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포스팅한 글에서도 서술했듯이 지난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수 여당이 참패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 이론이 효력을 다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역별·세대별 유권자 분포나 보수 세력에 대한 인식, 언론 환경 등 우리 정치 지형이 보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돼 있어 보수 정당이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통설이 이번 총선 결과를 통해 깨졌다는 것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이론은 보수 성향 유권자가 진보 성향 유권자보다 많아 보수 정당이 선거에서 이기기 쉬운 구도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거혁명’에 가까운 이번 총선 결과를 두고 전문가들은 “유권자들 스스로가 이런 주류적 해석이 틀렸음을 보여줬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우선 보수층은 균열하지 않는다는 통설이 깨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새누리당은 50·60대 유권자와 보수 성향이 강한 영남에서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선거에서 승리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영남권(65석)에서도 17석을 야당과 무소속 후보에게 내주며 영남에서의 절대적 지위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영남권과 서울 강남3구 등 새누리당 강세 지역에서의 상대적으로 저조한 투표율을 놓고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충성도가 약해졌다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실제 수도권에서 새누리당 후보 지지율은 40% 선에 그쳤습니다.
유권자 구성상 보수 성향이 강한 50·60대가 많고, 상대적으로 야권 지지세가 높은 2030세대는 투표율이 낮아 여당이 유리하다는 통설도 흔들렸습니다. 50·60대에서도 새누리당에 일방적 지지를 보내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투표결과 집계에 따르면 20·30대 투표율은 19대 총선 때보다 각각 13.2%포인트, 6.25%포인트 오른 것으로 집계되는 등 젊은층도 적극적으로 투표에 나섰습니다.
보수에 대한 우호적인 ‘신화’가 무너졌다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에서 야당을 ‘안보·경제 불안’ 정당으로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막장 공천 등 내부 갈등은 ‘안정과 질서’라는 보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경제는 보수’라는 통념도 깨졌습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경기 침체와 높은 청년 실업률 등이 경제성장에 대한 보수층 기대를 낮췄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정부·여당이 안보 위기를 지나치게 활용함으로써 안보 문제에 대한 반응도를 떨어뜨려 오히려 보수 지지층 결집을 약화시켰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보수가 여전히 유리한 환경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보수의 절대적 우위라는 막연한 인식은 이번 총선 결과를 통해 허물어졌다”며 “보수 세력이 유권자 눈높이에 맞춰 변화를 택하지 않으면 이전 같은 지지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반적 통념상 사람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조금씩 보수화 되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습니다. 즉 이념적으로 진보 혹은 중도성향인 사람이라도 나이가 드는 것과 비례해 가진 것, 지켜야 할 것이 늘어나며 점차 보수화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통념이 미국 등 서구권에선 이미 상당히 큰 폭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현재 연령상 60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50년대생 ‘베이비붐버’들은 자신들의 20대였던 60년대 말과 70년대 초.중반 ‘인권문제’와 베트남전 반대 등의 사회적 현상 속에서 역대 어느 세대보다 이념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띄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윗세대가 나이가 들며 점차 보수화 되었던 것과는 달리 70대를 바라보는 현재에도 진보적 성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미국의 전반적 정치지형이 과거 보수상향의 공화당 우세에서 진보적 성향의 민주당 우세로 크게 전환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정치지형 변화에는 시니어 세대의 정치성향 외에 인종별 인구분포 변화라는 근원적 이유와 이에 연계된 미국만의 독특한 대선 시스템이 있긴 합니다. 다소 이야기가 옆길로 새는듯 하지만 굳이 이 부분을 이야기 하자면, 최근 1,20년 내 미국의 백인인구수는 점진적으로 감소하는데 반해 히스패닉계 등 비백인계는 상당히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특히 이들 히스패닉계가 기존의 인구수가 많은 주에 집중되다보니 대의원선출이라는 간접선거방식과 각 주별로 ‘승자독식제‘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미 대선에서 해가 갈수록 민주당에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암튼 각설하고. 미국의 시니어 세대와 비교해 우리나라는 아직 그들과 10여년정도 시차가 있는 듯합니다. 미국의 진보적 ‘베이비부머’와 동세대인 한국의 60.70대는 6.25 후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태어나 60.70년대 경제고도화 사회에서 참으로 땀 흘리며 고생한 분들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분들이 지난 대선에서 보수 박근혜 정부 탄생의 주축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 40,50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80년의 ‘서울의 봄’과 87년의 ‘민주화 항쟁’을 온몸으로 겪은 우리역사상 가장 진보적 세대입니다. 이들이 현재 우리사회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연령상 60,70을 넘기더라도 자신들의 진보적 성향을 고스란히 간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 ‘여소야대’정국을 만든 가장 큰 손(?)들이기도 합니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연이어 패배한 야권은 그동안 ‘기울어진 운동장’ 이론을 들먹이며 볼멘소리를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20대 국회의원 선거는 그 이론이 크게 변화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더 이상 운동장이 기울었다며 변명만을 할 순 없게 된 것입니다. 이제 정치권은 내년 12월에 있을 대선을 향해 움직이게 됩니다. 그 어느 때보다 보수에서 진보로 정권교체가능성이 높아진 지금 야권의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우리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 살펴 가시권에 들어 온 듯한 정권교체를 현실화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그들의 손을 들어준 우리 유권자들이 수권정당으로서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패배의 쓰라린 맛을 다시금 안길 수 있음도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것입니다.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못난 모습을 보이자 보수성향의 60대 이상에서 일정 수 이탈 표가 나왔듯이 내년대선에서 야권이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시 진보성향의 40대 이하에서도 역시 이탈 표가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여야 정치권 모두가 긴장해야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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