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 이야기

'옥중화' 이병훈PD와 진세연. MBC사극의 부활인가?

Chris7 2016. 4. 29. 10:03

2016년 방송계를 정의하는 말들 중 하나가 바로 ‘PD 브랜드’가 아닐까 합니다. 최근 시청자들은 연출자가 누구냐에 따라 시청 의사를 결정하고, PD들의 이적 소식이 포털 메인 페이지를 장식하기도 하며, PD가 여느 톱스타 부럽지 않은 두터운 팬덤을 지니기도 합니다. 방송PD들이 연예인 못지않은 인지도와 파워를 자랑하는 시대가 도래 한 것입니다.


‘PD 브랜드’시대를 시작한 이는 다름 아닌 이병훈 PD이었습니다. 그는 1974년 드라마 PD로 방송국에 입사한 이래 수많은 히트작을 탄생시켜왔습니다. 특히 ‘허준’, ‘대장금’, ‘이산’, ‘동이’ 등 대한민국을 넘어 전세계에 한류 열풍을 일으킨 걸출한 사극들을 탄생시키며 ‘사극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굵직한 발자취를 남겨왔습니다.


그런 이병훈 PD가 3년 만에 다시 사극으로 안방극장을 찾아 왔습니다. 게다가 ‘허준’, ‘상도’의 신화를 일궈낸 최완규 작가와 함께입니다. 이병훈 감독의 MBC 새 주말드라마 ‘옥중화’는 이병훈표 사극의 결정판으로 관심을 높이고 있습니다.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옥중화’는 이병훈 PD의 드라마들이 지닌 흥행요소는 모두 흡수하면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면모를 드러낼 것이라 합니다.





이병훈 사극 파워의 원천은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 역사적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선진적인 가치관을 지닌 흥미진진한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둘째는 수랏간, 도화서, 감찰부 그리고 사복시 등 우리 역사에 실존했던 기관이나 제도를 소개해 교육적인 효과를 준다는 점입니다. 끝으로 이병훈의 작품 속에서는 모든 캐릭터들이 매력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그려집니다. 단 한 명의 캐릭터, 단 한 장면도 허투루 버려지는 일이 없습니다.


언론보도는 여기서 진일보한 것이 ‘옥중화’라고 전합니다. 감옥에서 태어나고 자란 천재소녀 옥녀(진세연 분)라는 가상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드라마가 뻗어 나가는 세계를 확장시켰다고 합니다. 여기에 ‘전옥서’와 ‘외지부’ 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병훈표 사극의 가치인 ‘교훈성’과 ‘역사성’까지 톡톡히 챙겼다 합니다.


더욱이 ‘옥중화’엔 진세연(옥녀 역), 고수(윤태원 역), 김미숙(문정왕후 역), 전광렬(박태수 역), 정준호(윤원형 역), 박주미(정난정 역), 윤주희(이소정 역), 최태준(성지헌 역), 김수연(윤신혜 역) 등의 주요배우들부터 시작해 정은표(지천득 역), 이희도(공재명 역), 맹상훈(정막개 역), 쇼리(천둥 역)로 이어지는 감초라인에 이르기까지 탄탄한 연기자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더욱이 이지함-황진이-전우치-임꺽정-장금이 등 명종시대의 유명인들까지 대거 등장할 것으로 예고되고 있습니다.


특히 ‘옥중화’에서 눈길을 끄는 인물은 주인공역의 진세연입니다. 과거 이병훈 PD의 ‘이산’과 ‘동이’를 통해 한지민과 한효주가 스타 연기자로 발돋움한 사례가 있기에 같은 맥락에서 드라마 성공과 함께 배우 진세연이 과연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궁금해지는 것입니다. 이병훈 PD는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진세연이 맑고 선한 이미지를 갖고 있어 드라마에 캐스팅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이 PD는 "옥녀는 머리가 비상하고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어 총명한 이미지가 중요하다"며 "선한 눈빛과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배우를 원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드라마 제작에 즈음해 이병훈 PD는 “드라마를 맡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100킬로짜리 부담감을 등에 지고 달린다”며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스타PD로서의 부담감을 내비친 바 있습니다. 어쩌면 연출가로서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 ‘옥중화’ 앞에서 이병훈 PD는 새롭게 힘을 싣고 있습니다. 세간에서 이병훈표 사극의 집대성으로 불리는 ‘옥중화’에 남다른 기대감이 모이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드라마 중 유독 사극을 선호하는 저이긴 하지만 이번 이병훈 PD의 드라마를 접하며 기대보단 우려가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병훈 PD의 사극하면 ‘허준’과 ‘대장금’이 대표적이라 할 만큼 공전의 히트작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론 ‘허준’ 이전 1998년 방영된 ‘대왕의 길’이란 작품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MBC에서 1990년 조선왕조 500년 제11화 '대원군' 이후 1998년 8년 만에 내놓은 정통 대하드라마였던 ‘대왕의 길’은 전년도였던 1997년 KBS 1TV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의 성공에 자극받아 기획된 작품으로 총 50부작 동안 영조, 사도세자, 정조 3대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경쟁작이었던 SBS 수목 미니시리즈 '미스터 큐' '홍길동' 등에게 패하면서 저조한 시청률이 나오기에 이릅니다. 더욱이 작가와 방송관계자 사이의 갈등으로 인하여 조기종영설까지 대두되었습니다. 당초 24부작까지만 나오기로 되어 있던 사도세자 부분이 너무 길게 나온 것입니다. 작가 임충은 사도세자 역의 배우 임호의 아버지가 됩니다. 따라서 여러 루머들까지 나돌았습니다. 즉 임충작가의 아들인 임호가 연기한 사도세자의 비중이 기존 기획보다 필요이상으로 확대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총 50부작이었던 드라마는 34부작으로 사도세자 죽음으로 마무리 되고 맙니다. 사극 중 명작으로 꼽히는 드라마이나, 여러 악재가 겹쳐 조기 종영한 불운했던 드라마로 평가받습니다.


