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 정치권의 기류를 지칭하는 말들 중 ‘스트롱맨 전성시대’란 표현이 있습니다. 최근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정식 지명된 도널드 트럼프와 함께 막말과 기행으로 유명한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 그리고 러시아의 푸티 대통령에 더해 이집트의 엘시시 대통령 등이 이에 해당하는 정치인들입니다. 또한 최근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까지 세계정치권은 가히 ‘강성 지도자’(스트롱맨)들의 전성기라 할 만합니다.
이들 중 특히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최근 가장 이슈의 중심에 서있는데요... 이어지는 그의 최근 행보들을 보면 가히 ‘독재자의 길’로 들어섰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밤 ‘독재 타도’를 외치며 쿠데타를 일으킨 일부 군인들 때문에 축출 위기에 내몰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회관계형서비스(SNS) 트위터를 통해 쿠데타 저지를 호소했고, 여기 호응한 국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며 쿠데타 시도는 6시간 만에 불발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국민들 덕에 위기를 넘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후 놀라운 반전극을 펼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수만 명을 일자리에서 내쫓고 체포하는 피의 숙청을 벌이며 3개월 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쿠데타를 기회로 철권통치를 강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외신들은 쿠데타가 그의 ‘자작극’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현재 그의 행보들이 그다지 놀라운 상황만은 아닙니다. 쿠데타 발발 이전부터 그는 ‘21세기 술탄’, ‘터키의 히틀러’이라 불리는 유럽의 악명 높은 독재자였기 때문입니다. 14년 간 집권을 하며 인권과 언론 탄압 등 권위주의 통치를 해왔던 것입니다.
1954년 흑해연안 리제에서 태어난 에르도안은 책값을 벌기 위해 이스탄불 거리에서 참깨 빵과 레모네이드를 파는 등 유년 시절을 가난하게 보냈습니다. 그는 1991년 고향 카이세리에서 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이후 1994년 40세 나이에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돼 3대 과제였던 물 부족, 공기 오염, 교통지옥 문제를 해결하면서 전국적 정치인이 됐습니다.
2001년 이슬람계 정당인 현 집권당 정의개발당(AKP)을 창당해 대표가 됐습니다. AKP당은 이듬해 조기 총선에서 34.1% 득표로 전체 의석의 66%를 차지했습니다. 터키 건국 후 처음으로 이슬람계 정당의 단독 정부가 출범한 것입니다. 하지만 에르도안은 집권 여당 당수인데도 불구하고 의원에 당선되지 못해서 총리직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1999년 이슬람계 정당이 탄압받자 종교로 국민을 선동했다는 혐의를 받아 4개월간 복역한 전과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2003년 3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된 후 총리에 취임했습니다. 이후 그는 2007년과 2011년 총선에서 잇따라 승리해 세 번 의원 연임에 성공했고 2009년과 2014년 3월 지방선거에서도 집권당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에르도안이 연거푸 선거에서 승리한 비결은 경제 해결사를 자처했기 때문입니다. ‘오스만 투르크의 영광을 경제로 재현하겠다’고 밝힌 그는 이슬람권에서 보기 드문 적극적 투자유치 정책을 펼쳐 ‘경제총리’라는 이미지를 굳혔습니다. 실제로 그는 재임 6년 간 연평균 경제성장률 7.3%를 달성하고 국제금융기구(IMF)의 빚을 235억 달러에서 70억 달러로 줄였습니다. 20%대였던 실업률도 10% 선으로 떨어뜨렸습니다.
수치가 증명한 경제 정책 덕분에 2007년 재집권에 성공한 에르도안은 신오스만주의 등 이슬람 이념을 전면에 내걸었습니다. 원래 터키는 이슬람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정치와 종교를 엄격히 분리한 ‘세속주의’를 택하고 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 케말 파샤가 ‘세속주의’를 택한 이래 내려온 전통입니다.
에르도안의 새로운 노선은 국민의 95%를 이루는 이슬람교도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세속주의’를 내세운 과거 정권의 경제적 무능과 대조를 이룬 데다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못해 자존심이 상한 국민들에게 ‘이슬람주의’라는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권위적인 통치 방식과 지나친 이슬람화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특히 2013년 그의 아들이 뇌물 수수를 논의하고, 방송사에 야당 대표의 연설을 중단하라고 압력을 넣은 도청자료가 폭로되며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때 대다수 지식인과 학생, 군부가 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농민들과 서민들은 그에 대한 지지를 접지 않았습니다.
위기를 겪은 에르도안은 더욱 노골적으로 권력에 대한 집착을 드러냈습니다. 헌법을 바꿔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한 후 대선에 나가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실세 총리였던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내각제가 유명무실해지자 최근에는 내각제를 대통령 중심제로 전환하려는 시도에 나섰습니다. 이를 두고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5월 사설에서 그를 독재자(autocratic)로 규정하며 일인 통치와 장기 집권을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에르도안은 이 과정에서 비판 세력에 무차별적인 철퇴를 휘둘렀습니다. 최근 1년 반 사이 대통령 모욕죄로 기소된 사람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을 비롯해 2,000명에 육박합니다. 경제 성장을 이끌었지만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장기집권을 꾀하는 점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유사한 측면이 많습니다. 그래서 국내 일각에서는 그를 ‘터키판 박정희’로 부르기도 합니다.
도를 넘어선 사치스러운 생활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공개된 재산은 2,000억원이 넘으며 대통령 연봉만 646억원으로 전 세계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많습니다. 수도인 앙카라 서쪽에 지은 대통령 궁 ‘AK SARAY’는 부지 면적이 백악관의 30배에 이르고 방이 무려 1,150개입니다. 영국의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이 궁을 짓는데 들어간 비용이 총 7,520억원이라고 합니다. 방문 한 짝만 5,270만원인 셈입니다.
