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2월의 19대 대선을 앞두고 여야 각 당 대권 잠룡들의 움직임이 서서히 활발해 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총선 참패 후 ‘마땅한 대권 주자가 없다’던 여권의 새누리당에서도 대권경쟁이 시작됐습니다. 핵심은 ‘모병제’ 등 의제 선점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야권 주자들이 출마 선언을 이어가며 경선 룰을 둘러싼 경쟁을 벌이는 모습과 대조적입니다. 지난 연말 연초만 해도 새누리당에서 ‘김무성 대세론’이 힘을 받으며 한발 물러선 듯한 모양새를 보여줬던 남결필·원희룡 지사와 유승민 의원 등이 총선과정에서 오세훈·김문수 등의 대선 잠룡들이 낙선하고 김무성 전 대표까지 내상을 입는 등 전반적으로 당내 잠룡들의 위상이 위축되자 전면에 나선 것이 특징입니다.
이중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유승민 의원 간에 벌어진 ‘모병제 설전’이 눈길을 끕니다. 남경필 지사는 ‘행정수도 이전’에 이어 ‘모병제’를 대선공약으로 내걸며 대선주자로서 급을 키우고 있습니다. 남 지사는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가고 싶은 군대 만들기’ 토론회에 참석해 모병제의 불가피성에 대해 역설했습니다. ‘안보보수’의 금기라고 할 수 있는 ‘모병제’ 관련 의제를 여권의 대권 주자가 선점하는 모양새였습니다. 이날 토론회는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했는데, 김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후보로 나서며 ‘모병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남 지사의 ‘모병제’ 주장에 반대 입장을 밝힌 인물은 당내 또 다른 대권 주자인 유승민 의원입니다. 유 의원은 지난 7일 한림대학교 특강 자리에서 “모병제는 정의롭지 못하다. 모병제가 시행되면 부잣집 자식은 군대에 가는 경우는 없고, 가난한 집 자식만 군대에 가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남 지사가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누구의 생각을, 어떤 정책을 정의롭지 못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히틀러도 자신은 정의롭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남 지사는 유 의원에게 ‘모병제’에 대한 공개토론까지 제안했습니다. 남 지사의 제안으로 ‘모병제’를 둘러싼 논란과 토론이 이어졌고, 남경필 지사는 대선주자로서 ‘모병제’ 이슈를 자신의 것으로 확고히 했습니다.
유승민 의원도 ‘강연정치’를 이어가며 사회 의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7일 특강에서 유 의원은 야당이 주장하는 ‘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에 대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유 의원은 또한 교육문제에 대해 “제2의 고교평준화를 생각해야 한다. 자사고와 일부를 제외한 외고 중심 특목고는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논쟁성 의제에 대한 발언을 내놓는 대권 주자들은 또 있습니다. 김무성 전 대표는 6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교실 세미나 자리에서 “일부 정치인들은 불평등 해소를 위해 증세가 최선의 해결책인양 주장하고 있다”라며 증세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유승민 의원 등 당내에서 증세를 주장하는 입장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쟁점이 될 만한 이슈인 셈입니다.
김문수 전 지사는 페이스북에 동영상을 올려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김 전 지사는 “공수처를 신설해 고위 공직자 비리를 뿌리째 대청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화제가 됐습니다. 정진석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공수처 도입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여권의 대권 주자들은 논쟁이 될 만한 의제에 대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몸값을 올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반면 더민주 대권 주자들은 본격적인 ‘출마선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부겸 의원은 8월3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당권 불출마 선언 이후 사실상 대선 경선 출마를 준비해 왔다.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출마를 공식화했습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김대중·노무현의 못 다 이룬 역사를 완성하고자 노력할 것”이라며 사실상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국민의당, 더민주 양쪽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은 2일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죽음을 각오로 저를 던지겠다”며 사실상의 출마선언을 했습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은 8월28일 야권 주자 중에는 가장 빨리 대선 출마를 선언한 상태입니다.
여권과 야권의 이러한 차이는 ‘반기문 대망론’과 ‘문재인 대세론’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할 수 있습니다. 여권의 가장 경쟁력 있는 대권 후보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지만, 아직 출마 여부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따라서 여권 후보들은 출마선언은 하지 않은 채 계속 이름이 오르내릴 방법으로 이슈 선점을 선택한 것입니다.
반면 야권은 문재인 전 대표라는 실체 있는 강력한 대권 후보가 존재합니다. 8월27일 더민주당 전당대회를 통해 추미애 대표 체제가 만들어지면서 ‘문재인 대세론’은 더욱 굳어졌습니다. ‘문재인 대세론’이 더 강해지기 전에 이를 견제하기 위해 대선 주자들이 출마선언을 앞당겼다는 것입니다. 실제 야권 대선 주자들의 출마선언은 8.27 더민주 전당대회 이후 연달아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더민주 대권 주자들의 경쟁은 당분간 의제 경쟁이 아닌 ‘대선 경선 룰과 시기’를 둘러싼 신경전의 형식을 띠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지사 등 지자체장들의 입장에서는 2017년 4월5일 재보선 이후 대선 경선을 치르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 이전에 대선 출마를 위해 사퇴하면 재보선을 치러야한다는 부담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김두관 경남지사가 지사직을 사퇴한 후 출마선언을 했다가 많은 비판에 시달렸던 전례가 있기도 합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질주하고 있는 잠재적 여권인사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제외하곤 여권 잠룡들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 에 그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반해 지난 총선 승리 후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공동대표, 그리고 최근 정치활동을 사실상 재개한 손학규 전 고문까지 야권의 대권 잠룡들은 차고 넘칠 지경입니다. 만약 이들 야권주자들이 한사람으로 물리적 통합을 넘어 화학적 통합까지 완벽히 이루어 낼 수만 있다면 현 지지율 1위의 반기문 총장이 아니라 그 어떤 여권 내 주자가 나서더라도 새누리당으로선 쉽지 않은 대선전이 펼쳐질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이 결코 쉽진 않겠지만 말입니다.
19대 대선 일까지 1년 3개월이 남은 상황에서 이 기간 내 어떤 변수와 돌발 상황이 발생해 대선판을 뒤흔들지 알 수 없습니다. 현재로선 ‘10년 정권 교체설’까지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확실히 민심의 향배가 야권에 유리한 상황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비록 지금 당장은 보수 여권보다 진보 야권의 대선 승리가능성이 다소 앞서곤 있으나 어차피 한국 내 정치지형은 진보 보수간 또는 청·장년간 50대50인 상황에서 +-5%이내 싸움입니다. 대선 당일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대선은 결국 시대정신과 인물, 비전의 싸움입니다. 누가 현 시대정신에 부합한 인물이며 어떤 비전으로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 것인지 국민은 그 여부를 판단할 것입니다. 현재 지지율은 그저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앞으로의 하루하루가 진짜 레이스인 것입니다. 아마도 내년 대선은 경제와 안보(통일)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여러 대권 잠룡들 중 어느 누가 이 양대 이슈를 제대로 요리할 인물일지 대중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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