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이 정치권을 강타했습니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주장되고 논의되던 개헌이 정치권의 핵심 이유로 부상했습니다. 그것도 집권자인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을 전격 제안하면서 향후 개헌 절차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개헌 절차는 헌법 제128조∼제130조에 명시돼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헌법 개정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 발의로 제안됩니다. 현재 국회 재적 의원이 300명인만큼 151명 발의로 제안이 될 수 있습니다.
역대 국회에서 국회의장 직속으로 설치된 개헌 관련 각종 위원회 등은 국회의원들의 의견을 모으기 위한 기구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당해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습니다. 박 대통령 임기 중에 개헌이 이뤄진다고 해도 박 대통령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이 같은 조항은 군사독재 시절 개헌이 임기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 경우가 많아 이를 차단하기 위한 취지로 보입니다.
국회는 헌법 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하여야 하며, 국회 의결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합니다. 현재 재적 의원 300명 가운데 200명 이상이 찬성해야 헌법 개정안이 의결되는 셈입니다. 헌법 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뒤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합니다.
정당 등은 국민투표일 공고 일부터 투표일 전날까지 방송 연설·대담·토론을 하거나 소형인쇄물을 배포하는 방식으로 찬성 또는 반대 입장에 대한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과반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 찬성을 얻으면 헌법 개정은 확정되고 대통령은 이를 즉시 공포해야 합니다. 개헌안 발효 시기는 부칙으로 정합니다.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개헌이 확정되며 대통령은 이를 즉시 공포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일반 법률과는 달리 헌법 개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개헌론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동안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취해왔던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예상치 않았던 개헌을 주창하며 향후 ‘개헌 정국’에서 주도적 행보를 보이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시기적으로 절묘한 상황에서 불거져 나온 대형 정치 이슈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최근 청와대와 여권은 미르와 K스포츠 재단과 관련한 최순실 정유라 두 사람의 비선 실세 논란으로 홍역을 겪고 있습니다. 정치 전략상 위기 상황 타개를 위한 국면전환용 히든카드를 꺼내든 모양새입니다.
좋든 싫든 정치권은 이제 개헌 이라는 대형 이슈에 휩쓸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야권의 향후 행보가 묘해졌습니다. 그동안 개헌논의는 여권보단 야권에서 조금 더 강한 톤으로 제기되어왔기 때문입니다. 미르·K스포츠 재단과 최·정씨 등 비선 실세 논란으로 청와대와 현 정부를 정권차원에서 비판하던 야권으로선 자신들이 주창하던 개헌을 들고 나온 박 대통령의 제안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정치권이 개헌 정국으로 본격 돌입하면 아무래도 청와대와 정부에 대한 비판에 어느 정도 힘이 빠질 수 밖 에 없습니다. 야권이 골치 아파진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개헌 논의는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까요? 아무래도 이번 개헌의 핵심은 대통령 임기 개정을 포함한 권력구조 개편이 될 것입니다. 현행 헌법상 대통령 임기는 5년이며 단임제입니다. 이에 대한 개정이 핵심 논의 사항입니다. 이미 정치권에선 대통령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그리고 내각제 등 다양한 방안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원래 4년 중임제를 선호했었습니다. 4년 중임제란 4년의 임기를 한 번에 한해 선거를 거쳐 연임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계는 이원집정부제 쪽으로 무게 중심추가 기울었다 해야 할 것입니다. 애초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대선 후보로 점찍었던 이유도 ‘대통령 반기문과 친박계 실세 총리’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야권의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4년 중임제 선호로 분류됩니다. 그자신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4년 중임제 개헌을 공약한 바도 있습니다. 반면 국민의당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최근 정치복귀를 선언한 손학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은 이원집정부제를 염두해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안 전 대표와 손 전 고문이 직접 이원집정부제를 입에 담은건 아니나 현재 그들을 둘러싼 정치 상황이 그렇게 보여 지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도 야권에서 강력한 대권주자인 문 전 대표와 겨뤄야 할 두 사람으로선 이원집정부제가 각자의 역할 분담도 가능하고 향후 있을 야권 전체의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에서도 탈락한 한쪽을 아우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30년 만에 개헌을 향한 시동은 걸렸습니다. ‘레임덕에 걸렸다, 아직 아니다’ 말이 많지만 집권자인 대통령이 과반수에는 못 미치나 여전히 원내 제1당인 새누리당을 등에 업고 개헌론에 직접 나섰습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현직 대통령이 직접 개헌을 추진해서 성공한 경우가 없다는 것입니다. 현 집권자가 차기 정권에 영향을 미치는 개헌을 주도한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 컷 던 탓입니다. 그럼 이번엔 과연 개헌이 가능 할까요? 한마디로, 알 수 없다 입니다. 현재로선 말입니다. 과거 노무현 정권이나 이명박 정권에서 개헌을 추진했을 때완 현 정치 상황이 다소 개헌에 유리한 측면이 없진 않으나 시기적으로 ‘국면 전환용’이란 인상이 너무 강합니다.
