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막말과 과격한 행동 등으로 논란에 휩싸여 왔던 미국의 트럼프와 필리핀의 두테르테가 각각 미 공화당의 대선후보와 필리핀 대통령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가히 막말 정치의 전성기가 도래한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는 일련의 사건(?)들입니다. 이들은 자극적 언행 외에도 자국정치의 철저한 ‘아웃사이더’들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는 ‘아웃사이더’들의 부상은 ‘분노의 정치’나 ‘나쁜 남자 전성시대’로만 바라보기에는 그리 간단치 않은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애국주의를 설파하고, 공공연히 이슬람 문명과의 충돌을 부추깁니다.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이라크를 침공했던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조차 금기어로 삼던 ‘이슬람과의 전쟁’을 대놓고 강조하는 셈입니다. 트럼프는 모든 무슬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규정해 미국 입국을 금지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그에 대한 전국 지지율은 40%로, 라이벌 힐러리 클린턴에 불과 1% 포인트 뒤졌다고 로이터는 11일(현지시간) 전했습니다.
‘필리핀의 트럼프’로 불리는 두테르테 역시 기성 정치에선 보기 어려운 극단적 발언들을 쏟아냈으나 지난 9일 치러진 대선에서 압승했습니다. 1946년 필리핀 독립 이후 70년간 이어온 유력 가문 중심의 정치를 단박에 뒤집어 버린 것입니다. 이면에는 치안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읽어낸 혜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트럼프에게 공공의 적이 불법 이주민과 무슬림이라면 두테르테에겐 범죄자와 외국인이었던 것입니다. 나치시대 히틀러의 유대인 탄압에서 엿보이듯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애국주의는 공공의 적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결집함과 동시에 비주류 정치인의 인기를 단박에 끌어올린 동력이 됐습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같은 현상을 ‘트럼피즘’(트럼프 동조현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분노와 상실감이 그 배경입니다. 이미 ‘트럼피즘’은 세계 곳곳에서 목도되고 잇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선 난민 유입을 거부하는 극우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45) 후보가 대선 결선에 진출하는 이변을 낳았습니다. 유럽 난민사태가 불쏘시개가 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브라질 역시 극우성향의 군 출신 자이르 보우소나르(61) 하원의원이 여성과 이민자, 동성애자를 겨냥한 막말에도 불구하고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떠올르고 있습니다. ‘페트로브라스 스캔들’로 상징되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분노 내지 실망감 탓입니다. 이런 움직임에는 좌우가 없습니다. ‘분노하라’ 운동의 원조격인 스페인의 좌파 신생정당 포데모스는 지난해 말 총선에서 제2당으로 자리매김하며 30여년 만에 양당 체제를 무너뜨렸습니다. 50% 가까운 청년실업률이 분노의 자양분이었습니다. 사회주의자로 미 민주당 대선 경선주자인 버니 샌더스(74) 버몬트 상원의원의 돌풍도 따지고 보면 이 같은 분노에 기반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2011년 9월 뉴욕을 기점으로 80여 개국으로 번진 99% 시민의 1% 부자에 대항하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시발점입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리먼사태’가 한창이던 2007년 12월부터 2009년 6월 미국에서 4000만 명의 근로자가 해고됐습니다. 지금도 1400만 명이 일자리를 찾거나 시간제 일자리에 매달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반면 25~54세 백인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추세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999~2014년 미국의 자살률은 이전보다 무려 24% 증가했습니다. 특히 중년 백인의 사망률이 급증했습니다. 백인 인구 비중도 2000년 69.1%에 2014년 62.1%로 줄면서 미국이 백인의 나라가 안 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더욱 커졌습니다. 미 럿거스대는 설문을 통해 ‘리먼사태’ 이후 미국인들이 ‘값싼 외국인 노동력’ ‘불법이민’ ‘월가 은행가들’을 분노의 대상으로 꼽았다고 적시했습니다. 이 같은 현실은 “일자리를 되찾아 주겠다”고 약속한 트럼프에게 상당한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WSJ는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피즘’의 원조는 따로 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외교문제 수석평론가인 기디언 래크먼은 최근 ‘트럼프는 어떻게 세상을 바꿨나’란 제목의 칼럼에서 이 문제를 되짚었습니다. 그는 2002년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 진출했다가 낙선한 장 마리 르펜 전 국민전선(FN) 당수를 트럼피즘의 원조로 꼽았습니다. 르펜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역사에서 사소한 일”이라고 말해 전 세계를 경악시켰던 인물입니다.
래크먼은 르펜의 등장을 세계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전기로 평가했습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애국주의, 반이민, 반이슬람, 반유럽연합(EU) 정서가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는 설명입니다.