지난 15일 일어난 군부의 쿠데타는 에르도안의 이슬람 강화 노선과 관련이 있습니다. 쿠데타세력은 성명을 통해 “(에르도안) 정부가 민주적이고 세속주의적인 법의 지배를 무너뜨렸다”고 밝혔습니다. 독재와 이슬람화를 막기 위해 군부가 나섰다는 얘기입니다. 터키 역사에서 군부는 특수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독자적인 세력에 가까웠습니다. 국가 안에 존재하는 세력이란 뜻의 ‘딥 스테이트(deep state)’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특히 군부는 터키 공화정의 기본 정신인 ‘세속주의’의 수호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공화정 수립 이후 군부가 일으켰던 네 차례(1960, 71, 80, 97년) 쿠데타는 모두 이슬람주의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집권 기간 쿠데타가 여러 차례 시도됐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습니다. 이번 쿠데타 또한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발생했다는 분석입니다.
실제로 에르도안은 쿠데타를 빌미로 또 다시 군부 내 ‘세속주의’ 세력 숙청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에르도안이 국내의 유일한 견제 세력인 군부를 무력화하기 위해 ‘자작극’을 꾸민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쿠데타는 (이전과 달리)사회 엘리트층의 지지가 없었고 (쿠데타 세력이)명확한 계획도 없었다”며 “지금까지 발생한 쿠데타와 비교할 때 이상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데타 진압 직후 “쿠데타 세력들이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피의 숙청’을 예고했습니다. 실제로 17일 터키 내무부는 쿠테타와 연루됐다고 의심되는 전국 공무원 8,777명의 업무를 중지시켰습니다. 교육당국 역시 사립학교 교사 2만1, 000명의 면허를 취소했습니다.
급기야 20일에 국가안전보장회의와 내각 회의를 열어 3개월 동안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대통령과 내각은 의회 입법을 거치지 않고 즉각 발효되는 새로운 칙령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음날에는 군에 자신의 지지세력을 수혈해 군 조직을 재구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터키 안팎에 그를 견제할 세력이 사라진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유럽의 난민사태를 풀기 위해 터키에 손을 내밀어야 하는 상황이고 미국도 시리아 사태 때문에 터키의 지지가 아쉬운 처지입니다.
‘세속주의’를 지켜온 군부는 이번 쿠데타를 통해 더 이상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1922년 케말 파샤가 세운 터키 공화국이 새로운 ‘술탄’(오스만제국 황제의 공식 칭호) 에르도안을 앞세운 신오스만 제국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독재자의 길로 들어선 에르도안과 이미 독재자의 길을 가고 있는 러시아의 푸틴 등 이들 ‘스트롱맨’(강성지도자)으로 지칭되는 정치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꾸만 20세기 초·중반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정세를 혼란으로 몰고 갔던 ‘파시스트’들이 떠오릅니다. 독일의 히틀러와 이태리의 무솔리니 그리고 스페인의 프랑코 등의 ‘파시스트’ 독재자들은 전 세계를 결국 참혹한 전쟁으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세상은 돌고 돈다’라는 말과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흔하디흔한 표현들이지만 왠지 그냥 흘려버리기엔 최근 국제정세가 심상치 않게 여겨지는건 저만의 노파심일까요? 물론 세계 각국들의 정치적·경제적 협력과 공조화가 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치 끈끈하게 이어져 있긴 합니다만 세상일을 어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1년여 전만해도 미국의 트럼프가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되리라 예상 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를 푸틴 그리고 에르도안과 도매급으로 함께 분류하는게 무리인건 사실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익과 목적 달성을 위해 선동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제가 보기에 트럼프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입니다. 그저 ‘파퓰리즘’적인 값싼 선동정치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암튼 푸틴과 에르도안 그리고 트럼프 등 이들 ‘강성지도자’들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우려일색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자국 내 분위기는 정반입니다.
러시아의 푸틴은 과거 ‘냉전시대’ 미국과 더불어 세계 양대 파워로 군림했던 소비에트 시절의 향수를 러시아인들 사이에 불러일으키면 정치적 입지를 굳히고 있고, 터키의 에르도안 역시 일부 자국민들의 반감이 없진 않으나 국내에서 전폭적 지지를 받기는 푸틴과 매한가지입니다. 미국의 트럼프 역시 일정부분 공화당 전당대회의 ‘컨벤션효과’ 덕을 보았지만 그동안 줄곧 열세였던 대선 지지도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을 근소하게 역전시켰습니다. 밖에선 심히 우려스런 눈길로 바라보지만 막상 그들의 자국 내에선 열광적 지지를 얻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그동안 블로그에 포스팅한 글에서 수차례 언급했듯이 미국의 트럼프와 러시아의 푸틴 그리고 일본의 아베로 이어지는 극우성향의 지도자들이 선도하는 ‘파시즘’적인 국제 정치지형이 점차 현실화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가운데 쿠데타로 집권한 이집트의 엘시시 대통령에 이어 ‘자뻑’(?)으로 의심되는 쿠데타로 발생한 자국 내 혼란을 독재적 집권을 행한 징검다리로 삼고 있는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까지 제 우려감에 기름을 붓고 있습니다. 뭔가 조금씩 ‘어둠의 터널’을 향해 우리 지구촌이 움직이고 있다는 불안감이 단지 걱정 많은 이의 오지랖에 그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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