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

미 대선, ‘음담패설 녹음파일’로 후보 사퇴 위기에 놓인 트럼프

Chris7 2016. 10. 9. 14:30

2016년 미 대선레이스가 막바지에 이르며 그 종착역을 한 달여 앞둔 가운데 후보 간 2차 TV 토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 1차 TV 토론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완패한 것으로 분석되며 지지율면에서 다소 뒤처지고 있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게 또 하나의 악재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바로 ‘음담패설 녹음파일’이 그것입니다. 그간 트럼프는 무슬림 비하, 히스패닉 비하 등 미국 내 소수 계층에 대한 비하발언을 일삼으며 자심의 주 지지계층인 백인 남성들을 겨냥한 정치 마케팅(?)을 일삼아 왔습니다. 여성비하 발언도 그것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그 여파가 심상치 않을것 같습니다. 선거일을 코앞에 두고 불거진 일이라 더더욱 그렇습니다. 당내에선 사퇴 압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국 내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가 7일(현지 시각) 공개한 보도에 따르면 문제의 녹음 테이프에는 트럼프가 11년 전 저속한 용어로 유부녀를 유혹한 경험, 여성의 신체 부위를 상스럽게 표현한 발언이 담겨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WP)가 단독 입수해 공개한 3분6초짜리 녹취록은 11년 전 당시 59세였던 트럼프가 한 드라마에 카메오로 출연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같이 타고 있던 미 연예 프로그램 ‘액세스 할리우드’의 진행자 빌리 부시와 나눈 대화를 담고 있습니다. 빌리 부시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사촌이기도 합니다. WP는 이 대화가 트럼프가 지금의 아내인 멜라니아와 결혼한 지 9개월이 지난 2005년 10월께 녹음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처럼 입에 담기조차 꺼려지는 저속한 내용이 포함된 녹음 파일이 공개되자 공화당 내부에서는 후보직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으며, 8일(현지시각) 트럼프와 ‘공화당 1인자’ 폴 라이언(위스콘신) 하원의장이 함께 진행하려던 위스콘신 유세도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공화당 인사들은 일제히 “구역질이 난다”(라이언 하원의장), “혐오스럽고 용납이 안된다”(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 “변명의 여지가 없는 충격적이고 부적절한 발언이다”(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등 비난 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인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 부부도 큰 충격에 휩싸였으며, 특히 그의 부인 카렌 여사는 격노했다고 AP통신이 전했습니다.


펜스는 성명을 내고 "남편과 아버지로서 영상에 등장하는 트럼프의 발언에 상처를 받았고 그의 발언은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처럼 대통령 후보와 같은 당적을 가진 부통령 후보가 대선후보를 비판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펜스는 현재 트럼프와의 공동 유세 참석 계획을 취소한 상황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원의원, 주지사 등 공화당 인사 10여 명은 트럼프의 후보직 사퇴를 요구하고 있으며, 벤 새스(네브래스카) 상원의원은 트위터에서 아예 트럼프 대신 펜스가 대선후보로 나서야 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트럼프는 여성들에게 직접 사과하고, 또 여성에 대한 존경심이 눈곱만치도 없는 발언들에 대해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습니다.


트럼프는 지난해 6월 대선 출마 이후 폭스뉴스의 여성 앵커 메긴 켈리를 ‘빔보’(bimbo: 섹시한 외모에 머리 빈 여자를 폄하하는 비속어)라고 부르고 경선 경쟁자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팩커드(HP) 최고경영자의 얼굴을 못생겼다고 조롱하는 등 숱한 여성비하 발언을 일삼아왔지만 이번 ‘음담패설 녹음파일’은 이전의 그 어떤 것보다 큰 파장을 일으키며 그를 최악의 궁지로 내몰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음담패설 녹음파일’ 공개 후 트럼프의 다른 과거 성추문 의혹도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어 트럼프의 여성비하 논란은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큽니다. 벌써 ‘이대로 선거가 끝나는 것 아니냐’는 때 이른 관측까지 나오는 형국입니다.


