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선이 내년 12월로 다가온 가운데 대권을 향한 여야 잠룡들의 움직임이 서서히 구체화 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총선에서 참패한 여권보단 ‘여소야대’ 정국의 주도권을 쥔 야권 주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한 상황입니다. 더민주의 김부겸 의원과 안희정 지사가 정식으로 대권도전을 선언했고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도 대권도전을 공식화 했습니다. 여권 잠룡들도 각기 행동반경을 서서히 넓히고는 있으나 지지율이 미미한 수준이고 올해 말 퇴임을 앞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행보에 모든 시선이 쏠려있는게 현실입니다.
이런 가운데 정계은퇴 후 그동안 전남 강진에서 칩거 생활을 해온 손학규 전 고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외부활동이 잦아진 그의 행보를 두고 정치권과 언론에선 실제 정계복귀를 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때마침 손 전 대표는 2일 광주 동구 금남공원에서 열린 '손학규와 함께 저녁이 있는 빛고을 문화한마당'에 참석해 "나라를 구하는데 저를 아끼지 않고 죽음을 각오로 저를 던지겠다"며 사실상 정계복귀와 대권 도전을 공식화했습니다.
손 전 고문의 대권도전은 이번이 3번째입니다. 하지만 지난 3번의 도전에서 본선엔 올라보지도 못하고 당내경선에서 패한 전력이 있습니다. 4년 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손 전 고문은 문재인 전 대표에게 막혀 2위에 그쳤습니다. 2007년에 이어 또다시 본선 진출이 좌절된 것입니다. 2012년 경선에서 손 전 고문은 순회 투표에서는 1위에 올랐지만 모바일투표에서 문 전 대표에게 뒤졌습니다. 순회투표는 현장에서 후보자들의 연설을 듣고 대의원이 행사하는 투표방식입니다. 손 전 대표는 당심(당원들의 표심)은 얻었지만 노심(친노의 표심)에 밀린 것입니다.
두 차례 대선에서 연거푸 본선무대에 올라보지 못했던 손 전 고문은 2013년 초 홀연히 독일로 떠났습니다. 8개월간 독일 사민당의 싱크탱크인 프리드리히 에버튼 재단의 후원으로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복지·노동·교육·환경·통일 등에 대해 연구 활동을 했습니다. 2012년 히트상품이었던 ‘저녁이 있는 삶 시즌2’ 준비는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그해 9월 귀국 후 여의도와 거리를 유지한 채 정중동의 행보를 이어가던 손 전 고문은 이듬해 7월 30일 재·보선 수원 팔달에 출마했습니다. 팔달은 ‘수원의 강남’으로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낙선했고 곧바로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으로 내려갔습니다. “정치인은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 은퇴의 변이었습니다. 손 전 고문은 그 뒤 2년 동안 토담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랬던 손 전 고문이 올해 들어 자주 공개 석상에 모습을 비쳤습니다. 공식 행사에 참석하는 빈도가 늘었고 메시지도 선명해졌습니다. “새 판을 짜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새판짜기’는 손 전 고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습니다. 손 전 고문의 복귀는 사실상 결정됐고, 그 시점만 남았다는 해석이 주를 이뤘습니다.
손 전 고문이 복귀의사를 피력하자 정치권에서는 ‘손학규 모시기’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친정인 더민주와 같은 야권인 국민의당은 물론이고 여권에서도 손 전 고문의 주가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측근들의 전언과 현재의 정치지형을 고려하면 최소한 연말까지는 ‘제3지대’에 머물며 국민통합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손 전 고문에게 ‘제3지대’는 낯선 경험이 아닙니다. 그는 한나라당을 탈당한 2007년 대한민국 선진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기치로 민주화 세력과 실용적 개혁세력의 연합체인 선진평화연대를 창립했습니다. 이후 선진평화연대는 열린우리당 탈당파, 중도통합민주당 탈당파, 시민사회세력과 합쳐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몸집을 불렸습니다.
손 전 고문에게 ‘제3지대’는 배수의 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마지막 대권도전 기회만 남은 그로서는 더민주나 국민의당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 어렵습니다. 더민주에는 문재인 전 대표, 국민의당에는 안철수 전 대표가 있습니다. 둘 다 각자의 당에서 유력한 대선주자들 입니다. 넘지 못할 이유도 없지만 넘기가 쉽지도 않습니다. 정치권의 분석에 따르면, 현실적으로 손 전 고문이 대선후보가 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제3지대에서 독자적인 힘을 구축한 뒤 더민주·국민의당 등 야권후보들과 ‘최종 예선’을 치르는 방안이 첫째입니다. 그리고 두 야당 중 뒤처지는 당의 후보로 추대된 뒤 최종 예선전에 오르는 것이 둘째입니다.
