식제’에 의한 간접선거방식을 취합니다. 그리고 미국 내 전체 50개 주에서 거의 40개 이상의 주들은 일반적으로 공화·민주 양당에 대한 지지세가 전통적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결국 선거는 대략 10여개주의 경합 주들에 의해 그 향배가 결정됩니다. 그중에서도 선거인단 수가 많은 플로리다(29), 펜실베니아(20), 오하이오(18)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15) 등의 4개주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클린턴은 이들 4개주에서 모두 패했습니다. 거기다 전통적 민주당 우세지역인 중서부의 미시건과 위스콘신까지 공화당의 트럼프에게 내 주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클린턴 캠프는 그 많은 선거자금과 인력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의심스럽기 까지 한 것입니다.
이제 ‘대통령 트럼프’라는 설마 하던 일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고 말았습니다. 물론 이번 미국대선의 양대 축중 하나였던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을 평소 지지했거나 그에 대한 호감이 높았던건 당연히 아닙니다. 오히려 클린턴은 예전 제가 미국생활 시절부터 이념적 정치적 관점을 떠나 그냥 인간적으로 비호감 이었습니다. 하지만 공화당의 트럼프가 워낙 강성인데다 일반적 이미지의 미국 대통령과는 거리감이 큰 인물이기에 두 후보 중 그나마 클린턴이다 였던 것일 뿐입니다.
트럼프의 경우 여성과 유색인종 그리고 무슬림들에 대한 험한 발언과 행동이 문제가 되는건 실제 그의 인간성이 저렴(?)해서 라기 보단 그런 과격한 언행을 선거 승리를 위한 도구로 사용 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결과를 위해선 수단과 방법이 문제시 되지 않는다는걸 몸소 실천한 것입니다. 안보와 통상 부분에서 한국과 독일 등 전통적 우방 국가들에 대한 트집 잡기식 공격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에선 백인 남성 유권자들을 타겟으로 한 그와 그의 선거캠프의 전략이 이번 대선 승리의 주요 포인트라 분석하기도 합니다. 일면 근거가 있는 분석이지만, 분명한건 트럼프의 이번 대선 승리로 선거 메카니즘적 측면에서 미국 정치 더 나아가 서구권 정치는 일보 크게 후퇴했다 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일국의 최고 지도자라면 일반 대중에게 있어 그의 생각과 판단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높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클린턴은 그가 특정 분야, 혹은 특정 이슈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 판단하고 행동할지 일정 수준 예측 가능하다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트럼프는 어디로 튈지 모르 럭비공 같은 사람입니다. 제가 판단하는 인간 트럼프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입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언행들은 어느 정도까진 그의 실제 인간성이 투영되었겠지만 상당부분은 선거 기획적 판단에 다른 것이었다고 봅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 대통령으로서 앞으로 마탁드릴 수많은 난제들 앞에서 과연 ‘대통령 트럼프’가 어떤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할 지 종잡을 수 없을 것이란데 문제가 있습니다. 극단적으론 국가의 먼 안목을 보고 판단하는게 아니라 실제 자신의 생각은 아니지만 당시의 대중에 입맛에 맞는 인기 영합적 결정을 할 수 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전에도 수차례 언급했듯이 미국은 삼권분립이 철저하고 권력의 쏠림에 대한 병적인 거부감이 큰 국가이기에 대통령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비록 ‘대선후보 트럼프’가 치열한 선거 과정에선 심하다 싶을 정도로 과격한 언행을 일삼았으나 ‘대통령 트럼프’는 다를 것입니다(그렇게 되길 기대합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트럼프는 지극히 현실적 인물입니다. 이제 백악관의 주인이 되었으니 그에 맞는 이미지와 행동들을 할 것입니다. 일부 희망 섞인 기대이긴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분명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줄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전 세계 많은 이들과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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