트럼프 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진보적 미국인들은 아직도 트럼프 현상을 올 11월 대선 이후 깰 악몽 정도로 치부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당선 여부를 떠나 차세대 애국주의자들이 트럼프가 닦아놓은 길의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 입니다. 나아가 워싱턴(정치)과 월스트리트(경제)뿐 아니라 주류 언론, 대학 등 모든 엘리트에 대한 가차 없는 공격을 퍼부은 ‘트럼피즘’이 조만간 유럽으로 건너갈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래크먼이 꼽은 트럼피즘의 위험요소는 전염성에 있습니다. ‘반세계화’ ‘애국주의’ ‘문명의 충돌’ ‘무자비한 공격’ ‘음모론 부상’ 등 ‘트럼피즘’의 특징은 미국의 세계 경찰로서의 역할과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위협할 것이란 전망입니다. 미국은 현재 2조 달러(약 2330조원)가 넘는 공공부채에 대해 연간 2000억 달러(약 233조원) 이상을 이자로만 내고 있습니다. 만성적 재정적자에 대한 답을 ‘트럼피즘’과 같이 외부에 찾고 있는 것입니다.
‘트럼피즘’이 대선 이후에도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란 또 다른 이유는 계층에 상관없이 미국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렸다는 해석 때문에 가능합니다. ‘족집게 대선 예측가’인 네이트 실버는 자신이 운영하는 통계분석매체 ‘파이브서티에이트’를 통해 트럼프 지지층이 교육·경제 수준이 낮은 백인이라는 기성 언론의 보도를 뒤집었습니다. 공화당 경선 출구조사 결과, 트럼프 지지자들의 가계소득 연평균은 7만 2000달러(약 8388만원) 수준으로, 미국 전체 가계소득 평균인 5만 6000달러를 크게 웃돌았습니다.
이 같은 흐름을 되돌릴 방법은 없을까요? 지난 5일 치러진 영국 런던시장 선거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최초의 무슬림 시장으로 당선된 사디크 칸(45)은 분노의 정치와 일정 부분 교집합을 이뤘지만 이를 다시 뛰어넘는 융합의 정치를 제안했습니다. 가진 것 없는 ‘흙수저’ 출신 인권변호사인 그는 선거에서 민생고를 공략했습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월세에 런던에서 내쫓기는 시민들에게 호소하고, 지하철 등 교통요금을 4년간 동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런던시민들의 분노에 힘입어 재력가 출신의 ‘금수저’인 보수당의 골드 스미스 후보를 따돌렸습니다.
하지만 칸은 분노의 정치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계층·이념의 사람들을 큰 천막 안에 포용해야 한다”며 관용을 설파했습니다. 트럼프의 애국주의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입니다. 앞서 2005년 7·7 런던테러 직후 하원의원 신분으로 연단에 올라 “희생자나 생존자, 인종, 종교에 상관없이 모두 하나의 런던시민이며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연설로 테러의 아픔을 위로하던 때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앞서 포스팅한 글에서도 서술했듯이 1930년대 독일의 히틀러나 1960년대 쿠바의 카스트로 그리고 2016년 미국의 트럼프 같은 자극적이고 분열적이며 선동적인 정치인들이 활약할 때는 그만한 정치적 사회적 이유가 있습니다. 하루하루의 현실이 힘들고 고달플 때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고 그런 기조 속에 기존과는 다른 파격적인물이 정치권 전면에 부상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2007년 미국의 ‘금융위기’를 ‘자본주의’사망의 시발점이라 평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글로벌 경제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말일 것입니다. 세계경제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지구촌 여기저기서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정치인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다소 본질에서 벗어난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필리핀의 경우 두테르테가 아니라도 그 누군가는 나서서 밑바닥부터 제대로 한번 뒤집어엎을 필요가 있긴 합니다. 사회저변에 만연한 기득권층의 독점과 부패가 그 도를 지나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근원적 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인 것입니다.
다행이 우리 한국은 대권 잠룡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비교적 무난(?)한 상황입니다. 아직까진 말입니다. 하지만 언제 상황이 급변해 과거 대선에 출마한 이력도 있는 허경영 같은 이가 정치권을 혼란에 빠뜨릴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미국 역시 1년 전만해도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가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요!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요?! 다시는 2차 세계대전의 원흉인 히틀러 같은 정치인이 세상에서 활개를 치진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정 반대의 길로 들어선 듯합니다. 미국의 트럼프와 러시아의 푸틴 그리고 일본의 아베를 과거 1930년대의 히틀러와 무솔리니 그리고 제국주의 일본과 비교해 본다면 왠지 오싹한 기분마저 듭니다.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사이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 듯한 생각은 저만의 착각일까요?
트럼프와 두테르테 같은 ‘아웃사이더’들이 득세하는 가운데서도 영국의 칸 런던시장 같은 이는 한줄기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습니다. 같은 정치적 ‘아웃사이더’이지만 트럼프와 두테르테가 분열과 반목을 조장하는 것과는 상반되게 그는 화합과 융화를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분열의 정치가 득세하는 위험한 세상에서 화합의 정치가 분열의 정치를 희석시키며 현명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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