손 전 고문 측이 준비한 ‘비장의 카드’는 9월 이후 발간될 그의 저서에 담길 것으로 전해집니다. 책은 큰 틀에서 현실 속 난제들의 극복방안과 미래에 나아갈 방향이라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입니다. 일부에 알려진 것처럼 ‘대한민국 개조론’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정계복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더라도 손 전 고문은 서울보다는 지방, 특히 호남에 머물 것으로 보입니다. 9월 이후 발간될 책을 주제로 지역을 돌며 강연 등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계에 복귀하더라도 큰 틀에서 ‘강진 칩거’의 연장선상인 셈입니다. 이진우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야권의 4·29 재·보선 완패 직후였던 지난해 5월 17일 리얼미터 여론조사가 재미있었다. 이미 은퇴를 선언한 손 전 고문이 호남권에서 지지율 22.4%로 박원순 서울시장(20.5%), 문재인 전 대표(19.4%)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며 “야권에서 대선주자가 되려면 호남의 마음을 얻는 것은 필수다. 복귀 선언 이후 호남에 더 공을 들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손 전 고문이 사실상 정계복귀와 대권도전의사를 밝혔으나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은 상황입니다. 더민주에는 문재인이라는 ‘실소유주’가 있고, 국민의당에는 안철수라는 ‘대주주’가 있기 때문입니다. 2년 동안 링을 떠나 있던 손 전 고문에게는 둘 다 버거운 상대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둘에게 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문 전 대표는 ‘야권의 심장’이라는 호남에서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호남에서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신다면 정계에서 은퇴하고 대선에도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며 배수의 진을 쳤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더민주는 호남 전체 28석 가운데 3석에 그쳐 23석을 휩쓴 국민의당에 완패했습니다. 안 전 대표는 비례대표를 포함해 38석으로 돌풍을 일으키긴 했으나 수도권 등 호남을 제외한 나머지 권역에서 자신을 포함해 단 2석을 건지는 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손 전 고문과 관련해선 그가 가진 내부의 콘텐츠에 비해 외부로 보여지는 ‘포장지’가 아쉽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손 전 고문의 한 측근은 “주위에서도 비슷한 건의와 지적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은 신속한 메시지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정치인이라면 중대 현안에 대해 즉각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그런데 손 전 고문은 합리적이고 완벽하게 대응하려다 보니 조금씩 늦었던 것 같다. 복귀 후에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적극 활용하는 등 능동적이고 신속하게 현안에 대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손 전 고문의 복귀 명분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왜 2년 전 홀연히 정계를 떠났다가 2년 후 돌아올 수밖에 없는지, 왜 손학규이어야 하는지를 국민에게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이진우 소장은 “손 전 고문이 거듭 강조하는 새판이라는 것은 결국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쇼를 하려거든 손학규처럼 진정성 있게 하라’는 말이 있다. 손 전 고문이 강진 칩거 2년 동안 미래에 대한 많은 준비를 했을 것이다. 국민을 위해 봉사할 기회를 달라는 호소가 먹혀 들어간다면 ‘손학규 대망론’이 거세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사실 세칭 정치전문가들이란 사람들 가운데 현역 정치인중 가장 대통령직을 잘 수행할 인물 한사람을 꼽으라면 손학규 전 고문을 꼽는 사람들이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중들의 일반적 생각과는 무관하게 말입니다. 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그가 가진 콘텐츠와 지도자로서의 잠재력을 높이 본 결과일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당내 경선 통과입니다. 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당의 후보가 되어야 비로써 그의 최대 강점이라 할 본선 경쟁력과 외연확장력이 힘을 발휘해볼 여지가 생깁니다. 거기다 정치권에서의 높은 호감도에 비해 대중적 인기가 높지 않다는 점 역시 그가 앞으로 풀어야할 숙제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손 전 지사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더민주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당적을 옮긴 전례가 있습니다. 그가 가진 최대의 아킬레스건인 것입니다. 이 때문에 보수권에선 ‘배신자’로, 진보권에선 ‘굴러온 돌’ 취급을 받기 일 수였습니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당내 경선의 문턱을 넘지 못한 이유와 무관치 않은 대목입니다. 사실상 마지막 대권도전이 될지 지 모르는 내년 대선가도에서는 그저 불쏘시게 역할만 했던 지난 두 번의 전례를 뒤집을 수 있을지...
10년의 보수정권에 지친 민심이 정권교체를 그 어느 때보다 열망하는 이때 주변여건은 좋습니다. 야권의 단일 대선후보만 된다면 말입니다. 이 부분은 야권의 잠룡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민주와 국민의당 두 원내 야당엔 문재인과 안철수라는 정치세력과 대중적 인지도 모두를 가진 강력한 라이벌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현재 여기저기서 ‘제3지대론’이 회자되고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보수정당인 새누리가 체질상 분열하기는 쉽지 않다고 본다면 결국 야권내에서의 세력재편에 그칠 공산이 큽니다. 과연 손 전 고문이 원하는 방향으로 ‘제3지대론’이 흘러가 ‘저녁이 있는 삶’이 현실화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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