실현 가능성은 둘째 치고 개헌 논의는 일단 시작 되었습니다. 문제는 말 그대로 어떤 방향인가입니다. 국민기본권과 알권리 등 헌법 전반에 거친 개정 논의도 있겠으나 권력구조 개편 부분과 관련해선 개인적으로 대통령 4년 중임제가 가장 적합하다 봅니다. 내각제가 가장 진보한 민주주의제도라며 이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우리 국민들에게 내각제는 너무 생소한 제도입니다. 그리고 내각제가 가장 진보한 제도라는 말에도 동감하기 어렵습니다. 그저 과거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입헌군주제 하에서 발전한 제도라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 합니다. 민의를 능동적으로 반영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국회의원들이 행정부 요직을 겸한다는 측면에서 권력 독점의 또 다른 변형일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정당간의 정쟁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은 최대의 약점입니다.
이원집정부제는 외치와 국방을 담당하는 대통령은 직접 선출하고 내치를 담당하는 총리는 의회 내 의석분포에 따라 선출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측면에서 일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단점을 보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문제는 이를 주장하는 이들의 속셈입니다. 겉으론 제왕적 대통령제를 타파할 방안으로 주장하나 실제론 그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합리화하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현 정치 상황에서 이원집정부제는 좋게 말해 타협이고 나쁘게 말하면 야합일 뿐입니다. 대선에서 당선될 확률이 적은 이들 혹은 세력이 서로 이리저리 이합집산을 하며 권력을 나눠먹기 하기 딱 좋은 제도가 바로 이원집정부제인 것입니다. 게다가 총리는 의회 다수당에서 선출된다는 점에서 제도 운영을 잘 못하면 내각제가 가진 단점인 정치적 불안을 고스란히 떠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그리고 내각제 등 어떤 제도이건 장·단점이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운영하는 가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적합하다 생각하는 대통령 4년 중임제도 대통령 한 사람에게 과도한 권력이 집중화된다는 치명적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선거를 통한 연임성공을 전제로 8년간 책임 있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보단 4년 중임제가 훨씬 우리 국민들이 큰 거부감 없이 소화하기 수월한 제도임엔 틀림없습니다. 근본적으로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는 이를 주창하는 이들의 저의가 너무 뻔히 보이기에 거부감이 드는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우리 정치권의 가장 필요한 선결 사항으로 여겨온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개헌이 비로써 본격 논의 될 것 같습니다. 여기엔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임기를 서로 맞추거나 혹은 2년 터울로 맞추는 부분도 포함될 것으로 봅니다. 또한 국민기본권과 알권리 보장등도 개헌 내용에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실현 가능성은 현재로선 확언하기 어렵습니다. 비록 집권세력이 어려움에 처한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내세운 ‘물타기 전략’이라 해도 개헌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는 점엔 변함이 없습니다. 부디 앞으로 백년은 지켜갈 수 있는 최선의, 최고는 아니더라도, 방향으로 개헌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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