다소 서술이 장황해 졌으나 제가 ‘대왕의 길’을 언급한 이유는 이 당시만 해도 이병훈 PD의 사극이 지극히 역사적 사실묘사에 비중을 두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80년대 초반부터 MBC 정통 사극이었던 ‘조선왕조 500백년’ 시리즈를 연속 연출하며 다져진 이병훈 PD의 스타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사실적 사극의 마지막 종지부를 찍은 것이 바로 ‘대왕의 길’이라 여겨집니다.


제 생각에 역대 드라마 속에서 묘사된 영조중 배우 박근형이 연기한 ‘대왕의 길’의 영조가 실제 영조대왕의 모습과 성격에 가장 근접해 있지 않나 합니다. 최근 드라마 ‘대박’의 최민수가 연기중인 숙종이 실제 숙종대왕과의 싱크로율에서 주목받고 있기도 한데, 배우 박근형과 연출자 이병훈이 묘사한 ‘대왕의 길’속 영조 또한 역대 어느 드라마 속 영조보다 싱크로율면에서 독보적이라 봅니다. 비단 영조뿐만이 아니라 주인공 사도세자역의 임호나 혜경궁 홍씨역의 홍리나 등등 드라마 전반에 흐르는 인물묘사와 사건전개 등에 있어 사실성이 상당히 돋보인 작품이었다 생각합니다.


그러던 것이 ‘허준’과 ‘대장금’의 상업적 대 성공이후 이병훈식 사극이 점차 주말드라마 같은 아기자기한 잔재미에 치우친 듯 정형화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기류는 ‘이산’과 ‘동이’ 그리고 ‘마의’에서 절정을 이루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제 이병훈 PD의 사극은 주인공과 시대적 배경, 그리고 내의원 수랏간 도화서 등 장소만 바뀔 뿐 드라마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와 스토리 전개는 ‘안봐도 비디오’라 해야 할 만큼 일정한 흐름을 탑니다. 따라서 이번 ‘옥중화’역시 ‘대장금’이후 정형화된 이병훈식 사극의 흐름을 그냥 따라만 간다면 일정수준정도의 시청률은 나오겠으나 더 이상의 신선감은 주지 못할 것입니다.





‘옥중화’는 MBC 사극 부활의 신호탄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한 때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MBC 사극은 지난해 ‘삼시세끼-어촌편’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서의 활약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차승원이 출연했음에도 시청률부진에 시달렸던 ‘화정’의 쓰라린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평균시청률 11%대로 한자리수 망신은 면했으나 과거 MBC 사극 전성기 시절의 놀라운 시청률에는 한참 모자란 수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출연배우 중 가장 입방아에 많이 오르내렸던 이는 당연 주연배우였던 이연희였습니다. 주연 캐스팅 때부터 꽤나 많은 이들이 이연희의 연기력에 의문을 가졌는데 결국 그들의 우려가 현실로 증명된 셈입니다(물론 ‘화정’의 문제점은 주연배우의 연기력 외에도 호칭이라든가 전반적인 스토리텔링 등 여러 가지였지만...). 그러기에 이번 ‘옥중화’의 주인공으로 낙점된 진세연에 대해서도 같은 우려의 시선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솔직히 톡 까놓고 말해 이연희 때보다 진세연의 연기가 더 걱정됩니다.


과연 진세연이 이연희의 전처를 밞을 것인지, 아니면 한지민과 한효주처럼 이병훈표 사극의 수혜자가 될 것인지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또한 ‘옥중화’가 ‘이산’부터 ‘동의’를 거쳐 ‘마의’까지 일정한 틀 속에서 정형화된 이병훈식 사극에 그칠지 아니면 예전의 이병훈 PD의 사실적 사극으로의 귀환이 될지도 주목됩니다. 옥녀역의 진세연과 첫 사극출연인 윤태역의 고수 그리고 전광렬 등 쟁쟁한 주조연급 연기자들이 스타 PD 이병훈과 작가 최완규 콤비가 그려낼 ‘옥중화’속에서 어떻게 연기하모니를 그려내며 ‘화정’으로 상처받은 사극매니아들의 마음을 달래줄지... MBC 사극의 부활을 기대해 봅니다.