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

박근혜 대통령의 제왕적 통치와 국민과의 불통

Chris7 2016. 11. 3. 09:13

대한민국이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일컬어지는 최순실의 국정농단 파문의 충격에서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하는 가운데 총리와 경제부총리 등을 교체하는 부분개각이 발표되었습니다. 박 대통령으로선 파국으로 치닫는 국정을 수습하기위한 조치라고 했으나 이로 인해 정국은 오히려 더 꼬이는 형국입니다. 새 총리로 지명된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 실장과 교육 부총리를 지낸 친노 인사입니다. 보수색채의 현 정권에서 친노 인사가 총리로 지명된 것을 두고 예전 같으면 파격적 인사라 할 수 있었겠으나 시국이 시국인지라 야권에선 자신들과 사전 교감이 전혀 없었다는 이유에서 격렬히 반대 하며 인사 청문회 거부의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여전히 현 시국을 바라보는 인식이 안이하며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을 의사는 없다는 것이 야권의 판단입니다.



대국민사과 전 인사하는 박 대통령



한때 민주당내 인사 중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가 새 총리 물망에 오르기도 했었는데 김 전 대표는 한때 박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관계가 멀어져 결국 정치적 반대 선상에 선 인물이기도 합니다. 세간에서 말하는 ‘탈박’ 인사인 것입니다. 정치권에선 과거 박근혜 대통령 계파였다가 시간이 지나며 결국 등을 지게 된 사람들이 유독 많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들이 ‘친박’을 넘어 ‘원박’이니 ‘진박’이니 ‘탈박’이니 하는 용어 들입니다. 과거 박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처음으로 '친박'을 결성했을 때의 멤버 70% 이상이 현재 등을 돌렸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는 "박 대통령은 우리를 신하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이 얘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일단 그렇게 느꼈다는 것입니다. 당 대표와 따르는 의원이 왕과 신하 같았다면 대통령이 된 지금은 아랫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은 대목입니다.


사실 박 대통령은 보통 사람들 상식으로는 잘 납득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일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는 초선 의원으로 당선되자마자 비서실장을 두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정윤회입니다. 당 대표 외엔 당의 최고 간부인 사무총장이나 정책위의장도 비서실장을 두지 않는데 말입니다. 당 대표만 비서실장을 둔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도 굳이 비서실장을 두었습니다. 전무후무할 일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나는 너희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요?


열렬 ‘친박’이었다가 완전히 갈라선 사람이 전하는 말에도 믿기 힘든 내용이 있습니다. 과거 그 의원이 박 대표를 모시고 차를 타고 이동할 때 박 대표 옆자리에 앉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박 대표 비서들이 앞으로는 운전석 옆 흔히 조수석이라고 부르는 자리에 앉으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당 대표와 의원 사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얘기입니다.


박 대통령은 대표 시절 아무리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밖에서 자율적으로 말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언론에 '모 의원'이라고 이름을 밝히지 않고 무슨 말을 하면 끝까지 그게 누군지 찾아내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이런 전화 한두 번 받게 되면 다들 입을 다물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박 대통령 옆을 떠났습니다. 한 사람은 "내가 머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말을 하면 모두 일제히 받아 적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하는 말을 다 받아 적는 게 뭐가 이상하냐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박 대통령 주변엔 신비주의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언제 출근하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청와대 비서실장도 모를 때가 있습니다. 세월호 사고 때 그렇게 혼이 나고도 메르스 사태 때 또 담당 장관이 대면 보고를 하는 데 6일이나 걸렸습니다. 사람들은 대체 왜 그러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답답해합니다. 그런데 대통령과 장관의 관계가 아니라 왕과 신하의 관계라고 생각하고 이 모든 일들을 보면 이상하지 않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 시절 수석들은 업무보고를 대통령이 아닌 비서실장에게도 했다고 합니다. 김 비서실장은 "윗분의 뜻을 받들어"와 같은 왕조시대 용어를 써서 대통령을 받들었습니다. 그러니 대통령과 장관·수석 사이는 군신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벌어졌음은 불울 보듯 뻔합니다. 대통령이 장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경질하면 그만입니다. 그러지 않고 2014년 유진룡 문화부 장관의 경우처럼 사상 초유의 면직 발표까지 한 것은 대통령이 법률상 임면권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부하나 신하의 불충을 응징한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거의 무조건적인 지지입니다(뭐, 얼마전까지의 일입니다만...). 박 대통령이 과거 선거 유세에 나가면 어디서나 열렬한 환호에 휩싸였습니다. 전라도에서도 사람들이 뛰어나와 '박근혜'를 보려고 몰려들었습니다. 미장원에서 파마를 하다 그대로 달려나와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정치적 지지가 아니라 애정에 가까웠습니다. 박 대통령 가문을 향한 애잔한 마음도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정치인은 그 말고는 우리나라에 아무도 없습니다. 박 대통령이 '나는 일반 정치인이 아니다'는 생각을 할만도 합니다.



