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우리사회

Chris7 2016. 5. 12. 12:44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우리사회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옥시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도 확산되고 있는 중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을 접하며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데,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 146명 중 103명의 목숨을 앗아간 옥시의 안하무인격 태도와 5년 동안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이제서야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양 호들갑을 떠는 정부와 국회의 모습 때문입니다.



지난  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환경운동연합, 어린이날 맞아 가습기 살균제 옥시 불매 인증샷 캠페인'에서 시민들이 인증샷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가습기 살균제 유가족과 환경단체 대표가 최근 옥시 본사인 영국 레킷벤키저를 방문해 라케시 카푸어 최고경영자(CEO)를 만났으나 공식적인 사과를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미 한국에서 (옥시레킷벤키저 코리아 대표가) 사과를 했고, 배상방안을 마련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사망한 아이의 사진을 보여줬는데도 외면했다고 합니다. 한국을 무시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온 국민이 옥시에 분노하는 이유는 비단 피해자가 많이 발생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동안 옥시가 보여준 태도가 문제인 것 입니다. 옥시는 지난해 말 검찰에 77쪽짜리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피해자들의 집단 폐 손상원인은 가습기 살균제가 아닌 봄철 황사나 꽃가루에 의한 것이라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심지어 옥시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의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독성실험 결과를 통째로 누락시키기도 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생식독성실험에서 임신한 쥐 15마리 중 13마리의 새끼가 죽었다는 결과를 제외했습니다. 무고한 103명의 목숨을 앗아 갔음에도 불구하고 책임회피에만 급급한 옥시에 국민이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옥시에게만 돌린건 아닙니다. 국민의 생명을 책임질 정부와 행정부를 견제할 의무가 있는 국회도 방관자로서 심판받아 마땅합니다. 서울아산병원 소아과 홍수종 교수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원인 미상의 어린이 간질성 폐렴이 유행하자 전국 23개 종합병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습니다. 그 때 비슷한 유형의 환자 78명을 확인했는데 그 중에 36명이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홍 교수는 그런 내용을 2009년 3월 대한소아과학회지에 '급성 간질성 폐렴의 전국적 현황조사'라는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만약 그 당시 질병관리본부가 역학조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줄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질병관리본부가 집단 폐손상의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한 것은 그로부터 3년 후인 2011년 8월이었습니다. 그 해 11월 당시 김황식 국무총리가 원인미상 폐손상의 원인으로 밝혀진 가습기살균제와 관련해 정부의 종합적인 관리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내린 조치는 옥시 등 가습기살균제 판매기업에 허위과장광고 혐의로 5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게 전부였습니다.


보건복지부는 가습기살균제가 사망 원인이라는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고도 피해 문제는 제조사와 소송하라며 발뺌했고, 환경부는 공산품으로 인한 문제는 환경과 무관한 것이라고 꽁무니를 뺐습니다. 가습기 살균제에 KC(국가통합인증) 마크까지 붙여준 산업부는 세척제는 '자율인증품목'이라며 책임이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서로 폭탄 돌리기만 하던 정부는 5년이 지나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로 온 국민이 분노하자 이제서야 피해자에 대한 생계비 등 생활지원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국회는 또 어떠한가요? 2012년에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한 국회보건복지위의 국정감사가 열렸지만 증인으로 채택된 옥시레킷벤키저 대표는 출석을 거부했습니다. 이듬해 국정감사에서 쉐커 라파카 당시 옥시레킷벤키저 코리아 대표가 50억원 규모의 피해자 지원기금 조성 계획을 밝히자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국회차원의 조사는 유야무야되고 말았습니다. 그랬던 국회가 이제 와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한 청문회를 여는 문제를 두고 옥신각신하고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5년 동안 피눈물을 흘릴 때는 뒷짐 진 채 먼 산만 바라보던 정부와 국회가 이제와서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유난을 떨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한심한 모습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저자신도 그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루하루 사는데 정신이 쏠려 그랬다고 변명 하긴엔 사안이 너무나 심각합니다. 저부터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피해를 입은 분들께 고개 숙여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정부와 국회는 정신을 차리고 성의 있는 자세로 이번사태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야권은 이럴 때 제대로 일하라고 국민들이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어 줬음을 가슴에 새기고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최근 미국에서 난소암 환자가 존슨앤존슨사를 대상으로 제기한 소송에 법원이 62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존슨앤존슨사에서 제조·판매한 파우더가 원고의 암발병 원인이라는 이유에 ‘징벌적 배상’이 더해진 결과입니다. 하지만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엔 이러한 ‘징벌적 배상’제도가 거의 전무한 상황입니다. 전경련을 위시한 제계의 반발에 정치권이 손을 놓고 있는 이유에서입니다. 한두 사람도 아닌 백여 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유발한 옥시같은 기업은 더 이상 우리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당장 ‘징벌적 배상’으로 단두대를 때릴 수 없다면 불매운동을 통해서라도 우리스스로 한국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일본에선 시민들의 불매운동으로 상한 우유를 제조·판매한 기업을 도산시킨 사례도 있습니다. 뭔가 제대로 본때를 보여줘야 할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