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 이야기

조영남의 ‘대작 논란’ 관행이란말로 넘어갈 것인가?

Chris7 2016. 5. 28. 08:00

가수 겸 화가로 알려져 온 조영남이 ‘대작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검찰은 조영남의 소속사 장모 대표를 소환 조사했고, 조영남도 다시 부를 예정으로 있습니다. 이 와중에 SBS는 그림을 대신 그려준 송모 화백을 인터뷰했습니다. 송 화백은 인터뷰에서 평소 조영남을 형으로 불러온 사이라며 2009년부터 200여 점, 300점은 안 되는 숫자의 그림을 그려줬고, 그에 대한 대가로 점당 딱 10만 원을 받은 것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뭣보다 중요한 것은 그 그림을 조영남이 팔 줄 몰랐고, 그저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정도로만 알았으며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의 삶이 만신창이가 됐다고 울먹인 점입니다.


그는 화가입니다. 그런데 미술계에서 그다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봐온 조영남의 대작 ‘조수’였고, 그 ‘인건비’로 ‘알바’ 수준의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작가로서의 명성과 명예와 값어치는 곤두박질쳤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대작 논란이 불거지자 조영남은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해명했다가 논란에 물이 아닌 기름을 뿌리는 격이 됐습니다. 미술계가 반발한 것은 물론 평소 그의 자유분방한 성향에서 해방감의 대리만족을 느꼈던 지지층조차 후안무치하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습니다.





송모 화백은 SBS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조영남의 ‘대작문제’ 제기를 먼저 하진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의 제기를 누가 먼저 했느냐는 대중에게 그다지 중요치 않습니다. 조영남이 자신의 것이라며 전시했던 작품들을 그 누군가가 대신 그려줬다는 것, 그것이 문제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리고 조영남은 이렇게 큰 사건에 대해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관행”이라는 아주 쉬운 변명거리로 언론과의 인터뷰를 대신했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관행이라는 말은 마땅한 변명거리가 없을 때 손쉽게 쓰는 핑계의 대체제로 변해버린 듯합니다. “오래 전부터 해 오는 대로 함, 또는 관례에 따라서 함” 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핑계를 찾는 이들의 잦은 남용으로 인해 부정적인 의미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래서 관행 운운하는 조영남의 대작 정당화가 대중에게는 비논리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더니 이내 그 당당함은 꼬리를 내렸습니다. 검찰조사와 언론의 보도가 시작되니 자신의 작품을 구입한 사람들이 불쾌해 한다면 환불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대작이 관행이고 당당한 일이라면 왜 굳이 그 비싼 값으로 자신의 작품을 구입한 이들에게 환불을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자가당착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현재 그는 실어증에 걸렸다며 입을 닫고 있습니다. 너무 잦은 궤변에 대중들이 돌아서자 이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묵묵부답인 모양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조영남 특유의 유쾌함을 잃었다는 지인의 전언에 대중은 그저 불쾌할 뿐입니다. 사건의 시작이 온전히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대중의 부정적인 시선은 조영남 자신이 만든 것입니다.


그는 작품을 “상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상품은 그 속성상 상업주의와 함께합니다. 그가 보여주었던 예술열정은 상업주의를 업고 있는 ‘그냥 그런 척’이었는가 봅니다. 전시회를 할 때마다 그림을 통해 만지는 꽤 큰돈에 어쩌면 그는 화가라는 타이틀을 놓기가 힘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브랜드가 돈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이번 사건은 특히나 더욱 가슴 답답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작품의 컨셉이며 디테일한 작업 전체를 스스로 하고도 대중에게 평가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좀처럼 만나기가 어려운게 현실입니다.


미술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도 아티스트라며 가수로 얻은 이름값으로 조영남은 너무도 쉽게 전시 기회를 얻고, 미디어를 통해 작품 홍보까지 가능케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유명화가 못지않게 비싼 값에 그림을 팔 수 있었고 결국에는 유명 화가가 되었습니다. 유명 연예인이 유명 예술가가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진정으로 예술 열정 가득한 작가들에게 이런 일은 그저 꿈에서나 가능할 뿐입니다. 열정과 재능보다 우위에 선 이름값, 싸인 하나가 작품의 값을 결정한다는 사실에 맥이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싸인은 몇 백에서 몇 천 만원을 호가 하는데 정작 그 그림에 대한 수고비는 10만원 남짓이라니, 열정페이도 이런 열정페이는 없을 듯싶습니다. 조영남 같은 사람들의 갑질에 화가 나는 이유입니다.





현재 미술계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전문가적 해석이 분분한 상황입니다. 법조계 역시 사기죄 여부를 놓고 계속해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 대중이 그에게 실망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조영남은 자신의 비도덕성에 대해 대중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아쉽게도 정서상 동의를 구할 수 있는 타이밍은 이미 오래 전에 놓쳐 버렸습니다.


평소 자신이 ‘자유로운 영혼’인 것을 드러내놓고 알려온 조영남은 젊은 여자들과의 교류, 연애 그리고 ‘썸’ 등에 대해 거리낌 없는 솔직한 생각을 담은 발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 때 옆자리를 지켜주는 여자에게 재산의 상당부분을 주겠다는 ‘철부지 발상의 순수한 연애감정과 보은의 의지’의 소신을 피력하곤 했습니다. 그 발언이 다수의 여성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었겠지만 일부에선 솔직해서 좋다는 반응도 없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간의 이런 솔직하지만 철부지 같은 언행이 이번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 같습니다. 조영남은 현재 연예생활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이 ‘대작논란’은 그의 그림의 값어치를 폭락시키는 수준을 넘어서 유통 자체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사기 혐의라는 법적인 의심과 싸워야 할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가수 조영남의 히트곡은 번안곡 아니면 리메이크가 대부분입니다.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화개장터’도 오리지널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번 논란으로 거의 유일한 오리지널리티를 지닌 가수가 아닌, 연출가형 가수인 그의 활동에 제동이 걸릴 것은 뻔해 보입니다. 그는 음원으로 승부하는 가수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각시키는 가수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분명 축복받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오리지널곡하나 없이 그 오랜시간 남의 곡을 리메이크하거나 외국곡을 번안해서 불러오는데도 그의 공연은 언제나 매진사례를 이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논란으로 그의 화가로서의 활동도 오리지널이 아닌 남의 손을 거친 연출작임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어찌 할 것인가요? 제 생각엔 그냥 조용히 연예계에서 사라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날이 점점 더워져서 그런지 그냥 이런 사람들 보기가 무지 불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