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함께 미국의 양대 정당인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사실상 확정 되었습니다. 이로서 11월의 본선에서 트럼프 후보는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확실시 되어 보이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대결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당의 대선후보인 트럼프로 인해 공화당은 극심한 내분과 혼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창당 이래 최대의 정체성 위기에 빠진 것입니다. 인기영합주의적 발언과 자극적 행동 등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어온 미 정치권의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가 된 공화당은 앞으로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사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공화당과 민주당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토머스 제퍼슨이 이끈 민주공화당(Democratic-Republican Party)이 전신인 것입니다. 당시 민주공화당은 연방당과 경쟁하며 양당체제를 구성했지만 민주공화당은 이후에 친 앤드루 잭슨파와 반 앤드루 잭슨파로 분열되었습니다. 그리고 1828년, 앤드루 잭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반 잭슨파는 연방당의 연방주의자, 남부 민주공화당원, 보수주의자들을 결집하여 휘그당을 창당하게 됩니다. 반면 친 잭슨파를 위주로 당에 잔류한 세력은 당명을 민주당으로 고치며 현재의 민주당으로 면면을 이어오게 됩니다.
휘그당은 민주당과 더불어 양대 정당으로 성장했으나, 밀러드 필모어 이후 대통령 당선자를 배출해내지 못하게 됩니다. 그 뒤 1850년대 노예제 찬반을 두고 벌어진 정치적 파국속에서 새로이 ‘반노예제’를 가치로 내걸고 창당된 공화당이 다수의 휘그당원들을 흡수하면서 현재의 공화당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정당이 2세기를 거치면서 보수 가치를 내건 정당으로 발달한 데에는 1896년부터 1932년까지 진행되었던 미국의 진보운동의 영향이 컸습니다. 이 진보운동 기간 동안 공화당은 보수 정당으로 거듭났고, 민주당은 진보(리버럴)정당으로 노선이 옮겨 간 것입니다.
1854년 창당된 공화당은 당시로서는 진보정당이었습니다. 상공업 중심 경제의 북부 신흥 중산층과 노예제 등을 반대하는 공화주의자들이 기반이 된 공화당은 에이브러햄 링컨을 자신들의 첫 대통령으로 배출했습니다. 링컨과 공화당은 미국 연방에서 이탈하려는 남부에 맞서 남북전쟁을 불사하며 미국 연방을 지켜냈습니다. 그 후 공화당은 1932년까지 미국 행정부와 의회를 거의 장악한 다수당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공화당은 북동부 지역의 대자본 세력으로 무게 중심이 치우쳤습니다. 이 때문에 공화당은 1932년 이후부터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이끄는 남부 보수세력부터 트로츠키 좌파까지의 민주당 중심의 ‘뉴딜연합’에 밀리며, 행정부와 의회에서 소수당으로 밀려났습니다. 공화당은 50년대 이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로 대표되는 중도 실용주의와 리처드 닉슨으로 대표되는 현실주의 세력 주도로 백악관, 즉 행정부를 장악하기는 했으나, 의회는 여전히 민주당 몫이었습니다.
공화당 내에서는 60년대 중반 이후 배리 골드워터로 대표되는 보수우파 세력들의 우경화 작업이 진행되게 됩니다. 이 조류는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과 1994년 뉴트 깅그리치 당시 하원 원내대표가 이끈 ‘보수혁명’으로 공화당을 의회 다수당으로 만들며 당의 주류로 올라서는 데 성공했습니다. 공화당은 또한 2010년 중간선거에서 ‘티파티 운동’이 공화당 하원선거 경선에 대거 참여하면서 더욱 보수적 색채를 띄게 됩니다. 이후 작은 정부, 감세, 사회복지 축소, 자유무역, 매파적 대외정책 등이 당의 주류 노선이 되고, 이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주류가 됐습니다.
공화당은 지역적으로는 중부와 남부의 비도시 지역, 계층적으로는 대자본을 소유한 최상위 계층과 보수적 백인 중하류 노동계층, 이념적으로는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려는 보수우파 및 기독교복음주의 세력으로 재편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실용주의와 현실주의 노선은 완전히 소수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공화당의 하원내 강경보수 초선들이 존 베이너 전 하원의장을 낙마시키고, 작은 정부와 감세의 대표적 옹호자인 폴 라이언을 하원의장으로 등극시킨 사건은 공화당 우경화의 절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트럼프입니다. 그는 이민 문제 등에서 인종주의적 막말을 일삼은것 외에도 공화당의 기존 주류 가치를 완전히 부정했습니다. 자유무역을 반대하고 사회복지 수호를 내걸고 매파적 대외정책을 조롱했습니다. 영국의 BBC가 세금, 국가안보, 이민, 대외정책, 낙태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와 전직 대통령 닉슨, 레이건, 조지 부시 부자, 그리고 경선 경쟁자들인 존 케이식, 테드 크루즈, 마코 루비오의 입장을 비교한 결과, 트럼프는 이민 문제에서만 가장 보수적이었습니다. 나머지 사안에서 트럼프는 이들 사이에서 거의 가운데, 즉 중도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책 면에서만 보면, 트럼프는 현재의 공화당에는 이단일 수 있으나, 링컨 이후의 공화당 역사에서는 결코 이단일 수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어쩌면 공화당 전체 역사에서 보면, 현재의 공화당 노선과 주류 세력들이 이단일 수도 있다는 말도 성립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공화당측 인사들은 레이건 전 대통령의 최대실수로 조지 H. 부시를 부통령에 지명하며 공화당내 보수우익세력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링컨과 함께 공화당 출신 대통령 중 가장 큰 사랑과 존경을 받는 레이건이지만 대선 출마당시 중앙정치권에서 약한 입지를 보완하기위해 손을 잡은 부시로 인해 향후 공화당의 이념이 기득권과 강경 우익을 대변하는듯한 지금의 모습으로 고착되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작금의 공화당의 이념적 성향과 트럼프가 상이하다해서 그를 이단아로 매도만 할 순 없다는게 공화당내 트럼프 지지자들의 항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공화당은 트럼프의 노선과 정책으로 선회할 수 있을까요? 문제는 트럼프 자신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철학과 이데올로기적 일관성을 갖는 정형화된 세력이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현재로선 최상류층 계층 이익 중심으로 치우친 공화당 우경화가 빚은 사회경제적 상황에 소외된 이들의 불만 표출일 뿐입니다.
공화당의 딜레마 해결을 위해선 두 가지 길이 있어 보입니다. 트럼프와 지지세력들이 확고한 철학과 이데올로기를 갖는 정형화된 세력으로 거듭나서 공화당을 완전히 접수하는 게 그 하나입니다. 다른 길은 현재 공화당의 주류들이 트럼프를 통해 보여준 기층 지지세력들의 불만을 치유하는 실용주의와 현실주의 노선으로 당을 선회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제2의, 제3의 트럼프 출현을 막는 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두 가지 길 모두 현재로선 어려워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공화당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당분간 정체성 분열에 시달릴 것입니다. 어쩌면 이번논란으로 반세기이상 이어져온 공화당의 강경보수성향이 변화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말입니다. 자당 대통령후보로 인해 사상 유례없는 정체성 혼란에 빠진 미국의 공화당이 과연 이 위기를 극복하고 당내 통합은 물론 나아가 11월의 대선에서도 승리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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