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선을 1년 2개월여 가량 앞두고 여·야의 대권 잠룡들이 활동 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더민주의 문재인 전 대표가 지지율 1·2위를 계속해서 달리고 있습니다. 아직 임기가 끝나지 않은 관계로 정확한 입장 표명은 없으나 반 총장의 경우 거의 여권 주자로 굳혀지는 듯한 인상입니다. 2개월 후 임기를 마치고 국내에 귀국한 뒤엔 또 어찌 바뀔지 알 순 없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야권엔 문 전 대표 외에도 국민의당의 안철수 전 공동대표에다 최근 정치권에 복귀한 손학규 전 상임고문까지 대중적 인지도 높은 잠룡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반 총장의 행보에 따라 당내 대선 후보 선출과정에 유동성이 큰 상황입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전당대회 결과와 당 인적 구성을 놓고 볼 때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선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현재로선 가장 높다하겠습니다. 박원순 시장과 안희정 지사 그리고 김부겸 의원 등 당내 여타 후보들로선 쉽지 않은 경선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들 후발주자들에게 2002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대세론을 등에 업은 이인제 후보를 꺾고 대역전극을 펼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좋은 롤모델이 될 것입니다..
본선이라 할 수 있는 대선승리를 위해선 예선격인 당내 경선과정의 흥행이 중요합니다. 현재 10년 보수정권에서 야권으로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는 하나 야권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흥행에 참패하면 2017년 12월 대선에서 야권의 정권 창출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진다 하겠습니다. 대선 후보 경선은 야권 전체가 사활을 걸어야 하는 정치적 이벤트이기도 한 것입니다.
지난 2002년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은 높은 관심 속에 진행됐습니다. 경선 참여를 신청한 사람만 190만 명 이었습니다. 유령 당원 등 허수가 존재한다고 하지만 수백만 명이 참여를 신청했다는 건 경선 자체가 야권의 대선 후보의 주목도를 높이는 효과로 작용한 것을 의미합니다.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도 시민들의 경선 참여 숫자가 흥행 여부를 결정짓는 첫 번째 분수령이 될 수 있습니다. 짧은 경선 참여 모집 시기 동안 폭발적인 호응을 받을 수 있도록 손쉬운 경선 참여 방식을 도입해야 하는 것은 물론, 흥행 요소를 발굴하는 게 필요합니다.
2002년의 경선 이전 민주당 정당 지지율은 10%대를 기록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 정당 지지율은 후보 지지율과 동반해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경선이 흥행하자 자연스레 당 지지율도 함께 오른 것입니다. 2002년 경선은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소수파가 이인제 후보의 대세론을 꺾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정치인의 캐릭터가 갖는 힘을 실감케 했습니다.
2002년 3월경선 직전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은 무려 46.5%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1~2%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경선 통과 이후 우여곡절 끝에 대선 후보가 되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맞붙은 결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48.9%, 이회창 후보는 46.6%로 나왔습니다.
초반 지지율에서 볼 수 있듯이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은 극히 낮았습니다. ‘이인제 대세론’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제 후보는 지난 1998년 새천년국민회의에 입당한 뒤, 차기 대통령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며 가장 유력한 주자로 꼽혔었습니다. 경선을 하기 전부터 민주당이 이인제 후보를 밀고 있다는 소문까지 퍼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2년 3월 9일 첫 경선 지역이었던 제주도 표결 결과 한화갑 후보가 이인제 후보를 꺾고 1위를 차지해 이변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어 울산 지역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1위를 차지하더니 광주에서 모든 예상을 깨고 또다시 1위를 거머쥐면서 선거 판도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김근태 후보가 사퇴하고 유종근 후보가 경선 포기한데 이어 한화갑 후보마저도 광주 경선 이후 사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김중권 후보도 사퇴하면서 노 전 대통령은 이인제 후보와 2강 구도로 정면 승부를 펼치게 됩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남과 전북, 경북에서 과반 득표율을 얻었고, 결국 이인제 후보는 4월 17일 후보 사퇴 선언을 하게 됩니다.
한자리수 지지율에 불과했던 노 전 대통령이 대세론의 이인제 후보를 꺾을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가 꼽히고 있습니다. 우선, 스토리가 있는 정치인에 대한 소구력을 첫 번째로 꼽을 수 있습니다. 가난한 농민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노 전 대통령은 막노동을 하다 군에 입대하고 제대한 뒤 사법시험에 도전해 합격했습니다. 조세 변호사로 이름을 날렸지만 1981년 ‘부림사건’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로 거듭났고 1987년 6월 항쟁에서 부산 지역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서게 됩니다.
