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

손학규 전 고문의 의중은 이원집정부제?

Chris7 2016. 10. 22. 10:00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상임고문이 20일 정계복귀를 공식선언했습니다. 동시에 소속정당이었던 민주당을 탈당했습니다. 가히 파격적 행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손 전 고문이 정계복귀 선언과 탈당 선언을 동시에 발표한 것은 의외의 일이었습니다. 일단 정계복귀 선언을 하고 어디로 갈지 저울질하며 몸값을 높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손 전 고문은 20일 기자회견에 앞서 측근이라 불리는 이종걸, 강창일, 양승조, 오제세, 조정식, 이찬열, 전혜숙, 강훈식, 고용진, 김병욱, 정춘숙 의원 등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손학규 전 고문은 탈당 사실을 알렸고 대부분의 의원들이 탈당을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손학규 전 고문 입장에서는 나름의 ‘돌발 승부수’였으나 민주당을 흔들 수 있느냐는 점에서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입니다. 현재까지 손 전 고문을 따라 탈당한 측근은 이찬열 민주당 의원뿐입니다. 이 의원은 21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당적을 떠나 손학규 대표님과 함께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나머지 의원들 사이에서 탈당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손학규계로 알려진 이개호 의원은 21일 언론과의 전화통화에서 “나는 탈당 안 한다”고 말했습니다. 손 전 고문과 가까운 이종걸 의원은 YTN ‘신율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에서 “그분 가는 길에 제가 똑같이 보조를 맞추며 갈 만한 제 능력, 소신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손학규라는 인물이 대선주자로서 더 이상 파괴력을 가지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야권에는 이미 문재인 전 대표라는 압도적 1위 후보가 있고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그리고 안희정 충남지사 등 다양한 후보군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손 전 고문은 지난 총선에서 당의 지원유세를 거절함으로써 정치적으로 복귀할 타이밍을 놓친 상황입니다.


‘탈당과 제3지대’는 그런 의미에서 손학규 전 고문 입장에서 최적의 선택이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성완 정치평론가는 21일 CBS ‘뉴스쇼’ 인터뷰에서 “여권은 반기문, 야권은 문재인이라는 대선구도가 짜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으로 복귀해도 게임의 룰을 가지고 한참 싸우다 결국 팻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며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제3지대”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장 ‘제3지대론’을 밀고 있는 국민의당은 환영 입장입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우리 국민의당이 문을 활짝 열고 문턱을 낮추고 있기 때문에 손학규 전 대표는 물론 정운찬 전 총리, 그리고 지금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다른 당의 많은 인사들도 대권에 꿈이 있다면 우리 국민의당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손 전 고문은 제3지대를 확장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개헌’을 제시했습니다. 손 전 고문은 “6공화국은 이제 명운을 다했다. 이제 7공화국을 열어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로 인해 제3지대가 포괄할 수 있는 세력은 새누리당 내 비박과 민주당 내 비문(비문재인)으로 넓어졌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의 측근인 김성태 의원은 21일 “이제는 당파성과 패거리 정치를 넘어 민주주의를 내용적으로 복원하고 충족해 가야 할 때”라며 ‘제7공화국론’에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손 전 고문의 ‘제7공화국론’이 비박-비문에게 던지는 메시지인 또 다른 이유는 그가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전 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신 그는 개헌이라는 화두를 통해 제3지대를 묶어내겠다는 뜻만 밝혔습니다. 비박과 비문에게 ‘박근혜에 반대한다’ ‘문재인에 반대한다’가 아닌 제3지대로 갈 수 있는 정치적 명분을 제공해준 셈입니다.


정치공학 적으로 봐도 손 전 고문이 제3지대로 비문과 비박을 끌어 모을 수 있다면 큰 이득입니다. 당 내에 머물면 경선 팻감으로 쓰이는 것과 달리 제3지대에서는 대선주자로 중심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손 전 고문은 대권 출마 선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손 전 고문은 오히려 “제가 무엇이 되겠다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다. 명운이 다한 6공화국 대통령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의 비주류 세력들이나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에게도 솔깃한 제안입니다. 손 전 고문의 목표가 대통령이 아니라 개헌 이후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 개헌 이후 총리를 꿈꾸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고, 손 전 고문과 손을 잡아 제3지대의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손학규 전 고문의 탈당은 단순히 제3지대의 대통령 후보가 되어 문재인 전 대표와 경쟁해보겠다는 뜻이라기보다 개헌을 명분으로 세력을 끌어 모아 판을 흔들어보겠다는 전략으로 읽어야 합니다. 문제는 박근혜 정권 이후 치러지는 대선에서 제3지대와 개헌이 얼마나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지닐 수 있는가 입니다. 미르, K스포츠재단 논란 등으로 혼란에 빠져있는 보수권에 대항해 얼마나 파이팅 있게 맞서느냐가 야권 주자로서의 관건인데 박근혜 대통령도 문재인 전 대표도 까지 않고 새 판을 짜겠다는 메시지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비판은 확장성이 없다는 것이고 손학규 전 고문은 확장성은 좋은데 ‘야당 맞나’라는 의구심이 든다는게 문제입니다. 정치 이념적 관점에서 보수층은 논외로 치더라도 중도층 전체를 아우르기엔 문 전 대표보단 손 전 고문이 조금이라도 편한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손 전 고문에겐 치명적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예전 한나라당 탈당이 그것입니다. 사실 9년 전 한나라당 탈당은 이후 그의 정치 활동에 있어 최대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손 전 고문이 번번이 당내 경선의 고비를 넘지 못했던 이면엔 ‘굴러온 돌’이란 이미지가 상당 부분 작용한 탓도 있습니다.


대선에서의 ‘외연 확장’과 ‘진보 적자’라는 관점에서 원래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그런 관계였는데, 결과는 둘이 갈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손학규 전 고문의 제3지대가 다시 그 길을 갈 것이냐, 아니면 야권지지층 전체가 열광할 수 있는 연대와 통합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 향후 그 메시지에 주목해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