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의원을 선출한 4.13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16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었습니다. 오만한 여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그 대안으로 야당들의 손을 들어주었고 가히 ‘혁명적 선거’라 할 만한 결과를 도출해낸 것입니다.
지난 4.13 총선은 또한 한국 선거의 각종 ‘통설’이 깨진 선거라 할 수 있습니다. 선거 결과를 통해 한국 정치지형이 한쪽에 유리 또는 불리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기울어진 운동장’ 이론이 흔들렸고, ‘보수 신화’도 허물어졌습니다.
그동안 영남권과 50·60대는 여권의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영남권 의석수(65석)는 야권 지지기반인 호남(28석)의 2배를 넘습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선 ‘보수 벨트’인 영남권의 충성도 약화가 확인됐습니다. 17석을 야당과 무소속 후보에게 내주고 말았습니다.
부산에서 새누리당의 정당 득표율(41.2%)은 더불어민주당(26.6%)과 국민의당(20.3%)을 합한 지지율에 못 미칩니다. 서울 강남도 마찬가지 입니다. 정당 득표율이 38.2%로 더민주(22.0%)와 국민의당(27.1%) 합산 지지율에 10%포인트 넘게 뒤졌습니다.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 중 정당투표에선 국민의당을 찍은 경우도 많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입니다. 지역에 따른 몰표 성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수도권의 전체 의석수가 증가(10석)한 점도 ‘영남권 결정력’을 약화시킨 요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5060세대도 통설과 달리 새누리당에 대한 충성도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새누리당은 수도권(122석)에서 35석을 확보하는 데 그치는 등 122석을 얻는데 그쳤습니다. 탄핵 역풍이 불었던 17대 총선 때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의석(121석)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5060세대 투표율이 지난 총선 때와 비슷한 걸 감안하면 5060세대의 균열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반면 2030세대는 적극 투표에 나서 16년 만에 ‘여소야대’를 만든 주원인으로 꼽힙니다. 20대와 30대의 투표율은 각각 49.4%, 49.5%로 집계됐습니다. 19대 총선 당시의 36.2%와 43.3%를 훨씬 웃도는 수준입니다. 2030세대는 투표 무관심층이어서 투표율이 크게 낮을 것이라는 통념이 깨진 것입니다.
보수가 경제와 안보에 유능하고, 안정감을 보여주는 세력이라는 신화도 깨졌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먹고사는 문제에서 별다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총선에선 박근혜 정부 심판 정서가 확인됐습니다. 여권의 시대착오적 권력 투쟁으로 보수층에서조차 여당에 대한 보이콧 정서가 커진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고령화에 따른 보수화 이론이나 세대별 가설에도 의문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고령화에 따른 보수화 이론이 맞다면 2012년 대선에서 진보 진영이 2007년 대선에 비해 비약적 결집을 한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이론이 통할 수 있는 환경이 달라졌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제3당이 등장하면서 기존 진영논리가 흔들리는 등 ‘기울어진 운동장’ 논리가 통할 수 있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치지형이 중도층이 두껍고, 보수나 진보 성향 유권자 중에서도 각 진영에 대한 선호나 이념 성향이 약한 유권자 비율이 높기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시소’나 ‘디스코 팡팡’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더불어 4·13 총선 결과 정치권의 가장 큰 변화는 거대 양당제 중심 정치지형이 ‘3당 체제’로 바뀐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권자들의 교차투표 등으로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의 양당 구조가 깨지고 국민의당이 38석을 얻으며 3당 원내교섭단체 구도로 20대 국회가 짜여졌습니다. 유권자들이 기존 의회 권력을 점유해온 양당 시스템을 거부하고 사실상 다당제 정치를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은 정치권이 자초한 일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각종 현안들에서 여야 두 정당이 정쟁만 하다 해결점을 찾지 못하면서 굵직한 민생현안 처리 등은 외면돼 왔고, 그 결과 정치혐오 현상은 증폭돼 왔습니다. 선거 때마다 ‘이 당 아니면 저 당’만 선택해야 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다보니, 여당은 민심과 괴리된 정책을 펴고 야당은 ‘못해도 2등’이라며 안주해왔습니다. 유권자들은 마음속 정답이 아닌 선택지도 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투표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사표가 증가해 선거마저 여론을 왜곡했습니다.
결국 ‘3당 체제 ’출현은 이 같은 현실을 유권자들이 직접 ‘심판’한 것이란 분석도 제기됩니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두 당이 양당 구도에 안주하고 함께 ‘담합’을 해온 게 사실”이라며 “이제는 모두가 민생을 위해 경쟁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당제 국회가 되면서 선거제도 변화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양당 ‘승자독식’ 체제를 낳는 현행 소선구제가 아니라 지역구별로 2~3인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나 각 당이 권역별로 비례대표 후보를 출마시켜 선택을 받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등 다당체제를 제도화할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결선투표제 등을 도입한다면 사표를 줄이며 여론을 더 충실히 반영하게 돼 다당 구도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4.13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하면서 ‘보수 개혁’이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승리한 야당들에 비해 패배한 여당에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전통적으로 보수진영에 대한 지지층이 진보 측에 비해 두껍고 야권까지 분열된 유리한 선거구도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한 데에는 수구보수화된 정부·여당에 실망한 지지층의 이탈이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2012년 대선 때까지만 해도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전면에 내걸고 개혁적 보수의 이미지를 부각시켰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 테러방지법 제정, 개성공단 폐쇄 등 퇴행적이고 수구적인 모습으로 돌변했습니다. 새누리당 역시 청와대와 코드가 맞는 인사들이 주류로 부상하면서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개혁적 보수 지지자들의 이탈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 후보가 수도권에서 두 자릿수를 득표했음에도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승리한 것은 새누리당 지지층이 돌아섰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는 15일 “대통령이 수구보수이면 당 지도부는 개혁적 메시지를 내서 정권을 운영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보수적이었다”며 “새누리당에 실망한 여권 지지층이 대거 국민의당을 지지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은 SBS 라디오에 나와 “늘 진정한 보수, 개혁적 보수가 되겠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 가치를 가장 잘 지켜내고 실현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국민들에게 주지 못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새누리당은 당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며 쫓아냈던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의 복당을 받기로 했습니다. 유 의원은 그동안 “당에 돌아가 보수 개혁에 앞장서겠다”고 말해왔습니다. 20대 국회 초반 새누리당이 재벌 개혁, 양극화 해소 등 개혁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정책에 시동을 걸지 주목되는 대목입니다.
‘혁명적 선거’로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4.13총선으로 16년 만에 ‘여소야대’국회가 구성되었습니다. 선거에서 패배한 새누리당은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변화를 요구한 우리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할 것이며 승리한 더민주와 국민의당 역시 승리감에만 도취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손을 들어준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귀를 기울이며 성실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제대로 일하지 못하면 우리 국민들은 언제라도 아픈 매를 들 수 있다는 것을 이번 4.13 총선으로 여실히 느꼈을 정치권이라 믿고 싶습니다.
5월말 20대 국회가 개원하면 이제 정국은 내년 12월에 있을 대선에 초점이 맞춰질 것입니다. 이번 총선으로 여권의 대선주자들은 지리멸렬한 반면 야권의 잠룡들은 한껏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야당으로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졌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야당이 일시적 승리감에만 도취돼 수권정당으로서의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들 또한 새누리당이 지난 총선에서 맞은 매를 내년 대선에서 피할 수 없음을 절대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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