박 대통령은 열두 살 때 청와대에 들어가 18년간 물러나지 않을 것 같은 통치자의 딸로 살았습니다. 그를 '공주'라고 부른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는 시대였습니다. 나중에는 퍼스트레이디의 역할까지 했습니다. 열두 살부터 서른 살까지의 생활이 사람의 인격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모두가 알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나온 뒤 18년간은 사회와 사실상 분리된 채 살았습니다. 공주에서 공화국의 시민으로 자연스럽게 내려올 수 있었던 그 기간을 일종의 공백기로 보냈습니다. 박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 날 언론은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 됐다'고 썼지만 박 대통령을 잘 아는 사람들 중에는 그때 이미 "공주가 여왕 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박 대통령의 불통 논란에 대해 어떤 이는 '왕과 공화국 사이의 불통'이라고 했습니다. 대통령과 국민이 다른 시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는 얘기인데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국회의원이라면 진저리를 치는데도 박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유승민)를 배신자라며 쫓아내는 데 대해서만은 부정적 여론이 높았습니다. 왕이 군림하는 듯한 모습을 본 공화국 시민들의 반응일 것입니다.



지난 4.13총선으로 20대 국회는 ‘여소야대’ 정국이 되었습니다. 과거 ‘선거의 여왕’이란 칭호를 받을 만큼 각종 선거에 강한 모습을 보여 왔던 박대통령 이었지만 그 약발이 다된 것입니다. 뒤늦었지만 그때라도 그는 국민과 소통을 하려 노력했어야 했습니다. 총선 후 여야 원내대표단과 만난 박대통령은 향후 주기적 회동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대통령과 국민과의 불통은 그 후로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다 터질게 터지고 말았습니다. 알고 보니 대통령이 자신의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 그리고 국회와는 단절한 채 아무것도 아닌 최순실이라는 사람과 국정을 논의했다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이 여왕이라고 해도 개인 이익을 추구하는 여왕이 아니라 종일 나라를 생각하는 여왕이라면 그나마 괜찮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아무리 나라 걱정을 하고 잘해 보려고 해도 그게 옛날 제왕식이면 통하기 어렵습니다. 그동안 이러한 제왕적 통치 스타일로 인해 참으로 많은 이들이 환멸을 느껴왔습니다. 몸에 밴 사고 체계와 스타일을 바꿀 수 없다면 '인자하고 겸허한 여왕'이기라도 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 놓인 박 대통령의 실체는 그렇지 못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소 우리국민의 삼분의 일은 여전히 그를 지지했습니다. 허나 작금의 상황은 그에 대한 지지율이 한자리 수로 떨어져 역대 대통령 지지율 최저치(IMF 후 김영삼 전 대통령의 6% 대)를 갱신 할 판입니다. 변할 것 같지도 않지만 변해도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