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3일 오후 오스미 요시노리(71) 도쿄공업대 명예교수가 선정되자 3년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 열도가 환호에 휩싸였습니다. 2014년 물리학상, 2015년 생리의학상과 물리학상에 이어 이번에도 일본 학자가 노벨상을 받은 것입니다. 생리의학상에서는 2년 연속 수상자를 내는 등 기초과학 분야에서 일본은 특히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23명으로 늘게 됐습니다. 이번에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오스미 교수는 일본 언론이 일찌감치 생리의학상 수상자 후보로 꼽아왔던 일본인 연구자 중 1명이기도 합니다. 특히 올해는 공동수상이 아닌 오스미 교수 단독 수상이라 일본이 더더욱 들떠 있는듯 합니다.
일본의 기초과학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연구자들의 성실하고 꼼꼼한 연구자세도 있지만 국가의 과감하고 장기적인 투자가 첫손으로 꼽힙니다.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오무라 사토시 기타사토대 특별영예교수는 소규모 지방대학을 나와 평생 묵묵히 연구에 몰두해온 ‘일본형 과학자’의 표본입니다. 2014년 물리학상을 받은 미국 국적의 나카무라 슈지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해 끈질기게 연구를 거듭해 과학적 업적을 쌓았습니다. 시코쿠의 에히메현에서 나고 자란 나카무라는 “지방에서 태어나, 지방대를 졸업하고, 지방기업에 취직해 내가 하고 싶은 연구에 몰두했더니 노벨상을 받게 되더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었습니다.
지난해 도쿄대 가지타 다카아키 교수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것은 정부의 과감하고 장기적인 투자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관측장비인 ‘슈퍼 가미오칸데’를 건설한 것이 수상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가지타 교수가 중성미자의 질량을 발견해낸 실험실인 ‘슈퍼 가미오칸데’는 기후현 가미오카 광산의 지하 1000m에 설치된 초대형 시설입니다.
아리마 아키토 전 도쿄대 총장이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기초과학 연구의 중요성을 호소하며 이 시설을 설치하도록 발 벗고 나섰던 일화는 유명합니다. 아리마는 1990년대에 “이 시설만 만들어주면 노벨상을 2개는 받을 수 있다”며 아소 다로 등 유력 정치인들을 설득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수십억 엔이 투입된 시설이 만들어졌고, 고시바 마사토시 도쿄대 특별영예교수의 2002년 수상과 가지타 교수의 지난해 수상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기초과학에서 정부 투자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일본 정부는 2001년 ‘앞으로 50년 동안 노벨상 수상자를 30명 정도 배출한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이미 목표의 절반 가까이를 달성한 셈이 됐습니다. 2001년 이후 과학분야 수상자는 오스미까지 14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문부과학성의 노벨상 정책 등에 관여해온 아리모토 다테오 일본 정책연구대학원대학 교수는 “일본은 20~30년 전부터 여러 분야에서 진행된 수만 건의 연구에 자금을 지원해 왔으며 최근 그 성과가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현재로선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입니다. 의학·과학 분야에서는 수상자가 전무한 데다 유력 후보군으로 이름을 올린 경우도 없습니다. 한국이 기초과학 투자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1989년 기초연구진흥종합계획을 마련하면서부터입니다. 일본보다 100년 이상 늦은 셈입니다. 한국 정부의 R&D 예산이 1조원을 넘긴 것은 1993년이 돼서입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일본과 한국은 출발선이 달랐다”고 말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과학교육에 대한 차이도 거론됩니다. 차 연구위원은 “일본은 어린이를 위한 교양과학도서가 다양하게 출판돼 있으며, 이는 어린 시절 과학에 흥미를 갖게 하는 요인”이라고 말했습니다. 노벨상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만, 기초과학 연구를 활성화하려면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연구를 지원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알서도 언급했듯이 이번 오스미 교수의 노벨상 수상으로 일본은 3년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인이 3년 연속 노벨상을 받는 것은 이번이 14년 만에 두 번째입니다. 2000~2002년 사이 일본에선 화학상과 물리학상 분야에서 4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습니다. 특히 2002년에는 학사 출신의 민간 기업 회사원이던 다나카 고이치씨가 화학상을 받아 화제이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 경기 침체 상황에서 노벨상 수상으로 자신감을 얻었던 일본은 이제 14년을 뛰어넘어 3년 연속 수상으로 또다시 자긍심을 얻게 됐습니다. 이로써 노벨상을 받은 일본인은 2명의 미국 국적 취득자를 포함해 25명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중 생리의학상 수상자는 올해의 오스미 교수 포함 모두 4명입니다.
한국의 노벨상 수상자는 과학분야가 아닌 평화상을 수상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합니다. 일본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때마다 우리 국내 언론은 기초과학분야에서의 한국과 일본의 차이와 그 원인 등을 비교 분석하곤 합니다. 3년째 반복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때뿐입니다. 청소년들의 가장 인기 있는 직업군은 보이그룹과 걸그룹 등의 아이돌을 포함한 연예인이 된지 이미 오래입니다. 예전처럼 그저 막연하게나마 과학자가 꿈이라고 말하는 어린이들조차 더 이상 없다는 것입니다. 공대를 나와 어렵사리 연구원이 되더라도 비정규직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도 힘든게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벨상 수상은 말 그대로 ‘언감생심’ 꿈같은 일일뿐입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한국과 일본을 자주 비교합니다. 하지만 많은 분야에서 우리와 일본은 비교불가인 경우가 허다한게 현실입니다. 기초과학 분야가 그 명암을 극렬하게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미국과 유럽 등의 서구권에서 한국과 일본을 보는 눈에는 현저한 온도차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일본은 아시아권이지만 같은 선진국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일본의 경제력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회저변의 수준과 기초과학분야에서의 노벨상 수상 같은 것들이 모이고 모여 그들의 인식을 고착화 시킨 것입니다. 물론 서구인들의 이런 인식에는 일본 정부차원의 막대한 투자와 노력 등도 포함됩니다. 서구권 대학들에 일본관력 학과 설치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겠습니다. 저변에서부터 일본에 대한 서구인들의 이해와 호감도를 높인다는 것입니다.
다소 이야기가 옆길로 새고 말았습니다만, 이처럼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그 격차가 커지고 있습니다. 물리학과 천체학·생리의학 등의 분야에서의 차이는 이미 따라잡기 힘든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게 하고 있습니다. 한때 ‘체세포 배양’ 같은 생명과학 분야에서 일말의 희망이 보이기도 했지만 ‘황우석 파동’을 거치며 이마저도 이니셔티브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언제까지 옆 나라의 노벨상 수상을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하는지...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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