이에 대해 민주당과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현재 물 만난 고기마냥 경쟁자인 트럼프의 여성비하 발언을 맹비난하면서 총공격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클린턴은 트위터에서 “이것은 아주 끔찍하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민주당내 서열1위인 해리 리드(네바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성명에서 “이 나라를 위해 제발 공화당의 동료들이 여성에 대한 성적 공격을 자랑삼아 떠드는 남자를 지지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이런 일탈자, 사이코패스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공화당원들도 인정해야 한다”고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자신은 이런 논란들을 일축하며 자진 사퇴는 없다면 경선 완주를 외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선 레이스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고 지금도 큰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여름 공화·민주 양당의 예비 경선이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번 미 대선은 공화당의 젭 부시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간 양자대결이 확실시되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도널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라는 의외의 ‘아웃사이더’ 인물들이 양당 예비 경선판을 뒤흔들며 대선 레이스 전체 판도를 뒤바꾸고 말았습니다. 비록 민주당에선 샌더스가 젊은 층 이외로의 외연 확장에 실패하며 클린턴이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지만 공화당에선 트럼프가 그 누구도 예상 못한 일단 파란을 일으키며 결국 대선후보 자리를 꽤 차고 말았습니다. 이를 두고 국내외 언론매체와 정치 전문가들이 기성 정치권에 실망한 젊은 층과 저성장 기조 속에 살기가 팍팍해진 노동자 계층의 불만의 폭발이라는 등의 이런저런 원인과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일면 모두 맞는 말들입니다. 구태에 빠진 기성 정치권에 실망한 젊은 층들이 평생을 ‘아웃사이더’로 정치인생을 살아온 자칭 ‘사회주의자’ 샌더스에게 열광한 것이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내 제조업이 다소 살아났다고는 하나 여전히 저성장의 굴레에서 힘든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 내 노동자 계층이 자신들의 불만을 거친 언행으로 대변하는 듯한 트럼프에게 전폭적 지지를 보낸 것 모두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트럼프의 지지자들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다소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즉 그의 주 지지계층인 백인 남성, 그 중에서도 백인 블루칼라층이 가진 민주당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와 여성 대통령 후보 클린턴에 대한 반감이 그 것입니다. 바로 유색인종과 여성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트럼프의 거친 언행으로 인해 대리 만족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트럼프는 공화당의 대선후보가 되었고 민주당의 클린턴과 내달 8일 본선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투표일을 한 달 여 앞두고 터진 대형악재로 인해 트럼프는 최대의 위기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하루 후면 대선 후보간 TV 2차토론 까지 열리게 됩니다. 당연 이번 ‘음담패설 녹음파일’이슈가 최대 화두로 대두될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지난해 경선 초기 트럼프의 공화당 경선 참여가 민주당의 클린턴을 돕기 위한 ‘트로이의 목마’ 전략이 아니냐는 음모론이 일부에서 돌기도 했습니다. 물론 가능성이 낮은 말 그대로 음모론일 뿐입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판세가 일면 음모론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요? 우연의 일치이겠지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순진하게...


과거 힐러리의 남편 빌 클린턴이 1992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현직 대통령이었던 조지 H. 부시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에도 로스 페로라는 보수성향의 제3후보가 거의 2천만 표에 달하는 득표를 하며 부시 대통령의 표를 깎아 먹는 바람에 큰 덕을 본적이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트럼프가 대충 공화당 예비경선에서 바람을 일으키다 당내 경선 불공정 등을 이유로 탈당 후 제3후보로 대선 레이스를 완주하며 보수층 표를 일부 끌어가면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클린턴을 간접적으로 돕게 된다는 것이 음모론의 골자입니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음모론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다만 트럼프가 직접 공화당의 후보가 되었다는 점만 다를뿐...


공화당의 트럼프와 민주당의 클린턴은 역대 미국 대선 사상 최고의 비호감 후보들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대선 자체가 두 후보 간 비호감 콘테스트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이런 가운데 비호감 요소를 하나 더 늘이며 클린턴을 상대적으로 덜 비호감으로 보이게 만들고 있는 이가 바로 트럼프입니다. 사실 이번 미 대선은 공화당에서 웬만한 후보만 나온다면 민주당의 클린턴을 꺾고 백악관에 입성할 가능성이 아주 큰 선거였습니다. 물론 이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도 있겠으나 저 개인적으론 그렇게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선전의 흐름은 의외의 ‘아웃사이더’로 인해 묘하게 변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때문입니다. 위에 언급한 음모론은 그저 가십거리로 치부 하더라도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에게 있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는 단순한 상대당의 정치적 경쟁자가 아닌 ‘공생공사’하는 파트너가 된 듯한 착각까지 일으키게 하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아니면 클린턴이 가진 역대급 비호감을 그 누가 상쇄시켜 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묘한 대선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