특히 1988년 제도권 정치에 입문해 ‘5공비리조사특위’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밀어붙이면서 청문회 스타가 됐고 3당 합당에 반발하면서 소신을 지킨 정치인으로 기억됐습니다. 그리고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낙마하고 16대 총선에서도 또다시 부산에 출마해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바보 노무현’의 별칭을 얻은 이유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그 뒤 김대중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하다 그만두고 민주당 상임고문직으로 경선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지역주의 타파와 한 몸을 이룬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이력은 많은 후보들 중에서도 국민적 공감을 받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습니다.
호남 민심의 선택이 지난 2002년 경선의 승부를 갈랐듯이 2017년 경선에서도 호남 민심을 얻는 것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필수 조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소위 말하는 집토끼를 지키지 못할 경우 산토끼를 잡는 전략도 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017년 경선에선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 ‘호남홀대론’이 등장할 가능성도 높은데 이에 대한 장기 대책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올해 4월 20대 총선에서도 ‘호남홀대론’을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치열한 공방을 벌인 바 있습니다.
2002년 대선 경선 선택이 노무현이었던 이유는 참신성과 개혁성과도 관련돼 있습니다. 영남지역 출신 후보가 광주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이유입니다. 2017년 경선에서 중도층 공략법을 놓고서도 치열한 싸움이 예상되는데 선명성을 원하는 호남 민심과 중도층 공략법이 어긋날 경우 집토끼-산토끼 논쟁으로 확산될 위험도 안고 있습니다.
극심한 색깔론 등 네거티브 전략을 쓰는 것도 경계의 대상입니다. 2002년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는 색깔론 공세를 폈습니다. 노 전 대통령 장인의 좌익 활동 의혹이 대표적입니다. 이 후보의 색깔론 제기에 언론들도 노 전 대통령 장인과 관련한 보도를 내놨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기자들과 만나 메이저 신문을 국유화하고 동아일보를 폐간시키겠다고 말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도 이인제 후보 측으로부터 나오면서 네거티브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색깔론은 오히려 후폭풍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상을 검증해 노무현 후보를 좌파로 낙인찍고 죽이려 한다는 반발이 거세지면서 관련 보도를 낸 신문으로 비난이 확산됐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같은 색깔론에 정면 승부를 하면서도 국민 정서에 호소하는 전략을 썼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장인 활동 의혹에 대해 인천 경선에서 "저는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면서까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면 대통령 안 하겠다"고 말한 것은 두고두고 회자가 된 발언입니다. 노 전 대통령 장인이 좌익 활동을 했다는 공세는 강원도 지역 경선에서 폭로됐는데 해당 지역에서도 노 전 대통령은 이인제 후보를 7표차로 따돌렸습니다.
본선에서 자연스레 이미지 구도 싸움도 벌어졌습니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대법관을 지내고 정당 총재를 거쳐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된 이회창과 상고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정치에 입문한 노무현은 귀족 대 서민의 이미지 대결 구도가 굳어졌습니다. 역대 어느 대선에서도 이들 두 후보처럼 극명한 차이를 보이며 대칭점에 선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권자들은 양단간 극단적 선택을 강요받았고 이는 곧 선거 흥행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2017년 경선에서도 어느 한쪽의 대항마로서 이미지가 확실한 후보가 유리할 수 있습니다.
여·야를 불문하고 대선의 전초전격인 당내 경선과 이후의 본선까지 국민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 전달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승리의 관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2년 대선에서 이런 감동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낸 쪽이 노무현이었고 이는 결국 대선승리로까지 이어졌던 것입니다. 애당초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당내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인제 대세론’ 속에서도 노무현이 보유한 컬러와 돌파력이 이변을 일으키면서 승리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내년 대선에서도 승리를 위해선 시대정신을 제시하고 그것을 알기 쉽게 잘 포장한 뒤 기억에 남는 키워드로 슬로건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대안이나 콘텐츠를 누가 선명하게 내놓을 것인가 또한 관건입니다. 당내 경선과정이, 혹은 더 나아가 야권의 경우 후보 단일화 과정이 드라마틱하면 할수록 본선에서의 승리 가능성은 그 만큼 높아 질 것입니다.
위에서 야권의 경우를 주로 서술했으나 여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기문 총장이 만약 여권에 가담한다면 불꽃 튀는 당내 경선은 필요불가결의 요소입니다. 반 총장 본인은 꽃가마를 타고 손쉽게 후보추대를 받고 싶겠으나 그래선 본선 경쟁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야권에 비해 현재 다소 탄력이 떨어져 보이는 새누리당의 잠룡들이긴 하지만 부동의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반 총장을 위시로 캐릭터 있는 후보군들이 당내에서 서로 경쟁해 대선후보를 선출한다면 내년 12월의 대선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한국의 대선전은 50대 50에서 +- 5%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당일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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