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치뤄진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막말과 기행을 서슴지 않았던 정치인 로드리고 두테르테 다바오시 시장(71)이 결국 당선됐습니다. 그의 대선승리 배경으로 범죄자를 극형에 처하겠다는 등의 극단적인 공약이 유권자들에 통한 것 같다는 말들이 많지만, 필리핀 국민들이 그를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다는 분석입니다.
대선기간동안 검사 출신 초강성 정치인인 두테르테 열풍은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9일 실시된 대선에서 38.7%의 득표율로 23.4%를 얻은 집권여당의 로하스 후보를 제치고 당선을 확정지었습니다.
두테르테의 당선 일성은 "엄격한 독재자가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범죄, 마약, 부패 같은 '악'을 척결하기 위해선 '독재'도 불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우선 전국적으로 심야 음주를 금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표면적으론 '6개월 내 범죄자 10만 명을 처단하겠다'는 극단적인 공약이 먹힌 것 같지만, 필리핀 국민들이 그를 지지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다름 아닌 세습 권력층에 대한 분노입니다.
필리핀은 거의 모든 대기업의 오너는 물론 고위 공직까지 30여 개 명문 가문이 수십 년째 독점하고 있습니다. 아키노 현 대통령도 명문가 출신입니다. 해마다 6%씩 필리핀 경제가 성장했지만 권력자와 부유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갔습니다. 서민들은 갈수록 가난해져 갔고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권력가문 출신이 아닌, 그래서 오랜 세습정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두테르테의 집권은 향후 필리핀 사회에 불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막말로 유명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 예비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가운데 같은 막말로 화제가 된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필리핀의 새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이래저래 화제입니다. 튀는 말과 행동도 서로 비슷하지만 이들의 대중적 인기와 정치적 성공에 자리 잡은 근본 원인도 흡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두테르테의 당선 배경엔 수 십 년간 지속되어온 필리핀내 일부가문의 정치적·경제적 기득권 독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염증을 느낀 다수의 필리핀 국민들이 과격하지만 그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두테르테로 부터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의 트럼프 역시 그의 주 지지층인 백인 블루칼라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멕시칸을 중심으로 한 히스패닉과 무슬림에 대한 비난으로 해소시켜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중국을 주 타깃으로 한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침체된 중서부 공업지대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전 세계적 저성장 기조 속에 하루하루의 삶이 힘들어지다 보니 지구촌 곳곳에서 과격하고 선동적인 정치인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제 19개월 후면 우리도 대선을 치르게 됩니다. 아직까진 우리 정치권에 트럼프나 두테르테 같은 극단적 인물이 등장하진 않았으나 우리라고 언제까지나 안심만 할 순 없을 것입니다.
다소 지나친 비유이겠으나 독일에서 1932년의 총선을 통해 원내1당이 된 후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로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저변엔 당시 1929년 대공황이후 피폐해진 독일내 경제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제적 어려움을 히틀러와 나치당은 독일내 유대계 자본과 서방국가들의 간섭으로 규정지우며 강하게 비난했고, 그들의 선동에 많은 독일인들이 현혹되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어디까지나 히틀러와 그의 나치당은 독일에서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았다는 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땅 밑에서 솟아난 악인들이 아닙니다. 물론 합법적 절차를 통해 정권을 잡긴 했으나 의회내 의석수 과반에 미달이었던 나치당이 군부의 묵인하에 쿠데타에 가까운 방식으로 반대파를 몰아내고 나치당 독재에 접어들었지만 말입니다. 다소 옆길로 이야기가 새버리고 말았는데요, 각설하고 이번 필리핀 대선결과와 미국 내 트럼프의 승승장구를 바라보며 많은 상념이 드는건 어쩔 수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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